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요 탐방기관 및 유적 : 야스쿠니 신사, 동경 법정·정치대학, 오사카 성, 에도 성(古宮), 요코하마 개항자료관, 국회 의사당, 시텐노지[사천왕사(四天王寺)]/텐노지 꼬엔(公園), 마이니치 신문사
- 그 외 탐방 지역(地域) : 아끼하바라(전자메카 지역), 신사이부시(오사카 최대 번화가/먹자거리), 신주쿠·시부야(도쿄 최대의 상권), 요코하마(도쿄근교의 항구도시-인천과 비슷함), 교통박물관(일본 철도의 변천사와 발전을 엿볼 수 있음), 긴자거리(일본정치 중심지역), [기따노마루 꼬엔(公園), (일본무도관/과학기술관/근대미술관公園內)]
먼저 파이어니어 해외탐방이라는 소중한 기회를 주신 교수님들에게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번 일본탐방의 주제는 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인 일본의 전후의 의식조사가 주제였습니다. 일본과 우리 나라는 서로 마주한 이웃한 나라이면서도 지배와 피지배라는 관계로 껄끄러운 관계임이 사실입니다. 이런 껄끄러운 관계는 일본의 전후사죄와 보상의 문제, 독도 영유권문제와 재무장이라는 여러 현안들이 상충하면서 우리 나라의 일본에 대한 경계심이 더 커져 가는 상황입니다.
한반도의 역학관계에서 일본은 한·미·일 공조라는 삼각축의 하나이며 동아시아경제권 출범 등 역내 이익강화 측면에서도 없어서는 안될 존재이므로, 일본과의 진정한 신뢰구축은 우리 나라의 국익증대의 차원에서도 아주 중요한 문제라 할 수 있겠습니다. 진정한 신뢰의 구축이라는 것을 이루기 위한 첫걸음은 뿌리깊은 반일감정을 잠재울 수 있는 식민지배와 전쟁에 대한 일본의 진실하고 반성의 자세가 담긴 사과가 그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인식을 가지고 있는 저희 해외탐방 팀은 이런 인식 하에서의 일본은 그럼 그런 진정한 전쟁에 대한 사죄를 할 수 있는 의식구조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고 이런 의문에서 저희 탐방 팀은 일본이라는 조사당사국을 직접 찾아가서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를 조사해보는 것을 이번 해외탐방의 테마로 삼고 출발하였습니다.
2차 대전 때 전사한-제국주의·군국주의 꿈을 위해 혼을 바쳤던 군인들의 위패와 군마(軍馬), 군견(軍犬)의 위령비까지 세우며 자신들의 역사를 기리고 있는 야스쿠니 신사의 참배문제를 되짚어보기 위한 야스쿠니신사 방문과 전범재판소를 다녀오는 것이 저희들의 첫 의도였으나, 전범재판소는 현지사정으로 인해 가보지 못했기에 야스쿠니 신사와 오사카 성,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신사, 에도 성 등을 주제와 연관시켜 더 폭넓게 탐방하기로 하였습니다.
◆ 본 문
1 사전계획의 차질
이번 탐방은 위에서 기술하였듯이 일본의 전후 의식조사 라는 탐방주제를 가지고 출발하였습니다. 처음 계획은 지원계획서에서 밝힌 야스쿠니신사와 일본전범재판소, 그리고 원폭의 피해지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방문하고 탐방기간 중에 현지 지인의 도움에 의한 통역으로 현지 일본인들의 전후의식에 대한 인터뷰를 시도할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도움을 받기로 한 현지 지인의 개인사정으로 인한 연락두절로 인한 인터뷰계획의 무산과 그리고 사전준비 과정에서 알게된 탐방팀원들의 예상을 초월하는 일본의 물가 특히 교통비 때문에 사전 준비과정에서 부터 이번 탐방은 큰 차질을 빚게 되었습니다.
즉 첫 일본 도착지인 오사카에서 상대적으로 이동거리가 상당히 먼 나가사키 와 히로시마까지의 교통경비는 출발 전 책정된 총 경비 230만원의 경비에서는 충당하기 어려운 금액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가기 위한 JR패스 7일 권이 개인당 2장이 필요했는데, 이 한 장의 가격이 2만8천5백엔 원화로 약30만원 정도의 금액이었기 때문에 총 경비 내에선 무리라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출발 전 이런 두 가지 큰 문제에 봉착한 탐방 팀은 결국 의논 끝에 기존계획을 수정하자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리고 두 가지 수정방안을 놓고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첫 번째 수정안은 일본의 고대유적이 많은 오사카, 교토, 나라를 포함하는 관서지방을 탐방하자는 것이었고, 두 번째 수정안은 기존계획의 중요방문지 중의 하나였던 도쿄의 야스쿠니신사만이라도 방문하여 기존의 계획의 취지를 최대한 살리자는 것이 두 번째 안 이었습니다. 토의 끝에 탐방 팀은 두 번째 안을 결정하기로 하고 그 에 따른 사전준비를 마쳤습니다.
2. 수정안의 내용과 탐방방법
위에서 기술한대로 기존계획의 차질로 인해 채택된 수정안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한도에서 기존주제를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탐방지역을 방문하도록 하고, 탐방지역의 의미를 고찰해봄으로써 비치는 일본의 전후의 의식을 나름대로 추론해보는 방법으로 불발된 직접 인터뷰라는 기존의 조사방법을 대체하였습니다. 그래서 선정된 주요 탐방지역들은 오사카의 오사카 성, 사천왕 사, 텐노지 고엔, 도쿄의 야스쿠니 신사, 에도 성터와 천황의 집인 고쿄(고궁), 요코하마의 개항자료관등을 선정하였습니다, 위에서 거론한 장소들은 일본인들의 역사인식이 담겨있는 곳이라 생각되었기에 이 장소들을 선정하였습니다.
먼저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의 전범들의 위패와 전쟁에 사용된 군 견, 군 마 등의 위령비를
모신 장소이며 이런 민감한 성격 때문에 항상 일본총리의 참배 문제가 거론되는 곳입니다, 이곳을 둘러본 탐방팀은 일본육군창시자의 동상과 또한 일본의 세계대전당시 쓰였던 전투기와 탱크 등을 전시해놓은 박물관 등은 피해 당사국인 한국인 입장으로써는 이해하기 힘든 행위였고, 야스쿠니신사를 방문한 당일 쏟아진 폭우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수의 참배 객 특히 유치원생들의 대거 참배는 어린 나이 때부터 별다른 거부감 없이 세계 대전의 상징인 야스쿠니 신사를 받아들인다는 데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전국시대의 사람들인 히데요시와 이에야스가 세운 오사카성과 에도성을 탐방하면서 그리고 그 역내의 그들의 신사가 건설되어 그들이 開運의 신으로써 추앙 받고 있는 것 또한 깊은 생각을 가지게 했습니다. 그리고 천황과 관련된 장소들인 텐노지고엔, 사천왕사, 그리고 현 일본천황이 거주하는 고쿄 등의 장소와 어느 카페에서 우연히 몇 마디 나눈 한국인 아내를 둔 일본인 노인의 텐노 즉 천왕이라는 단어에서 나오는 경외감의 표정은 그들의 천왕에 대한 단편적인 면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정리하면 위에서 기술한 장소들은 모두 일본의 호전성을 상징하는 것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동아공영을 외치며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주범을 모신 야스쿠니 신사, 전국을 통일하고 대륙진출을 꿈꾼 히데요시와 그의 뒤를 이어 집권한 이에야스를 상징하는 오사카성과 에도성, 그리고 일본의 상징적 수장이면서 세계대전당시 실질적 전쟁의 수장이었던 천왕에 관련된 곳들은 모두 그런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 장소를 대하는 일본인들의 태도와 그 관련된 인물들에 대한 일본인들의 태도 또한 그들을 경외의 대상으로 대하는 데에서 이들의 전후의 결과에 대한 죄의식보다는 위의 인물들을 영웅시하는 데에서 오는 전쟁과 침략에 대한 합리화라는 의식이 더욱 강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물론 이런 생각들은 단편적인 면만을 보고 추론한 비약적인 결과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일본 현지에서 특히 위에서 거론한 장소들 즉 일본의 침략의 역사를 의미하는 장소들에서 보인 일본인들의 행동에선 전후결과에 대한 참회라는 의식을 찾는다는 것 역시 비약적인 결과 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동아시아 국가에서 전쟁을 상징하는 그들은 일본에선 전쟁의 영웅으로 추앙 받고 있었고, 이런 현실은 결국 처음의 생각 일본을 지배하는 전후의식은 참회가 아닌 전쟁합리화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의식이 생겨난 것을 우리 탐방 팀은 일본의 전통적인 무의 숭배사상과 국익이라는 두 가지 이유로 해석하였습니다. 즉 전통적 무의 숭배-강함을 추구하는 일본의 정신이 이런 침략행위마저 강한 일본의 표출로 해석하여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라 추론했고, 또 다른 이유인 국익의 관점에서 그들의 입장에선 그들 일본인의 국가인 일본의 국익을 증진을 위한 대외전쟁이었고, 그것이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국익을 위한 전쟁을 수행하고 이를 이끌어 온 것에 대해서는 위의 인물들이 영웅으로 추앙 받을 수 있고 그런 영웅들이 수행한 전쟁 역시 최소한 그들에게 있어선 침략이 아닌 국제사회에서 승자로 살아남기 위한 자위의 전쟁이라고 합리화 될 수 있는 것이라 추론해 보았습니다.
◆ 맺 으 며
이렇게 일본인의 전후의식이라는 무겁고 진지한 주제를 사전준비부족과 여행일정의 제한적 요소들로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하고 돌아온 것에 대한 아쉬움이 크게 남습니다, 그러나 짧은 5박6일의 기간동안 낯선 일본의 문화와 선진 일본의 힘을 볼 수 있는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에 만족하고, 위에서 다룬 전후 의식문제에서도 결국 피해국민인 한국민의 입장이라는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는 결론을 도출했지만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이번 탐방을 계기로 일본에서 일본인의 입장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도 얻을 수 있었던 같습니다.
국제관계를 전공하는 학도들로써 국제사회는 힘이 지배하는 사회이고 자신의 국가의 국익의 관점에서 행동할 수밖에 없는 것이란 것을 주지하고 있기에 돌이켜보면 승자의 논리에 의해 일본은 침략이라는 오명과 패자로써 참회를 요구받고 있다는 한국민으로써는 아주 위험한 발상의 전환을 적용해보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을 덧붙이며 파이어니어 해외탐방 최종보고서를 마치겠습니다. 다시 한번 이런 기회를 제공해주신 교수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