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한 환경상 시상식장에 다녀온 적 있다. 감미로운 실내악이 흐르는 가운데 수상식이 끝나고, 수상자와 하객이 앉은 원탁에 근사한 메뉴의 만찬이 나왔다. 크림수프 양상추와 함께, 커다란 접시에 담긴 음식은 도톰한 쇠고기 스테이크였다. 장미 모양으로 깎은 당근과 강낭콩깍지와 으깬 감자로 치장된 접시를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최고상을 준다기에 먼길을 마다하지 않은 김 선생님은 축하하려 둘러앉은 우리를 채근한다. 밖으로 나가 우리끼리 다른 음식을 먹자고. 약간 쌀쌀한 저녁, 우리 땅의 유기농산물로 채식식단을 내놓는 인사동의 식당으로 먼길 걷기를 마다하지 않아야 했다.
광우병 파동으로 잠시 육식을 자제하던 시민들이 올 초 서울방송에서 편성한 <잘 먹고 잘 사는 법>이란 특집방송을 시청한 이후 한동안 우리 유기농산물을 찾곤 했는데, 요즘은 전 같지 않은 모양이다. 회의를 마친 환경단체도 뒤풀이는 대개 고깃집으로 향하기에 이르는 말이다. 아직 '주의자'까지 못되고 그저 '연습'하고 있다고 은근히 '채식'에 방점을 찍었건만, 물고기는 먹는다고 힌트도 주었건만, 물고기가 더 비싸서 그런가, 여전히 고깃집인 것이다. 대접은 고기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습관처럼 남아있는 모양이다.
언젠가, 유럽의 채식주의자가 한국은 채식하기 어려운 나라라고 푸념을 늘어놓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과연 그럴까. 메뉴의 대부분이 육식이라 특별히 채식 메뉴를 개발해야 했던 그들과 달리 우리는 원래가 채식이다. 요즘 식당들이 버릇처럼 고기를 넣어서 그렇지, 김치나 된장찌개, 비빔밥이나 김밥을 주문할 때 고기나 계란을 빼달라고 부탁하면 어렵지 않게 원래의 채식식단이 차려지는데, 아마 그 유럽인은 외국 손님에게 잘 해주고 싶은 인심 좋은 식당주인만 만났던 모양이다.
최근, 뜻 있는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급식개선 운동이 활발하다고 한다. 한국과 같은 나라에 농약에 절은 농작물을 반강제로 수출하는 미국도 자국 학생에게는 반드시 제 나라에서 생산한 유기농산물의 메뉴로 제한한다는데, 자식이면 끔찍한 우리나라는 어찌된 영문인지 출처를 알 수 없는 재료로의 급식식단을 고집한다는 게 아닌가. 4인 가족 한끼의 외식비용에 못 미치는 3만여 원으로 한달 식단을 마련해야 하는 학교로서 결식아동을 생각해 인상도 어려우므로 어쩔 수 없어야 하는 걸까.
전국 각급 학교의 급식비를 전부 합치면 얼마나 될까. 모르긴 해도, 전체 교육 예산과 비교한다면 '새 발의 피' 아닐까. 날려버린 공적자금과 비교한다면 국제 규격 수영장의 물 한 방울에 불과하지 않을까. 교육인적 자원을 생각한다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맡을만한 수준이 아닐까. 믿을 수는 없지만 예산이 정말 없다면, 우리 땅의 유기농산물로 전환하면서 추가되는 비용만이라도 정부가 부담할 수 있지 않을까.
어린이 성인병이 증가하는 시대에 과식도 그렇지만, 안전을 장담할 수 없는 식단이 큰 문제다. 가장 헐값에 들어오는 수입육은 미국인들이 거의 먹지 않는 1980년대 도축된 고기라던데, 그 폐기물을 우리 아이들에게 준다면 어떤 학부모도 고마워하지 않을 것이다. 농약에 절은 수입 채소도 거부하고 싶을 것이다. 내 아이를 위해, 내 아이와 친하게 지내야 할 이웃의 아이를 위해, 곡물 채소 고기는 물론 각종 수산물까지, 우리 땅과 바다에서 생산해 믿을 수 있는 유기농산물로 공급하라고 급식개선 운동에 앞장서는 학부모들의 노력에 우리가 동참해야한다. 정부에 압력을 가해야한다.
차제에, 고기를 줄이거나 안 주면 어떨까. 자라나는 아이에게 육식이 필요하다는 출처 아리송한 신화보다 자기 땅의 곡물과 채소가 훨씬 건강에 바람직하다는 사실은 이미 상식이 아닌가. 유전자가 조작되고 농약에 오염된 수입곡물이 변한 육식은 이 땅에서 나왔더라도 유기농산물일 수 없다. 그런 고기는 땅과 생태계는 물론 장차 아이의 건강까지 위협할지 모른다. 작아도 건강하고 똘똘한 아이들의 모습이 더 아름다운 게 아닐까. 자식들의 내일을 생각한다면. (2002년 12월)
<박병상의 환경이야기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