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주박물관및 중앙 7층탑 역사기행
일시:2023년 5월20일(토) 2시30분~ 3시30분
장소:충주박물관
주최: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자전국유족회
후원:행정안전부
충주지역은 지정학적인 중요성으로 일찍부터 역사상의 큰 위치를 차지하며 변천해 온 곳이었기에 이에 상응하는 문화유적이 많이 남아있다.
입구 좌측 벽에 옛 충주읍성 남문의 모습과 사적 317호로 지정된 미륵리사지 사진이 전시되어 있으며, 전시실 중앙에는 국보 102호인 홍법국사실상탑 모형이 있다. 역사1실은 불교미술실로 중원지방에 산재해있는 사찰과 탑 그리고 불상의 위치를 알 수 있는 충주문화재분포지도가 중앙에 있다. 숭선사, 정토사, 청룡사 등을 소개하였고 불화·불상·무속도 등 다양한 불교유물을 전시하였다.
중앙탑(국보6호)
충북 충주를 대표하는 관광지로 충주고구려비, 탄금대, 수안보온천이 있지만 그래도 마루지(랜드마크)를 꼽으라면 단연 ‘중앙탑’이다.
한강 변에 우뚝 선 충주 중앙탑은 이름에서 들리듯이 국토의 중심을 상징하고 있어 주민들에게나 방문객들에게 천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쌓여 전해온다.
중앙탑은 현존하는 신라의 석탑으로는 12.86m로 규모가 가장 크고 높다. 거기에다 탑이 평지가 아닌 높은 기단에 서 있어 그 웅장함은 더하다.
중앙탑이 충주에 건립된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통일신라의 수도인 경주 다음가는 소경(小京)인 데다가 영토의 중앙에 해당해 국가의 위세를 대내외에 알리기 좋은 지리적 조건을 갖췄기 때문일 것이다.
충주는 삼국시대부터 국토의 중심지로 여겨왔다. 고구려는 나라의 중앙이라며 ‘국원성(國原城)’이라고 했고, 신라는 국토 중앙에 있는 서울이라는 뜻으로 ‘중원경(中原京)’으로 불렀다.
이처럼 충주는 국토의 중심 고을 의미가 있고 중앙탑은 국토의 중앙이라는 상징적 의미가 담겨있다.
그러나 중앙탑의 공식 명칭은 ‘충주 가금면 탑평리 7층 석탑(국보 제6호)’이다. 이는 문화재로 지정할 때 탑이 위치한 곳의 행정지명과 탑의 층수에 의한 것으로 사람들이 언제부터 중앙탑이라고 쓰게 됐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신라의 제38대 원성왕(재위 785∼798)이 통일신라 영토의 중앙 부위를 설정하려고 남북 국경에서 건장한 남자를 동시에 출발시켜 만난 이곳에 탑을 세웠다고 하는 전설이 ‘중앙탑’으로 불리게 됐다.
일제강점기인 1916년 작성된 탑의 수리에 관한 문서를 보면 모두 ‘중앙탑’이란 이름으로 이 문서 끝에 ‘구비로 전함에 의하면 중앙탑의 명칭은 조선의 중앙지라고 전설하였다는데 유함’이라고 해 중앙탑의 건탑 유래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중앙탑은 삼국시대부터 국원(國原) 또는 중원(中原)이라 칭한 충주에 위치해 지역적으로 중심 고을의 상징적 의미를 지닌 탑이다.
중앙탑은 현재까지 건립된 시기와 그 의미가 확실하지 않아 다양한 견해가 있는 가운데, 9세기에 새롭게 등장하는 지방 세력을 누르고 반신라적 민심을 달래 국가적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세운 비보적 의미를 지닌 원탑으로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문화재의 공식 명칭을 정함에 있어 별도의 이름이 없을 때 지역 이름과 층수와 재질을 고려해 ‘충주 탑평리 7층석탑’ 식으로 붙이지만, 중앙탑의 경우는 지역민들에 의해 오랫동안 불러준 엄연한 이름이 있는 만큼 공식 명칭도 ‘중앙탑’으로 하는 것이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