[찬샘통문 12]명절, 선물을 보내는 게 즐거움이라니?
따져보니까, 고향집 컴퓨터 책상에 앉는 게 달포(한 달)도 더 넘었다. 후배가 펴낸 시집에 대한 寸評을 쓴 게 12월 16일, 그사이 해가 갈렸고, 2025년 새해가 되어 다시 또 한 달. 2월 2일 꼭두새벽이다. 그동안 용인 아내집에서 졸문의 미국 여행기를 비롯해 10여편을 썼지만, 歲月이 流水라는 말이 새삼 피부로 느껴진다. 안타깝고 속상한 것중의 하나는, 안개속같은 탄핵정국이다. 물론, 당연히 안개야 곧 걷히고 '빛의 해'가 될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 마음의 ‘지질병’(답답한 현상에 질려버리는 정서불안증같은 증상)으로 답답한 날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지지부진할수록 말도 안되는 국민들끼리의 反目과 愛憎이 깊어질 게 불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살벌한 국제사회 환경에서 뭉쳐도 살아가기가 어렵거늘, 우리 民心이 갈갈이 찢어진다는 게 될 말인가.
아무튼, 명절 설연휴를 아내집에서 큰아들네와 지내고 그제 내려오니, 고향은 別世界였다. 내가 좋아하는 雪國(야끼꾸니), 이장은 70평생 가장 많이 눈이 내린 것같다(50여cm)고 했다. 아까비, 그 장면을 못보다니, 아쉽다. 사브작사브작, 싸목싸목, 하릴없이 또 하염없이 내리는 눈 보기는 나의 취미. 故鄕山川에 눈이 허벌나게 내리는 壯觀을 눈으로 직접 보고, 신새벽에 마을 뒷산 신작로를 걸신들린 듯 걸으며 소락때기(고함)을 질러댔어야 했거늘. 소락때기는 '음치의 노래'를 말하는데, 레퍼토리(십팔번)가 <테스형> <세월 베고...> 등 나훈아의 대여섯 곡이다(물론 정태춘과 장사익, 범능스님, 송창식의 곡도 하나씩 있다). 허나, 이젠 그 취미와 특기도 발휘하지 못하겠다. 은퇴공연 마지막에 바보같은 인간이 ‘커밍아웃’을 할 줄은 몰랐다(꼰대이면서 자기가 무슨 '당당한 어른'이라며 ‘니는 잘했냐?’는 兩非論을 펼쳤다). 다시는 떠오르고 싶지 않은 인간의 노래를 노래가 아무리 좋아도 부를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하하.
명절 직전 이곳저곳에서 보내온 膳物보따리를 풀으며(상할 만한 것은 이장이 저온창고에 보관해줬다), 화들짝 반가운 선물이 있어 또 ‘한 감동’했다. 밀레니엄이 시작되는 2000년 1월부터 “전라도의 자연·문화·사람”만을 온전히 다루는 월간 토종잡지 <전라도닷컴>에서 보내온 쪽지의 내용을 읽었다.
“시한(겨울)이 암만 길어도 지내가. 이날 평상 봄이 안온 적이 없어.” 이게 무슨 말인가? 장터의 어머니 말씀을 새긴 새해 덕담이다. <과거가 현재를 구한 것처럼/ 오늘, 미래를 구하기 위해 마음 모아 온 우리의 이웃에 감사합니다./한결같은 격려와 따뜻한 응원으로 전라도닷컴의 한 걸음 한 걸음을 만들어 주시는 님, 고맙습니다./ 다시 맞는 을사년, 오직 빛으로 가득한 역사를 써야 할 새해입니다./날이면 날마다/해 아래도/달 아래도/기쁜 일만 연달아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참말로 멋진 새해 덕담이다. 내용물은 <아홉가지 맛 까불이 오란다>. 크린베리, 감태, 초코, 파래, 플레인, 뿌링클, 딸기, 흑임자, 카페모카, 이 아홉가지로 오란다를 만든 사람은, 오늘 아니면 기록하지 못할 전라도의 명장면들을 사진에 담아내고 있는 박갑철 기자의 아내(순천에서 ‘다시돌아, 봄’카페지기)가 정성껏 만들었다고 한다.
세상에나, 이렇게 귀하고 멋진 선물을. 인사장을 읽으며 솔직해 행복했다. 몇 년 전에 준 컵 선물의 문구가 생각나 찬장에서 꺼내보았다.
<나 혼자만 힘든 시상이 어딨다냐./내가 일헌다, 허고/내 자신 헌티도 생색내지 말고/노는 것 맹키로 살어라/–전라도 말씀>. ‘전라도 말씀’은 왜 이리 찰지고 맛이 있을까. 맞다. ‘노는 것 맹키로 살어아’ 참 지당한 말씀이 아니신가. 이어서 쏟아지는 설명절 선물 네댓 개를 개봉하면서 든 생각은 ‘내가 세상을 잘 살아온 모양’이었다. 자랑같지만, 아니 자랑이지만, 보내주신 귀한 님들을 생각하며, 한 줄 적는 것은 나의 의무. 두 번째 선물은 ‘삼진어묵’. 이렇게 다양한 어묵이 있는 줄도 처음 알았지만, 명절 때마다 KBS <진품명품> 감정위원인 9년 선배가 보내주시는데, 큰 며늘아가가 부산어묵을 특히 좋아해, 받을 때마다 내 위신도 서는 것같아 기분이 째지곤 했다.
세 번째 국민연금공단에서 보내주는 漢菓세트. 먹기도 아까울 정도로 예쁘고, 알록달록 가지런히 배열한 2단 상자의 한과세트는 ‘아내와 손자 몫’, 손도 내지 않고 고대로 갖다줄 생각이다.
네 번째는 상자 가득히 담긴 ‘죽방멸치’이다. 죽방멸치는 이제 貴物이 됐다는데, 충무로에서 출판사를 하는 10년 후배가 10년 전부터 1년에 두 번, 줄기차게 보내오는 선물로, 우리집은 그 친구 덕분에 멸치 꼬타리 하나 사본 적이 없다. 제발 그러지 말라고 해도 '쇠고집' 후배는, 이제는 같이 늙어가는 친구이다('사이다' 최강욱과 동기동창). 별명이 ‘대한민국 호적계장’이다. 어지간한 정치인, 문화계-경제계 인사들의 족적과 언행, 지연, 학연 등을 정말로 희한하게도 쫘악 꿰고 있어, 얘기할 때마다 놀랍고 경이롭다. 駭怪할 정도이다. 남 모르게 혼자서 외우며 공부할까, 그것이 궁금하다. 수십 년 전 전주 다가공원에서 ‘전북 홀로서기’를 주창한 손모 정치인의 연설내용까지 기억하는 것을 보고, 즉석에서 호를 ‘다가공원’이라고 지어주며 破顔大笑한 적도 있다.
또 있다. ‘건설 積算분야’ 회사를 경영하는 한 동네 동생이 명절 때마다 보내오는 ‘韓豚세트’. 지방대를 나와 서울에서 出世를 했다면 ‘한 출세’한 셈, 고향 기부 등 이런저런 좋은 일도 많이 하는 동생이 자랑스럽다. 하여 말했다. “동생, 돈 많이 벌어놓아. 진짜 뜻깊게 돈을 써야 하는 길(방법)을 나중에 내가 알려줄 게” . ‘알겠다’고 선선히 대답해주는데 어찌 기특하고 고맙지 아니한가. 그 동생의 할머니와 우리 할머니는 친자매이다. 돈만 많다면야 정말 ‘좋은 데’ 의미있게 쓸 곳은 無窮無盡, 천지삐까리가 아니던가. 마지막으로, 인근마을 고교 동창 친구의 선물이 6년째 계속됐는데, 이번에 不發한 이유는 아버지가 지난해 3월 요양원에 들어가서이다. 용인에 있다니까 실망의 목소리가 역력했다. 여기에 있었으면 맛있는 육회로 한 잔 쭉 할 수 있었을텐데. 하하. 아버지가 살아계시는 한, 명절 때마다 <한산 소곡주> 대병 2개와 팩으로 된 <육회>를 선물한다던 스스로의 약속을 어긴 적이 없었다. 진짜 고마운 친구, 바탕이 흰 색처럼 선하기에 호를 素泉이라고 지어줬는데, 召天(소천)이 연상되는지 별로 내키지 않은 것같다. 하하.
정년퇴직 직후 이삼년 동안, 명절 때마다 10개가 넘는 선물이 전국 각지에서 쏟아지는 것을 보고 아버지는 不可思議한 표정이었다. 아들이 객지에서 40년 동안 무엇을 하고 살았는데, 이렇게 귀한 선물이 들어오냐며 집에 들르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씀이 “야 때문에 조선천지에 나는 별나고 맛있는 것은 다 먹어본다”는 것이다. 제주도에서 옥돔이나 은갈치가 오기도 하고, 상주 곶감이나 영광 보리굴비, 순천의 아카시아꿀 등이 오는 것을 보고 하신 말씀이었다. 빈 말이 아니고 진짜. 아내도 “퇴직한 지가 언제인데, 아직까지 선물이 들어오냐?”고 말했다. 은근히 흐뭇했다. 선물 이야기는 이쯤에서 그만둬야 맞지만, 하고 싶은 말이 하나 더 있다. 받는 기쁨도 기쁨이지만, 주는 기쁨은 더 크다는 말이다. 선물을 구입하는 돈이 많고 적은 게 문제가 아니고, 주는 사람의 마음씀씀이, 즉 ‘誠意’가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래서 寸誠이라고 하고, 寸志라 했을 것이다.
이보다 더 좋은 것은 무조건 冊선물이다. 아아-, 그동안 내가 받았던 책선물이 무릇 幾何였던가? 족히 100권은 되었을 터, 참으로 고맙고 감사할 일이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이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돈은 똥같은 것이 아닐까? 진주의 ‘살아있는 聖人’ 김장하 어르신도 말했다. “똥은 쌓아두면 구린내가 나지만, 흩어버리면 거름이 되어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는다. 돈도 이와 같아서 주변에 나누어야 사회에 꽃이 핀다” 책을 선물받을 때마다 나는 “사람이 책을 만들었지만,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말과 함께 圓佛敎를 창시하신 소태산 선생님의 “물질이 개벽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어록이 생각난다. 惶感하여 선물을 보내지 말라고 하면, 주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잇츠 마이 플레줘(It’s my pleasure)”라는 말이 나를 한없이 부끄럽게 한다. 자랑칠만 하다고 생각하시지요? 좌우지간 고맙고 고마운 일입니다. 香薰이 있는 인간으로, 열심히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