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남겨진 미세한 기록의 실오라기에 논리적인 글쓰기와 상상력을 섞어서 만든 직조물이다. 팅커벨의 마법 가루를 뿌리고 그 세계로 가는 환상을 갖고 있어야 가능한 이야기이다.
<정온 >
애제자 재윤이가 목화꽃을 선물했다. 뱁새처럼 올망졸망 달려있는 아름다운 꽃!
#문익점과 목화씨
그는 진정한 혁명가이다. 세상을 바꾼 자이다. 목화를 대중화시켰다. 문익점이 원나라 감시관들을 피해 목화씨를 훔쳐 가지고 왔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말이다. 잘못 써진 교과서 때문에 40년 넘게 속았다.
문익점은 원나라에서 올 때 목화씨 열 알 정도를 주머니에 담아가지고 왔다. 더욱 황당한 사실은 당시 원나라에서 목화는 들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었고 반출금지목록대상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붓두껍에 담아 목숨 걸고 담아왔다는 내용은 고려사에 존재하지도 않는 것이었다. 이제나마 문익점이 고려시대 최고의 산업스파이라는 오명을 벗게 돼서 다행이다.
극적인 효과를 위해 써 내려간 교과서 글이 잘못된 역사를 가르쳐온 것이다. 가슴 졸이며 한줄한줄 읽었던 교과서가 구라라니 참으로 황당하다. 최초, 또는 최고라는 말은 거짓일 경우가 많다. 그 당시 이미 목화는 우리나라에 존재하고 있었다.
고려말 대문호인 목은 이색의 글 속에도 목화는 존재하고 있었다. 다양한 경로로 목화는 고려에 들어와 있었다. 비 타고 바람 타고 수천 년 먼저 와서 자리 잡고 있었을 수도 있다.
문익점이 가져온 품종은 아시아면이었다. 그는 가족들과 함께 목화를 키워 솜으로 실을 뽑아냈다. 그는 새로운 품종이 우리나라 기후에 잘 적응하도록 노력했다. 목화의 대중화의 길을 열었다. 특허 신청도 하지 않았고 마을 사람들에게 무료로 나눠 주었다. 한알의 씨앗이 세상을 바꾸었다.
어린 시절, 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물이 목화였다. 7~8월에 꽃이 피기 시작한다. 9월부터 팝콘같이 방긋방긋 터지기 시작하면 10월 경에 따서 말린다.
할머니께서 안동 장터에 가시기 전에 방안 가득 펼쳐 놓고 씨를 분리하는 작업을 했다. 가족모두 바빠진다.
고대부터 목화는 이미 한국에 존재했지만 개량품종을 가져와 목화의 대중화에 성공한 이가 바로 문익점이다. 열 알의 목화씨를 심었으나 장인 정천익의 것만 살아남았다. 한그루의 목화를 온갖 정성으로 키웠다.
삼 년을 고생해서 재배에 성공했다. 한알의 씨앗이 세상을 바꾸었다. 농업 기술의 혁명을 이끌었다. 최초라는 가슴 설레는 말은 거짓일 경우가 많다. 언제든 바뀔 수 있으니 주의해서 사용해야 한다. 문익점은 고려의 복식사를 바꾼 사람이다. 고려시대 서민들은 주로 삼베옷을 입었다. 삼베를 만드는 과정은 고통이었다.
수많은 손길을 필요로 한다. 귀족들은 모시나 비단옷을 입었지만 서민들은 질긴 삼베옷을 주로 입었다. 보온성이 상당히 떨어진다. 지방의 병사들이 얼어 죽어 갈 수밖에 없었다. 서민들은 토끼옷 심지어 쥐가죽옷도 입었다.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추위를 견뎌냈다. 그가 이 모든 문제를 해결했다.
영조가 왕비를 뽑을 때 "가장 아름다운 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졌고 열다섯 살 어린 규수가 "목화꽃은 비록 멋과 향기는 빼어나지 않으나 실을 짜 백성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꽃이니 가장 아름답지요.''라는 말로 감탄을 자아냈다.
그녀가 바로 정순왕후 김 씨이다. 할아버지뻘 66세의 영조는 예쁜 여자보다 말이 통하고 뜻이 같은 지혜로운 여인을 아내로 원했을 것이다.
스스로 아름다운 자태와 겉멋을 뽐내는 꽃이 아니라 따뜻함으로 전 백성을 추위로부터 지켜주었던 목화는 전백성의 희망의 꽃이었다. 영조는 민심을 읽을 줄 아는 왕비를 원했던 것이고 그둘은 17년을 해로했다. 민심이 곧 천심이다. 시린 백성의 마음을 감싸줄 꽃이 지금 우리에겐 필요하다.
그때 그 시절 설레는 마음으로 목화를 가꾸고 꿈의 씨앗을 무료로 나누어 주었던 문익점,
그는 지금 어디에서 사랑의 씨를 나눠주고 있을까?
목화의 꽃말은 "사랑합니다"이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공부가 되는 새벽! 난 오늘도 공부를 한다. 진정한 학문이란 삶에 대한 바른 이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