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부라더>는 종갓집 형제 이야기다. 퇴계 이황이 태어난 안동 퇴계태실(退溪胎室), 노송정 종택에서 촬영했다. 극 중 시간은 12월 18일이다. 딱 이맘때다. 가족과 함께 고택에서 영화 같은 하루를 보내는 건 어떨까? 겨울 한옥은 춥다고? 그 불편이 괜스레 분주한 연말의 보약이다.
노송정 종택 퇴계태실(退溪胎室) 창호
<부라더>, 성인이 든 집에서
고택은 시간을 거스르고 공간을 바꾼다. 한 해를 보내며 나를 돌아보고 우리를 챙기기에 알맞다. 대세 배우 마동석과 <응답하라 1988>의 이동휘가 출연한 <부라더>는 결국 그런 이야기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마지못해 본가에 내려온 종갓집 형제 석봉(마동석 분)과 주봉(이동휘 분). 그들은 ‘계산종택’ 현판이 걸린 대문에서 망설인다. <부라더>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장소인데 종손과 종부의 숙명을 상징한다. 촬영지는 안동 노송정 종택이다. 퇴계 이황 선생이 태어난 퇴계태실이 있어 가치가 남다른 고택이다. 실제 대문 편액이 이를 대변한다. 성림문(聖臨門)으로 ‘성인이 든 문’이다. 퇴계 어머니가 임신했을 때 공자가 집으로 들어오는 꿈을 꿨다 한다.
[왼쪽/오른쪽]노송정 종택 대문 성림문(聖臨門) / 별채 누마루에 걸린 노송정(老松亭) 종택 현판
고택 이름 노송정(老松亭) 현판은 대문 안쪽 별채 누마루에 걸려 있다. 우리가 잘 아는 그 한석봉이 썼다. 별채 왼쪽(서편)은 본채가 ‘ㅁ’자 형으로 자리 잡았다. 마당과 접한 면은 사랑채 온천정사(溫泉精舍)다. 닭다리 모양의 계자난간을 둘렀다. <부라더>에서 석봉과 주봉이 머물던 방이다. 마루를 중심으로 큰사랑과 작은사랑이 분리돼 있는데 퇴계가 공부하던 곳은 작은사랑이다.
[왼쪽/오른쪽]별채 마루에서 바라본 마당과 바깥 풍경 / 고택의 운치를 더하는 창호의 꽃잎 사랑채 온천정사 외관
노송정 종택은 한국관광공사 명품고택이다. 하루 이틀 석봉과 주봉이 될 수 있다. 대청마루가 있는 별채나 사랑채 큰사랑과 작은사랑, 안채의 상방(주인이 거처하는 방) 등을 빌려준다. 별채와 사랑채는 너른 마당을 품고 안방과 상방은 마루를 따라 퇴계태실로 이어진다. 이참에 겨울 가족 여행을 꾸려봄직하다. 겨울 한옥은 외풍 때문에 망설이는 이가 많다. 하지만 고택의 매력은 투호와 아궁이에 고구마를 굽는 흥미나 편리에 있지 않다. 창호를 뚫고 방 안 깊숙하게 스미는 귀한 햇볕을 쬐거나 한갓진 겨울 한편에서 가까운 이와 얼굴을 마주하면 온돌 같은 온정이 피어나고 속 깊은 이야기가 오가는 걸 느낄 수 있다. 겨울을 한옥 여행의 백미라 하는 건 그런 이유다. 풍경 또한 계절의 화려함이 가리던 본질에 다가선다.
[왼쪽/오른쪽]경상북도민속문화재 제60호인 퇴계태실의 내부 / 아궁이 덮개 구실을 하는 꽃그림 기와
퇴계태실에서 좋은 기운을
<부라더>에 나오진 않으나 노송정 종택에서 꼭 들러야 할 곳은 따로 있다. 안채에서 마당 쪽으로 튀어나온 방이다. 바로 퇴계태실, 퇴계 이황이 태어난 방이다. 다른 한옥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구조다. 일곱 줄기 기운이 하나로 모이는 명당이다. 퇴계태실은 좋은 기운을 얻고자 숙박을 청하는 이가 많다. 하지만 대여하지 않는다. 다만 언제든 편하게 볼 수 있게 개방한다. 젊은 부부나 가족은 잠시나마 반드시 들른다. 방안에 볕이 드는데 창호에 번질 때 언 마음이 은은하게 녹아든다. 해바라기만 해도 좋은 기운을 받은 듯하다. 달리 고택 체험일까.
영화 <부라더>는 종갓집 형제 이야기다. 그런데 결국은 형제의 어머니, 종부 이야기라는 걸 알 수 있다. 노송정 종택에서는 종부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도 좋겠다. 사람 뜸한 겨울철이니 청하면 가까이서 차 한 잔 나누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왼쪽/가운데/오른쪽]퇴계태실 외부 / 안채 마루 전경 / 안채 마루에 걸린 시 ‘노송정의 종부’
노송정 종택 최정숙 종부의 어머니도 종부였다. 그래서 자신은 종부로 살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아버지 뒷모습에 흔들렸다. 결혼하고 며칠이 지나서 시댁에 숟가락만 300개가 넘는다는 걸 알았다. 안마당을 한 바퀴 돌아 마루에 오르니 최정숙 종부의 사진이 곱다. 옆에 있는 시는 권순자 시인이 쓴 ‘노송정의 종부’다. 종부가 참여한 <종부소회가>도 볼 수 있다. “아들형제 헌헌장부 버팀목이 되었어라. … 고운단풍 물들듯이 곱게곱게 늙으려오”라는 글이 실렸다.
노송정 종택이 있는 도산면은 퇴계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여행지가 여럿이다. 온혜천 남동쪽 4~5km 거리에는 퇴계종택과 도산서원이 있다. 퇴계종택은 1907년 왜병의 방화로 사라졌다. 현재 종택은 13대 후손이 재건했다. 도산서원은 1000원짜리 지폐에 퇴계와 함께 등장한다. 겨울에는 스산한 편이나 맞은편 시사단(試士壇)과 강변 풍경이 계절을 느끼게 한다. 일대는 도산재를 사이에 두고 퇴계산책길로 이어진다. 날이 따뜻하다면 짧게 걸음을 내볼 일이다.
[왼쪽/오른쪽]경상북도기념물 제42호 퇴계종택의 정자 추월한수정(秋月寒水亭) / 도산서원 맞은편 시사단(試士壇)의 겨울 강변 풍경
군자가 살아 군자마을
영화의 고택을 조금 더 느끼고 싶을 때는 군자마을을 권한다. 노송정 종택에서 남쪽으로 약 10km 지점에 있다. 마을의 대표 고택은 동편 언덕 탁청정종가다. 탁청정(濯淸亭)은 조선 전기 전통 음식의 조리와 가공법을 기록한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요리서 <수운잡방(需雲雜方)>을 쓴 김유 선생의 호다. 그는 퇴계와 교류했고 묘비 역시 퇴계가 썼다.
< 부라더>는 종가 마루에서 찍었다. 주봉의 연인 사라(서예지 분)가 주봉의 집안 어른께 인사드리는 장면이다. 숙박도 가능하다. 종가의 사랑방과 종가 못방을 개방한다. 가족 여행이라면 탁청정이나 산남정이 좋다. 탁청정은 정자 이름이기도 한데, 독립한 별당이라 한적하다.
군자마을은 과거 안동부사가 마을을 가리켜 ‘군자 아닌 사람이 없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오천유적지라고도 한다. 광산 김씨 예안파가 600년 동안 살던 마을이 오천리다. 안동댐을 조성하며 이전해 조성했다. 마을은 언덕을 2단으로 쌓고 고택들을 배치했다. 경사진 언덕에 층을 이뤄 한 폭의 그림 같다. 안동 옛 마을 풍경을 사진 한 장에 담고플 때 찾을 만하다. 산책의 즐거움도 쏠쏠하다. 탁청정종가 외에도 묵을 수 있는 한옥이 많다.
군자마을 전경 [왼쪽/오른쪽]영화 <부라더>를 촬영한 또 한 곳의 고택 탁청정종가 / 노송정 종택의 성림문과 마찬가지로 탁청정(濯淸亭) 편액도 한석봉이 썼다.
여행정보
-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온혜중마길 46-5
- 문의 : 054-856-1052
-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군자리길 33-6
- 문의 : 010-7766-8666
주변 음식점
- 도산대가식당 : 안동찜닭, 간고등어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퇴계로 2300 / 054-852-6660
- 몽실식당 : 백반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청계길 27 / 054-856-4188
- 까치구멍집 : 헛제사밥 / 경상북도 안동시 석주로 203 / 054-821-1056
- 맘모스제과 : 유자파운드, 크림치즈빵 / 경상북도 안동시 문화광장길 34 / 054-857-6000
숙소
- 고계정(퇴계종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백운로 241 / 054-855-8332
- 농암종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가송길 162-133 / 054-843-1202
- 안동호반자연휴양림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퇴계로 2189 / 054-840-8265
글, 사진 : 박상준(여행작가)
※ 위 정보는 2017년 12월에 작성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