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이주향>
돈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자기를 지키려는 자는 때로 오만해야 합니다.
돈이면 다냐. '나'는 조건에 넘어가는 세속적인 인간이 아닌데. 하고 버티는 세속적인 오만도 없이
어찌 조건 좋은 이들의 오만을 견딜 수 있겠습니까?
오만에는 오만으로! 그것이 "오만과 편견"의 당찬 아가씨 엘리자베스입니다.
엘리자베스는 가진 게 없어 기가 죽어있는 존재가 아니라 가진게 없어 오히려 판단력을
키우게 된 근대적 여자입니다.
조건 좋은 남자에게 잘 보이려고 조급하게 구는 걸 천박하다 여기는 그녀는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분별력을 키우게 된 오만한 처녀인 거지요.
엘리자베스의 오만한 상대는 다아시입니다.
처음에 그는 모든 조건이 완벽해서 오히려 사랑하는 이에게 다가가는 방법조차 배우지 못한
야릇하고도 고독한 남자였습니다.
귀족에다가 엄청난 부자이고 잘생기기까지 한 이 신중한 남자의 편견은
손만 뻗으면 모든 여가가 자기 여자가 되는 줄 아는 겁니다.
당연히 이 남자는 자기에게 잘 보이려고 기를 쓰는 여자들을 철저히 경멸합니다.
그렇게 보이려고 기를 쓰는 여자들은 그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아리라 그의 신분과 재산을
사랑하는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지요.
덕택에 그는 여자의 결점을 찾아내는데 누구보다도 능햇습니다.
"여자를 보면 반드시 흠을 찾아내고야" 마는 그는 그를 귀하게 만든 좋은 조건덕택에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도 마음으로 다가서는 법을 몰랐던 고독한 영혼이었던 겁니다.
"오만과 편견" 은 오만과 편견에 사로잡힌 남녀가 사랑을 통해
어떻게 오만과 편견을 자각하는 지 그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쁘고 착한 전통적 맏딸 제인에서 매사 충동적인 리디아까지.
베넷가의 딸들이 빚어내는 사랑의 사건들은 도무지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물론 주인공은 똑 부러지고 당찬 태도로 근대적 주체성을 확립하고 있는 엘리자베스입니다.
사실. 오만과 편견은 때때로 자신을 지키는 힘입니다.
신분이면 다냐. 신분이 인격이 아닌데. 돈이면 다냐.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만
돈으로 할 수 없는 진짜 중요한 일이 있는데. 하는 오만도 없었다면
별 볼 일도 없고 미인도 아닌 엘리자베스가 어떻게 그렇게 진취적이고 생기발랄할 수 있었을까요,
다아시가 자기가 가진 조건에 덤벼드는 여자들에 대한 편견이 없었다면
그도 자기가 가진 조건으로 환원 당했을 것입니다.
그저 예쁘고 그저 예의 바르고 그저 조건이 괜찮은 귀족 여인을 만나 사무친다는 감정이 어떤것인지도 모른 채
지루하고 무표정하게 잘 살았겠지요.
그렇지만 끝까지 오만과 편견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은 구제될 길이 없습니다.
캐서린과 콜린스처럼 말입니다.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생은 고인 물처럼 썩어가고.
오만의 장벽을 넘어서지못하면 생은 빛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진정한 사랑이 빛입니다.
오만과 편견의 곰팡이를 거둬내 주니까요.[펌]
첫댓글 정말이지 지루하지 않게 다음을 궁금해하며 재미있게 읽었답니다...사무친다는 감정~~그런 감정이 그립네요...
옛날에 잼나게 읽었던 소설~~~~~~~"오만과 편견"
근데여~ 저는 저 책을 읽을 당시 너무 어렸어요. 책 내용이 기억 안남. 수렴과 확산이란 단어도 떠오르네요. 어렴풋이...어떤 책에서 나온 단어였는지 기억 못하지만... 수렴과 확산이란 단어에 골몰했을 때는 2층 일본식 집에서 살던 친구네 집이 떠오르고...친구는 촛불을 켜두는 것을 좋아했었고...잉게보르크 바하만의 '삼십세'란 제목도 함께 생각나는 것이... 그 책에서 나온 단어가 아니였나 싶기도.....아닐 거야. 잉게보르크 바하만의 책들의 여기 저기....또 아닐지도 몰라....ㅎ
헉;; 잉게보르크 바하만의 '삼십세' 20대초반에 읽었었는데....별로 공감이 안가서 그런지 이해가 잘 안되었지요..ㅠ.ㅠ...30될 때 읽었으면....하고 30일때 생각만 했었드랍니다. 제 친구 하나가 잉케보르크 바하만을 엄청 좋아했었는데 며칠전 전화해보았더니 애들 간식 만드는 중이라고...ㅋㅋ 정말 멋진 친구인데 그 끼를 다 발휘하고 살 수만 있다면 황진이쯤 되지 않았을까? 지금 여름방학에도 보충수업하는 선생님이랍니당..
30세에 '30세'를 읽지 않은 건 저도 마찬가지. '33세의 팡세'라는 글도 있었어요. 그건 그 나이 즈음에 읽은 것 같아요. 33세에 집요함이 조금 있었거든요. 예수가 돌아가신 나이? 석가모니가 해탈하신 나이? 아마 그럴 거예요.
아직 위의 글을 읽어보지 못한 채... 두근거림이..... 산내들님! 내일 읽어도 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