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하라 하루미, 김호진의 식탁에 초대되다일본을 대표하는 요리 연구가 구리하라 하루미와 배우 김호진의 만남은 이번이 두 번째다. 2년 전, 김호진을 자신의 키친 스튜디오로 초대했던 하루미가 이번에는 김호진의 식탁에 초대받았다.
발상을 전환한 아이디어가 있는 요리김호진의 요리는 색다르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재료를 이용하되 아이디어를 넣어 한 끗 차로 감동을 준다. 그는 자신만의 두 가지 요리를 더 내왔다. 이름도 재미있는 제육볶음 퀘사디아에는 흔히 퀘사디아의 속 재료로 사용하는 칠리소스와 토마토소스 대신 고추장 양념을 한 한국식 제육볶음이 들어 있다.
“한국의 고추장이 일본, 중국은 물론 미국에서도 인기라고 들었어요. 맵지만 달고 신맛도 있어 매력적이죠. 그래서 저는 외국인 친구들에게 음식을 만들어 줄 때 고추장 양념을 많이 쓰는 편이에요. 하루미씨 역시 지난번에 고추장 양념에 관심이 많다고 했던 게 기억나 이 요리를 준비했어요.”
제육볶음의 새콤달콤한 맛과 토르티야의 쫄깃한 식감이 어우러져 그 맛이 일품이다. 제철 재료 요리를 고민하다 준비했다는 멍게비빔밥에도 역시 고추장 양념을 곁들였다. “멍게는 일본에서도 호불호가 갈리는 재료인데, 저는 멍게의 상큼하면서도 쌉싸래한 맛이 좋아 요리에 자주 이용해요. 싱싱한 멍게에 채소를 듬뿍 넣고 비벼먹는 멍게비빔밥은 입맛 잃기 쉬운 초여름에 식욕을 돋우는 훌륭한 선택이네요. 양념 맛도 참 독특해요. 건강한 단맛을 내는 고추장 양념이 멍게 향과 어우러져 입안에 오랫동안 여운이 남아요.”
하루미를 감동시킨 멍게비빔밥 양념장은 고추장에 설탕과 참기름, 매실즙을 넣어 만든 것. 맛도 맛이지만, 필수 아미노산,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이 균형 있게 들어 있고 비타민의 결핍도 막는, 그래서 사랑하는 가족들의 건강을 책임질 음식이다. 하루미의 요리도 이와 닮아 있다. 그녀 역시 지극히 일상적인 재료에 자신만의 친절한 아이디어를 입히는데, 하루미의 식탁에 매끼 오른다는 영양콩조림은 어떻게 하면 가족들에게 영양가 있는 식품을 일상적으로 먹일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생각해낸 메뉴.
콩과 어울리는 우엉, 당근, 표고버섯, 곤약 등을 콩의 크기에 맞춰 모두 잘게 잘라야 하는 수고스러움이 따르지만 한 끼 영양식으로 손색없다. 비지 조림도 특별하다. 두붓집에서 막 만든 비지를 받아다가 비지만 따로 볶는 과정은 생략하고 양념에 바로 넣어 조리는데, 이렇게 하면 전체적으로 맛이 잘 배일 뿐 아니라 촉촉해 식감도 일품이란다.
그녀가 무려 20년 전에 개발한 당근 참치 샐러드는 냉장고 속에 잔뜩 남아 있는 당근을 보고 시도한 요리로, 당근을 채 썰어 다진 양파, 물을 뺀 참치와 섞는 간편한 요리다. 다만 당근 특유의 씹는 맛은 살리고 영양소 파괴는 최소화하기 위해 식용유를 살짝 넣어 전자레인지에 1분 정도 가열하는 것이 포인트.
늘 가족들을 위해 어떤 음식을 차려줄지 생각하다 보면 부엌에 있을 때의 손보다 평소의 머릿속이 더 분주하지 않느냐고 하루미가 묻고, 김호진은 정말 그렇다며 맞장구를 친다. 건강한 ‘집 밥’의 중요성을 잘 아는 이들인 만큼 죽이 잘 맞는다.
제육볶음 퀘사디아재료 돼지고기(전지) 150g, 양파 1/4개, 당근 15g, 대파 1/3대, 토르티야 2장, 모차렐라 치즈 1컵, 맛술 1큰술, 설탕·고추장·참기름 약간씩, 식용유 적당량, 양념장(마늘 40g, 생강 3g, 고춧가루 25g, 간장 30ml, 물 80ml, 후춧가루 약간)
만들기 1_달군 팬에 식용유를 붓고 식용유가 뜨거워지면 돼지고기를 넣고 센 불에 볶다가 소주나 맛술을 넣어 잡냄새를 없앤다.
2_당근, 양파, 대파는 잘게 썬다.
3_1의 고기가 익으면 2의 당근, 양파, 대파를 순서대로 넣어 함께 볶는다.
4_양념장 재료를 고루 섞는다.
5_3에 양념장을 1큰술 넣고 볶다가 설탕, 고추장, 참기름을 넣어 돼지고기볶음을 완성한다.
6_토르티야에 모차렐라 치즈를 깔고 돼지고기볶음을 얹은 다음 다시 치즈를 올려 반으로 접어서 180℃로 예열한 오븐에서 노릇하게 구워낸다.
싱싱한 멍게비빔밥재료 밥 1공기, 멍게 100g, 새싹 채소 적당량, 양념장(참기름·다진 마늘설탕 1큰술씩, 매실즙·다진 대파 2큰술씩, 고추장 3큰술)
만들기 1_멍게는 흐르는 물에 씻어 잘 손질한다.
2_밥 위에 멍게를 올리고 새싹 채소를 올린다.
3_양념장 재료를 고루 섞는다.
4_2에 양념장을 넣고 비벼 먹는다.
*기호에 따라 고추를 넣어 먹어도 좋다.
김호진의 디저트 테이블. 그가 만든 달콤한 크림치즈 케이크와 갓 내린 커피 그리고 화이트 와인 과일 조림
요리는 사랑이고 소통이다이렇듯 김호진과 구리하라 하루미의 요리엔 공통분모가 있다. 이들을 부엌에 서게 하는 동기 부여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들은 ‘퍼주기 위해’ 요리를 한다. 두 사람은 모두 각종 재료를 썰고 다듬고 볶고 끓이며 부산스레 요리를 하는 집안에서 자랐다.
“맞벌이 부부가 많아지면서 일본의 가정식도 대부분 간소해지고 서양화됐죠. 그런데 시즈오카 출신인 저는 완벽한 일본식을 먹으며 자랐어요. 바다와 산을 끼고 있어 해산물, 산나물 등 식재료가 매우 풍부해서인지 몰라도, 엄마와 부엌은 떼놓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죠. 사실 가족을 위해 밥을 짓는 건 우리가 할 수 있는 노동 가운데 가장 즉각적으로 반응이 오고, 그만큼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노동 같아요. 내가 차린 음식을 내 아이가 맛있게 먹고 남편이 ‘한 그릇 더 줘’ 하면 저는 신명이 나거든요.”
책 제목 그대로 ‘잘 먹었습니다’라는 말이 듣고 싶어서 요리를 한다는 그녀에게 요리는 번거로움이 아니라 행복한 소명이고 기쁨이다. 요리 학교를 다닌 적도, 정식으로 요리를 배운 적도 없지만, 아무리 바빠도 가족의 밥상은 건성으로 차리지 않겠다는 다짐이 그녀를 일본 최고의 가정식 요리 연구가로 만들었다. 김호진 역시 남에게 ‘퍼주기 위해’ 요리를 한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만든 요리를 먹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가장 큰 낙이다. 이들에게 요리는 사랑이다. 또 두 사람의 요리엔 ‘정답’이 없다. 먹었던 맛을 기억해서 요리를 하다 보니 레시피 또한 정확하지 않다. 대접받는 사람의 취향에 맞게, 같은 음식도 다른 양념으로, 또 다른 음식으로 만들어낸다. 즉 이들 요리엔 가정 요리 특유의 유연함이 있다.
최근 구리하라 하루미는 한국에서 책을 출간했다. 그녀의 신간『전하고 싶은 일본의 맛』에는 일본을 감동시킨, 하루미의 40년 요리 역사가 담겨 있다. 맛있는 음식을 먹어야 사는 맛도 나는 법. 세심하고 따뜻하게 말을 건네는 이들의 요리는 사람을 살맛 나게 한다.
1 김호진은 하루미를 위해 오설록의 차를 선물했다. 오설록의 베스트 셀링 제품인 일로향과 명차 모음 세트. 일로향은 어린 찻잎을 하나하나 손으로 따 정성스럽게 말린 고급 녹차, 명차 모음 세트는 세작, 삼다연, 얼그레이, 민들레 차로 구성된 오설록의 대표 제품이다. 차를 매우 좋아한다는 하루미는 김호진의 선물에 거듭 고마움을 표했다.
2 김호진이 내온 디저트를 맛보고 있는 하루미. 이들은 디저트를 먹으며 일본에서의 또 다른 만남을 기약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