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살을 깎아 먹여도 아깝지 않은
내 아들 반기문"
취재=장혜정 여성조선
기자 [여성조선]
▲ 신현순 여사는 지팡이를 내던지고 아들 반기문을
끌어안았다.
조선일보 DB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 母情
아흔의 노모가
지팡이를 내던지고 달려간 곳은 장남의 품속이었다.
매일같이 108배를
올려가며그저 건강하기를 빌고 또 빌었던
아들이었다.
“생살을 깎아 먹여도 아깝지 않다”던 노모의 아들은
얼마 전 연임소식을 전해온 반기문 유엔(UN)
사무총장이다.
1년 만에 다시 아들의 얼굴을 매만졌다는
노모는벌써부터 아들이 그립다.
- ▲ 반기문 총장의 어머니
신현순 여사 / 조선일보 DB
아들 얘기에 진작부터
화색이 돌던 신현순 여사는
반 총장의 어린 시절을 들려달라는 말에
마치 어제 일인 양 생생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실 기문이 위로
형이랑 누나가 있었어.
토실토실하니 잘 크던 애들이
꼭 두 살을 못 넘기고 고만 가버리더라고.
세 번째 들어선 애가 기문인데
앞에 애들이 잘못돼서 집안 어른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
태기가 있자마자친정 할머니가 무당을
불러다가 굿까지 했을 정도니까….
나도 절에 다니면서 빌고 또 빌었어.
점점 배가 불러오는데 얼마나 조심을 했다고.
기문이를 낳은 건 초여름이었어.
그날 우리 숙모가 도토리묵을 쑨다고하기에,
그래서 같이 도토리 물을 내는데 아무래도 애가 나올 것
같더라고.
집에 가서 낳아야겠다는 생각에 대문간을 막 나서는데
문지방을 넘기까지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몰라.
간신히 문지방을 넘어서 앞치마
끄르고,치마 끄르고 애를
낳았지.
그런데 애 목에 탯줄이 세 번이나 감겨 있었어.
새파랗게 질려서 울지도 않더라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
그래 앞치마를 덮어서 가만, 가만 애기 몸을 주무르니까
그때서야 켁켁거리면서 울기 시작하는 거야.
애가 소담하니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천신만고 끝에 얻은
아들.
어머니는 불면 날아갈까 쥐면 터질까, 애지중지 아들을
길렀다.
부유한 가정에서 가족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자란
어린 시절의 기문은 예의를 알고, 도리를 아는 착한
아이였다.
“우리 기문이는 참 착했어. 너무 착해서 가끔 미울
정도였지.
마을에 동갑내기 애가 하나 있었는데,
걔한테 만날 그냥 두들겨 맞고 오는 거야.
그러면 기문이 동생이 대번에 나한테 쫓아와서
‘엄마, 형아 또 맞아. 형아 죽어.’ 그랬지.
속은 상해도 ‘너도 같이 때려라.’ 그러진 않았어.
나는 친정 할머니가 가르쳐주신 대로 우리 애들을
키웠는데,
‘물에 돌팔매질 하지 말거라.’, ‘나뭇잎 함부로 따지
말거라.’,
‘땅에 떨어진 물건이라도 함부로 주워오지 말거라.’
하는 말을입에 달고
살았어.
‘나중에 저승 가면 그대로 되돌려 받느니라.’ 그랬지.
기특하게도 우리 애들은누구 하나 속 한 번
안 썩이고
가르친 대로 착실하게 커줬어.”
3남2녀의 형제들
중에서도 유독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했던
장남 반기문은 어머니의 자랑이었다.
동네 어른들에게 90도로 허리 굽혀 인사하는 아이,
밥 한 술에 신문 한 줄을 읽던 아이,
다투는 동생들에게 찬찬히 그 이유를 묻고 이야기를 들어주던
아이,
그 아이가 바로 반기문이었다.
통운회사 소장을
지냈던 아버지가 빚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급격하게 가세가 기울었던 그 시절에도
기문은 동생들을 보살피며 집안일을 도왔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을 만큼 지독하게
공부했는데,
어머니는 아직도 밤을 새워가며 책을 읽고 공부를 하던
아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했다.
“‘좀 자거라,
자거라.’ 하는 말이 입에 붙어버렸어.
어쩌다 밥이 눌어 누룽지가 생기면
그거 박박 긁어서 공부하는 데 밤참으로 넣어주고
그랬지.
외교관이 꿈이라 영어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저기 댐 가는 길목에 비료공장이 하나 있었단 말이야.
거기에 있는 외국인 근로자를 만난다고
친구 서이서(셋이서) 만날 쫓아다녔어. 그 친구 이름이
뭐냐면….”
아흔이 넘은 노모는50년 전 아들의
친구 이름까지 줄줄 꿰고 있었다.
아들에 대한 지극한 애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반 총장이 서울대 입학시험을 앞두고 있던 그때
나무 밑에다 백설기를 쪄놓고수십 번, 수백 번
절을 올리던 어머니는
실로 놀라운 일을 경험하기도 했다.
“우리 기문이가
서울대 입학시험을 치르고 와서 나한테 그래.
어젯밤에 꿈을 꿨는데,
벽에 웬 문제가 빽빽하게 적혀 있어서 다 풀어봤더니
다음 날 시험에 꿈에서 본 문제가 똑같이 나오더라고.
예삿일이 아니구나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서울대 외교학과에 수석으로 척 붙었지 뭐야.”
노모는 요즘도
매일같이 집 근처 절에 출근도장을 찍는다.
불상 앞에 앉아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치성을
드리는데,
그 정성의 중심엔 언제나 아들 반기문이 있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은 없어도,
유독 아픈 손가락은 있게 마련이다.
“뭐니 뭐니 해도 장남이 최고”라는 노모의 얼굴에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애정이 서렸다.
노모의 지극정성은 반 총장을 지탱하는 힘이었다.
반기문 총장은 어머니
신현순 여사를 많이 닮았다.
노인정에서 한눈에 반 총장의 어머니를 알아볼 수 있었던
건그래서였다.
“반 총장님이 어머님을 많이 닮았다”는 말에
노모는 “나보다 저희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기문이는 아버지랑 판박이여. 점잖은
성격이며,
남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아주 똑같아.
애 아버지 살아생전 내 소원이 뭐였게.
부부싸움 한번 해보는 게 소원이었어.
마음 단단히 먹고 한바탕 하려고 들면
고만 자리를 피해버리는데 싸움이 날 수가
있나.
한약방을 했던 시아버지도 아픈 사람들을 도와주곤
하셨어.
그러고 보면 사람 선한 게 집안 내력인 것 같아.
참 우리 남편 사진을 좀 보여줄꺼나.”
- ▲ 신현순 여사는 한 장
한 장 사진을 짚어가며
-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 조선일보
DB
주춤주춤 자리에서 일어난 노모는방으로 들어가 장롱을
뒤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쇼핑백에서 꺼낸 세 개의 액자
속에는반기문 총장의 부친
고 반명환 선생과 신현순 여사의
사진이담겨
있었다.
“한 30년 전에 서울 구경 가서 찍은 사진인데,
양복 차려입은 품새가 근사하지?
참 멋쟁이셨어.
청주 농고까지 나온 똑똑한 양반이었는데….
너무 일찍 가버렸지….”
시와 붓글씨에
능했다는 반명환 선생은
1991년 교통사고로 운명을 달리했다.
당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협상에 매진하던 반 총장은
아무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고,
공동선언이 채택된 후에야 아버지 빈소가 있는 충주로
직행했다.
유치장에 갇혀 있는 교통사고 가해자를 돌려보낸
일도
반 총장의 인품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크고 작은 일화 중
하나다.
창고에 숨어든 도둑에게
“도둑이 되고 싶어 도둑이 됐겠나. 배가 고프니
그랬겠지” 하던
반명환 선생이나
“사고를 내고 싶어서 냈겠나. 피할 수 없어 그랬겠지”
하던
반기문 총장이나,
부자는 따뜻한 인품까지 꼭 닮아 있었다.
어머니에 대한 반
총장의 효심 또한 아버지를 닮은 것이라고 했다.
“애들 아버지가 부모님한테 그렇게 잘하더니,
우리 아들도 똑같이 배웠어.한 달에 서너 번은
꼭 전화해서
‘어머니 건강조심하세요. 잡숫고 싶은 거 꼭 드세요.’
신신당부를 한다고. 용돈도 풍족하게 주는데, 선물도 참
잘해줘.
특히 좋은 약 같은 걸 얼마나 많이 사다준다고.
내가 이렇게 건강한 건 다 새끼들 덕분이여.
나랑 같이 사는 우리딸은 오빠 한국 오기 전에 나
잘못되면
다 지 책임이라면서 고기며, 과일이며, 날마다
잘해줘.내가 참 복이
많아.”
- ▲ 며느리 유순택 여사와 다정하게 손을 잡고있는
노모.
- 조선일보 DB
- 인터뷰 내내 신현순 여사가 가장 많이 쓴 단어는
“착하다”였다.
그리고 착하디착한 아들보다 더 착한 사람이 있다면
바로 큰 며느리 유순택 여사라고 했다.
반 총장은 고등학교
3학년 때
‘VISTA(Visit International Student to America)
프로그램’에
충청도 대표로 자동 선발되어
1등으로 시험을 마치고 다른 학생 세 명과 함께 미국에
다녀왔다.
백악관에서 케네디 대통령을 직접 만난 반기문은
그 일을 계기로 외교관의 꿈을 더욱 확고하게 키웠다고 한다.
당시 한국 대표로
선정된 반기문에게
이웃의 충주여고 학생들이 복주머니를 만들어 건넸는데,
외국에서 만난 친구들에게 기념선물로 나눠주라는
의미였다.
이때 완성된 복주머니를 대표로 전달한 사람이
당시 충주여고 학생회장이었던 유순택 여사였다.
“우리 며느리가
고등학교 때부터 집에 놀러오고 그랬어도
기문이 색싯감인 줄은 몰랐어.
다른 데서 자꾸 중신이 들어오는데
기문이가 싫다니까 분명 색시가 있구나 했었지.
나중에 기문이 친구한테 둘이 서로 좋아지내는 사이라는 걸
듣고서
내가 10월 동짓달에 바로 결혼시켜 버렸어.
겪어보니, 우리 아들도 착하지만 며느리는 더 착해.”
결혼 직전 유순택
여사의 어머니는
“남자가 해 지기 전에 집에 오는 것은
직업이 없거나 큰 병을 앓고 있을 때이니
반 서방이 늦게 들어오는 것에 대해 뭐라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아내의 내조
덕분에반 총장은 업무에 매진할 수 있었고
승승장구했다.
반 총장은 유 여사와
슬하에 1남2녀를 두고 있다.
현재 아시아재단 사업부장으로 근무 중인 맏딸 선용
씨(41),
서울대 공대를 졸업하고 미국 UCLA 경영대학원 과정을 마친
뒤
현재 뉴욕 금융회사의 중동지점에서근무하고 있는 아들
우현 씨(37),
유엔아동기금(UNICEF) 케냐사무소에서
국제기구초급전문가로 일하고 있는 막내 딸 현희
씨(36)다.
신 여사는
“아이들 모두 제 아비, 어미를 닮아 착하고 바르게
컸다”며
“늘 보고 싶다”고 전했다.
- ▲ 지난 14일 충북 음성에서
있었던
- 반기문 un 사무총장의 고향방문 행사 / 조선일보
DB
인터뷰 말미,
문득 ‘반기문 총장의 태생에 어떤 특별함이 숨어 있진
않을까?’
하는 호기심이 들었다.
“꿈에 내가 어디를
막 가는데 길이 두 갈래로 나뉘더라고.
어느 한 길로 들어서니까
갑자기 하얀 도포를 입은 할아버지가 나타나서
다른 쪽 길로 가라지 않겠어?
그래 그 할아버지가 일러준 길로 걸어들어 갔는데
길마다 소나무가 다북다북하니 참 좋아.
한참을 가다 보니 조그만 오두막에서 우리 숙모가
나오데.
나한테 찹쌀떡 세 개를 주더라고.그래서 내가 아들만
셋인가 봐.(웃음)
찹쌀떡을 받아들고 다시 걸어갔더니
이번엔 호두나무에 호두가 주렁주렁 열려 있어.
참 그 호두 좋구나 하면서 나무 가까이 가보니까,
그 아래 장끼 새끼가 푸드덕푸드덕 날아다니고 있는
거야.
그 꿈을 꾸고 나서 대번에 태기가 있더라고.”
두 시간의 인터뷰
끝에
“착한 끝은 있다”는 말과
“자식은 부모의 덕으로 커간다”는
말이떠올랐다.
겸손함과 성실함, 상대를 먼저 살피는 배려는
반 총장이 부모님에게 받은 최고의 유산이었다.
‘생살을 깎아 먹여도 아깝지 않은 부모의 마음’을,
이날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조선조의 청백리 맹사성의 일화
◇충남 아산에 있는 고불(古佛) 맹사성 고택.
최영 장군이 살던 집으로 북향 명당집으로 유명하다.
10세 때 이사왔으며 고불은 최영의 손녀
사위다.
◇조선 세종 때의 재상인 고불(古佛) 맹사성 선생의
묘소.
1. * 고개를 숙이면 부딪히는 법이 없습니다 *
열 아홉에 장원 급제하여
스무 살에 파주 군수가 된
맹사성은 자만심으로 가득차 있었다.
어느날 그가 무명 선사를 찾아
물었다.
"스님 군수인 제가 삼아야 할 좌우명이 무엇이라고
"그건 어렵지 않지요. 착한 일을 많이 베푸시면 됩니다."
"그건 삼척 동자도 다 아는 이치인데 고작 그것 뿐이오?"
맹사성은 거만하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러자 스님은 녹차나 한 잔 하고 가라며 붙잡았다.
그는 못이기는척 자리에 앉았다.
스님은 그의 찻잔에 넘치도록 차를 따르고 있다.
"스님,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망칩니다." 맹사성이 소리쳤다.
하지만 스님은 태연하게 계속 차를 따른다.
그리고는 잔뜩 화가 난 맹사성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적시는 것은 알고,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어찌 모르십니까?"
스님의 이 한 마디에 맹사성은 부끄러워 황급히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간다.
그러다가 문틀에 세게 부딪히고 말았다.
그러자 스님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고개를 숙이면 부딪히는 법이
없습니다."
2. * 비가 새는 초라한 집에서...
*
맹사성은 효성이 지극하고 시와 문장에
뛰어났으며,
음악을 좋아하고 마음이 어질고
너그러운 사람이었다.
그리고 오직 나라에서 주는 녹미(요즘의 월급)만으로
생활을 하는 청백리다 보니 집안이 찢어지게 가난했다.
그러나 맑고 깨끗한 그의 생활에는 한 점의
티도 없었다.
어느 비 오는 날 한 대감이
그의 집을 찾았다.
그 대감은 속으로
놀랐다.
'세상에! 한 나라의 정승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초라하게 살다니...'
안으로 들어가서 맹정승을 만난 대감은 더욱 놀랐다.
여기 저기서 빗물 새는 소리가 요란하고,
맹정승 부부는 빗물이 떨어지는 곳에 그릇 갖다 놓기 바빴다.
대감은 그만 눈물이 핑 돌아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대감께서 어찌 이처럼 비가
새는 초라한 집에서.…"
" 허허, 그런 말
마오.이런 집조차 갖지 못한 백성이 얼마나 많은지
아오 ?
그런 사람들 생각을 하면 나라의
벼슬아치로서 부끄럽소.
나야 그에 비하면
호강 아니오 ?"
3. * 맹사성의 흑기총(黑麒塚 검은 소 무덤) *
햇살이 따사로운 어느 해
봄날-.
고불(古佛) 맹사성(孟思誠·1360∼1438) 대감이 집 뒤 설화산
기슭을 오르던 중 어린 동자들에게 시달림을 받고 있는
큰 짐승을 발견했다.
장난기가 발동한 아이들은 짐승의 눈을 찌르고 배 위에 올라
타면서 신나게 놀고 있었다.
멀리서 보니 짐승은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어쩐
일인지 꼼짝도 못했다.
평소 남의 일에 참견 않는 고불이 호통을 쳤다.
“이런 고얀 녀석들! 말 못하는 짐승을 돌보지 않고 못살게
굴어서야 되겠느냐. 썩 물러가지 못할까.”
혼비백산한 아이들이 줄달음치고
난
다음
고불이 가까이 가보니 검은 소가 탈진해
있었다.
얼른 집으로 가서 소죽을 쑤어다 먹이고 극진히 간호했다.
기운을 차린 검은 소가 꼬리를 치며 고불을 따라 왔다.
집에 데려와 정성껏 거두며 주인 잃은 소를 찾아 가라고
동네방네 소문냈지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 후 고불은 이 소를 수족처럼 아끼며 한평생을
타고 다녔다.
세종 20년(1438) 79세로 고불이 죽자 검은 소는 사흘을
먹지 않고 울부짖다가 죽었다.
사람들이 감동하여 고불 묘 아래 묻어 주고
흑기총 (黑麒塚)이라 이름했다.
지금까지도 검은 소 무덤,
흑기총은 고불 묘를 금초할 때
빼놓지 않고 벌초하여 잘 보존되고
있다.
기적을 만들어낸 세
여인!!
보스턴의 한 보호소에 앤(Ann)이란 소녀가 있었다.
앤의 엄마는 죽었고 아빠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아빠로 인한 마음의 상처에다 보호소에 함께 온 동생마저 죽자
앤은 충격으로 미쳤고 실명까지 했다.
수시로 자살을 시도하고 괴성을 질렀다.
결국 앤은 회복 불능 판정을 받고 정신병동 지하 독방에 수용되었다.
모두 치료를 포기했을 때노(老)간호사인 로라(Laura)가
앤을 돌보겠다고 자청했다.
로라는 정신과 치료보다는 그냥 친구가 되어주었다.
그래서 날마다 과자를 들고 가서 책을 읽어주고 기도해 주었다
그렇게 한결같이 사랑을 쏟았지만 앤은 담벼락처럼 아무 말도 없었고,
앤을 위해 가져다 준 특별한 음식도 먹지
않았다.
어느 날, 로라는 앤 앞에 놓아준 초콜릿 접시에서
초콜릿이 하나 없어진 것을 발견했다.
용기를 얻고 로라는 계속 책을 읽어주고 기도해 주었다.
앤은 독방 창살을 통해 조금씩 반응을 보이며 가끔 정신이
돌아온 사람처럼 얘기했고, 그 얘기의 빈도수도 많아졌다.
마침내 2년 만에 앤은 정상인 판정을 받아
파킨스 시각장애아 학교에 입학했고, 밝은 웃음을 찾았다.
그 후, 로라가 죽는 시련도 겪었지만
앤은 로라가 남겨준 희망을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으로
시련을 이겨내고 학교를 최우등생으로 졸업했고
한 신문사의 도움으로 개안 수술에도 성공했다.
수술 후 어느 날, 앤은 신문기사를 봤다.
"보지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아이를 돌볼 사람 구함!"
앤은 그 아이에게 자신이 받은 사랑을 돌려주기로
결심했다.
사람들은 못 가르친다고 했지만 앤은
말했다.
"저는 하느님의 사랑을 확신해요."
결국 사랑으로 그 아이를 20세기 대 기적의 주인공으로
키워냈다.
그 아이가 "헬렌 켈러" 이고, 그 선생님이 앤 셜리번(Ann Sullivan)이다.
로라는 앤과 함께 있어주고 앤의 고통을 공감하면서
앤을 정상인으로 만들어냈고, 앤도 헬렌과 48년 동안 함께
있어주었다.
헬렌이 하버드 대학에 다닐 때는헬렌과 모든 수업에 함께
하면서
그녀의 손에 강의내용을 적어주었다.
빛의 천사 헬렌 켈러는 3중 불구자이면서도
절망하지도 않고 삶을 포기하지도 않았습니다.
왕성한 의욕과 꿋꿋한 의지를 가지고
새로운 삶의 길을 찾아 스스로 피눈물나는 노력을 계속했습니다.
하버드대학을 졸업하던 날, 헬렌은 브릭스 총장으로부터
졸업장을 받고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설리번 선생님도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식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헬렌의 뛰어난 천재성과
설리번 선생님의 훌륭한 교육을 일제히 찬양하였습니다.
"항상 사랑과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 준
앤 설리번 선생님이 없었으면 저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토록 의지가 강한 그녀가 『3일 동안만 볼 수 있다면』이라는 책에 이런 글을 썼습니다.
“만약 내가 사흘간 볼 수 있다면
첫째 날엔.....
나를 가르쳐 준 설리번 선생님을 찾아가 그분의 얼굴을..... 바라보겠습니다.
그리고 산으로 가서 아름다운 꽃과... 풀과 빛나는 노을을 ...보고 싶습니다.
둘째 날엔.....
새벽에 일찍 일어나 먼동이 터 오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저녁에는 영롱하게 빛나는 하늘의 별을 보겠습니다.
셋째 날엔.....
아침 일찍 큰길로 나가 부지런히 출근하는 사람들의 활기찬 표정을 보고 싶습니다.
점심때는 아름다운 영화를 보고 저녁에는 화려한 네온사인과 쇼윈도의 상품들을 구경하고
저녁에는 집에 돌아와 사흘간 눈을 뜨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싶습니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상처에 대한 적절한 분석과 충고가 아니라
그냥 함께 있어주는 것입니다.
한 마음은 충고를 주기보다 자신을 줄 때 아뭅니다.
좋은 충고보다 좋은 소식이 중요합니다.
헬렌켈러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으나
그녀의 스승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삼중고를 안고 있는 헬렌켈러를
전세계가 놀라게 한 인물로 만든 사람이 바로 앤 설리반 (ANN
SULLIVAN)이다.
헬렌켈러를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은 감각기관 뿐이었다.
헬렌켈러는 손가락으로 상징적인 터치를 통하여 말하는 법을
배우고
열심히 공부하여 박사도 되고 영감을 주는 위대한 인물이
되었다.
앤 설리반은 늘 되풀이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시작하고 실패하는 것을 계속하라.
실패할 때마다 무엇인가 성취할 것이다.
네가 원하는 것을 성취하지 못할 지라도 무엇인가 가치있는 것을 얻게 되리라.
시작하고 실패하는 것을 계속하라.
절대로 포기 하지 말라.
모든 가능성을 다 시도해보았다고 생각하지말고
언제나 다시 시작하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충격!드디어
양주땅굴의실체가
드러나다!
글쓴이-현우
양주 남침용땅굴 탐사작업이 드디어 그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국가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휴전선 4~5키로 이남
지역엔
땅굴이 존재할수 없다고 줄기차게 주장해온
국방부 관계기관 당사자 및
김**안보실장등으로 인해 민간인이 나서서 피눈물나는
수고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이 땅굴이 남침용
땅굴로 공식 확인이 되는날 그동안 땅굴 없다고 주장해온 인간들을
모두 잡아들여 간첩들이 아닌지 구속수사하여야 할 것이다.
오직 국가안위를 위해 남침용 땅굴의 실체를 추적하여 험한길 걸어오신 이창근 단장님과
김진철 목사님 남굴사 모든분들에게 하나님의 강력한 돌보심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첫댓글 좋은자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