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유익
오늘 둘째 날 모임 때 누구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나누신 목사님, 사모님들이 여럿 계셨습니다.
나누는 일이 힘들었겠지만 그로인하여 치유와 회복이 일어나고 자유함을 누리고 은혜로 하나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한 목사님이 고난이 주는 유익에 대하여 말씀하였습니다.
“예수님과 동행하게 되니 정말 견딜 수 없는 상황 조차 유익함이 되었습니다”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목사님이 한 말도 기억이 납니다.
“먹고 살기도 어려울 때가 지나고 이젠 먹고 사는 걱정은 하지 않게 되었지만, 영적으로는 위기임을 느낍니다. 먹고 살기도 힘들었던 그 때, 주님과의 관계는 풍성하고 뜨거웠는데, 먹고 살 여유가 생긴 지금 영적 긴장이 풀어져 버린 것을 깨닫습니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오히려 두렵습니다”
그렇습니다. 지나고 보면 고난이 주는 유익이 있습니다.
오히려 풍족함과 성공이 더 위험하고 어려운 시험입니다.
인도 선교사였던 조동욱선교사님은 20년 간 신학교를 세우고 열심히 사역하였는데, 인도 정부의 압박 때문에 선교 인력과 선교 재산을 현지 기독교 형제들에게 모두 이양하고 추방당하여 지금 네팔에 가서 사역하고 계십니다.
인도에서 추방당하면서 쓰신 글이 있습니다.
“저의 선교지는 히말라야 산자락입니다.
네팔과 부탄 중간에 중국으로 넘어가는 히말라야 길목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사역 초기 몇 년 동안은 저희 부부 주변은 “아무 것도 없는 형편”에 둘러싸여 지냈습니다.
먼저는 한국 사람이 없었습니다.
나를 지도해 줄 감독이 없었습니다.
내가 잘못하면 꼬집어줄 장로님이 없었습니다.
한국말로 설교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설교를 한다할지라도 그 설교를 들어줄 성도가 없었습니다.
물론 김치도 없었고 커피도 없었지만 그런 건 아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처럼 없는 것으로 가득한 그 자리에 나를 가득 채워주는 것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넘쳤습니다.
평안이 넘쳤습니다.
하는 일들이 잘 될 것이라는 확신이 넘쳤습니다.
무엇보다도 기쁨이 넘쳤습니다.
왜 였을까요? 나의 주권이 사라진 그곳에 예수님 그 분이 나를 다스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선교지를 떠나야 해서 신학교의 지도력과 선교재산을 현지 형제들에게 넘겨주기 위해 재산 목록을 작성해야 했습니다.
신학대학 캠퍼스의 건물, 개척된 교회들과 호산나 스쿨의 동산과 부동산 그리고 신학생들과 교수들, 목회자들과 교인들 그리고 호산나 스쿨의 학생들과 교사 등. 우리는 선교 재산 점검 결과를 보고 모두 놀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엄청난 일들을 행하셨구나’하는 사실에 감탄했었습니다.
정말 아무 것도 없었는데, 이 모든 것이 어디서 생겼느냐는 것입니다.
그 감격이 너무나 커서 큰 선교재산을 인도 형제들에게 넘겨주는 것에 안타깝지 않았고 선교지를 떠날 때 감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조동욱선교사는 동역자들에게 이렇게 권하였습니다.
“가난해지기를 선택하고 그것을 실천해 보십시오.
성경에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마6:11)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딤전 6:7-8) 하셨습니다.
여러분 가난을 즐길 준비를 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복의 근원임을 믿는다면 가난해지기를 결정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가난해지려 할수록 하나님은 그 가난이란 지붕 아래에 수많은 행복을 채워주십니다.
먼저 영혼이 가벼워지고 상쾌해지는 행복이 옵니다.
아주 작은 것에도 엄청나게 감사하고 감격하는 행복이 안겨옵니다.
그런가하면 가난을 선택한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 평강, 그리고 능력 등 무수한 하늘에 속한 복들로 가득 채워집니다.
가난은 하나님이 부어주는 복을 채우는 영적 곳간입니다.
가난을 선택하는 것은 인생의 주권을 하나님께 맡기듯이 나의 행복 추구 주권을 하나님께 넘겨 드리는 실제적인 행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손으로 만든 행복이 아닌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다” ( 딤전6: 10 )한 것처럼 욕심을 부리면 불필요한 영적, 육체적 에너지 소모로 인하여 목숨을 단축시키거나 욕심이란 함정에 스스로 빠지기도 합니다“
존 웨슬리는 말했습니다.
“인간에게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주어 보라... 그래도 무엇인가 부족하다!
그 무엇인가 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것이다.
천국에서든 이 땅에서든 그것 없이는 누구도 행복할 수 없다”
웨슬리는 자신이 거듭나기 전 상태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부족한 것이 없었고 양식있고 붙임성있는 친구들도 많았다...
그런데 행복하지 않았다.
왜 그런지 궁금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가 묘연했다.
물론 그 이유는 영원한 행복만 아니라 또한 현재 행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내가 몰랐다는 것이다.”
1998년 창천교회 부흥회 때, 강사 숙소인 호텔 바닥에 무릅을 꿇고 “돌짝밭 사명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울면서 기도했던 생각이 납니다.
그때까지 저는 소위 옥토밭만 바라보며 살던 목회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날 순교하신 할아버님을 생각하면서 ‘돌찍밭’ 사명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옥토밭 만을 바라지 않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착각 중 하나는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야 정상이고 고난이 임하는 것은 비정상인 것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고난이 비정상이라고 생각하면 큰 일입니다.
사실은 고난이 정상이고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은 특별한 경우입니다.
우리는 고난 없이 열매가 될 수 없고, 죽음 없이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싫지만 유익한 것이 있습니다. 고난이 대표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다가올 때, 마음과 태도를 바꾸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고난의 순간이 올 수 있음을 준비하고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