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로는 이슬처럼 왔다가 흔적을 남기다
전홍구
오늘이 백로(白露)다.
아침 창문을 열자 서늘한 바람 한 줄기가 방 안으로 스며든다. 어제까지 여름인 줄 알았는데 밤사이 계절이 살며시 옷을 갈아입은 모양이다. 풀잎 끝에는 작은 이슬방울이 맺혔다. 햇살을 받으면 금세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한동안 바라보았다.
백로(白露).
흰 백(白)에 이슬로(露)다. 일 년 가운데 찬 이슬이 내리기 시작하여 가을다운 기운이 더해진다는 절기다. 그런데 참 묘한 이름이다. 하늘에서 내리는 것도 아니고 비처럼 소리를 내는 것도 아닌데 가을의 문턱을 알리는 이름이 되었다.
이슬은 조용했다.
밤새 내려앉았다가 아침 햇살 한 번이면 사라진다. 그러나 사라진다고 해서 없었던 것은 아니다. 풀잎을 적셨고, 거미줄에 작은 구슬을 달았으며 아침의 공기를 한층 맑게 만들었다.
어쩌면 사람의 삶도 이슬과 비슷한 것인지 모른다.
우리는 오래 살기를 바라지만 지나고 보면 인생도 한순간이다. 어느새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백로가 찾아온다. 젊음도 건강도 명예도 재산도 붙잡고, 있을 때는 영원할 것 같지만 세월 앞에서는 잠시 머물다 가는 이슬과 같다.
그러나 이슬이 짧다고 해서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짧은 시간에도 누군가의 마음을 적셔 주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백로 白鷺에는 또 다른 백로가 있다.
흰 백로다. 왜가릿과에 속하는 새를 통틀어 이르는 이름이다. 논이나 냇가에서 긴 다리로 물을 가르며 걷는 백로를 보면 한 폭의 수묵화가 따로 없다.
흰 몸은 눈처럼 깨끗하고 긴 목은 고요하며 물가를 걷는 모습에는 묘한 품위가 있다.
나는 어린 시절 논둑에서 보았던 백로를 떠올린다.
벼가 익어가는 논 한가운데 백로 한 마리가 서 있었다. 무엇을 기다리는지 한참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목을 길게 뻗어 물속의 작은 먹이를 낚아챘다.
가만히 있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기다림도 삶의 한 방식이었다.
요즘 사람들은 너무 바쁘다. 잠시 쉬면 뒤처지는 것 같고 남보다 늦으면 실패한 것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백로는 서두르지 않는다. 물이 흐르는 것을 바라보고 먹이가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때가 오면 단 한 번의 움직임으로 제 몫을 얻는다.
우리에게도 그런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라, 때를 기다리는 시간 말이다.
그런데 백로 伯勞에는 또 하나의 백로가 있다.
때까칫과에 속하는 새다.
같은 발음인데 한자는 다르다. 같은 이름 아래 전혀 다른 새가 숨어 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람도 그렇다.
이름은 같아도 살아온 길은 다르고 얼굴은 비슷해도 마음속에 품은 이야기는 모두 다르다. 같은 마을에서 태어나 같은 학교에 다녔어도 누구는 산으로 가고 누구는 바다로 간다.
겉으로 보이는 이름 하나만으로 사람을 판단할 수 없는 이유다.
백로라는 두 글자 안에도 서로 다른 생명이 들어 있듯이 사람의 이름 석 자에도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수많은 세월이 들어 있다.
그러니 사람을 만날 때 이름만 보지 말아야겠다.
그 사람이 지나온 계절까지 바라볼 일이다.
백로에는 영어식 표현도 있다.
back row.
럭비에서 스크럼의 셋째 줄에 자리 잡은 선수들을 이르는 말이다.
참 재미있다.
백로라는 같은 소리가 동양의 절기에서 흰 새가 되고 또 다른 새가 되고 서양 스포츠의 뒷줄 선수가 된다.
사전 한쪽에 가만히 앉아 있는 단어 하나가 세상을 이렇게 넓게 돌아다닌다.
그러고 보면 우리 인생도 그렇다.
앞줄에 서는 날도 있고 뒷줄에 서는 날도 있다.
젊을 때는 앞에 서고 싶었다. 인정받고 싶었고 잘 보이고 싶었고 남보다 조금이라도 앞서고 싶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보니 뒷줄도 나쁘지 않다.
앞줄에서는 앞만 보지만 뒷줄에서는 지나온 사람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이끄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뒤에서 받쳐 주는 사람도 필요하다.
삶은 언제나 앞줄에 서는 사람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뒤를 묵묵히 받쳐 준 사람들 덕분에 세상은 앞으로 나아간다.
‘검은 구름에 백로 지나가기’라는 말도 있다.
정처 없이 돌아다녀 종적을 알 수 없음을 비유하기도 하고 많은 것 가운데 표적이 뚜렷함을 이르기도 하며 어떤 일을 해도 자취가 남지 않는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참으로 사람 사는 세상과 닮았다.
누군가는 바쁘게 살아왔지만 돌아보니 무엇을 했는지 흔적이 없다. 돈을 벌고 집을 짓고 명예를 얻었지만, 세월이 지나면 모두 희미해진다.
마치 검은 구름 사이로 흰 백로 한 마리가 지나가듯 잠시 눈에 들어왔다가 사라진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다.
그렇게 흔적 없이 살아온 것 같은 사람에게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는 자국이 남아 있다.
따뜻한 말 한마디.
어려울 때 내민 손 하나.
아픈 사람의 곁을 지켜 준 한 번의 밤.
그것들이 훗날 가장 오래 남는다.
사람은 무엇을 얼마나 가졌는가보다 누구의 마음에 무엇을 남겼는가로 기억되는지도 모른다.
백로를 두고 이런 속담도 있다.
‘칠월 백로에 패지 않은 벼는 못 먹어도 팔월 백로에 패지 않은 벼는 먹는다.’
농부에게 절기는 곧 삶의 시간표였다.
벼가 제때 이삭을 내야 가을에 알곡을 거둘 수 있다. 늦으면 아무리 애를 써도 때를 놓친다.
농사는 기다림의 예술이면서 동시에 때를 아는 지혜다.
사람의 인생도 다르지 않다.
공부할 때가 있고 일할 때가 있고 사랑할 때가 있고 내려놓을 때가 있다.
젊을 때는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나면 깨닫는다.
인생에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 계절이 있다는 것을.
그래서 지금의 하루가 소중하다.
오늘 해야 할 사랑을 내일로 미루지 말고, 오늘 해야 할 감사도 다음 계절로 넘기지 말아야 한다.
특히 마음에 남는 백로가 있다.
노랑부리백로다.
작은 몸으로 물가를 누비며 살아가는 이 새는 국제적으로 보호받는 귀한 새다.
한때 우리 곁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생명들이 이제는 보호해야 할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생각해 보면 인간은 참 이상하다.
자연을 이용할 때는 그것이 당연한 줄 알다가 사라질 때가 되어서야 소중함을 깨닫는다.
맑은 강물이 사라지고 나서야 물의 귀함을 알고 새가 떠난 뒤에야 숲의 가치를 안다.
어쩌면 우리 삶도 그렇다.
건강할 때는 건강을 모르고 곁에 있을 때는 사람의 소중함을 모른다.
떠나고 나서야 그 빈자리를 바라보며 말한다.
‘참 고마운 사람이었구나.’
그러나 이미 늦은 뒤일 때가 많다.
오늘 아침에도 풀잎 끝에 이슬이 맺혀 있었다.
나는 문득 생각한다.
백로(白露)는 단순히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은 우리에게 사라짐을 미리 알려주는 계절의 인사인지도 모른다.
여름이 물러가고 있다.
매미 소리가 잦아들고 귀뚜라미가 밤을 채운다. 푸르던 잎은 조금씩 빛을 바꾸고 들판의 벼는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떠날 준비를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떠남은 끝이 아니다.
벼는 고개를 숙여 알곡을 채우고 나뭇잎은 떨어져 흙으로 돌아가며 이슬은 사라져도 대지를 적신다.
삶도 그런 것 아닐까.
젊음이 떠난 자리에 지혜가 남고 욕심이 떠난 자리에 여유가 남으며 사람이 떠난 자리에는 추억이 남는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머물렀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남기고 떠났느냐일 것이다.
나는 다시 풀잎을 바라본다.
작은 이슬 하나가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잠시 후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분명히 빛나고 있다.
백로(白露). 백로(白鷺). 백로(伯勞). 그리고 back row.
서로 다른 백로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름은 같지만 뜻은 다르고 뜻은 달라도 결국 하나의 삶을 이야기한다.
기다리고 날아가고 앞과 뒤에 서고 때를 맞추며 흔적을 남기는 것.
그것이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인지도 모른다.
삶은 백로처럼 잠시 우리 곁에 머물다 간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를 소홀히 보내지 말아야겠다.
언젠가 내 인생도 검은 구름 사이로 지나가는 백로처럼 보일 테니까.
다만 한 가지 바람이 있다.
내가 떠난 뒤에도 누군가의 마음 한구석에 작은 이슬 하나처럼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아침 햇살에 사라져도 좋다.
잠시라도 누군가의 마음을 촉촉하게 적셨다면 그것으로 내 삶은 아주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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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 노트
네. 지금 글의 핵심은 ‘백로’의 여러 사전적 의미를 각각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백로들을 하나의 상징으로 엮어 ‘시간 속에서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존재 그러나 흔적을 남기는 삶’으로 수렴시키는 것입니다.
한 줄기로 묶는다면 이렇게 잡을 수 있습니다.
백로를 관통하는 하나의 의미
백로(白露)의 이슬 → 백로(白鷺)의 새 → 백로(伯勞)의 새 → back row의 뒷줄 → ‘검은 구름에 백로 지나가기’ → 백로 속담 → 멸종 위기의 노랑부리백로
이 모든 의미를 ‘때를 따라왔다가 흔적을 남기고 사라지는 존재라는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할 수 있습니다.
白露는 계절이 바뀌는 순간에 잠시 맺혔다가 사라지는 이슬입니다.
白鷺는 계절을 따라 찾아와 물가에 머물다가 다시 떠나는 철새입니다.
伯勞 역시 자연의 질서 속에서 살아가는 또 하나의 생명입니다.
back row는 무대의 앞이 아니라 뒤에서 자기 자리를 지키는 존재입니다.
‘검은 구름에 백로 지나가기’는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것 혹은 흔적 없이 사라지는 삶을 떠올리게 합니다.
백로와 관련된 농사 속담은 인간 역시 계절과 때를 거스를 수 없는 존재임을 말합니다.
노랑부리백로는 이제 사라져 가는 생명으로서 우리가 무심히 지나친 존재들이 결국 우리 곁에서 자취를 감출 수 있음을 일깨웁니다.
그러므로 이 글의 중심 문장을 하나로 압축하면 “백로는 때가 되어 찾아와 잠시 머물고 제 자리를 지키며 흔적을 남긴 채 사라지는 모든 존재의 이름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금 더 문학적으로 만들면 저는 이 문장을 추천하겠습니다.
“백로는 이슬처럼 맺혔다가 새처럼 날아가고 앞이 아닌 뒤에서 제 자리를 지키며 어느 순간 구름 사이로 사라지지만 지나간 자리에는 계절과 기억이라는 흔적을 남긴다.”
이렇게 중심축을 잡으면 이 글의 전체가 ‘백로의 뜻이 여러 가지다’에서 끝나지 않고 ‘백로라는 말 속에 인간의 삶이 들어 있다’라는 깊이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특히 제목도 이 한 줄기를 살려서 「백로, 사라지는 것들의 이름」, 「백로가 지나간 자리」, 「이슬에서 새까지 백로라는 삶」, 「백로 머물다 흔적을 남기다」 같은 방향으로 잡으면 훨씬 강한 내용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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