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안에서 아이들끼리 싸우는 일은 이제 놀랄 일도 아니다. 교사가 알지 못하는 다툼이나 관계에서 빚어진 갈등도 많아졌다. 분노를 표출하는 아이들도 많아졌고 교사의 생활지도를 따르지 않고 반항하는 아이들도 거듭해서 많아 지고 있는 것이 학교의 현장이다.
"교감선생님, 000이 안 들어옵니다. 죄송하지만, 그 학급에 올라가서 전담실로 가라고 말씀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해당 학생이 있는 학급으로 올라갔더니 역시나 담임선생님과 학생이 앉아 있었고 담임선생님은 뭐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그 아이는 듣는체 마는체 하며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무슨 상황인지 그려졌다. 전담실로 가지 않고 버티고 있는 학생을 담임선생님이 설득해서 어떻게든 가라고 하는 상황이었다. 담임선생님도 어찌할 수 없는데 교감인 내가 어떻게 할 수 있겠느마는 부탁을 받은 상황이라 일단 부딪쳐 보기로 했다. 친절하게 상담하시는 담임선생님과는 정반대로 무작정 엄한 목소리로 아이에게 이야기했다.
"일어서. 일어서. 따라와"
쭈빗쭈빗하면서 일어나는 듯 하나 거북이보다도 더 느리게 자리에서 일어난다. 한 걸음 한 걸음도 숨막힐 정도로 느리게 반응하며 교실 밖으로 나온다. 전담실까지 보통 걸음으로 1분이면 족할 거리인데 5분 넘게 걸린 것 같다. 혹시나 시늉만 하고 다시 교실로 돌아갈까봐 전담실까지 안내하고 들어가는 것을 보고 다시 뒤돌아섰다. 담임선생님은 속히 까맣게 타들어갔을 것이다. 교감까지 나섰으니 말이다. 그 아이는 아마 그 시간에 무표정으로 있지 않았을까 싶다. 왜 버티며 전담실에 들어가지 않을려고 했을까?
<오늘부터 시작하는 회복적 생활교육>은 생활교육의 패러다임을 응보적 관점에서 회복적 관점으로 전환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생활교육이 필요한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학생들 모두 의자를 움직여 원 형태로 둘러 앉는 것부터 시작하는 써클방법을 써 볼 것을 권유한다. 발언권을 가질 수 있는 토킹피스로 학급 안에서 모든 구성원들이 중재의 시간을 갖는다. 중재의 원칙은 상호존중이다. 중재를 책임지는 사람이 학급 담임교사라면 이 원칙을 지켜야 한다. 감정을 털어놓고 솔직한 대화를 유도한다. 학급 안에 생긴 문제는 반드시 대화로 해결한다. 중재에서 해당 학생들의 감정과 공감을 끌어내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인내심이 요구되기에 결코 강요해서는 안된다. "일어서. 일어서. 따라와" 와 같은 강압적인 발언은 공감을 방해하고 감정 이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잘못한 학생을 교실 밖으로 쫓아 버리면서 어떻게 그 학생이 교실 안에서 잘 행동하길 기대할 수 있을까?"
결국 학급이라는 공동체에서 한 아이 한 아이를 잃지 않기 위해 학생의 행동을 교실 전체에서 다루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서클은 공동체 구성원을 잃지 않기 위한 교실의 기대치이다. 교실 속의 아이들의 목소리로 문제를 다루기 위한 것이다. 꼭 알아야 할 것은 피해를 끼친 학생을 교실에서 배제해서는 안 된다. 피해를 끼친 학생이 정확히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함께 들으면서 공감 능력을 키우도록 해야 한다. 행동의 변화를 기대한다면 교사가 직접 이야기하는 것보다 학생 스스로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갈등은 학생이 자기 행동의 결과를 깨닫는 기회이다. 자기 행동에 책임지는 의무를 배우는 기회다. 잘못을 바로 잡기 위해 실천하는 기회다"
생활교육은 규정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 규정의 가장 큰 단점은 큰 그림을 보지 못하고 금지하고자 하는 구체적 행위에 집중한다는 점과 학생이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체적인 상황에서만 적용하려는 점이다. 규정에서 제시하는 정신은 가르치되 규정에 나와 있는 세세한 문구로만 학생들을 생활교육하고자 해서는 안 된다. 더불어 교사는 학생들에게 하지 말아야 할 것보다 긍정적인 생활습관을 갖도록 유도해야 한다. 금지할 것만 바라보면 교사는 선입견을 갖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 교사의 머리속에 그 학생에 대한 선입견이 생성되면 학생의 변화를 꾀하기 힘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