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경제전문지 ‘시이오월드 매거진(CEOWORLD Magazine)’이 지난 5월 6일 세계은행 자료를 바탕으로 ‘2024년 중국에 가장 많은 빚을 진 국가’ 순위를 발표했다. 상위 20개 국가 대부분은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빈곤 국가들이 차지했다. 이중 세계적으로 가장 큰 우려를 사고 있는 라오스는 105억달러(약 14조원)라는 국내총생산(GDP)액만큼의 채무를 지고 있는데, 그중 절반이 중국에 진 빚이다.
라오스는 2015년부터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다. 주요 프로젝트로는 메콩강 유역의 수력발전 사업과 중국 국경까지 연결하는 고속도로 사업 등이다. 특히 2021년 12월 개통된 중국-라오스 간 414㎞의 고속철도는 라오스의 중요한 물류망을 구축한 프로젝트로 기록되고 있다. 이에 더해 지난 7월 19일에는 라오스에서 태국 방콕까지 철도가 개통되면서 중국-라오스-태국-말레이시아가 철도로 연결됐다.
내륙 국가인 라오스로서는 중국과 말레이시아 해안까지 연결되는 물류망이 확보되는 사업이었다. 하지만 제조 기반 시설이 거의 없는 라오스가 중국으로 수출할 수 있는 것은 농산물과 일부 천연자원에 불과하다. 반대로 각종 중국산 저렴한 공산품과 농산물이 라오스를 장악하면서 중국으로의 경제적 종속이 심해지고 있다.
중국 경제에 종속된 라오스
미국 윌리엄앤드메리대학의 ‘에이드데이터(AidData) 연구소’가 중국의 해외 대출과 보조금을 추적해 내놓은 연구 결과에 따르면 중국-라오스 고속철 사업에는 59억달러(약 7조9000억원)가 투입됐다. 철도 사업은 중국과 라오스가 함께 투자해 ‘7 대 3’으로 지분을 나눠 갖는데, 라오스는 부담해야 할 자금 대부분을 중국수출입은행에서 빌려 충당했다.
라오스는 중국 일대일로 사업에 참여하면서 국가채무가 2배로 늘어났다. 메콩강에 수력발전소를 짓는 프로젝트에 55억달러, 중국과 라오스 북부를 연결하는 176.3㎞ 도로 건설에 38억달러, 경제특구 및 산업단지 개발에 12억달러 등이 투입됐다. 대체로 중국 자본으로 짓고, 중국 국영 기업이 운영하다 50년 후에 라오스에 돌려주는 방식이다.
문제는 중국 자본을 빌려 국가 인프라를 확충하고 국가 이익도 창출한다는 취지로 일대일로에 참여했지만, 라오스는 이자도 제대로 갚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20~2023년 라오스가 중국에 지불을 연기한 채무액은 20억달러(2조7000억원)에 달한다.
무리한 일대일로 사업 참여로 인해 국가 채무가 늘어나고 외환보유액이 줄어들자 라오스 환율은 하염없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세계은행이 2024년 4월 홈페이지에 게재한 ‘라오스 국가 개요’에 따르면 “라오스 통화 ‘킵’은 2023년 1월에서 2024년 2월 사이 미국 달러 대비 23% 하락했으며, 이는 2024년 2월에 25%에 달한 높은 인플레이션을 촉진하는 요인이 됐다”. 2022년 1월 1일 기준 ‘미국 1달러=라오스 1만1200킵’이던 것이 2024년 9월 1일 현재 2만2170킵으로 2년 8개월 만에 100% 가까이 폭등했다.
환율이 폭등하자 라오스 환율 기준으로 갚아야 할 채무는 천문학적으로 늘어나고 있어 라오스는 빚 구덩이에서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다. 라오스가 채무를 갚지 못하면 중국과 공동 투자한 수력발전댐, 고속도로, 철도는 고스란히 중국의 소유가 된다. 라오스는 이미 2020년 9월 라오스 국영 송전 전력회사(EDLT·Électricité du Laos Transmission Company Limited)의 지분 90%를 중국 남방전력망공사에 넘겼다. 라오스가 감당할 수 없는 23개의 수력 발전 프로젝트에서 발생한 55억달러의 채무를 일부 감당하기 위해 매각한 것이다. 이제 중국이 마음먹고 전력 공급을 안 하면 라오스 국가 전체가 멈추게 된다. 라오스가 중국에 종속된 것이다.
중국의 부채 함정 외교
인도 뉴델리 정책연구센터의 브라마 첼라니는 교수는 이를 두고 중국의 ‘부채 함정 외교’라고 명명했다. 중국이 저개발국가에 자금을 제공하며 인프라 사업을 제안해 공동 개발에 나서는데 대체로 수익이 나지 않아 해당 국가들의 채무는 천문학적으로 늘어난다. 빚 갚을 길이 없는 해당 국가들은 결국 인프라 사업 소유권을 중국에 넘기게 된다는 것이다.
파키스탄의 과다르 항구, 스리랑카의 함반토타 항구, 우간다의 엔테베 공항처럼 중국 일대일로 사업에 참여했다가 빚만 지고 국가 인프라를 빼앗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 다른 문제는 중국이 각 국가에 제안한 인프라 사업들이 해당 국가에는 도움이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중국에 군사·안보적으로 필요해서 제안하는 것으로 의심된다는 것이다. 파키스탄의 과다르 항구, 스리랑카의 함반토타 항구 모두 미국이 중국을 해상 봉쇄했을 때 중국의 해외 해군기지 역할을 위해 진행된 프로젝트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라오스 철도 사업 역시 라오스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중국 자원 수입량의 80%를 차지하는 믈라카해협이 미국으로부터 봉쇄당했을 때 말레이시아-태국-라오스-중국으로 연계되는 육로 운송망을 확보하기 위함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중국의 부채 함정에 빠진 국가는 정치적으로도 중국에 종속된다. 라오스에 이어 아세안에서 두 번째로 중국에 채무가 많은 캄보디아는 2012년 아세안 의장국 시절 중국 편에 서서 남중국해 문제에 대한 공동 성명을 채택하지 못하게 막았다. 이는 아세안 역사상 처음으로 공동 성명이 채택되지 않은 사건으로 기록됐다. 2016년 아세안 의장국이었던 라오스 역시 베트남과 필리핀이 제안한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을 무효로 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 판결 내용을 아세안 공동 성명에 포함하지 못하게 막았다.
물론 중국이 인프라 투자를 제안한 저개발국가에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는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그만큼 중국은 큰 위험을 떠안기 때문에 채무에 대한 이자가 높고, 이를 감당하지 못한 국가들의 인프라 사업을 대신 운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실제로 중국은 유럽 물류의 허브로 떠오른 그리스 피레우스 항구 사례나 아프리카 케냐의 물류 개선과 관광 활성화를 일으킨 동아프리카 고속철도 사업을 일대일로 성공 사례로 내밀기도 한다.
하지만 수익을 내기 어려운 인프라 사업을 제안하고, 갚을 수 없는 규모의 채무를 짊어지게 해서 결국 중국으로 소유권이 넘어가는 이런 방식이 ‘신식민지 정책’임을 경고한 마하티르 전 말레이시아 총리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다. 마하티르 전 총리는 2018년 6월 미국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은 가난한 나라에 큰돈을 빌려줄 때 그 프로젝트가 중국 자신들의 것이 될 것을 이미 알고 있다”고 비판했다. 중국은 이를 겸허히 수용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