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New Life, 11월의 일기, 김장 하는 날/MARLBORO
‘남자는 가슴에 묻어두고 사는 게 있다.’
우리들 김장 하는 날인 2022년 11월 26일 토요일 이른 아침의 일로, 대구고등학교 6회 동기동창이면서 검찰수사관 입사 동기이기도 한 하수만 내 친구가 고등학교 동기동창 친구들이 온라인으로 함께 하는 카카오톡 단체방에 그와 같은 제목으로 글 한 편을 게시했다.
평소 그 방에서 활동이 뜸한 친구가 어쩐 일인가 싶기도 하고, 그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묻어두고 사는 게’ 도대체 뭘까 궁금하기도 해서, 그 게시글을 읽어가기 시작했다.
다음은 이어진 그 글의 전문이다.
애잔한 생각이 드는 사연이다.
미국의 유수 공대에 다니는 어느 가난한 고학생이 우아하고 총명하게 생긴 지역유지의 딸과 사랑에 빠졌다.
여자 측 집안에선 둘을 갈라놓기 위해 여학생을 아주 먼 친척 집에 가서 지내게 했다. 남자는 그녀를 찾기 위해 몇 달을 헤매고 다녔다.
그러다 비가 내리는 어느 날, 그녀의 집 앞에서 만나게 되었다.
여자가 힘없이 말했다. “나 내일 결혼해요!” 남자는 절망하여 한참동안 멍하니 있다가 "그럼 내가 담배 한대 피우는 동안만 내 곁에 있어 줄래?"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종이에 말아 피는 담배라서 몇 모금을 피니까 금새 다 타버렸다. 짧은 시간이 흐르고 여자는 눈인사만 하고 집으로 돌아갔고, 둘 사이의 사랑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세월이 흘러, 그는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하여 세계 최초로 필터가 있는 담배를 개발하여 백만장자가 되었다.
많은 세월이 흐른 후, 수소문 끝에 그 여자가 병든 몸으로 빈민가에서 혼자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남자는 함박눈이 내리는 어느 날, 검정색 벤츠를 타고 그녀를 찾아가 어렵게 만났다.
"난 아직도 당신을 사랑해. 나와 결혼해 주면 안 되겠어? 그렇게 해주기를 바래!“
여자는 망설이다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고, 남자는 다음 날 다시 오겠다고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남자가 그녀를 찾아갔을 때 깜짝 놀랐다. 목을 매단 채 죽어 있는 그녀의 싸늘한 시신뿐이었다.
유서에는 아무 내용이 없었는데 아래쪽 우측 하단에 조그마한 글씨로, ‘그동안 너무 보고 싶었어! 고마워’라고 적혀 있었다.
그 후에 남자는, 자기가 경영하는 담배회사의 필터담배에 ‘MARLBORO’란 브랜드를 붙였다. 담배는 날개 달린 듯 팔리기 시작했다.
억만 장자가 된 후에도 그녀를 잊지 못해 눈이 오거나 울적한 날에는 하얀 꽃을 들고 그녀의 산소를 찾아가 옛날을 회상하며 보살핀다.
‘MARLBORO’는 ‘Man Always Remember Love Because Of Romance Over’(남자는 흘러간 로맨스 때문에 사랑을 기억한다)의 이니셜이다.//
그 글을 읽는 내내 가슴이 뭉클했다.
한편 분노했다.
잊고 말지, 왜 찾아갔나 싶어서였다.
곧장 댓글을 붙였다.
그 붙인 댓글, 곧 이랬다.
‘나도 마찬가지로 가슴에 묻어두고 사는 게 있다. 그래서 내 스스로 말하기를 ‘부피로는 95프로를 까발렸지만, 무게로는 5프로 밖에 못 까발렸다.’라고 한다. 그 못 까발린 것 하나하나가, 까발리는 순간에 나는 깡통 차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 예를 들어 어린 시절에 아버지 돈 통에서 내가 돈 훔쳐놓고는 내 동생이 덮어쓰고 아버지한테 뚜디리 맞을 때, '전데요?'하면서 실토하고 나서지 못한 거...그 동생 반세기 전에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됐다. 그 이후로 긴긴 세월이 흘렀어도 지금도 못 까발린다. 너무나 쪽 팔리는 사연이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소매를 걷어붙였다.
김장 하는 아내의 손길을 도우려고 나선 것은, 바로 그때부터였다.
첫댓글 아!~
형수님 기무치!
맛잉거!~~~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