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서예자료[1399]백거이(白居易)시 춘풍(春風)
춘풍(春風 : 봄바람)
백거이(白居易, 772년∼826년)
春風先發苑中梅(춘풍선발원중매)
봄바람에 정원 매화꽃 먼저 피고
櫻杏桃梨次第開(앵행도리차제개)
앵두꽃, 살구꽃, 복사꽃, 배꽃이 차례로 핀다
薺花榆莢深村裡(제화유협심촌리)
냉이꽃, 느릅 싹 깊은 산골 마을에 피니
亦道春風為我來(역도춘풍위아래)
또한 말하리라, 봄바람이 나를 위해 불어온다고
백거이(白居易, 772년∼846년) 중당시대(中唐時代)의 시인.
자(字)는 낙천(樂天)이고, 호는 취음선생(醉吟先生),
향산거사(香山居士) 등으로 불리었다.
당나라 때 뤄양(洛陽) 부근의 신정(新鄭)에서 태어났다.
대력(大曆) 7년(772년), 뤄양(洛陽) 부근의 정주(鄭州) 신정현(新鄭県,
지금의 하남 성河南省 신정 시新鄭市)에서 가난한 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두뇌가 명석했던 그는 5, 6세때 이미 시를 짓고
9세 때에 호율(號律)을 깨달았다고 한다.
특히 항저우에 재직하는 동안 시후(西湖)에 건설한
백제(바이띠, 白堤)라는 제방은 소동파가 만든 소제(쑤띠, 蘇堤)와
더불어 항주의 명소로 유명하며 그의 애민정신을 엿볼 수 있다.
항저우에서 재직하는 동안 항상 나무 위에 올라 참선하여
새둥지라는 뜻의 ‘조과’란 별명을 가진 ‘도림 선사’와의
일화가 재미있으며 다양한 버전이 있다.
약술하자면 백거이가 도림선사에게 불법을 묻자
‘나쁜 짓은 하지 말고, 착한 일은 다 하라’고 하였다.
이에 백거이가 ‘세 살 어린 애도 아는 이야기’라며 일축하자,
도림선사가 ‘세 살 아이도 알지만, 여든인 노인도 평생을 통해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하였다는 이야기다.
개성(開成) 원년(836년)에 형부시랑(刑部侍郞),
3년(838년)에는 태자소부(太子少傅)이 되었으며
무종(武宗) 회창(會昌) 2년(842년)에 형부상서(刑部尙書)를
마지막으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이때 그의 나이 71세였다. 74세에 자신의 글을 모아 《백씨문집(白氏文集)》
(백씨장경집) 75권을 완성한 바로 이듬해 생애를 마쳤다.
백거이는 다작(多作) 시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현존하는
문집은 71권 작품은 총 3,800여 수로 당대(唐代) 시인 가운데
최고 분량을 자랑할 뿐 아니라 시의 내용도 다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