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모스탯
- 강 문 석 -
장보고기념관을 나서면서 가까운 청해진유적지까지 한 바퀴 돌았다. 9월이 하순으로 접어들고 있었지만 대낮의 햇살은 여전히 따가웠다. 다음 행선지를 떠올리며 차량의 시동을 걸었다. 보닛과 펜더 사이 틈새로 김이 새어나오면서 차안까지 악취가 풍겨서 순간 긴장했다. 보닛을 열었더니 라디에이터로 연결된 보조물통의 냉각수는 거의 바닥에서 펄펄 끓으면서 증기를 심하게 내뿜고 있었다. 속을 메슥거리게 하는 악취는 부동액이 만든 것이었다. 난감했다. 대도시라면 차량정비공장이 지천에 널려있지만 이곳은 국토의 남단에서도 멀리 떨어진 섬 완도가 아닌가. 차로서는 긴박한 상황이었지만 동승한 아내가 불안해 할까봐 별것 아닌 것처럼 태연을 가장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차량보험사에 연락하는 일조차 가급적 미루고 어떻게든 차를 직접 끌고서 정비업소를 찾아가야만 한다. 엉금엉금 기다시피 읍내로 향하다가 만난 주유소식당에 들러 화물차 운전자들에게 정비공장을 물었지만 그들도 타지인지 소 닭 쳐다보듯 한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귀하다더니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 되다보니 찾는 업소가 눈앞에 더 나타나지 않는 모양이다. 그러다가 신기루처럼 규모를 갖춘 정비업소를 발견했다. 고치다가 만 차량이 리프트에 매달려 있는데도 사무실문은 굳게 잠겨 있어서 한 시간 넘도록 애만 태우다가 나왔다. 도로에서 내려다보이는 바닷가의 산업단지는 규모가 커서 그 안에 필시 정비업소가 있을 것 같았다.
공단 안을 좌우종횡으로 헤맸지만 사람 만나기가 어려웠다. 어렵사리 찾은 정비공장에선 봉고차 의자를 손질면서 우리에겐 읍내로 들어갈 것을 권유했다. 공장건물처럼 번듯하게 꾸민 도로변의 타이어판매장은 차량의 간이정비까지도 맡고 있었다. 종업원 두 명이 작업에 매달리고 있는데도 배가 불룩 솟은 중년의 업주가 직접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그는 차량정비에 관한 기술은 없는 것 같았다. 분출된 냉각수와 부동액만 다시 채우고 차의 시동을 걸었다. 폭발할 듯 끓어오르며 용솟음치는 냉각수를 다시 보여주는 것은 고장난 부품이 아닌 다른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결론은 엔진에 무리가 갔다면서 다음 주 화요일까지 차를 맡겨두어야 수리가 끝난다는 것이었다.
잠시나마 친절로 여행자의 환심을 사려고 했던 속셈은 결국 다른 데 있었다는 걸 드러낸 것이다. 이렇게 어설픈 그의 꼬임에 빠질 사람이 있을까 싶기도 했다. 일정이 바쁘다는 말로 그의 요구를 거절하고 다시 읍내로 향했다. 완도문화관을 찾았지만 바로 그 앞에 있다는 차량제조사의 서비스센터는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차량보험사에 연락했더니 견인차량이 곧바로 도착했다. 아내 몰래 부산까지 가는 데는 얼마나 받느냐고 물었더니 60만원이라고 했다. 서비스센터의 작은 세로간판은 전주에 가려져서 보이질 않았던 것이다. 지척이라 바로 운전해서 차를 이동하고 싶었지만 레커차도 보험사로부터 출동한 대가를 챙겨야 할 것 같아서 백 미터 정도 거리를 견인에 응했다.
차의 이상 현상을 발견하고 처음 아들에게 전화로 알렸을 때 ‘서모스탯Thermostat'일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비공장만 찾아서 그것만 바꾸면 간단하게 해결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 상태로 무리하게 장거리를 타면 엔진에 무리가 갈 수도 있다는 걸 걱정했다.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속담까지 곁들이면서…. 20여 년 전 경찰서에서 순찰차를 몰면서 차에 관심이 많았던 아들놈이 자체 정비공장에서 익힌 것이겠지만 그 말에는 믿음이 갔다. 견인차에서 차를 내리자 서비스센터 대표로 보이는 이가 나의 설명을 듣더니 곧바로 서모스탯을 철거하기 시작했다. 두 명의 보조자가 더 붙어 서서 대낮인데도 플래시를 비추면서 빠르게 작업에 임했다.
서모스탯은 우리말로는 ‘온도조절기’ 또는 ‘정온기’라고도 부른다. 냉각펌프와 라디에이터 사이에 설치되어 냉각수의 온도에 따라 밸브가 열리거나 닫혀 엔진의 온도를 항상 일정하게 조절하는 장치다. 온도변화에 따라 수축과 팽창을 하는 왁스 또는 필릿의 재질을 이용하여 냉각수 온도가 낮으면 수축하여 밸브가 닫히고, 냉각수 온도가 올라가 76∼83도가 되면 열팽창을 하여 밸브가 열리기 시작하여 95도 정도가 되면 완전 개방되어 냉각수를 라디에이터로 순환시키는 작용을 담당하는 것이다. 구입한지 9년이 가까워진 차는 지난봄부터 에어컨 작동이 오락가락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여름이 왔을 때도 냉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점검을 미루고 지냈던 것이다.
신도시로 이사한 후 차량을 믿고 맡기던 정비업소와의 거리가 서너 배로 멀어진 것도 고장난 서모스탯을 교체하지 못한 이유에 들 것 같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중간에 차량안전을 위해 매년 정기적으로 공단에서 시행하는 성능시험을 무사히 통과했다는 것이 다소 의아스럽긴 하다. 서모스탯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 물통이 펄펄 끓는 물을 분출할 때는 엔진이 제대로 돌지를 못하는 게 분명했다. 가속페달을 밟아도 속도가 제대로 올라가지 못하고 차는 울컥울컥 앞뒤로 흔들렸다. 온도게이지가 기준보다 많이 올라가거나 잘 안 내려가면 서모스탯을 꼭 교환해야 한다고 어느 누리꾼은 말한다. 가끔씩 빼어버리면 된다고도 하는데 과도한 냉각은 엔진에 치명적이라고 그는 덧붙인다.
그 이유로는 효율과 내구성을 함께 고려하여 엔진은 일정한 열을 유지하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것. 일단 서모스탯을 제거하면 엔진은 매우 차가운 상태가 되어 연비저하와 실린더 내벽 마모가 급속히 진행되어 수명을 단축시키는 원인이 된다는 주장이다. 만약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이러한 상황을 맞닥뜨렸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모처럼 부부가 가을정취를 찾아 나섰다가 팽목항과 세방낙조 완도수목원과 영랑문학관 순천만정원까지만 돌고 귀로에 올라야 했다. 여행에 나서면서 차를 미리 점검하지 못한 잘못을 감추고 허공에 주먹질하듯 한마디 한다. 어떻게 만들었기에 주행거리 5만 킬로미터도 안 탄 차에서 주요부품의 수명이 끝날 수 있는지를 르노삼성차에 묻고 싶은 것이다.
첫댓글 즐거운 여행길에 낭패를 당하셨네요...
제작결함에 따른 보상금 청구하셔서
위로 받으셔야 하겠습니다~
서모스텟 기억해 둘께요
미리 대비하지 못한 게 불찰이지요. 비교적 소상하게 설명한 것은 서모스탯을 널리 알리기 위한 것입니다. 누리꾼들 중엔 부품과 작업용 공구를 준비해서 차에 싣고 다니다가 손수 바꾼 경험을 말하는 이도 있긴 합니다.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회장님 그 와증에도 사모님과 함께 사진이
참 보기좋아 부럽네요 제가1973년부터 1980년까지 7년동안 완도읍에 출장다녔던 생각이
빼곡하게 그려집니다 예전 완도는 부촌이라
전남도내에서 광주나 서울로 유학보내는 학생이 가장 많았답니다 돈이 흔할 때는 길가는 개도 천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니고 여름철 돈이 없을 때는 인부들이 길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주워 피운다는 그 섬, 장보고가 진을 친 청해진이라는 곳 완도는 김을 일본으로 수출해서 예전에 매우 살깅좋은 섬이었는데 연육교개통 이후는 무섭게 발전한 곳이 완도입니다 여름철에는 비교적 가까운 명사십리 해수욕장도 참 좋습니다
예전에 광주의 기혼남자가 여직원과 살짝 바람을
글자 초과로 짤림 모르는 곳 멀리 명사십리해변으로 갔었대요 그런데 그 모래밭에서 아는 다른직원을 만나 들통이 났대요 큭큭...서모스탯이
장거리 나들이길에 회장님 속을 부글거리게 만드셨네요 제품도 다 똑같으면 좋지요 나쁜자식도 있는 것처럼 그런것입니다 그 서모스탯이란
갑자기 어느시점에 불량이 날 수도 있습니다
회장님 남도여행 축하드리며 부러워 하는 저의
마음도 보내드립니다 김홍두드림
40년 세월이 지난 그때에 이미 완도에 발을 들여놓으셨군요. 그땐 때묻지 않은 비경이 더 많았을 것 같습니다. 이번에 못가본 청산도를 비롯하여 완도군에는 3개읍을 비롯, 55개의 유인도와 146개의 섬이 있어 다도해의 중심이란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완도수목원도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도록 육지의 여느 수목원보다 알차게 잘 꾸며놓아 아내가 내년 봄에 한번 더 찾고 싶다는 희망을 말했습니다. 완도의 추억과 함께 지역정보 알려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