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목(碑木) 앞에서
이덕대
차들이 분주히 다니는 터널 속 인도 위를 걷는다. 일요일 이른 시간이라 오가는 사람은 없다. 직박구리 한 마리가 터널 속 시멘트 벽을 따라 날았다 앉기를 반복한다. 혹 날개라도 다쳤나 싶어 유심히 살핀다. 여름으로 바뀌면서 곳곳이 거미줄이다.
공존은 보기 어렵다. 삶과 죽음이 혼재한 전쟁터다. 새는 먹이를 구하고 거미는 황급히 숨다 잡아먹힌다. 죽음과 삶의 교차는 자연의 섭리다. 포식자와 피식자 만남은 생명이 이어지기 위한 아름다운 순환이다. 그럼에도 생명을 먹이로 취하는 현장을 보면 가슴이 저리다. 거미도 새도 삶과 죽음의 사슬에 같이 묶여 있다. 그것들이 인간이 아닌 자연 그 자체라고 해도 눈 감기가 어렵다.
유월의 어느 날 비목(碑木)의 땅으로 간다. 그곳이 철원이거나 화천이거나는 중요하지 않다. 비석이든 비목이든 죽음의 흔적조차 기억하지도 추억하지도 못한 채 젊은 죽음은 잊혔다. 그나마 슬픔으로 노래할 수 있는 비목이 있다는 것만으로 다행이다.
이름 없이 산화한 젊음 앞에 바쳐진 비목(碑木)은 애절하다. 거룩한 종말을 기리는 비석(碑石)은 엄숙하다. 기억하기 위한 비석과 기억하지 못해 미안한 비목의 슬픔 무게는 차이 지지 않을 것 같다. 세월의 흐름이 만드는 지저깨비는 나무든 돌이든 매한가지다. 무극(無極)의 시간 사슬에 묶인 인간과 거미, 돌과 나무는 티끌이 되고 먼지가 되어 이 땅 저 바다에 스며들 것이다.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십자가는 누가 만들고 구멍 난 철모는 무슨 마음으로 씌웠을까. 살기 위하여 왔던 하늘 아래서 젊은 죽음으로 돌아가야 했던 그 고통과 슬픔의 시간을 되돌려 보지는 못한다. 흩어진 인골을 수습하고 돌무더기를 쌓은 뒤 나뭇가지 십자가를 세우던 그 애절함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심저가 넓지도 못하다.
한때 조국의 하늘을 지키겠다는 청운의 꿈을 꾸던 시절이 있었다. 신의일관(信義一貫)과 은위겸비(恩威兼備)란 말 앞에서 가끔은 무너졌다 일어섰었다. 그런 시간을 건너왔다고 해서 비극의 역사에 무리로 합장된 그 죽음을 함부로 논하고 기념할 자격은 어디에도 물론 없다.
서녘 산봉우리에 해 걸리고 노을 붉다. 어디선가 병사의 비장한 노래 들리는 듯하다. ‘대한 남아 가는데 초개로구나’ 깃발 하나를 들고 맨몸으로 부딪히다 장렬히 산화한 죽음을 본다. 수습되지 못한 인골은 낙엽 속으로 땅속으로 천천히 스며든다. 그들의 영혼은 방황할 것이다. 골짜구니의 잠들지 못하는 바람이 되고 산꼭대기의 머물지 못하는 구름이 되어 떠돌지 모른다. 잊힌 영령을 모시는 일은 장하다.
벽암산 기슭이든 비목 기념공원이든 잊을 수 없는 죽음 자리 앞에서는 늘 비감하다. 노래를 부르는 것만으로 시를 읽는 것만으로 가슴이 먹먹해질 때가 있다. 자신의 삶과는 전혀 무관한 듯하면서도 깊이 들여다보면 살아가는 자들의 사름 역할이 된 상황은 더욱 그렇다. 철제 울타리마다 청춘의 심장같이 벙글었던 붉은 장미가 진다. 아직도 아물지 못한 상처가 비석 곁에 머문다. 산목련 같은 흰 손수건을 적시는 것은 눈물이 아니다. 망각 속으로 사라지는 무명용사의 호요바람이다. 수많은 젊음이 이 산 저 언덕에서 이름조차 남기지 않은 채 부서지던 시간이다. 살아남기 위해 한 마리 새조차 수많은 죽음을 만드는 생멸의 아침이다. 비극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 초연에 휩쓸려간 붉은 피와 젊음을 기억해야 할 유월이다.
▲이덕대
* 공군사관학교 졸업 및 공군대령 예편
* 경남일보 칼럼니스트(2018년~현재)
* 김포문학상 수필부문 신인상(2017년)
* 한국수필 신인상(2021년)
* 한국수필 “올해의 좋은 수필 10선”에
[감나무 가지에 걸린 달빛으로 자라기] 선정(2023년)
* 한국수필가 협회 및 김포문협 회원
* 에세이집 [감나무 가지에 걸린 달빛으로 자라기] 출간
출처: 비목(碑木) 앞에서 / 이덕대-시인투데이 - https://www.poet.today/4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