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난 중에도 기뻐하는 사람들
로마서 5:3,4,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찬송가 162장(부활하신 구세주)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살아가는 중에 일이 형통하게 잘 풀리고 건강하면 감사하며 기뻐하며 잘 살아가지만 반면에 삶에 어려운 일이 생기고 고통과 환난이 닥치면 낙심하고 절망하고 짜증을 부리며 화를 내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형통할 때에만 기뻐하며 감사하며 모든 이들에게 친절할 뿐 아니라 환난 중에도, 역경 중에도, 핍박과 육신의 질병이 있을 때에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몸이 아픈 중에도 여전히 얼굴에 미소를 잃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어가고 주변 여건이 답답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곁에서 하나씩 떠나갈지라도 여전히 슬픔 대신에 기쁨이 있고 평안과 소망이 그 심령에 가득합니다.
그러한 예를 들자면 사도 바울을 들 수 있습니다. 그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쓴 편지에 보면, 그가 로마 감옥에 있어서 먹을 것도 형편없고 잠자리도 눅눅하고 늘 감시받고 살아가며 감옥 밖을 나갈 수도 없이 꼼짝없이 갇혀 있는 신세요 당시 로마 황제가 네로였는데, 그에게 재판 상소를 했는데 어떤 결과가 나올 지도 가늠할 수 없는 불투명한 미래의 불안도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도 사도 바울이 쓴 빌립보서를 보면 편지 곳곳에 빌립보 성도들을 향하여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주안에서 기뻐하라”고 권면하였고, 본인 자신에 대하여서도 이르기를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한다.”고 말하곤 하였습니다. 짜증이 많은 사람은 아무리 좋은 일이 생겨도 별로 좋은 말을 하지 않습니다. 좋은 일이 생기면 잠시 짜증을 멈출 뿐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아주 작은 일만 있어도 크게 기뻐하면서 기뻐하고 기뻐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감옥 안에서도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하면서 풍부할 때뿐 아니라 궁핍할 때에도 역시 자족하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말하면서 평안함과 기쁨을 누리며 지냈습니다.
그가 고린도 교회에 쓴 편지를 보면 당시 길고 험한 이방 선교 여행을 3번째로 나간 상태였습니다. 그는 광역한 지역에 선교 여행을 하는 중에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의 집요하고 거센 반대를 만나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에베소 교회 주변의 이방 사람들은 폭동을 일으킬 지경이었습니다. 그가 세운 교회들도 이런 저런 문제로 근심을 시키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고린도 교회 같은 경우에는 파당이 교회 안에 생겼고 사도 바울의 사도권을 부인하는 사람들도 일어날 정도였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의 몸도 이제 50대 후반, 약 57세 58세쯤 되었을 때이니 여기 저기 아플 때입니다. 특히 사도 바울의 눈이 매우 심각한 상태로 안 좋아졌습니다. 학자들은 그 안질이 꽤 오래 된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리고 사탄의 가시, 혹은 사탄의 갈고리가 그를 찔러서 종종 몸을 꼼짝 못할 정도로 괴로울 때도 종종 생겼습니다. 그 병이 무엇인지 자세히는 알 수 없으나 거의 초죽음이 되는 고통이 그에게 종종 찾아오곤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상황 속에서 사도 바울이 낙심하거나 고통에 압도당하여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러한 상황 속에 있으면서 항상 기뻐하곤 했음을 보여주는 고백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2:7 이하에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린도후서 112:7~10)
사도는 몸이 약하여도 기뻐하며, 능욕과 박해를 당하여도 기뻐하며, 배고프고 답답할 때에도 기뻐하며, 바라는 사역이 잘 안 풀려도 기뻐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종종 우리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몸이 점점 허약해집니다. 창이 어둡듯이 시력이 떨어지고, 귀가 서서히 먹어가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고, 허리가 굽게 되고, 다리가 힘이 없어지고,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해지고, 매 순간 앓는 소리가 커지고, 잠을 잘 자지 못하고 작은 소리에도 일어나게 됩니다. 이렇게 연수가 차게 되면 점점 우리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사람들은 짜증이 생기고 침울해지고 낙심하게 되기가 싶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과 달리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의 몸은 쇠해지지만 세상 사람들과 달리 우리는 장차 부활의 영광스러운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한 줌으로 돌아가지만 우리의 영혼은 약해진 몸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져서 천사들의 호위를 받고 곧장 천성 문을 통과하여 주님의 날개로 덮여진 천성에 올라가 평안과 기쁨과 안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몸도 장차 지극한 영광으로 덮입혀져서 새 하늘, 새 땅, 새 예루살렘 성에서 영원한 평화와 생명과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다시는 슬픔도 없고 다시는 눈물도 없고 포악하거나 속이거나 압제하는 자가 없는 공의와 공법이 충만한 나라, 우리의 왕이시요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고 우리의 남편이 되신 우리 주님이 다스리는 나라에서 행복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4:16 이하 말씀에서 이르기를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 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린도후서 4:16~18)
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지상에서 받은 환난이 당장 느끼기에는 환난이 거칠고 너무 오래 가고 가혹한 것 같지만, 저 영원한 내세의 시간에 비추어 보면 눈 깜빡일 정도의 짧은 시간이요 우리가 당하는 고난도 저 악인들이 유황불의 지옥에서 겪는 영원한 고통에 비하면 티끌처럼 가벼운 고통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세상에서 겪는 시련과 고통과 연약함의 가벼운 것이 믿음을 가진 우리에게 장차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무거운 것을 우리에게 이루어주는 축복의 밑거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인 로마서 5:3,4 말씀에서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라는 말씀처럼, 환난 중에도 충만한 즐거움으로 즐거워 할 이유가 많이 있는 사람들인 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이 세상 살아가면서 고난이 많고 시련이 거칠고 몸도 자꾸 약해지고 병이 붙고 병이 깊어도 그것 때문에 낙심하거나 절망하거나 슬퍼하지 맙시다. 도리어 이 모든 것을 넘어서서 우리에게 장차 주어질 위대한 영광과 생명과 축복을 바라봅시다. 이 고난과 역경을 믿음으로 바라보시면서 더욱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이 고난과 시련 속에 있는 우리 곁에 가까이 함께 계심을 믿고 그를 의지합시다. 그가 고난 중에 있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함께 아파하고 함께 슬퍼하며 성령으로 위로해주시고 힘을 주시고 기도하는 것을 들어주심을 믿읍시다. 그리고 장차 다가올 영원한 평화와 영광과 행복의 나라를 바라보면서, 우리가 입게 될 지극한 영광을 인하여 소망 중에 즐거워합시다. 그리하여 순교의 제단 위에 불꽃 속에서도 찬양하였던 세상이 감당치 못할 기이한 믿음을 보였던 앞서간 선배들의 모습을 그 일부라도 본받는 지극히 복스러운 믿음의 일꾼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