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등산로는 골이 작고 물이 없었다. 30여분을 오르니 벤치가 나타났다. 폭염으로 온몸에 땀이 범벅, 빠져나간 수분을 보충하려 잠시 앉아 물 한 모금.

서울둘레길을 애초에 계획했던 것은 아닌데 햇빛 내리 쬐는 수락산 정상길을 피해 걷다보니 옆으로 서울둘레길(도봉산역) 3.2Km표지판이 보였다.

서울둘레길과 수락산 자락길 사이 어디쯤에서 또한번 나무그늘에 앉아 휴식. 아톰이 슬러쉬 처럼 시원한 칭다오 맥주를 꺼내 마시자 옥수수를 뜯고 있던 피플러버가 나도 한모금, 손을 내민다. 회장님이 옥수수를 매우 좋아한다는 걸 이제서야 알았다.

노원골과 벽운동 계곡을 H자로 잇는 서울둘레길이 끝나는 곳에 이르자 수락산 자락길이 나타났다. 자락길 시작점과 종점 사이 거리는 670m. 물이 떨어지는 산이란 명성에 맞게 폭염과 가뭄에도 수량이 풍부했다.

9시 10분부터 11시 30분까지 5Km 정도 걸었을까, 계곡물과 그늘이 최적화된 쉼터를 찾아 자리를 잡았다. 피플러버와 지리산을 뺀 4명이 동시에 양말을 벗고 족욕을 하는 사이 희망과 용기가 팥빙수를 꺼낸다. 희용과 대학동기 3명이 곰배령에서 맛 본 팥빙수 보다 훨씬 더 달콤하고 시원했다. 여름산행에 어울리는 기호품이다.

드디어 헤네시 XO 타임! 이 놈은 알대장이 러시아 월드컵 출장 때 기내에서 무려 22만원을 주고 샀단다. 러시아 출장 룸메이트의 유혹을 포함해 5번의 소멸 위기를 넘어 이곳 수락산 벽운동 계곡에서 그랜드 오픈!

선그라스를 꼈지만 스스로 뿌듯한 감정을 감추지 못하는 알대장, 그 옆에서 폴레너 외제 맥주캔을 쥐고 있으면서도 호시탐탐 돌아보고 있는 희용, 이 광경을 흐믓한 표정으로 재밌게 바라보는 회장님, 완벽한 상황재현이다.
수락산에서 굴업도 구상(소주팩을 40개 살 것인가, 아침을 민박과 캠핑지로 따로 할 것인가 등등)을 대략 논하고 2/3의 헤네시 XO를 남겨둔 채 점심 장소로 하산. 날머리 하산길은 넉넉한 그늘이다.

자락길을 내려와 수락산역으로 되돌아가는 도로변 길은 이글이글 타는 불판 같았다. 15분 정도 걸었을까 수락산역 1번 출구 옆길에 횟집이 눈에 띈다. 되도록 불을 피우지 말자는 생각에 모두들 횟집으로 들어섰다.

횟집 벽에 붙어 있는 하얀 칠판의 추천메뉴 끝단에 ‘찰광어 60,000’라는 글씨가 쓰여 있다. 겉으로는 터프해 보였지만 실제로는 순박한 말투를 쓰던 남자 직원이 광어와 찰광어를 가져와 비교하며 설명해줬다. “찰광어는 광어보다 짙은 검은색이 나고 크기도 크며 맛도 더 쫄깃하다” 주저함 없이 찰광어 두 접시와 산오징어 한 접시를 주문하고 사장님께 산에서 마시다 남은 술을 마셔도 되냐고 허락을 청했다. 물론 소주와 맥주도 주문하고.
러시아까지 다녀온 우여곡절 많은 헤네시는 그렇게 우리를 끝까지 행복하게 해주었다.

열사병을 염려하여 뒷풀이는 1차로 끝내자는 애초의 다짐은 마포나루의 등장으로 자연스럽게 없던 일이 되었다. 길 건너편에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올 거 같은 곱창집에서, 으레 2차 음주가 그렇듯 각양의 주장과 딴 짓하는 양상이 어김없이 연출된다. 사진을 자세히 보고 유추해 보면 알거다.
오후 4시경 모든 일정을 마치고 다시 수락산역 지하철에 올랐다.
*뱀발: 수락산은 가깝지만 아기자기한 맛이 있으니, 다음에 날이 덥지 않을 때 수락산 정상과 도솔봉 사이에 있는 코끼리바위, 치마바위 등을 보면 좋다는 제안을 희망과용기가 한 것으로 안다. 기억은 몽롱하지만.
첫댓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더위에 산행시간이 상대적으로 적어서 아쉬움 살짝, 다음엔 더 길게 하시지요.
아이구 대단한 산바람 산행기를 읽어보네~~ㅋㅋㅋ 사라질락말락하는 기억의 한자락을 붙잡고서 순서에 따라 음미했음. 그날의 시간을 되돌리면서... 마지막 사진에 대한 변명. 난 폰을 보고 있기 했지만 알처럼 정신줄 놓은 건 아녀!!! ㅎㅎ 다들 내일 봅시다.~~
산행기 문단의 성공적인 데뷔를 감축드립니다. ㅎ 산행기 쓰시려고 포인트마다 사진으로 기록을 해 두신 모양입니다아...잘 보고 읽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