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번거로워도 적정한 볼륨, 배경음악 들으시며 읽어 보세요. 하나님은 찬송 가운데 임하십니다
동양의 사상에서는 천체의 우주를 대우주라 하고, 그런 대우주의 모든 속성이 우리 안에 깃들어 있다하여 우리 사람을 소우주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사상은 동의보감의 내용에도 기록되어져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땅’이라고 말할 때 그 땅은 그 표현대로 땅 자체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흙으로 빚어진 우리 사람을 의미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를 살펴보면 사람과 마찬가지로 70%는 물로 되어 있으며, 오대양육대주로 구성되어 있는데, 우리 사람에게 오장육부가 있음은 흥미롭습니다.
이런 동양적 사상이 아니어도, 하나님이 문득 깨닫게 하신 영적 지혜로 보면, 인간과 우주는 같은 큰 구조의 틀을 가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우리 사람을 살펴보면 육과 혼과 영으로 되어 있는데, 선악과나무를 먹고 스스로 주체가 되어버린 혼의식이 하나님과의 만남을 방해하지요.
성경이 말하는 하늘들을 살펴보면 우리가 사는 땅의 우주인 첫째 하늘이 있고, 공중의 권세잡은 자들이 거하는 둘째 하늘이 있고, 하나님이 거하시는 셋째하늘이 있지요. 그 중 둘째 하늘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방해하지요.
이처럼 우리 사람의 구조와 하늘들의 큰 구조의 틀이 유비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끔 성령의 불세례나 방언의 은사를 경험하지 못한 분들이 어떻게 하면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느냐고 묻는데, 그 답은 이러한 우리 사람의 구조와 하늘들의 구조에 답이 있습니다.
우리가 영이신 하나님을 만나려면, 하나님과의 만남을 방해하는 둘째 하늘에 해당하는, 우리의 혼의식이 사라진 상태여야 합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백이십 문도가 함께 모여 하나님을 향하여 일심으로 기도함 같이, 하나님을 향한 깊은 몰입 가운데 우리의 혼의식이 작용하지 않는 상태여야 합니다.
곧 세상을 살아가기 위하여 주신 혼적인 의식이 살아 있어, 주변의 기도소리가 들려오는 것 등을 인지하는 상태에서는, 아무리 오래 기도하여도 영이신 하나님과의 만남의 스파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간절히 통성으로 기도하는 집회와 같은 곳에서, 성령의 불세례와 은사를 많이 경험하는 것은, 그 수많은 사람들의 기도의 기류 속에서 자신도 동화되어, 하나님께로만 몰입되어 잠시 혼의식은 잠든 영적 트랜스 상태가 잘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시간을 통하여, 우리 안의 영과 하나님의 영이 만나는 순간의 스파크가 일어나면, 그 시각에 대게 성령의 불세례와 더불어 은사가 열립니다.
이러한 영적인 원리는 같아서, 가령 무당의 신내림 굿과 같은 것을 보면, 요란한 방울소리나 여러 가지 소리를 내어, 혼이 잠든, 몰입의 영적 상태로 이끄는 것입니다.
우리는 뜨겁게 박수치며 찬송하고 소리 높여 함께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몰입 가운데서 이러한 것을 경험합니다.
이러한 원리는 처음 성령의 불세례를 받는 것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신앙생활의 여정에도 늘 적용됩니다. 가령 하나님의 영을 만나며 우리의 심령이 생명을 회복하고 평강을 누리며,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하늘의 빛으로 진리를 깨닫는 것도, 옛 성소로 비유하면 지성소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육을 뜻하는 성전의 뜰을 지나고, 혼을 상징하는 성소를 지나고, 비로소 영의 상태가 되어야 지성소 안에서 우리의 영과 하나님의 영이 만나고 연합하며, 영적 생명의 활동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집회의 시간을 가질 때 안수기도를 하다보면, 안수를 해 보아야만 알 수 있는 ‘안수의 촉’으로, 그 심령이 막힌 것이 전해져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때 안수하면서 그것이 뚫어지도록 기도하면 땅을 파들어 가다가 샘물이 터짐같이, 순간 그 막힌 것이 뚫어지는 촉이 옵니다.
그러면 나중에 안수하는 그 어느 시각에 심령이 열리더라는 말씀을 합니다. 이 때 뚫어진 것이 바로 둘째 하늘의 혼의 장벽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늘 심령에 생명과 평안을 누리고, 늘 하나님의 영을 접하고 만나고 교감하면서 지내려면,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한 사도바울의 말 같이, ‘자기를 부인하라’고 이르신 주님의 말씀처럼, 늘 경건한 삶에 성실하며 우리의 혼 곧 자아를 죽이는 삶을 견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의 심법(心法)으로는, 혼의 주된 작용은 생각인데, 생각을 잠잠히 하고 그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이 혼의 생각이 멈추고 잠잠해져야, 영이신 하나님과의 만남과 접속이 일어나며, 생명과 평안 그리고 영의 신령한 지혜의 빛이 우리의 마음에 어립니다.
이러한 주제에 대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며 교감하니 이러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늘 성령 안에서 행하여라. 모든 선한 것들의 근원인 성령 안에 행하지 않는 것은 모두 헛되다”
하나님의 말씀의 뜻은, 선한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라는 주님의 말씀처럼, 내 속에는 선한 것이 없다는 사도울의 고백처럼, 우리 스스로는 참된 선한 것들을 행할 수 없으니, 포도나무 되신 주께 늘 가지로 붙어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롬7: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곧 우리의 영이 하나님의 영과 접속된 상태, 곧 성령 안의 상태에서만 선한 무엇들이 나올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요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이러한 상태를 견지하려면 늘 기도와 말씀과 찬송, 그리고 예배 등을 통하여 늘 성령으로 새롭게 기름부음을 받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농부가 밭을 일구는 내적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곧 한편 땅인 우리, 그 우리의 마음을 잘 일구어 하늘나라의 씨가 잘 자라 하나님의 나라를 이도록 마음을 옥토로 늘 일구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창세기 3장 23절을 보면, 아담이 타락하였을 때, ‘그의 근본 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창3:23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여기서 토지는 땅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더 깊은 영적인 내용은, 땅에 해당하는 우리의 마음을 잘 가꾸어야 하는 것도 의미합니다. 타락한 우리 사람이 다시 새롭게 되는 길은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시 잘 가꾸어 옥토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글을 맺습니다. 우리 사람과 우주의 큰 구조를 살펴보면, 우리의 혼을 잠잠하게 하는 것이, 늘 자아가 죽고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영이신 하나님을 만나는 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구조적으로 나눌 수 있으나, 그것을 이루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늘 나를 가까이 하여라. 그것이 생명과 영광의 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지막 결언의 말씀처럼, 우리의 혼이 죽고, 우리의 영과 하나님의 영이 늘 만나는 생명과 영광스러운 삶은, 늘 무시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삶에서 이루어집니다. 어렸지만 하나님의 성전에서 지내고 잠을 자던 사무엘이 하나님을 만나는 놀라운 경험을 한 것처럼,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삶에서, 하나님을 향한 시간을 내어드리는 삶에서 이루어집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삶을 통하여, 생명과 영광의 아름다운 생이길 기도해 봅니다. 하늘 빛 나눕니다. 샬롬
계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첫댓글 [인사] 주님 안에서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하늘 평강 나눕니다. 샬롬 ♡
- 나라 위해 기도 애국해요. 주님 안에서 삶의 어려움을 극복 승리하세요
-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아멘
아멘! 목사님~기도중에 생각을 잠잠히 하는게 너무 어려워요~😅 평안하신 주말되세요🌷
감사해요. 주님 안에서 복된 주말 보내세요. 하늘 사랑 평강 나눕니다. 샬롬 🌸
아멘
감사해요. 주님 안에서 복된 주말 보내세요. 하늘 사랑 평강 나눕니다. 샬롬 🌸
아멘~~감사합니다
감사해요. 하루도 주님 안에서 강건 평안하세요. 하늘 평강 나눕니다. 샬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