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진단]
추석과 나그네
남북 간 긴박했던 전쟁 위기가 한여름 더위와 함께 물러가고, 아침저녁으로 시원한 가을 문턱에 들어서고 있다. 이제 곧 달이 뜰 것이고, 저 달이 만월이 되면 한가위 추석이다. 그러면 누구나 한번은 “고개 들어 달을 보고, 고개 숙여 고향을 생각하리라”(擧頭望明月/ 低頭思故鄕). 추석에 대한 추억은 누구나 각별할 것이며, 그 추억을 좇아 사람들은 먼 길 달려 고향을 찾아갈 것이다.
그런데 19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9월 1일 자 모 신문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추석 연휴 중 ‘귀향 예정’ 36.9%, ‘출근하거나 일을 할 계획’ 18.1%, ‘여행’ 7.2%, ‘기타 혹은 계획 없다’ 37.8%로 나타났다. 고향에 가는 사람보다 가지 않거나 못 가는 사람이 더 많다. 물론 이 중에는 여행 등으로 인한 ‘자발적 귀향 포기자’도 있지만, 일이나 다른 사정으로 인한 ‘비자발적 귀향 포기자’가 더 많다.
고향이 북에 있어 갈 수 없는 월남민과 탈북민, 남북으로 가족이 찢어진 이산가족은 추석에 분단의 서러움을 더욱 애절하게 느낄 것이다. 고향이 북에 있는 것도 아니고 가고 싶지만 고향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도 우리 주변에 적지 않다. 생활 현장에서 삶의 뿌리를 내리지 못한 사람들, ‘3포세대’ ‘5포세대’라 불리는 청년 실업자들, 이 세상의 많은 루저(Loser)들은 고향이 있어도 고향에 가지 못한다. 추석이 되면 이들은 더욱 작아져 숨어 버리는 ‘명절의 실종자’들이다.
12세기 유럽의 수도사이며 사상가인 성 빅토르 후고(Hugh of St. Victor)는 고향과 관련하여 저명한 명구를 남긴 바 있다. “자신의 고향을 사랑하는 사람은 아직 순진한 초보이다. 세상 모든 곳을 고향으로 여기는 사람은 강한 사람이다. 그러나 온 세상을 타향으로 여기는 사람이야말로 완벽한 인간이다.”
고향에 가지 못하더라도 타향을 고향으로 여길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건 세상에서 이긴 강한 승자들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후고의 이 말은 사람이나 사회에게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가족이나 친지를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무연고 타인까지 사랑을 확대할 줄 아는 사람은 강하고 장한 사람이며, 그런 사회는 강한 사회이다. 고향이나 친지라는 연줄을 넘어서는 인간적 유대, 시장의 승패 논리를 넘어서는 따뜻하고 강한 사회는 약자에게 고향 못지않은 안식처를 제공하여, 타향을 고향으로 바꾸어 준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마태 25,40)이라 하셨으니, 이것은 예수님의 명을 따르고, 예수님을 만나는 길이기도 하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면 세상 누구도 예전의 그 고향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 세상 모든 것이 변하듯이, 한때 영원할 것으로 보이던 고향도 이젠 예전의 그 고향이 아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며, 우리가 떠나온 고향은 이미 타향이 되어 있다. 여기서 빅토르 후고가 “온 세상을 타향으로 여기는 완전한 인간”을 다시 생각한다. 온 세상을 타향으로 여기는 것, 즉 이 세상살이가 결국은 나그네 삶인 것을 알고 실천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를 완전하게 만든다. 세상에서 우리를 비워내는 나그네 삶이 다른 사람들에게 안락한 고향을 만들어주고, 나그네 삶의 출발점이었던 자신의 고향도 더욱 사랑하게 할 것이다.
추석을 맞이하여 우리가 고향에 가거나 못 가거나, 저 밝은 달을 보면서, 우리가 모두 세상 나그네임을 알고, 주님이 계시는 ‘가장 작은 이’인 ‘추석의 실종자들’을 찾아가 보는 것이 진정한 고향으로 가는 길이리라.

첫댓글 나그네 삶을 알고 실천하는것.. 배려와 양보의 삶으로 이어질듯 합니다.
"세상 누구도 예전의 그 고향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
세상 모든 것이 변하듯이, 한때 영원할 것으로 보이던 고향도 이젠 예전의 그 고향이 아니다"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글쓴이의 생각에 한편 이해가느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