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묵주이야기]
온 가족이 드리는 묵주기도의 은혜
묵주기도를 생각하면 두 가정의 모습이 떠오른다.
먼저 어릴 적 부모님과 함께 온 가족이 둘러앉아 매일 저녁 묵주기도를 드리던
모습이 떠오르며 행복한 추억에 잠긴다.
그리고 콜롬비아 한 촌부 가정이 떠오르며 아련한 그리움에 젖는다.
8년 전 콜롬비아에서 경험한 일이다.
매주 월요일 신부님과 함께 산골 공소를 방문했다.
첩첩 산골, 단지 3가구뿐인 공소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4시쯤이었다.
이미 여러 신자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잠시 만남의 시간을 가진 다음 감격스러운 미사를 드렸다.
산속에서 드리는 미사는 늘 커다란 기쁨을 가져다주었다.
하루 저녁 묵기 위해 한 가정에 여장을 풀었다.
산속이라 저녁 5시가 지나면 칠흑같이 어두워지고 가정에서는 가느다란
촛불 하나 밝히고 간단한 저녁 식사를 한다.
늘 그렇듯이 산속에서 묵는 날에는 저녁 식사 후 그 가정의 모든 식구와
함께 묵주기도를 드렸다. 참으로 아름다운 추억 중 하나다.
묵주기도를 바치며 어릴 적 생각이 나서 촌부에게
“당신 가족은 매일 이렇게 묵주기도를 드리느냐?” 고 질문하니
그는 즉시 “그럼요” 하면서 너무나 끔찍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금도 ‘무섭다’면서 그러나 ‘전적으로 성모님이 자기 가족을 살려 주셨다’면서.
3년 전 어느 날 아들과 커피 열매를 추수하고 있는데,
총을 든 4명의 반정부 군인이 젊은 남자 7명을 오랏줄로 묶어 자기들을 향해 걸어왔다.
그들은 부자 앞에 서더니 아들을 바라봤고, 촌부는 즉시 “자기를 데려가고
아들은 살려 달라”며 간절히 빌었다는 것이다.
하얗게 겁에 질려 부들부들 떨고 있는 아들 모습이 마치 중증의 중풍 병자 같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순간 뒤에 있던 한 군인이 그냥 가자고 하니,
아들을 바라보던 군인은 침을 퉤 뱉고 갔다는 것이다.
그때 그는 ‘성모님이 우리를 살려주셨다’는 생각이 번개같이 스쳤고,
이내 아들을 품에 안고 털썩 주저앉았다고 한다.
열세 살 된 큰아들은 아버지 품에서 사시나무 떨듯 떨었고,
그는 넋을 잃고 학교 앞마당에서 벌어지는 무지막지한 광경을 모두 바라보았다고 한다.
그들은 큰 칼로 한 사람씩 목을 쳐 떨어뜨리고 있었던 것이다.
지옥에서나 있을 법한 끔찍한 광경을, 동상처럼 얼어붙고 눈도 감기지 않아
모두 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지금 자신들이 멀쩡한 정신으로 사는 것도 성모님 덕분이라며 감사기도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온 가족이 드리는 묵주기도의 은혜,
나는 그 촌부가 들려준 성모님 은총을 전적으로 믿는다.
우리도 어렸을 적 매일 저녁 콜롬비아의 그 가정처럼 긴긴 묵주기도를 드렸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아버지께서 “저녁기도 하자”라고 하시면 나는 대청마루에
나가 각 방을 향해 “저녁기도 하러 와” 하고 큰소리로 외쳤다.
부모님과 큰 오빠 내외, 그리고 우리 5남매를 합친 9명이 안방에 빙 둘러앉아
저녁기도를 비롯한 가정을 위한 기도와 묵주기도 5단을 매일 바치는 것이 그때는
너무 지루해 기도를 하지 않는 친구 집을 부러워했는데,
지금은 나의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 중 하나가 됐고,
이런 추억을 남겨주신 부모님이 한없이 그립다.
그뿐만 아니라 그때 드린 긴긴 기도를 통해 성모님께서 우리 6남매를
모든 악에서 보호해 주시고, 돌보아 주시며 우리 가족 모두에게 베푸신 크나큰
은총으로 오늘 우리가 있음을 전적으로 믿는다.
길을 걸으며, 잠자기 전 침대에 누워,
혹은 버스 안에서 묵주기도를 드리면 어느새 나의 마음은 잔잔한 평화 속에 머문다.
이것이 큰 은총 중의 은총이 아닐까?
첫댓글 옛날에는 각가정마다 모여 앉아 기도를 들였던것 같습니다. 저두 저녁마다 모여서 기도하다보니 친구들이 밖에서 놀자고 불러댈때
정말 성당 안다니는 가정이 부러워 보일때도 있었거든요. 울 아버지 하느님한테 미쳤다고 그런 말을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ㅎㅎ
하느님에 대한 참신앙은 우리가 맑은 정신 가지고 좀 미쳐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