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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 칠십 이레(이 세상의 설계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회개하는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신다. 그렇다면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의 에덴동산에서의 불순종의 죄에 대한 죄는 어떻게 하실까? 우리는 다니엘의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 단 9:20-27 - 20 내가 이같이 말하여 기도하며 내 죄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자복하고 내 하나님의 거룩한 산을 위하여 내 하나님 여호와 앞에 간구할 때 21 곧 내가 기도할 때에 이전에 환상 중에 본 그 사람 가브리엘이 빨리 날아서 저녁 제사를 드릴 때 즈음에 내게 이르더니 22 내게 가르치며 내게 말하여 이르되 다니엘아 내가 이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려고 왔느니라. 23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알리러 왔느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환상을 깨달을지니라. 24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일흔 이레를 기한으로 정하였나니 허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 25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이레와 예순두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광장과 거리가 세워질 것이며 26 예순두 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무너뜨리려니와 그의 마지막은 홍수에 휩쓸림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27 그가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1. 서론
1) 이스라엘의 멸망과 회복
다니엘은 항상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그런 와중에 예레미야서를 읽고 이스라엘의 패망과 회복에 대한 예언을 접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범죄에 대하여 여러 선지자를 통하여 회개를 촉구하였으나 불순종하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을 통하여 이스라엘 나라가 패망하도록 하셨다. 그러나 형벌의 기간이 차면(끝나면) 다시 회복하여 광복을 허락하신다는 것이다.
* 렘 29:10,21 - 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21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골라야의 아들 아합과 마아세야의 아들 시드기야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그들은 내 이름으로 너희에게 거짓을 예언한 자라. 보라 내가 그들을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넘기리니 그가 너희 눈앞에서 그들을 죽일 것이라.
2) 무화과나무의 비유
예수님께서도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자 메말라 죽었다. 그 나무가 다시 회복됨을 예언하시면서 인자의 재림에 대한 경계도 말씀 하셨다.
* 마 21:19 -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 마 24:32,33 - 32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33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3) 역사적 사실
이스라엘 회중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죽이라며 그 죗값을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도록 외침과 같이 AD 70년에 로마의 디도 장군에 멸망당하였던 이스라엘이 AD 1945년에 광복을 맞음과도 같다.
* 마 27:25 - 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4) 다니엘 9장 3절 이후의 기도
이 기도는 인류의 조상이 불순종으로 인한 형벌에 대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푸시고 회복하여 달라는 필사의 기도다. 그는 금식으로 기도를 시작한다. 하나님의 징계로 인하여 예루살렘의 주위에 있는 모든 나라로부터 주의 백성이 수치를 당하게 됨을 하소연하고 있다.
* 단 9:16 - 주여 구하옵나니 주는 주의 공의를 따라 주의 분노를 주의 성 예루살렘, 주의 거룩한 산에서 떠나게 하옵소서. 이는 우리의 죄와 우리 조상들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과 주의 백성이 사면에 있는 자들에게 수치를 당함이니이다.
하나님은 지체하지 않으시고 가브리엘 천사를 보내어 다니엘의 기도에 응답하셨다.
5) 칠십 이레의 목적
24절은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신 목적이다. 이 목적은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함이다.
(1) 허물이 그친다.
(2) 죄가 끝난다.
(3) 죄악이 용서된다.
(4) 영원한 의가 드러난다.
(5) 환상과 예언이 응한다.
(6)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는다.
6) 칠십 이레의 시작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시작된다.
7) 칠십 이레의 끝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하게 한 자에게 쏟아진다.
2. 칠십 이레에 대한 신학자들의 평가
성경을 통하여 가장 난해한 구절 가운데 하나다. 먼저 신앙의 선각자들의 평가를 간추려 본다.
1) 아이삭 뉴톤(Isaac Newton 1642-1727) :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영국의 물리학자, 천문학자, 신학자인 그는 ‘그리스도 신앙의 주춧돌’이라고 평가 하였다.
2) 몬트고메리(Montgomery) : 칠십 이레에 대한 해석 역사는 ‘구약 성경 비평론의 디스멀 스윔프(Dismal Swamp : 미국 남서부의 대 습지대)이다.’라고 하였다.(왈부르드, 다니엘서 해석 p 327)
3) 아우베린(Auberlen) : 칠십 이레는 ‘위(천상)의 성소의 보석 같은 스타일이다.’라고 하였다.(카일, 구약주석 23권 다니엘 p 381)
4) 카일(Keil) : 칠십 이레는 ‘포로의 종말에서 끝 날에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그 나라가 완성될 때까지 하나님 나라의 발전과정의 선언으로 해석하여야 한다.’라고 하였다.(카일, 구약주석 23권 다니엘 p 381)
5) 매튜 헨리(Matthew Henry) :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세계의 구원에 대한 예표’라고 하였다.(메튜 헨리, 성서주석 시리즈 다니엘 p 241)
6) 맥클레인(Alva J, McClain) : ‘다니엘이 예언한 칠십 이레를 올바로 이해하게 되면 주의 재림 날짜 지정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정교한 억측으로부터 그리스도인을 보호하게 되고 아울러 신약의 모든 예언의 실제 연대에도 절대 확실한 해결의 열쇠가 마련된다.’라고 하였다.(맥클레인, 다니엘의 칠십 이레 p 9)
7) 아이언 사이드(H. A. Ironside) : ‘다니엘 9장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예언서이다.’라고 하였다.(아이언 사이드, 환난인가 휴거인가 p 58)
8) 저자의 견해 : ‘건축자들에게 준 하나님의 설계도’이다. 건축하는 자들이 설계도를 보면 건물을 짓듯이 하나님의 종들에게 준 이 세상의 설계도로써 하나님의 모든 역사를 풀어나가는 기초석이라고 할 수 있다.
3. 여러 견해
칠십 이레에 대한 예언은 모든 신앙인들에 필수적인 관심의 초점이지만 그동안 많은 성도들이 무관심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이는 아직 정한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으므로 열려지지 아니한 까닭이다. 성경 전체를 통하여 가장 난해한 구절로써 계시의 특성을 잘 대변해주는 특성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이는 24절의 성취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완성되는가 아니면 재림으로 완성되어지는가! 이다.
1) 여러 저자들의 견해
(1) 초림으로 보는 견해 : 석 원태, 박 윤선, 칼뱅, 영(E. Y. Young), 카일
(2) 재림으로 보는 견해 : 조 용기, 손 기태, 강 용조, 한 정건, 이 광복, 왈부르드, 아처(G. A. Archer), 레온 우드(Leon Wood), 랑게(J. P. Lange)
(3) 초, 재림으로 보는 견해 : 이 상근
2) 저자의 견해
말씀이 육신으로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 요 1:14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이미 성취되기도 하였으며, 재림으로 최종 완성되므로 우리는 역사의 과정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내용들이 역사 속에서 온전히 성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4. 칠십 이레의 해석
칠십 이레의 기간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1) 이레의 기간
이레(솨부아)는 세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시간의 이레(heptad)
둘째, 주의 이레(week)
셋째, 년의 이레(week of years)
저자는 년의 이레로 본다.
(1) 다니엘의 정경성으로 입증된다.
이 예언이 예루살렘의 중건 령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죽으심, 인류의 종말을 의미하기 때문에 시간이나 주의 이레로 해석할 수 가 없다.
(2) 유대인의 관습으로 입증된다.
유대인의 성력에는 날을 나타내는 일곱은 물론 년을 나타내는 일곱도 있다. 일곱째 날 인 안식일이나 일곱째 년인 안식년이 그것이다.
(3) 원어적으로 입증된다.
칠십 이레의 예언(단 9:24-27)과 세 이레의 금식(단 10:2,3)에 나타난 원어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9장 24절은 샤부임( )이 10장 2,3절은 샤부임야밈( )이 사용되었다.
(4) 성경의 번역본들이 사용하였다.
영국 개정역이나 Good News Bible, The Living Bible, The Amplified Bible, 현대인의 성경, 현대어 성경 등이다.
(5) 칼뱅을 비롯하여 많은 개혁주의 신학자들이 지지한다.
2) 시작 기점
칠십 이레의 시작 기점은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라고 본문이 규정하고 있다. 대부분의 보수주의 학자들은 세 차례에 걸친 귀환령과 관련시키고 있다.
(1) 1차 귀환령 : 주전 536년 고레스 원년에 내려진 귀환령을 말한다.
* 렘 29:10 -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
(2) 2차 귀환령 : 주전 457년 에스라 선지자에게 내려진 아닥사스다 왕(B. C. 464-424)의 칙령을 말한다.
* 스 7:7,11-13 - 7 아닥사스다 왕 제칠년에 이스라엘 자손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과 느디님 사람들 중에 몇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올라올 때에 11 여호와의 계명의 말씀과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례 학자요 학자 겸 제사장인 에스라에게 아닥사스다 왕이 내린 조서의 초본은 아래와 같으니라. 12 모든 왕의 왕 아닥사스다는 하늘의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한 학자 겸 제사장 에스라에게 13 조서를 내리노니 우리 나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과 그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중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뜻이 있는 자는 누구든지 너와 함께 갈지어다.
(3) 3차 귀환령 : 주전 445년 아닥사스다 왕 제 20년의 칙령을 말한다.
* 느 2:1,7-9 - 1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니산월에 왕 앞에 포도주가 있기로 내가 그 포도주를 왕에게 드렸는데 이전에는 내가 왕 앞에서 수심이 없었더니 7 내가 또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거든 강 서쪽 총독들에게 내리시는 조서를 내게 주사 그들이 나를 용납하여 유다에 들어가기까지 통과하게 하시고 8 또 왕의 삼림 감독 아삽에게 조서를 내리사 그가 성전에 속한 영문의 문과 성곽과 내가 들어갈 집을 위하여 들보로 쓸 재목을 내게 주게 하옵소서 하매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시므로 왕이 허락하고 9 군대 장관과 마병을 보내어 나와 함께 하게 하시기로 내가 강 서쪽에 있는 총독들에게 이르러 왕의 조서를 전하였더니
세 가지 귀환령 중에서 2차 귀환령이 역사적으로 가장 합리적이다. 이는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시작할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라는 누가의 기록과 일치 한다.
* 눅 3:23 -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하실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위는 헬리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년도는 로마시의 창설을 기원으로 한 연대를 사용하고 있다.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공인된 주후 526년에 유스틴(Justinian)황제의 요청으로 수도사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우스(Dionysius Exiguous)가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원으로 하는 연대를 제정하여 로마의 연대로 사용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디오니시우스의 계산이 잘못되었음을 발견하였다. 753년을 로마시의 창설연도로 삼았으나 사실은 749년 이였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탄생은 우리가 알고 있는 시기보다 4년이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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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