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계급 평등의 사회
제1절 인간은 평등하다
1 부처님이 사위성 동원, 녹자모강당에 계실 때이다. 어두울무렵 부처님은 선정에서 일어나 강당 밖 나무숲을 거닐고 있었다. 일찍이 바라문으로서 불법에 귀의하여 출가한 바셋타와 바라드바자라고 하는 두 비구가 서로 말하기를 '부처님께서 나무숲을 거니시니 우리도 부처님의 뒤를 따라 법문을 듣자'고 부처님의 뒤를 따라 거닐게 되었다. 그때 부처님은 바셋타를 돌아보시며
"바라문의 집안에 태어나 바라문 계통에서도 우수한 너희들의 집을 버리고 사문의 생활을 하니, 바셋타야, 바라문들이 너희들을 비난하지 않더냐?"
"예 그러합니다. 바라문은 실로 바라문 특유한, 남을 멸시하는 버릇으로 우리를 비난하고 욕질하고 있답니다."
"그래, 어떤 말로써 너희들을 비난하고 욕질하더냐?"
라고 부처님은 물으셨다.
"부처님, 그들은 한결같이 말합니다. '사람 가운데 바라문이 가장 높은 종족이고 그 밖엔 다 열등한 종족이다. 바라문은 살빛이 희고 다른 종족은 살빛이 검다. 바라문만이 순수한 범천梵天의 혈통을 받은 종족이고 그 밖엔 그렇지 않다. 바라문만이 범천의 입으로부터 나왔고 범천으로부터 창조되었으며 범천의 상속자이다. 너희들은 고귀한 계급을 내버리고 저 천한 계급에 가까울 뿐 아니라, 저 머리 깎은 사문 가운데는 천한 흑인, 우리 발로부터 나온 자들과 친하니, 그것은 천만부당한 짓이다.' 이러한 말로 저희들을 비난하고 욕질합니다."
"바셋타여, 너희들 바라문은 온통 옛 일을 잊고 그런 말을 하는구나. 바라문이 가장 높은 종족이요, 다른 것은 그렇지 못하다느니, 바라문은 범천의 진정한 아들로서 범천의 입으로부터 나왔고 범천이 창조한 바며, 범천의 상속자라고 말하지만, 그러나 실은 반대로다. 바셋타여, 바라문도 시집가고 장가가서 여인은 몸엣것經水이 있고 임신하여 아이를 낳지 않더냐? 그들의 생산하는 것이 평상 사람과 꼭 같으면서 '바라문은 최상의 종족이며 범천의 상속자라'고 거짓말로써 남을 욕하고 업신여기는 것이 아니냐."
2 "바셋타여, 크샤트리아(찰제리, 왕족과 정치계급)ㆍ바라문(종교ㆍ제사를 맡은 계급)ㆍ바이샤(평민)ㆍ수드라(노예계급) 등 네 가지 계급이 있는데, 크샤트리아 종족이 남의 생명을 해치거나 도둑질하거나 삿된 음행을 하고, 거짓말하고 이간질하고 악담하고 탐심ㆍ진심ㆍ사견邪見을 지닌 자가 있다면, 이 같은 일은 크샤트리아에게 있어서도 역시 죄이며, 그 갚음을 받게 되는 것이다. 바라문에게나 바이샤ㆍ수드라에게도 이와 마찬가지인 것이다.
3 바셋타여, 크샤트리아가 남의 생명을 다치지 아니하고 도둑질 ㆍ음행ㆍ거짓말ㆍ이간하는 말ㆍ악담ㆍ탐심ㆍ진심 등을 여의고 바른 소견을 지녔다면, 그것은 그에게 있어서 착한 일이며, 착한 과보를 받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바라문에게나 바이샤나 수드라에게도 마찬가지다.
바셋타여, 이런 네 가지 종족 가운데 혹은 검고 사나운 성질을 지닌자, 혹은 희고 깨끗한 성질을 지닌자, 혹은 착한 사람을 배척하는 자, 혹은 착한 사람을 칭찬하는 자를 두 가지로 나누어
보면, 비슷하다. 그런데 저 바라문들이 '바라문만이 최상의 종족이요, 나머지는 열등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혜 있는 현인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바셋타여, 네 종족이나 계급은 그 사람의 혈통이나 성질로써 차별할 수 없다. 모두 똑 같은 사람이다. 무릇 이 사성四性 가운데 어떤 사람이든지 비구가 되고 아라한이 되어 모든 번뇌가 없어진 이, 깨끗한 범행이 이미 성취되어 자기가 할 일을 다해 마친 이, 나고 죽음의 무거운 짐을 벗어 버리고 다시 나지 않는 자리에 들어가 완전한 지혜를 얻어 해탈의 도를 얻은 이, 이런 사람이야말로 사성 가운데 가장 뛰어난 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바셋타여, 참다운 법은 인류에게 있어서 가장 높은 것이기 때문이니라. 이 세상에서도, 다른 세상에서도 그러하다.
4 바셋타여, 참다운 법은 인류의 최상이라는 이유를 예를 들어 말해 주마. 교살라국의 바사닉은 사문 구담이 자기 나라의 석가족에서 출가한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석가족도 교살라국의 바사닉왕에게 신하의 예로써 순종하고 자리에 서서 합장하고 겸손한 태도를 취하는 이가 있는 것과 같이, 바사닉왕은 여래에 대하여 순종하고 자리에 서서 합장하고 겸손한 태도를 취하니 그가 어찌 사문 구담은 존귀한 종족에 나고 나는 비천한 종족에 났으며, 사문 구담은 큰 재산과 세력이 있고 얼굴이 잘났는데 나는 빈궁하고 세력도 없고 얼굴도 못났으니 구담에게 예배 합장하고 공경해야 되겠다고 부처님에게 순종하는 것이냐? 그가 실로 부처님에게 순종하여 예배와 공양함은 부처님의 법을 존경하고 법을 신앙하고 법을 신성시하는 까닭이니라. 그러므로 참다운 법은 인류의 최상이 되는 것이며, 이 세상에서도, 다른 세상에서도 그러하다.
5 바셋타여, 그 태생이 다르고, 이름이 다르고, 성이 다르고, 가계가 다르더라도, 너희들이 출가하여 집 없는 수행자가 되었을 때, 저 바라문들이 '너희는 무엇이냐?'고 질문하거든, 그때 너희는 이렇게 대답하라! '우리는 석가족의 자손이다. 우리는 석가모니의 진정한 아들이다. 입에서 났으며 법에서 났으며, 법의 후계자이다'라고. 왜냐하면, 이들은 여래에게 의지하여 새로 얻어 성취된 범행의 몸梵身이며 선정의 몸定身이며, 지혜의 몸이며 해탈의 몸이며, 해탈지견의 몸解脫知見身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