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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과 함께 해가 기울어간다. 어지럽게 늘어놓은 일상의 먼지를 털어내고 싶은 마음이 절실해질 때다. 나라 안팎으로 시끄러운 소식이 끊이지 않았고, 주머니의 허전함에 남 몰래 한숨을 뱉은 이들도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산은 그런 세속적인 고민을 잊게 해주는 좋은 친구다. 도시 근교의 등산로가 늘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것은 이런 분위기 탓도 있을 것이다.
2009년의 마지막 달이 시작됐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나름대로의 의식을 갖고 싶어지는 시기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역시 송년회 모임과 함께하는 등산이 좋다. 여기에 오토캠핑과 함께하는 모닥불 파티라면 한층 운치가 더할 것이다. 산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오토캠핑장에서 송년모임을 갖고 등산을 즐기며 한 해를 마무리하는 재미를 느껴보자.
산행지를 고를 때는 주변에 모임을 가질 만한 시설을 갖춘 오토캠핑장이 있는지 먼저 고려해야 한다. 특히 산불예방기간이 걸쳐 있는 12월은 모닥불을 피우는 데 제한이 많기 때문에 장소 선택에 어려움이 많다. 하지만 개인이 운영하는 오토캠핑장은 이러한 제약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다. 샤워장과 전기 공급 등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는 곳이면 더욱 좋다. 더불어 여러 사람이 묵을 수 있는 숙소까지 갖췄다면 산행을 겸한 송년모임 장소로 그만일 것이다.
- ▲ 1 영월 솔밭캠핑장에 캠프를 차리고 모닥불을 피우며 송년모임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 솔향기 가득한 야영장에서 보내는 하룻밤이 즐겁다. 2 노송과 기암이 어우러진 구봉대산 주능선. 동양화 속에서 보던 전형적인 풍광이다. 3 바위지대에 올라 주변 산세를 조망하고 있는 취재팀. 4 구봉대산의 전망 좋은 암봉에 올라 담소를 나누며 즐거워하는 취재팀. 5 구봉대산의 능선은 바위가 많이 드러나 있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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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공간과 울창한 솔숲이 매력적
영월솔밭캠프장은 오토캠핑에 알맞은 입지와 시설을 갖춘 곳으로 캠퍼들 사이에 인기가 높은 곳이다. 넓고 평탄한 계곡 옆 솔밭은 캠핑을 즐기는 이들에게 최고의 환경을 제공한다. 법흥사 입구에 산재한 여러 캠프장은 물론 전국을 통틀어도 최고의 점수를 줄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은 개인이 운영하는 곳이라 화로를 이용할 경우 언제든지 모닥불을 피울 수도 있다. 여러 개의 방을 갖춘 숙박시설도 함께 운영하고 있어 캠핑 장비가 부족한 이들도 모임에 참여할 수 있다. 산행과 오토캠핑을 겸한 연말모임에 안성맞춤인 장소다.
영월솔밭캠프장은 오토캠핑 마니아들에게는 이미 유명 장소다. 하지만 추위가 닥치면 아무래도 이용객이 줄어들기 마련이다. 이런 한적한 때를 이용하면 여유 있게 모임을 가질 수 있다. 널찍하게 캠프 사이트를 만들고 모닥불 옆에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며 즐기는 하룻밤은 좋은 추억이 된다. 11월 초, 연말 모임을 겸한 산행지 취재를 위해 영월솔밭캠프장을 찾았다.
금요일 오후 느지막이 도착한 캠프장에는 이미 한 팀의 캠퍼가 들어와 자리를 잡고 있었다. 평일이라 사람이 없을 것이란 예상은 빗나갔다. 단골 캠퍼로 이곳을 자주 찾는 팀이 먼저 와 있었던 것이다. 날씨가 추워지며 캠퍼의 수가 줄었다고는 해도 토요일이면 언제나 제법 많은 팀이 찾는단다. 이곳의 인기는 겨울에도 식을 줄 몰랐다.
커다란 소나무들이 듬성듬성 솟아 있는 캠프장 한쪽 귀퉁이에 사이트를 잡았다. 시냇물이 흐르는 것이 가까운 곳에 보이는 좋은 자리였다. 샤워장과 취수대·식당·텐트도 멀지 않아 캠핑을 즐기는 데 그만이었다. 서두른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캠프 사이트 선택의 자유를 만끽하며 사이트를 설치했다. 바람을 막을 수 있는 커다란 텐트를 설치하고, 폴딩형 캠핑트레일러를 고정하고 나니 10여 명은 넉넉하게 머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송년모임에는 만찬이 빠질 수 없다. 미리 준비한 음식을 데우고 술과 음료수를 꺼내 놓으니 조촐하지만 남부럽지 않은 저녁상이 차려졌다. 숯불에 직화로 굽는 고기 맛을 마음껏 볼 수 있는 것도 캠핑의 매력이다. 돼지고기가 지겹다는 이들을 위해 훈제오리와 고등어 자반까지 곁들이니 더 없이 만족스러운 자리가 됐다. 고기를 굽는 화로에 둘러앉아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돌아보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이곳 캠핑장에서 판매하는 장작을 구입해 화로에 모닥불을 피웠다. 건조하지만 바람이 거의 없어 편안한 마음으로 불을 쬘 수 있는 날씨였다. 벌겋게 솟아오르는 불기둥이 사람들의 마음까지 환하게 비췄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은 불꽃의 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다면 훈훈함이 더해진다. 도시와 외떨어진 고요한 산속이 이렇게 안락할 수 있음에 놀랐다.
파티의 뒤끝은 뻐근한 산행으로 풀어
모닥불과 함께했던 하룻밤을 지낸 뒤 날이 밝았다. 약속이 있는 이들은 새벽같이 자리를 떴고, 약주가 과했던 이들은 텐트 속에서 뒹굴며 남은 숙취를 풀었다. 솔향기 가득한 새벽 공기의 각성효과가 탁월하긴 하지만 산행에는 비할 것이 못 된다. 등산 애호가라면 산에 오르며 흘리는 땀의 의미를 경험으로 알고 있다. 송년모임 뒤의 속풀이는 역시 산행이 제일이다.
배낭에 마실 물과 과일 등 가벼운 먹을거리를 채운 뒤 산으로 향했다. 오늘은 캠핑장에서 멀지 않은 구봉대산(870m)에 오를 것이다. 날카로운 봉우리들이 줄지어 솟아 있는 멋진 산줄기가 특징인 바위가 많은 산이다. 하지만 등산로 정비가 잘되어 있어 보기보다 어렵지 않게 산행이 가능하다.
구봉대산은 사자산 법흥사의 적멸보궁을 보호하는 우백호 역할을 하는 산줄기다. 게다가 이곳은 산불예방기간 동안 입산통제가 철저한 영월군 관내이면서도 산행이 가능하도록 개방되어 있는 곳이다. 법흥사 주변을 둘러싼 사자산과 백덕산은 통제구역인 데다 산행 시간도 길어 겨울철에는 산행이 쉽지 않다. 산길 역시 자연 상태인 곳이 많아 초보자는 힘들 수 있다. 하지만 구봉대산은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해도 큰 무리가 없을 정도로 길이 잘 나 있다. 송년모임 뒤풀이 산행으로 안성맞춤인 곳이다.
캠핑장에서 차를 타고 잠시 이동해 법흥사 일주문 앞에 차를 세웠다. 일주문 좌측에 산으로 들어가는 계단과 구봉대산 방향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보였다. 산길은 얼마 전 내린 비의 흔적이 남아 제법 미끄러웠다. 낙엽이 수북하게 쌓인 계곡길을 얼마쯤 치고 오른 뒤 왼쪽 사면을 타고 고도를 높였다. 뒤를 돌아보면 황금빛으로 물든 낙엽송이 산자락 여기저기에 물결친다. 다음을 기약하며 차분히 물러나는 가을의 뒷모습이다.
가파른 비탈길을 올라 능선에 올라서니 바람이 차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잦은 곳이라 길은 넓고 뚜렷했다. 잠시 뒤 제9봉인 윤회봉이라 쓰인 이정표가 나타난다. 활처럼 휘어지는 산줄기 가운데 자리 잡은 작은 봉우리에서 간단히 요기를 한 뒤 계속 봉우리를 타고 넘었다.
곧이어 나타나는 제8봉은 ‘북망봉’이다. 인간이 이승을 떠남을 의미한다는 봉우리로 정상 표지석과 헬기장이 있어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나무가 주변을 가려 조망은 시원치 않았다. 이곳이 아홉 봉우리 가운데 가장 높다. 지형도상 높이는 885m. 그러나 정상 표지석에는 구봉대산의 주봉 격인 관망봉의 높이인 870m가 표기되어 있다.
이어지는 제7봉 ‘쇠봉’을 넘어 잠깐 내려섰다가 급경사를 치고 오르면 구봉대산 최고의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제6봉 ‘관망봉’이다. 아찔한 절벽이 형성된 봉우리 정상에서 백덕산과 사자산 방면의 조망이 멋지다. 손에 잡힐 듯 가까운 법흥사가 아늑한 골짜기 안에 둥지를 틀었다. 역시 명당 자리라는 생각이 드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