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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기자여! ‘유물사관’은 우익의 역사관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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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물사관’ 닮은 우익이 참신의 증거였던 90년대, 對 ‘유물사관’ 닮은 우익이 ‘프락치’의 증거인 06~07년
지식도 ‘패션’이다. ‘패션’하면 여인네의 옷차림이 연상된다. ‘여인들’의 패션이 ‘복고풍’ 타령으로 최근에 계속 된다. 포스트모던 아래 더 이상 새로운 게 없다는 선언이 있은 90년대 초반 이후에, 여인들의 패션은 과거에 한 차례 유행한 패션 모드가 반복될 뿐이다.
90년대 초반에 담배 꼬라문 여인네는 ‘해방의 상징’이었지만, 07년에 길거리에서 담배 꼬라문 여인네는 ‘썅-년’의 상징이다. 90년대 초반에는 길거리에서 주변을 의식하여 ‘여성어’를 써야 된다는 압박감이 여자들에 있었지만, 07년의 여인네 핸드폰 통화내용 엿들으면 ‘여자들’도 내무반 쌍욕을 어디서 주어 들었는지 참으로 걸쭉한 욕이 나온다. 최진실 등장 무렵에 무스로 부풀린 앞머리가 유행할 때는 무쓰 손질이 여인네 패션의 최선이었지만, 지금은 무쓰로 부풀린 머리는 우스꽝 스러운 소리를 듣는다.
90년대 초반에 김영삼 정부 때에 ‘개혁적 보수’는 기존의 ‘민정계’등과 다른 의미로서 인기를 가졌다. ‘보수주의’차원은 ‘보수주의’ 차원대로 ‘일정한 반공주의’ 입장으로, ‘진보주의’ 차원은 ‘진보주의’차원대로 ‘유물사관’ 닮은 언어들을 사용해서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96년 이후에 ‘정통 보수주의 논쟁’이 보수진영을 뜨겁게 달군 게 햇수로 여러 해이다. 그러면서, 김영삼 계가 사용했던 ‘반북 맑스주의’ 의미로서 ‘개혁적 보수’는 ‘프락치’와 동의어로 인식되는 게 늘어났다. 물론, 논쟁에서 비평이 있어도 커다란 전선에서는 ‘反北, 親대한민국 전선’을 유지하려는 입장 속에서 말이다.
진실로 진실로 ‘연합전선론’의 폐기를 요구하고 싶다. 미니스커트가 금기시 되는 시대에서, 미니스커트 남발하다가, 뭐 ‘거시기’하게 바지를 받혀 입는 수준의 노출성의 후퇴를 놓고 보면, 정치적 개념이 역사적으로 다르게 판단되는 게 이상하랴 싶다. 유럽 좌익의 국제 학술지 [뉴레프트 리뷰]의 편집장 출신 페리 앤더슨의 [역사 유물론의 궤적]이란 서구 맑스주의역사를 놓고 보면, 전부가 몇년 천하 밖에 안되었다. 이는 마치 국어국문학과 [현대문학사]에서 소설가가 잘해야 10년 인기 끌고 사라지듯 표현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본다면, 90년대 초반의 김영삼계 편입의 명분이 해소될 때가 지났다고 본다.
우익의 연합전선론은 ‘맑스주의 입에 물었기에’ 노무현 지지파벌이 더러우면 지지 지분을 넘어밭을 수 있는 이중적 존재가 ‘개과천선’할 의사가 없다는 전제로서 돌아간다. 즉, 착해져야 할 대상들의 ‘회개 없음’을 전제로 돌아간다. 강산이 바뀌어서 ‘맑스주의’ 수사학에 국민 모두가 ‘심드렁’한 이 때조차도, ‘맑스주의 수사학’을 쓰는 이들끼리 의리라고 ‘여야’를 넘나드는‘노명박 현상’을 보면서, 우익의 연합전선론의 밑 뿌리 자체를 의심하게 된다.
2. ‘맑스 역사학’의 기본을 알아야, 제대로 미워할 수 있습니다. (1)
뉴레프트 리뷰의 편집장을 지낸 페리 앤더슨을 포함한 다수의 역사가들의 연구에 의하면, 맑스의 연구에서 ‘고대’에서 ‘중세’로의 역사 발전에는 아무런 객관적 합법칙성이 없었다고 합니다. 시쳇말로 ‘짜깁기’하여 헤겔의 [역사철학강의]풍에 얹어 놓은 것에 다름 없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맑스 역사학에서 확실한 것은 ‘중세’에서 ‘근대’로의 비약입니다. 정치혁명과 산업혁명이라는 이중의 혁명기 사이에 있었던 맑스의 입장 때문입니다.
*. 고대--------> 중세 : 이 놈은 가짜고.
*. 중세--------> 근대 : 이놈은 산업혁명과 정치혁명을 체험하는 속에서 진짜란 말입니다.
1980년대 민중주의 기억하시는 분들은 다 기억하실 것입니다. 저처럼 갈 수록 ‘사오정’이 되어 가는 사람들은, 박현채 제자들이 쓰는 ‘정치경제학 교과서’들을 확인하면 그때의 말들의 증거자료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6학년 이상에 사회과학 공부가 미진한 세대들은, 대한민국 서울에서 한 때 봉급 떼먹고 사기행위가 비일비재한 시대가 있었다고 증언합니다. 좌익 맑스주의 정치경제학책은 ‘원시축적’ ‘시조축적’등등으로 표현합니다.
한마디로 의미해서 1980년대 민중주의 좌익에게, 박정희대통령의 의미는 선명합니다. 그들이 프랑스 혁명기 맑스의 입장이거나 맑스 레닌주의 동화 입장의 ‘전위’의 입장에 가깝고, 박정희 대통령의 ‘근대화정치’는 맑스가 타도해야 했던 자본주의 문명의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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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민중주의 좌익(==맑스와 떨거지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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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 (=공산주의의 적으로서 맑스 시대 자본주의)
맑스는 런던 도서관에서 19세기 산업 사회의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의 문제를 생각하면서, [자본론]을 집필했다. 이것에 대하여 ‘저임금’ 기반의 수출경쟁력 위주의 바탕의 산업화전략을 질타하며, 민중주의자가 나아갔습니다.
80년대 세대들에게 ‘민중의 세상’은 어떻게 만드느나? 하나님의 뜻? 아닙니다. 그러한 주장은 ‘중염불’ 따위로 절하해야 수준 높다는 소리 들었죠. 그들에게 정답은 오직 민중의 실천에 의한 것입니다. 여기까지도, 1980년대 세대라면 모두가 옳은 말 한다고 들을 것입니다. [조갑제 닷컴]의 최신정보파일에 수록된 성령 부정 의미의 ‘관념론비판’을 모든 기독교인들이 가볍게 흘려 보는데, 흘려 봐서는 안됩니다.
여하간에 ‘민중의 실천’이 나왔으면 공산당 이론에서 맞춰 놓으면 빈공간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당파성’과 ‘좌익 지식인’의 위치입니다.
1980년대 좌파 서적들은 실질적으로는 ‘좌익지식인’과 ‘정체불명’(한국 사회의 85% 이상은 그 지역이 북한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물증 부족으로 말 못함)의 지역에서 내려오는 명령에 의해서 이끌려지는 데모를, 민중의 자발성 등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물증이 없이 그들에 논리적 추론과 심증 가지고 이야기하면, ‘색깔론’이니 ‘마녀사냥’이니 하면서 대학가 감성적 저학년들에게 들이대기하는 것이 참 여러 차례 반복되었더군요.
한국 학생운동 정파에서 ‘로자 룩셈부르크’ 추종의 피디계열(이들이 [강철군화]도 사랑했습니다. 주사파 [피바다] 읽을 시간에 말이다.)이나 ‘레닌’추종에서 사실상 말장난만 달리 해도 될 수준인 것입니다.
(북한공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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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좌파 지식인)
----------------------(실제-명령과 규율관계
↓ 외양-자발적인 척 )
↓
(민중)
이렇게 내려집니다.
3. ‘맑스 역사학’의 기본을 알아야, 제대로 미워할 수 있습니다(2)
- 역사발전은 김일성 김정일의 뜻에 따라서만 움직인다?-
눈에 보여지는 것은 ‘자유의지’에 의해서 창조되었다(?)는 좌파 지식 텍스트와 자발적인(?) 민중의 데모의지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식자층 간에 북한에 의지대로 움직여지게 되는 ‘상명하복관계’와 그것에 대한 ‘위장’이 있었고, 민중 진영에는 어리버리 한 이들을 감성적으로 하나씩 묶어 버리려는 바탕이 있었을 것입니다.
1980년대에 김일성은 ‘역사 발전의 방향’을 ‘통일’로 명명합니다. 1980년대 강만길의 ‘분단시대론’과 임헌영교수와 김윤식교수의 문학사 작업의 배경이 어떻게 되었을까는, 역시 정치적 법률적 차원은 ‘심증’영역만 남을 것입니다만, 학술적 차원은 분명하며 너무 선명합니다. 학술적 차원에서는 변명의 여지 없이 군중성을 북한 역사에 친화적으로 만들게 하려는 명명백백한 의지 속에서 그들이 작업했음은, 한글을 아는 일정 수준의 독자들에겐 너무 선명합니다.
강만길의 ‘분단시대’는 맑스가 그린 ‘자본주의 이미지’와 같고, 그것은 박대통령 전대통령 시대의 저임금 노동자의 문제와 같게 그립니다.
반면에, 그들의 작업에서 ‘통일시대’는 모든 공동체의 구성원이 보드랍게 원할 것을 다 찾아 먹는 바탕으로 말합니다. 콕 찝어 말하지 않았어도, ‘통일 시대’가 ‘사회주의의 구현’처럼 설계된 것입니다.
<<분단시대-대한민국 시대-자본주의>>→<<통일시대-사회주의>>
이러한 이정표가 생긴 것이고, 그 속에서 1980년대 민중세력들의 ‘반 보수 운동’이 가능한 것입니다. 김영삼 김대중 두 분의 ‘민주화 선언’은 이러한 역사철학의 기본을 차지하지요.
정말 자율이며 북한과 상관없다던 백낙청의 김대중 친화적 자세는, 처음부터 김영삼정권이 거짓말 정권에 ‘경제’와 ‘안보’ 모두에 걸친 아임에프의 직접적 책임자를 말해주는 증거일 것입니다.
4. 이중의 혁명론으로서의 ‘열린당 전복’인가, 김대중과 몰래 경쟁하며 대한민국을 실질적 전복하는 동업자 관계의 은폐된 표현인가?
맑스가 ‘자본주의 혁명’을 이끈 부르주아지를 높이 사며, 다시 한번 혁명이 필요하다고 여긴 차원으로서의 이중의 혁명론으로서, 박정희를 높이 사면서도 그 뒤에 또 다른 격변이 후계자로서 어떠한 가닥이 되어야 한다는 가닥은, 심히 수상쩍다.
조갑제기자에게 의심하는 것은 “계단식 역사발전론” 논거로 ‘적의 논거’로 그리는 역사설계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가닥에서 정치적 적이 된 백낙청교수와 사상적 차이가 전혀 없는 박세일의 말은 ‘당연한 거’(누가해도 그러한 말을 하겠다)빼고는 콩으로 메주를 써도 믿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었다.
여기에는 90년대의 진지한 [조선일보] 문화면 옹호 논객이었으나, [조선일보] 문화면이 당시의 반공교재들의 우려를 깨고 했던 모든 행위가 <나라 망치기 일등 공신>이었음의 결과적 체험담을 기초로 한 반론이 자리한다.
정직하게 묻는다. 조갑제기자의 한때의 진실한 옹호 독자로서 ‘대한민국주의’라는 과거의 표현에 대해서 묻는다. 그것은 독자로 하여금 ‘대한민국의 이데아’라고 해독하게 한다. ‘이데아’는 비너스의 형상의 조율처럼 대한민국 어느 누구에게서나 진실한 독자에게선 건국의 정당성을 옹호하자면 어쩔 수 없이 동의할 수 밖에 없는 가닥들의 확장형을 말한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조갑제기자는 자주 ‘유물변증법 사관’의 계단식(스탈린 개정일) 역사관에 입각하여 한국 현대사를 설명하려 하고, ‘대한민국’의 이데아가 아니라 조갑제의 이데아를 말하려고 한다.
5. 송시열 똥꼬 보다도 못한 우익 내부의 ‘유물변증법’ 몰래 쪽쪽 빠는 인간들은, 사람인가 짐승인가?
‘선진’이란 ‘전진’과 ‘후진’과 동의어가 될 수 있는 표현 자체가 문제였다. 선군 정치에서 북한인민군이 역사발전에서 흔히 쓰는 ‘행군’이미지와 같고, 레닌 공산당의 ‘일보 전진 이보 후퇴’의 적군 비유법과 같다.
박근혜님이 선택 안했으면 박세일의 ‘선진화 정치’는 진작에 찢어 갈겼어야 맞다. 김대중 세력 백낙청교수와 죽이 잘 맞듯이 우익의 역사학이 될 수 없는 바탕에 기초되어 있다.
결국, 조갑제기자처럼 유물변증법 가닥이 가능하다고 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가 완수되어야 한다.
(1) 우익 사회에 자유로운 창의성이 종결되고 유사 독재 사황이 벌어져야 하고,
(2) 북한에서 내려오는 상명 하달에 까라면 까는 식으로 복종하듯이, 똑같은 가닥으로 조갑제기자 글 하나 하나에 울고 웃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1990년대 이후 편입된 ‘자칭 우익 세력’들의 논거를 1980년대 반공교과서 수준으로 비평하는 글에 다름 없는 데, 제대로 남아 나는 사람이 없다는 절망감에서 그렇게 하지 말라는 말에, 꼭 이명박 지지자가 김유찬(혹은 검찰 문제로 연관된 이명박과 연결된 당사자) 피해다니는 것 같다고 답해줄 수 밖에 없다.
한나라당 정권이 ‘온갖 부귀 재화’를 가져다 줄 바탕이라고 말함은 부정직하다. 그것은 전적으로 ‘권력에 줄대기’할 수 있는 능력자의 기대치이다. 국민 마음에 정말로 유물사관이 틀렸다고 여기게 만들고, 그러한 틀린 가닥의 복귀가 중요시된다.
정말로, 송시열에 유교 버리게 하는 것보다도 맑스주의 공부했던 사람에게 ‘맑스주의 틀렸어’라고 하는 것이 왜 이리도 어렵나 싶다.
성경을 읽으면 예수님을 만나고, 맑스책을 읽으면 맑스를 만난다. 맑스 1억명이 있어도 예수님과 바꿀 수 없다고 본다. 그렇게 선언하는 자 왜 이리 없드나? 한국 교회가 성경 이론도 반공 이론도 어디에도 약체가 되는 상황의 증거이기도 하다.
첫댓글 봄이 돌아오니 미친병이 더욱 극성을 부리겠구나 원래 미친병은 봄과 가을에 재발을 많이하고 극성을부리는데 이인간 하는 짓거리로 보아 올봄에 유난히 극성을 떨겠구나. 계시판 이미지와 전혀 상관없는 이상한 글들을 어디에서 줏어와 횡설수설 주접거리는게 틀림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