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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권호만barnabak
주님께 헌신하는 성도의 삶
마가복음 14:1-9
헌신을 국어사전에서는 ‘어떤 일이나 남을 위해서 자신의 이해관계를 생각하지 않고 몸과 마음을 바쳐 있는 힘을 다함’이라고 정의합니다.
이러한 해석처럼 헌신은 특별한 일이나 특별한 사람에게 한정해서 사용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헌신하며 사는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①먼저는, 자신에게 헌신하며 살아갑니다.
자신의 발전과 성장을 위해서 얼마나 헌신합니까?
외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하기 위해서, 육신의 건강을 위하여, 전문적인 지식을 얻기 위하여 헌신하기도 합니다.
②어떤 일에 헌신하며 살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서 어떤 목표에 이르기 위해서 또한 얼마나 몸과 마음을 바쳐 헌신합니까?
나라와 민족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서 헌신한 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직장에서 일터에서 맡겨준 일을 잘 감당하기 위하여 헌신하며 살고 있습니다.
③어떤 사람에게 헌신하며 살 수 있습니다.
자기를 중요 직책에 임명한 임명권자를 위해서 헌신하고 상관이나 동지를 위해서 헌신하며 사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렇게 보면 인생은 무엇인가에 누군가에게 헌신하며 살아가는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누구에게 어떤 일을 위하여 헌신하며 살아야 하겠습니까?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헌신하는 사람들이고 주님께서 맡겨주신 일에 헌신하며 사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헌신을 얼마나 잘 하느냐에 따라 칭찬받는 신앙이 될 수도 있고 책망 받는 신앙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아시아의 7교회 중에 서머나 교회는 주님께 충성하며 헌신하여 칭찬받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반면에 라오디게아교회는 행위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한 신앙으로 책망 받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우리는 두 종류의 그리스도인들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이틀 전에 베다니 마을을 방문합니다.
그곳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조촐한 식사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시몬은 나병환자였다가 주님으로부터 고침을 받은 사람으로 생각되어 지는데요,
그 은혜가 얼마나 감사했겠습니까?
나병을 고쳐주신 은혜를 다 갚을 수는 없지만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모시고 식사를 대접하게 됩니다.
그때 한 여자가 값비싼 향유를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트리고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붓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모두가 예상하지 못했던 일에 사람들의 반응이 다양합니다.
몇몇 제자들은 화를 내며
가롯 유다는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을 도와주면 좋았을 텐데 왜 이렇게 허비하느냐고 책망합니다.
이름이 밝혀지지 않는 이 여인은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여 최선을 다해 헌신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같은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는 몇몇 사람들은 쓸데없는 일을 했다고, 귀한 것을 낭비했다고 화를 냅니다.
그 결과를 주님께서 정리해 주셨습니다.
화를 낸 자들에게는 ‘가만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향유를 부은 여인에게는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이러한 칭찬과 책망은 비단 이 두 종류의 사람들에게만 해당되겠습니까?
저는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똑같이 해당된다고 생각합니다.
헌신을 통해 칭찬받는 그리스도인들이 있고 비난하고 비판하다가 책망을 받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칭찬받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헌신하는 삶입니다.
얼마나 헌신하느냐에 따라 더 성장하고 더 성숙한 삶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올바른 그리스도인의 삶은 세상의 다른 것에 헌신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헌신하는 삶입니다.
로마 시대에 성도들은 로마황제에게 충성하고 헌신을 강요받았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로마황제가 아니라 주님께 헌신하다가 많은 핍박과 박해를 당하였습니다.
주님께 책망 받는 삶이 있다면 주님보다 세상의 것을 더 사랑하고 더 헌신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인정받고 상급 받는 삶은 주님께 더욱 헌신하고 주님께서 맡겨준 일을 위해 헌신하는 삶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더 아름답고 더 칭찬받고 더 성숙되기 위해서는 주님을 향한 헌신의 삶이 더 강화되어야 합니다.
저는 우리 사랑하는 성도들의 삶이 주님께 더욱 헌신하는 삶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이 더욱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을 향하여 높이 올라가는 삶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에 더욱 집중하며 충성하는 삶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본문의 여인처럼 주님께 칭찬받는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이 여인에게 있어서 헌신의 대상은 주님이었습니다.
이 여인이 주님께 부은 향유는 삼백 데나리온에 해당하는 가치 있는 최고급향유였습니다.
삼백 데나리온은 성인이 일 년 동안 일을 하고 쓰지 않아야 모을 수 있는 큰 금액입니다.
이 여인이 이런 값비싼 향유를 갖게 된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많은 학자들은 이 향유는 여인의 결혼자금이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용도가 무엇이든지 이 여인은 그 비싸고 귀한 향유를 예수님께 바쳤습니다.
예수님의 머리에 부어 드렸습니다.
자신의 결혼을 위한 일에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어떤 귀한 일을 위해 준비한 것을 그 일에 사용하지 않고 주님께 사용하였습니다.
이 여인의 헌신의 대상은 오직 주님이었습니다.
오늘 본문과 비슷한 내용이 사 복음서에 모두 나옵니다.
한 사건을 사복음서에서 다 기록한 것은 그렇게 많지 않는 일입니다.
그만큼 귀한 일이고 특히 어디서든지 이 여인의 행한 일도 말하여 기억되리라는 주님의 말씀에 따라 사복음서 기자가 다 기록하였다고 생각됩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이 여인을 마르다의 동생 마리아였다고 밝히고 있고(요12:3)
교회전통에서는 막달라 마리아였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죄 많은 여인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누가 되었든 이 여인은 주님의 크신 사랑을 힘입었던 자였습니다.
죄를 용서받았든지 오빠 나사로가 살아난 일이든지 귀신에게서 해방을 받았든지 크신 사랑을 힘입은 것은 분명합니다.
그 사랑을 생각하면서 주님께 그 귀한 것을 드린 것입니다.
주님께서 베다니에 오셔서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고 계시다는 말을 들은 이 여인은 나에게 귀한 은혜를 베풀어주신 주님께 무엇을 드려야 할까? 생각했을 것이고
그때 제일 먼저 결혼을 위해 준비한 향유가 떠올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향유를 주님께 드리면 결혼을 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향유는 원래 한 방울 두 방울 정도 떨어트려서 사용하는 것이기에 그렇게 사용할까? 도 생각하였습니다.
이런 복잡한 생각 속에서 이 여인은 그 값비싼 향유를 주님께 몽땅 드리기로 작정을 합니다.
자기를 사랑해주고 고쳐주신 주님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왜 주님께 헌신을 해야 합니까?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해주셨고 자신의 몸을 바쳐 우리를 구원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한 헌신을 이미 먼저 하셨습니다.
인간이 따라할 수 없는 십자가의 헌신을 하신 주님이시기에 우리의 헌신은 ‘세상의 다른 누구’가 아니라 ‘오직 주님’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어떤 다른 사람이나 세상의 어떤 물질이나 권력이나 명예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부모나 자식이나 형제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
여러분, 헌신의 대상이 지금 주님을 벗어나 다른 사람이나 다른 것을 향하고 있다면 방향을 바꿔 주님을 향할 수 있기 바랍니다.
주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고 몸을 버리고 십자가의 헌신을 통하여 구원해주셨기 때문입니다.
2. 주님께 헌신을 하시기 위해서는 비난받을 각오를 하셔야 합니다.
이 여인이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어드리자 주변의 분위기는 한 마디로 어이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왜 이 값비싼 향유를 낭비하는 멍청한 짓을 했느냐? 왜 바보 같은 짓을 했느냐?’
‘좀 더 지혜롭게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일을 위해 향유를 사용하면 휠씬 더 좋지 않았겠느냐?’
그들이 볼 때 이것은 정말 어이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 분위기속에서 가롯 유다는 이 여인을 대 놓고 책망을 합니다.
다른 복음서에 보면 가롯 유다가 돈궤를 맏고 있었는데 큰돈을 착복할 수 있는 기회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책망의 이유를 설명합니다.
어째든 겉으로 볼 때는 가롯 유다의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합니다.
가롯 유다가 이 여인을 이해하지 못했던 이유는 물질을 탐한 것도 있지만
이 여인처럼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았고 예수님이 헌신의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 여인처럼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이 헌신의 첫 번째 대상이 되었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인데요. 우리가 주님께 헌신을 하면 주변에서는 분명히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왜 사이비같이 맹목적으로 믿느냐’, ‘왜 예수를 믿어도 별나게 믿느냐’, ‘지혜롭지 못한 처신이라’는 등의 비난이 쏟아지게 됩니다.
‘그렇게 교회에다가 쳐 바치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느냐?’ 는 현실적인 이유를 대며 비난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당연한 것은 저들에게는 주님이 헌신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들의 헌신의 대상은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과 선제적인 헌신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알고 십자가의 헌신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비난에 주눅 들지 말아야 합니다.
비난 때문에 우리의 헌신이 약해지지 말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10장 38절에,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절대로 뒤로 물러가지 말고 믿음으로 전진해 나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을 낙심시키는 이에게 귀 기울이고 흔들리지 마시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을 찬양하며 나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리아는 제자들이 화를 내며 책망했지만 담대하게 예수님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남이 뭐라 그래도 내가 하나님 앞에서 진실 되게 주님께 헌신하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고 복에 복을 더해 주실 줄 믿습니다.
환난을 당할 때 참고 견디며 주님 앞에 감사 찬양을 드릴 때 믿음이 자라게 되고 하나님의 큰 축복이 임하게 되는 줄 믿습니다.
3. 헌신의 결과를 분명히 알고 믿고 헌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①주님께서는 헌신하는 여인을 향하여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다고 합니다.
이 여인이 행한 일은 제자들 특히 가롯 유다가 말한 것과 같이 비싼 향유를 낭비하는 어리석고 미련하고 지혜 없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이 그런 말을 했을 때 여인도 순간 ‘내가 미련한 짓을 행한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변에서 너도 나도 떠들어대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아니다. 너는 내게 좋은 일을 행했다’고 말씀하십니다.
남편이 아내가 형제가 자식이 어리석다고 해도 결코 어리석은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좋아하는 일, 주님이 기뻐하는 일을 행한 것입니다.
여러분, 주변에서 어떤 평가를 내려도 주님을 향한 여러분의 헌신은 결코 미련하고 낭비하는 일이 아니고 주님이 좋아하는 일임을 믿으시고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②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예비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은 사실일 수도 있고 좋은 의미를 부여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여인이 정말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서 주님의 십자가를 예상했고 그 죽음을 생각하며 향유를 부을 수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이 여인이 행한 일에 귀한 의미를 부여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일이 되었던 기름부음의 헌신은 어느 제자도 할 수 없었던 주님을 위한 최고의 가치 있고 선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을 장례한 아리마대 요셉이나 니고데모 못지 않는 귀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주님을 위한 헌신은 주님을 가장 영광스럽게 하고 존귀하게 하는 일입니다.
이보다 더 귀한 일은 없습니다.
③온 천하에 복음이 전파되는 곳 어디서나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지금 우리가 이 여인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이 여인을 신앙의 모델로 삼아 이 여인을 본받기를 다짐하고 있습니다.
이름 없는 여인이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여인이 되었습니다.
이름 없는 헌신이 가장 유명한 헌신이 되었습니다.
오고 오는 세대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영향력을 끼치는 헌신이 되었습니다.
④온 집에 향유냄새가 가득하였습니다.
향유를 부었으니 온 집에 향유냄새가 가득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 당연한 일을 성경이 굳이 기록한 것은 헌신이 아름다운 향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향한 헌신은 온 가정을 온 교회를 온 사회를 향기롭게 합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더럽고 추한 냄새로 가득차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예수님을 향한 헌신의 향기는 이 사회를 더욱 밝게 아름답게 포근하게 감싸줄 것입니다.
아름다운 헌신의 향기로 세상을 극복하고 이기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성도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24.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