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릉 산신제가 있던 날
2019년 10월 28일, 정릉에 살고 있는 외손자 어린이집 하원을 부탁받고, 일찍 출발하여 어딜 가볼까 궁리하며 서울로 올라갔다.
마침 오전중에 종로 3가에서 일우회(一友會)라는 모임이 있다며 참석권유가 있어 그곳엘 갔다가 오후 3시에 산신제가 있다는걸 미리 알고 있었기에 시간에 맞춰 정릉으로 향했다,
정릉을 가려면 예전엔 성신여대역에서 하차하여 버스를 타던가 아리랑고개를 넘어다녀여만 했지만,이제는 우이 신설동선이 개통되어 정릉역이 생기므로 인해서 교통이 매우 편리해졌다.
정릉은 이씨조선을 개국시킨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 강 씨(?~1396)의 능이다.
태조 이성계는 고려 시대 풍습에 따라 향처(고향의 부인)와 경처(개경의 부인)를 두었는데 강 씨는 경처로 황해도 곡산부 상산부원군 강윤성의 딸이었다.
이성계는 원정을 통해 공을 세우고 남해 일대 왜구를 수차례 토벌하면서 고려 중앙인 개성에 진출하였지만 지방 토호라는 출신 때문에 한계를 느꼈고 개성의 권문세족 출신인 강 씨와 정략적으로 혼인을 했던 것이다.
조선 왕조의 최초 왕비인 신덕왕후는 1392년 조선이 개국되자마자 현비로 책봉되었고, 이성계와의 사이에서 방번, 방석 두 왕자와 경순공주를 낳았다.
정릉은 조선 최초의 왕릉이므로 태조가 공을 들여 조성했지만 제3대 태종이 즉위하면서부터 정릉의 위상은 바뀐다.
처음 정릉은 정동이라는 곳에 위히하고 있었는데,태종은 정릉이 도성 안에 있고 능역이 광대하다는 점을 문제 삼아 능을 현재의 정릉 자리로 옮기고, 정릉 숲의 나무를 베어 집을 짓게 했는가 하면, 왕비의 제례를 폐하고 봄·가을 중월제(中月祭)로 격하했다고 한다.
이곳 정릉에서 산신제가 거행되기 시작한것은 무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녔다고 하며,정릉 산신제를 개최하고 있는 산신제 봉제회는 정릉 산신제가 지역 문화제로 등제되길 희망하고 있는것 같다.
아리랑 시장에 내걸린 정릉 산신제 프랑카드
정릉을 오르다 보면, 흥천사로 향하는 이정표가 있다.
흥천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조계사(曹溪寺)의 말사이다.
신덕왕후 강씨(神德王后康氏)가 죽자 1396년 능지(陵地)를 정릉(貞陵)에 정하여 조영(造營)하고, 그 원당(願堂)으로 능 동쪽에 170여 칸의 절을 세워 흥천사라 칭하였으며, 조계종의 본산(本山)으로 삼았다 한다.
정릉
옥황상제께 올리는 제상
옥황상제란 도교의 가장 높은 신으로 하나님과 같은 의미의 숭배자의 신이기도 하다.
중국에서 옥황상제가 등장한것은, 6세기 무렵 송나라 진종 시대로 전해지고 있다.
도교에서 도사는 원시천존을,서민은 옥황상제를 최고 신으로 모셨는가 하면,일반 가정에서는 조왕신이라는 부뚜막 신을 섬겼다.
우리나라의 하나님에 대한 명칭과 의미도 약간씩 다르게 표현되고 있다.
하느님 ㅡ최초 천주교에서 사용하였으며, 현재도 천주교 성경에는 하느님으로 표기되어 있음.
하나님 ㅡ개신교에서 사용함
한울 님 ㅡ천도교
한얼 님 ㅡ대종교
산신제가 시작되었고.....
이 지역 국회의원의 제례 및 인사하는 장면
제례는 초헌관 아헌관,종헌관 각기 2명씩이 선정되어 졔례를 올리고.....
이번에는 산산께 올리는 산신제
옥황상제께 올렸던 제물은 거두고, 다시 상을 차려 제를 올림.
산신제 모시는 바로 앞에 남북통일 기원비가 서있다.
여기에서 산신제 오르는 계단길이 나있지만,지금은 이길을 사용하진 않는다.
동시에 약수터가 바로 인근에 있는데,지금은 그 약수터를 폐쇠하고 말았다.
약수터 마당에서 만저 돌아 갈 사람들은 요기들을 하고....
아리랑 시장안에 있는 정릉 2동 경로당
이곳에서 소머리국밥 잔치가 벌어졌다.
올해는 찬조가 많이 들어와서 푸짐한 잔치준비를 할수 있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