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30일(토) 시편 36:1-12 찬송 539장
(여호와의 종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1. 악인의 죄가 그의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그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없다 하니
2. 그가 스스로 자랑하기를 자기의 죄악은 드러나지 아니하고 미워함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함이로다
3.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죄악과 속임이라 그는 지혜와 선행을 그쳤도다
4. 그는 그의 침상에서 죄악을 꾀하며 스스로 악한 길에 서고 악을 거절하지 아니하는도다
5.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있고 주의 진실하심이 공중에 사무쳤으며
6. 주의 의는 하나님의 산들과 같고 주의 심판은 큰 바다와 같으니이다
여호와여 주는 사람과 짐승을 구하여 주시나이다
7.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사람들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피하나이다
8. 그들이 주의 집에 있는 살진 것으로 풍족할 것이라 주께서 주의 복락의 강물을 마시게 하시리이다
9.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10. 주를 아는 자들에게 주의 인자하심을 계속 베푸시며 마음이 정직한 자에게 주의 공의를 베푸소서
11. 교만한 자의 발이 내게 이르지 못하게 하시며 악인들의 손이 나를 쫓아내지 못하게 하소서
12. 악을 행하는 자들이 거기서 넘어졌으니 엎드러지고 다시 일어날 수 없으리이다
(개역 개정)
- 악인과 의인의 상반된 종국 -
본시는 시편은 물론 성경 전편에 흐르고 있는 기본 사상
곧 여호와의 존재와 그분에 대한 자세가 곧 전인격의 선과 악, 상과 벌의
기준이 된다는 구속사적 인생관을 선명하게 표출하고 있는 지혜시로서
시편 1편과 그 근본 사상에서는 일치를 보이고 있다.
반면 그 세부 내용에 있어서는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먼저 시편 1편이 의인과 악인의 상반된 삶의 자세와 상반된 운명을
객관적 입장에서 대조시켜 제시한 반면
본시는 인본주의적 착각에 빠진 죄인들의 근시안적 교만과 무도함을
절대 초월자요 창조자로서 인생은 물론 전우주에 대하여 주권을 가지신
여호와의 능력 특히 그분의 인자에 직접적으로 대조시킴으로써
일단 악인들의 부당성과 어리석음, 나아가 사악성을 더욱 강력히 실증시킨다.
그리고 나서 이러한 악인과 의인의 상반된 종말론적 운명을 제시하고 있다.
즉 본시는 의인과 악인을 대조시키기 보다는
근본적으로는 악인의 죄악에 대한 재앙과 하나님의 인자를 대조시키고
다만 그 종말론적 미래의 운명에 있어서만 의인과 악인을 대조시킴으로써
주로 스스로는 잘난척 하지만 기실은 꼴불견이요 만행자에 불과한
죄인의 현재의 신앙과 그 미래의 실상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두 시는 이를 읽는 이로 하여금 여호와 앞에서
자신의 삶의 자세를 돌아볼 것을 촉구하고 있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먼저 전반부 1-4절은 하나님을 경외치 않는 자들의 행악의 실상에 대한 언급으로서
그들의 행악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경외치 않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보여 주고 있다.
중반부 5-9절은 생명과 복락의 원천인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의뢰하는
의인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에 대하여 묘사하는 부분이다.
끝으로 10-12절은 본시의 결론격에 해당하는 부분으로서
하나님의 공의의 보응으로 주를 경외하는 자의 축복과
악인의 비참한 파멸을 간구하는 부분이다.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 인간의 생사화복은 창조주요 전우주 만물의 주관자이신
여호와 하나님께 달려있는 것인 바 이러한 사실을 무시하고
육체의 정욕만을 좇아 임의대로 사는 자들은 실로 어리석은 자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창조주 하나님께 대한 싱앙 자세의 여부가
곧 선과 악, 영생과 멸망을 좌우한다는 구속사적 인생관을 확고히 가져
이같이 어리석은 자들의 부류에 들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마7;24-27; 히3:15-19)
8-9절) 「그들이 주의 집에 있는 살진 것으로 풍족할 것이라
주께서 주의 복락의 강물을 마시게 하시리이다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7절에서 말한 주의 날개 그늘 아래로 피하는 자
곧 하나님께 자신을 의탁하는 자의 복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그들이 주의 집에 있는 살진 것으로 풍족할 것이라
주께서 주의 복락의 강물을 마시게 하시리이다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이는 듣기만 해도 가슴 벅찬 말씀이다.
여기서 ‘주의 집에 있는 살진 것’과 ‘주의 복락의 강물’이란
하나님의 최고의 축복을 말한다.
특별히 ‘주의 집’이란 하나님의 하늘 처소를
‘살진 것’이란 가장 좋은 것 또는 풍성함을 상징한다.
그리고 ‘복락의 강물’이란 ‘에덴의 강’이란 뜻으로
에덴 동산을 기름지게 하였던 네 강이 상징하는 것과 같이
우리의 삶과 영혼을 기름지게 하는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풍성한 은총과 다함없는 축복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그들이 주의 집의 살진 것으로 풍족할 것이라
주께서 주의 복락의 강물을 마시게 하시리이다’라는 말씀은
하나님은 당신께 피하는 자에게 가장 좋은 것,
최고의 축복으로 대접하신다는 말이다.
하나님께 피하는 자는 하나님이 풍성하게 공급하시는 은혜로
‘배고픔과 목마름’이 일시에 해소되며 진정한 만족을 누리게 된다.
한편 다윗은 하나님을 생명의 원천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 단지 하나님이 생명의 근원이 되심을 밝히기 위해 한 말이 아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모든 생명의 근원이실 뿐만 아니라
그 생명들을 보존해 가시며 그 생명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는 분임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아울러 이는 하나님께서 인생들의 유일한 구원자가 되심을 말한다.
다윗은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라고 말한다.
이는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다는 앞선 말씀과 같은 의미로서,
하나님께서 영원한 생명 곧 구원의 빛을 비추시는 분임을 말한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8:12)고 하셨다.
주의 날개 그늘 아래로 피하는 자는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최고의 축복으로 영육간에 만족을 누리며 영원한 생명을 얻는 복을 누린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이러한 복을 누리도록 초청하셨다.
이는 ‘구원의 보편성’이라는 말로 달리 표현할 수 있다.
하나님의 구원에는 제한이 없다.
누구나 하나님의 초청을 듣고 하나님께로 나아가기만 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릴 수 있다.
민족, 혈통, 빈부, 귀천의 차별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에 제한이 없다고 해서 누구나 다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초청의 메시지는 누구에게나 전해질 수 있지만
그것을 듣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하나님의 축복과 구원의 은혜는 누릴 수 없다.
인간을 인격적인 존재로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 의지에 의한 자유로운 선택에 의하여
하나님의 초청을 받아들이든지 거절하든지를 결정하도록 하셨다.
물론 그 선택과 결정의 책임은 그 자신에게 있다.
오늘도 사람들은 이러한 선택과 결정에 의하여
각기 축복과 저주, 생명과 멸망의 길로 가고 있다.
우리는 축복과 생명의 길을 택한 지혜로운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이 아름다운 길에서 떠나지 않도록 더욱 경건에 힘써야 한다.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요일5: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