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아내 속이 안 좋다고 한다. 속이 안 좋은 것이야 진작부터 별로 안 좋은 경향이 있어 나에게 나온 위장약을 아내에게 계속 먹였지만 며칠 전부터는 조금 더 심하여졌다고 보아야 한다. 심하게 아픈 것은 아니고 속이 더부룩하다는 그 정도였다. 매우 심하게 아픈 것은 아니고 안 아픈 것도 아니고 무력하니 속이 거북한 그 느낌이 늘 있는 모양이다. 그젠가 속이 안 좋다 하여 침도 놓아주고 했지만 그렇게 잘 풀리는 것은 아니었다. 늘 잘 먹든 밥도 조금씩 남기는 일도 있는 것을 보면 별로 속이 편한 것은 아닌 모양이다. 한 그릇으로 둘이 나누어 먹는 그 밥도 남기니 다이어트에는 좋은 일이지만 건강에는 별로 좋은 일 아니다.
아침부터 아내는 별로 속이 편하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아내는 나에게 부탁을 하였다. 죽을 먹고 싶다는 것이다. 속이 편하지 않으니 죽을 먹고 싶은 심정이 있는 모양이다. 그 이야길 들으니 죽 먹고 싶다는 그 심사가 이해가 되어 죽 마련할 준비를 하였다.
죽을 구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죽을 시켜서 먹는 방법과 죽을 한 그릇 사서 먹는 방법이다. 뭐 다른 방법으로 끓일 수도 있지만 병원에 입원한 내가 할 방법은 아니고 실현 가능한 방법이 시키는 것과 사 먹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죽을 시키는 것은 간호사에게 부탁을 하여야 하는데 나 같은 경우 격리라는 처방이 있어 죽 시키기가 만만한 것은 아니었다. 아니 만만은 할지 몰라도 한 번도 안 시켜 보았으니 실현이 잘 될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남은 방법은 죽을 사 먹는 방법이었다.
우리에게 죽 선전 용지가 온 것이 두 어장 있었다. 죽이야기라는 상점과 본죽이란 가게에서 파는 죽집이 있었다. 그 죽들을 살피든 아내는 포기하고 만다. 죽에 치즈가 어떻고 짬뽕이 어떻고 하는 것을 보더니 가격만 비싸지 제대로 먹을 죽은 없다는 것이다. 야채죽도 있고 하였지만 아내가 원하는 것은 그냥 바지락죽, 또는 쌀죽 정도만 있으면 먹을까 하였던 모양인데 그런 죽이 없으니 죽 먹는 것을 포기하자는 것이다.
점심은 그래서 죽을 못 먹고 뜨거운 물에 밥을 말아 먹었다. 뜨거운 물에 밥을 말아 먹으면 죽이 되는지는 몰라도 그렇게 먹었다. 물에 말아 먹으면 술술 먹기가 편하니 그렇게 먹는 모양이다.
저녁은 약간 일찍 배식된 것 같다. 우리에게 밥 약간 덜 준다고 이야기한 그 아줌마, 우리가 밥을 안 먹는다고 하여 우리를 군기 잡든 그 아줌마가 배식을 하였다. 이제 약간 수그러들었지만 그래도 밥을 덜 주는 그 사람이 배식을 하였고, 받아 본 밥은 약간 모자란 정도였다. 아내 속도 안 좋고 나도 속 안 좋은 아내 덕에 별로 먹고 싶은 마음도 없어 적게 주는 밥이 큰 무리는 없다 하였더니 밥을 주고 문을 안 닫고 나가더니 손에 밥그릇을 하나 가지고 온다.
“죽인데 밥 대신 이것 자실라우. 깨죽이오.”
“고맙심더. 우예 죽 필요한 줄 알았지예.”
받아든 죽은 까만색의 깨죽이었다. 아마 검은깨였던 모양이다.
그 죽을 받아들며 참 고맙게 생각했다. 어떻게 우리가 죽이 필요한지 알고 이렇게 챙겨주는 것일까?
실제 그 죽은 그렇게 비싼 것은 아니다. 이 물자 풍부한 시점에서 보자면 아주 간단하고 싸구려 물건이다. 그리고 그 죽이 우리에게 오게 된 일은 우연이다. 우연히 싸구려 죽이 우리에게 도달한 것이다. 그런데 왜 이리 고마울까?
이렇게 작은 물건에 그리고 우연히 일어난 이 사건에 왜 고마움을 느끼게 만드는 것일까? 고마움을 느끼게 하는 분은 누구실까?
첫댓글 참 좋은 글입니다.한강수 선생은 앞으로도 큰 복받을 거에요
천사 [병원 아줌마],,,
참으로 축복받은 한강수님 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