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13]正初 흐뭇한 모임 2題
# 전남 여수에서 꾀복쟁이 친구가 ‘각굴’ 두 박스(이 친구는 제2의고향 여수에서 굴수협 상무을 지냈다)를, 광양에서 꾀복쟁이 친구(위생업체 운영)가 ‘고로쇠’ 두 박스(지난 겨울 가물어 제법 비싸게 쌌다 한다)를 갖고, 우리(같은 꾀복쟁이 3명)를 만나러 토요일 오후 3시반 올라왔다. 달포 전에 “야, 우리 해가 바뀌었으니 설 직후 제대로 만나(한동네 초교동창 7명) 하루밤 함께 둥글면서 회포나 풀자. 이제 이런 재미말고 뭔 재밌는 모임이 있겠냐”는 글쟁이 친구의 제안에 박수를 친 게 ‘열매’를 맺었다. 사실, 이제껏 이런 모임이 쉽지 않았지만, 내일이면 칠십 고개, 조금은 삶과 시간에 여유가 있다할까.
서울 을지로 인쇄골목에서 평생 박스만 만드는 친구는 언제부터인가 ‘자폐증’ 비슷해서 어떤 모임에도 나오지 않아 포기했다(아내가 죽은 후 사무실에서 혼자 기숙한다는 말만 들었다). 또 한 친구는 오산에서 아직도 건설현장에서, 팀별로 일을 하기 때문에서 주말에도 시간을 내기 어렵다해 다음을 기약했다. 복숭아농원을 크게 하는(600여주나 돼 가락시장에 1년이면 2만 박스를 납품한다) 동네 터주대감 친구의 창고에서 불을 피웠다. 커다란 가마솥에 물을 끓여 굴 한 박스를 쏟아 삶으니 거창했다. 인근동네 동창 2명과 동네 형님 4분을 즉석 초대, 화려한 파티가 시작됐다. 카스맥주 킬러인 태국인노동자 ‘샤’는 우리 시다바리에 바빴다(친구집에서 일한지 벌써 7년차 40대후반 여성. 얼마 전에는 30세 딸이 일을 하러 왔다가 불법체류에 걸려 반년만에 추방되는 가슴아픈 일이 있었다). 우리는 막걸리와 소주, 각종 음료수를 준비하고 이들을 반겼다. 어느 동네에서 설직후 正初라고 10명이 넘게 모여 이렇게 흔쾌하게 도는 모임이 있더란 말이냐. 이장이 마을회관 할머니들에게도 한 바가지 갖다 드렸다. 이것도 흔치 않은 일.
덕담을 주고받으며 오고가는 술잔 속에 무르익은 ‘꾀복쟁이들의 友情’에 스스로, 저절로 박수를 치며 모두 좋아했다. 파티가 파한 후 인근 면소재지에서 함께 먹는 묵은지 김치찌개는 또다른 별미. 친구집에 모여 밤10시까지 ‘쩜100’ 고스톱을 벌이는 놀이는 재미를 더했다. 이번에는 ‘오고가는 현금’ 속에 싹트는 우정이다. 한켠에서는 막걸리를 기울이며 그동안 못나눈 얘기를 나누기도 하고. 또 한 친구는 돼지 멱따는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이윽고 자리가 파하자 우리집 사랑방에 셋이 모여 閑談을 나눴다. 모두 새벽잠이 없는 나이, 세벽 3시부터 ‘도란도란 시간’이다. 서로 집안 내용을 시시콜콜 알므로, 형제들의 안부를 묻고, 현재의 가족(자녀 결혼 등) 상황도 확인하고, 부부생활의 실제(?)도 터놓고 얘기하는 우리 사이, 좋은 사이. 아침 7시, 인근 면소재지에서 황태콩나물해장국으로 ‘解酲(해장이 아닌 해정)’을 한 후 헤어지는 데, 하루밤이 짧아 조금 아쉬어 “우리 아무리 바쁘게 살아도 分期가 어려우면 1년에 두 번은 만나자” 약속하고 돌아오는 길, 발길이 허든했다.
# 일요일(2일) 점심 12시. 이 모임도 3주 전에 단톡방을 만들어 소통이 됐다. 퇴직후 고향으로 귀향하여 비싼 보약 ‘경옥고’를 만들어 친구들에게 선물하기를 좋아하는 친구(갈뫼)가 내가 ‘올가나이저(organizer. 모임 잘 만드는 사람)’임을 알고, 임실-남원지역의 고교친구들에게 점심을 한번 쏘겠다는 제안을 하며 부탁했다. 不敢請固所願. 10박 11일 미국 다녀오기 전 傳通을 날렸다. 한 시인부부는 교회일로 일요일로, 두 친구는 공교롭게 한양에 있는 통에 안됐지만, 成員은 언제나 문제없다(호스트 갈뫼, 서예가 근봉-분재원장 소천 부부, 민중의 지팡이 추산, 병원장인 남악. 임실의 나무왕, 생활글 우천 등). 대리기사를 자원해주신 형수를 포함, 9명이 정초에 모여 덕담을 나누고 악수를 한 후 소머리국밥을 한 그릇씩 뚝딱 비웠다. 이 모임 역시 아름답다. 갈뫼는 비싸고 귀한 경옥고(시중에선 500g 10만도 넘지만, 친구는 꼭 필요하다면 5만원만 받겠단다. 진짜 제대로 된 제품이라며 10병씩 주문도 가끔은 들어온다)를 또 한 병씩 안겼다. 민망하지만 고마운 일이다. 앞으로 대가족들이나 지인에게 선물할 때 주문을 해야겠다. 승용차 때문에 술자리는 늘 ‘빈약하고 허약한 게’ 흠이라면 유일한 흠이다.\
커피를 서로 사겠다고 하니, 분재원장이 최근 리모델링한 자신의 집을 공개하겠단다. 갈뫼형만 빼고 모두 동갑, 정유생 닭띠이므로 내일이면 '人生七十古來稀'가 아니던가. 100세 시대에 70이 어찌 고래로부터 ‘드문(稀)’ 일이겠는가. 차라리 마음도 몸도 ‘靑年’인 것을. 공자님은 70을 ‘從心所欲不踰矩(종심소욕불유구)’라 했다지만, 어디 마음대로 따라해도 법에 걸리지 않는 나이가 됐을까, 생각하면 어림짝도 없는 듯하여 마음이 어둡다. 서예가 친구가 고맙게도 ‘立春榜’을 정성껏(목욕재계) 써왔다. 연례선물이다. 어느새 벌써 立春(3일). 입춘시는 밤 11시라는데, 그때까지 기다렸다 입춘방을 붙이는 精誠이 있다면 대단한 일일 것이다. 오늘 오후에 한갓지게 붙여야겠다. 친구야, 고맙다.
아무튼, 친구의 집은 100여 분의 소나무 분재와 대웅전 앞에서나 볼 수 있는 큰 백일홍 등이 볼만하다. 나무왕과 관련 얘기만 나눈다해도 몇 시간일 듯. 재주가 별나 특기가 됐으니, 이제 곧 고향 전원생활이 시작될 듯하다. 대문 앞에는 아담한 ‘素泉公園’을 공들여 만들어놓고, 여름날 인근 친구들을 초대하거나 ‘有朋自遠方來’하면 ‘不亦樂乎’라며 石床에다 술상을 차리곤 한다. 나무왕 친구는 거의 재담가 수준이어서 두어 시간으로도 부족할 판이다. 어찌나 말을 맛깔스럽고 재미나게 하는지 시간 가는 줄을 모를 지경이다.
그날의 주제는 ‘부부싸움’이다. 지금 우리 이 나이에 얼마나 새삼스러운 말인가. 부부싸움도 힘이 있을 때 하는 일이지, 지금 같으면 생각지도 못할 일라며 ‘생활의 지혜’을 들려준다. 거기에 따라가는 ‘부부의 성생활’의 애로사항과 고충 그리고 어쩌다 맛보는 ‘간만의 喜悅’에 대해 리얼하게 고백하는데 모두 배꼽을 쥔다. 이것도 대단한 재주다. 이럴 때의 사자성어는 ‘同病相憐’이 제격이다. 그가 만든 ‘잠자리 이혼’의 뜻을, 그 情況을 십분 이해하고도 남으리라. 잠자리 이혼의 좋은 점은 90%, 조금 불편하거나 나쁜 점은 10%란다.
드물어진 부부싸움의 원인 분석에도 나섰다. 完經을 한 형수들의 남성호르몬 분출(갈수록 남편에 대한 사랑이 식고, 걸핏하면 강퍅해지는 성향.나는 미안하지만 정반대다)과 메이크머니 역할을 상실한 ‘6학년 남성들’의 무능과 무기력이 부채질하기 때문이라고. 져주고 싶어 지는 게 아니고, 질 수 밖에 없는 현실에 개탄한다는 말에 自嘲(자조)의 웃음을 날렸다. 아아-, 이 친구도 유쾌-상쾌-통쾌한 친구이다. 왜 내 주변에는 이런 ‘삼쾌三快의 인간’들이 많은가. 그들의 樂天的인 人生觀이 보기에 심히 좋다. 나도 주변의 친구와 지인들에게 ‘三快’의 인간으로 오래 기억되고 싶다. 날씨가 푹한 겨울의 한낮 오후, 친구집에서 유쾌한 남자들의 수다를 뒤로 하고, 다음을 기약했다. 한 친구는 몇 년 만에 ‘또래바둑(동급) 친구를 만났으니 手談(수담)을 나누자며 친구의 사랑방(찬샘동네)으로 행했다는 後聞이다. 우리 건강하게 또 만나자. 두 모임을 통해 진짜 민족의 명절인 '설'을 제대로 쇤 듯하다. 고맙다. 친구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