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 투병 끝에 운명을 달리하신 외삼촌의 장례를 마치고 친척들과 인사를 나눈 뒤 돌아오기 위해서 기차역으로 향했다. 뿔뿔이 떨어져서 소식도 없이 소원하게 살다가 누군가의 결혼이나 부음에 겨우 친인척이라는 인연으로 만나게 되는 사람들, 그렇게 또 잠깐 지극히 상투적이고 일률적인 인사와 안부만을 묻다가 헤어져서 다음 대소사까지 모르는 사람들처럼 사는 사람들. 겨울 해가 비척비척 거리며 기차역까지 따라오고 있었다. 예약을 하지 않았으므로 시간 되는 기차를 끊다보니 기차 시간은 아직 멀었다. 한 겨울 터미널 풍경은 올씨년스럽고 낯설었다. 터미널이 갖는 이미지와 풍경은 사계절 늘 그런 것 같다. 커피 한 잔을 뽑아 마시며 기다리다가 불현듯 그 집이 생각났다. 여기까지 왔는데 하룻밤 자고 가라는 올케언니의 말과 함께 여고시절을 보냈던 그 집의 옛 모습이 눈에 밝혀왔다. 잠깐 망설였다. 생각해보니 기차역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다 그 집까지는......•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고모! 기차가 바로 있어요? 하룻밤 자고 가라니까 급할 것도 없다면서......•"
"좀 기다리면 될 것 같은데요."
"애들도 고모 보고 싶다고 집으로 오래요. 내가 터미널로 차 가지고 나갈게요."
"아니에요. 봐서 전화 드릴게요."
올케언니였다. 통화를 끝내서 호주머니에 집어놓은 존화기를 만지작거리다 대뜸 그 집이 있던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 집은 지금도 그곳에 있을까. 녹색 대문과 탱자나무 올타리와 마당 귀퉁이 펌프식 수돗가는 그대로 있을까. 수선화가 피고 술패랭이가 피고 온갖 색색의 장미꽃들도 해마다 피고 있을까. 생각에 묻힌 채 은연중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30여년도 훌쩍 지나버린 그때 그 옛집, 칸나 꽃보다 더 붉었던 민주화가 정점이던 그때 여고시절 3년을 보냈던 그 집. 예감은 했지만 그 집으로 가는 길은 몰라보게 변해 있었다. 거의 변두리였던 곳, 외곽으로 빠지는 길목이었던 그곳엔 고속도로와 초고층 아파트가 즐비했고 대형마트와 주유소 등 이런저런 편의점들이 줄을 잇고 있었다. 잠시 현기증이 일었다. 방향을 잡고 옛 기억을 더듬으며 얼마를 갔을까. 예전에 비포장 도로였던 길목으로 들어서던 곳에 이르러서야 눈에 익은 잔상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다행히 버스 종점은 그대로였다. 그리고 버스종점에서부터 시작되는 비포장도로도 거의 그대로였다. 그 길은 아직 그린벨트에 묶여 있어서 비포장도로만 시멘트를 깔아놓았다는 것만 변했다면 변한 모습이었다. 양옆으로 플라타너스 가로수는 나만큼 늙은 모습으로 굵은 허리에 세파의 흔적들을 휘감은 채 빈 가지들을 하늘로 뻗고 있었다. 일 년 사계절을 교복차림으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 길을
걸었던 내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어디선가 민주화를 향한 총소리까지 귓가에 희미하게 들려오는 듯했다. 샛길 입구에 있던 별채는 다 허물어가고 있었고 길가 먼지를 둘러쓴 진녹색의 주목나무가 허물어져 가는 별채를 감싸안은 듯 거의 반쯤은 덮고 있어서 얼핏 그곳에 집이 있었나 할 정도였다. 샛길로 접어들어 조금 걸어 들어가니 칠이 다 벗겨진, 겨우 대문이라는 표시만 해놓은 듯한 빛바랜 대문이 보였다. 그 녹색 대문에 단단히 나무판자를 덧대어 못질을 해놓은 모습이 덧없이 흘러버린 세월을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비밀의 화원이라도 발견한 듯 조심스럽게 대문을 열어보았다. 대문은 덜컥거리며 열렸고 바짝 마른 금잔디가 깔린 마당으로 들어가는 길이 나를 반겨주었다. 그리고 마당의 오솔길을 조금 돌아가니 그곳에 도자 모양의 한옥 한 채가 담묵으로 그린 듯 빛이 바랜 채 옛 모습 그대로 담당하게 있었다. 잿빛 기와지붕과 마중물 한 바가지면 시원한 물을 콸콸 퍼 올려주던 펌프식 수돗가와 고동색 마루와 그리고 아담한 백일홍 나무가 그대로 있었다. 한 겨울이라 그런지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 않고 방문 고리들도 잠겨 있었다. 마루턱을 훌쩍 올라 매일 걸레질로 반들반들하게 닦았던 마루에 앉아보았다. 잔잔하게 피어나던 키 작은 꽃들이 만개했던 앞마당에서부터 멀리 울타리가 쳐진 곳까지 눈길을 들어보았다. 조그만 비닐하우스 안에서 연통으로 연기가 피어나고 있는 걸 봐서는 온실에 화초들이 싱싱하게 겨울을 잘 지내도록 연탄불을 피워놓은 것임에 틀림없었다. 눈을 감은 채 어느새 나는 그 옛날 여고시절로 돌아가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아카시아 향기가 코끝으로 전해오는 듯 했다. 그해 5.18 그 봄처럼.
샛길 입구 별채에는 삼수 아저씨가 살고 있었다. 삼수 아저씨는 억센 고슴도치 같은 인상이었다. 여고생이었던 나는 도서관에서 늦은 공부를 하고 오는 날이면 캄캄했던 비포장 도로보다 삼수 아저씨를 더 무서워했던 것 같다. 삼수 아저씨는 거의 말이 없었다. 그리고 삼수 아저씨는 결정적으로 지능이 모자란 사람이었는데 얼핏 첫인상까지 험악하게 보였으니 마을 사람들에게 거의 무시당하거나 투명인간 취급을 받았다. 다행히 삼수 아저씨에게는 그보다 좀 더 똘똘한 아내와 사내아이 두 명이 있었는데 아니들은 늘 흙을 가지고 놀았으므로 언제나 꾀죄죄했다. 마을사람 누구 하나 그러자고 약속한 것도 없었지만 은연중 섬수 아저씨를 그냥 삼수라고 불렀다. 삼수는 온종일 농원의 정원수를 가꾸는 일에만 전념했다. 불평도 불만도 없어 보였다. 그저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누런 이를 드러내 보이며 좋아하는 모습이었다. 인상은 험했지만 웃을 때는 그런대로 천진스럽게까지 보였다. 나는 그런 삼수를 볼 때마다 게오르규의 소설 「25시」에서 모리츠로 분한 안소니 퀸을 연상하곤 했다. 하지만 자주 아버지를 속상하게 했다. 일하기 싫으면 온갖 핑계를 댔고 데리러 가면 모로 돌아누워 도무지 대꾸를 하지 않고 버티기 일쑤였다.
''어어~~삼수 또 골 났는갑다. 한창 바빠 죽겠구만 저 망할 놈의 인사가."
마루에 걸쳐 앉으며 아버지는 한숨을 길게 내쉬곤 했다.
이른 봄부터 농원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정원순와 정원에 어울리는 온갖 꽃들이 한 시절을 수놓고 드넓은 마당은 마치 모네의 그림을 펼쳐놓은 듯 생글거리며 싱그러웠다. 시기가 시기인 만큼 그야말로 한 해에 있어서 가장 호시절이고 1년 치 장사를 거의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특히 식목일은 눈 코 뜰 새 없이 바빠서 온 가족이 팔을 걷어붙이고 아버지를 도와드렸다. 정원수와 여러 가지 화초들이 가득한 앞마당에서부터 집안을 빙 둘러 사방으로 온갖 침엽수와 활엽수가 즐비한 우리 집 화원은 꽤나 크고 많이 알려줘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곤 했다. 지나가다가도 잘 꾸며진 정원을 보고 일부러 들어와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다가 가곤 했다.
''세상이 어수선하니까 삼수까지 난리구만. 그래도 바뀨ㅓ야지 세상이 한 바탕 바꿔져야지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아버지는 쩝 입맛을 다시며 담배 한 개비를 피워 물었다.
담배 연기는 아무 구속과 억압도 없이 봄 하늘로 퍼져 날아갔다. 그리고 그날 오후 아버지는 주목나무 밑동을 혼자서 도려내느라 진땀을 흘렸다. 양지쪽에 한해살이 화초들이 금방이라도 벙글어 필 것만 같았다. 수돗가 수선화는 벌써 피어나서 꽃샘추위에 벌벌 떨고 있었고 목련도 한껏 고귀한 자태로 한두 송이 피워내고 있었다. 봄비가 내릴 때마다 꽃들은 물이 올랐고 나무들도 동그란 물관으로 물을 길어 올리는지 하루하루가 다르게 싱그럽고 파릇했다. 그런데도 웬일인지 봄볕이 익어갈수록 뉴스에서나 사회적 분위기가 어수선해져 가고 있었다. 물론 학교도 점점 어수선해 갔다. 갓 여고생활이 시작되는 설렘도 잠시 수업에 들어오는 선생님 들마다 뭔가 들떠 보였고 쉬쉬하는 모습이면서도 비장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조회시간이나 종례시간 때마다 방과 후 절대 외출을 삼가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집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으며 비상연락망을 짜고 학생 한 명의 상세한 내용을 기록했다. 5월 초순에 들어서자 더 어수선한 세상이 되어갔고 여기저기서 민주화에 대한 열의들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었다. 급기야 중순에 들어설 무렵 수업은 오전수업으로 줄어들더니 2교시로 마치다가 급기야는 휴교령이 내려졌다. 나라는 계엄령이라는 무시무시한 체제로 바뀌었고 전경들의 횡포는 날로 포악해져 가면서 온갖 흉측한 소문들이 난무했다. 교문입구에 한창 송송 피어나던 아카시아꽃향기가 짙게 코끝을 간질이기 시작하던 때였다. 우리는 그렇게 휴교를 당하고 교문을 빠져나왔다. 아카시아 향기가 만두 열사들 가슴으로 숨어들면서 금방이라도 핏빛으로 물들 것만 같았다. 도심 한복판인 도청을 경유하던 버스는 이미 계엄군에 점령당해 진입을 못한 탓에 외곽으로 돌고 돌아서 겨우 집으로 왔다. 그날 버스정류장까지 나와서 나를 기다리던 엄마의 모습은 오랫동안 잔상에 남아있다. 엄마의 하얀 윗옷이 봄바람에 가늘에 떨고 있었다.
휴교를 했으니 꼼짝없이 집안에만 있어야 한다. 앞마당에는 붉은 장미꽃들이 숭굴숭굴 피어나고 온갖 꽃들이 피어나서 집 마당이 화사한 잔칫집 같았다. 그렇게 휴교한 지 며칠이 지날 즈음이었다. 갑자기 대문이 우당탕거리며 열리더니 청년 한 명이 정신없이 뛰어 들어왔다. 마루에서 풍경화 스케치를 하고 있던 나는 놀란 나머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청년은 다급하게 말을 던졌다.
''저기......• 나 좀 나 좀......•"
그러고 보니 하얀 와이셔츠를 입은 왼팔에 피가 흐르고
있었다. 나는 직감으로 나도 모르게 급히 마루를 돌아 창고처럼 쓰고 있는 작은 골방의 다락방으로 안내하고 급히 아버지를 찾아 정원으로 내달렸다. 급한 내 행동과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는 목에 두른 수건을 풀어헤치고 나와 같이 내 달렸다. 아버지의 다리가 후들거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순간 장미꽃들이 온통 핏덩이로 보였다. 아버지는 대문 앞으로 다가가더니 밖을 살피고는 대문을 안에서 걸어 잠갔다. 어지간해서는 잠그지 않은 대문이었다. 그런 뒤 나를 보더니 어서방으로 들어가 있으라는 눈짓을 보내고는 골방으로 달려갔다. 아버지는 거적 같은 것을 내와 대학생을 덮어주고 무언가 다음에 있을 일을 예건이라도 한 듯 마루로 나와 태연하게 담배를 물었다. 그리고 내가 막 물수건을 준비하려고 수돗가로 발길을 돌리는 순간 대문이 부서지도록 탕탕거리더니 벌컥 열렸다. 나는 얼른 부엌으로 들어가 다시 안방으로 몸을 숨긴 채 문틈으로 밖을 주시했다. 장총을 맨 전경 두 명이 눈에 불을 켠 듯 부라리며 대문을 박차고 들이닥친 것이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아버지에게 총을 들이대며 남자 한 명 여기로 들어오지 않았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애써 태연한척 하시며 모른다고 했다.
보다시피 정원수 가꾸느라 누가 오고갔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군인들은 경계의 눈빛으로 집 안팎을 둘러보고 정원수가 빽빽한 넓은 마당을 훑어가며 학생을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듯 샅샅이 뒤졌다. 한참을 그렇게 찾다가 수돗가로
오더니 펌프물을 품어 올려 벌컥벌컥 들이켰다. 머리에서 흘러내린 땀들이 다시 목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들도 옛된 얼굴이었다. 나는 어느새 부엌으로 다시 나와 부엌문 틈으로 수돗가의 그들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다시 아버지에게 다가와서는 재차 확인하고 매서운 눈초리로 잡을 노려보고는 대문을 걷어차고 돌아갔다. 그들의 발자국 소리가 멀어지고 한참이 지나서야 아버지가 골방으로 들어가는 소리가 났다. 해가 저물기 시작했고 노을이 정원 끝 울타리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주목나무도 이미 붉은 노을에 잠기고 있었다. 마당가 자줏빛 붓꽃이나 패랭이꽃도 꽃잎을 다물고 저녁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엄마가 쟁반에 간단한 밥과 반찬을 차려 골방으로 갔다. 마당으로 5월 저녁 바람이 훈훈하게 불어나가고 있었다. 나는 저녁 산책을 즐겨했으므로 대문 가까이 있는 목련 숲에서 시작해서 다시 장미향기 그윽한 마당 한가운데를 지나 멀리 울타리 너머로는 과수원이었다. 복숭아나무 그림자가 한창 물이 오르는지 습습하게 느껴져 왔다. 겨울은 겉으로는 모든 생명들이 멈춰버린 것 같아도 속으로는 봄을 밀어 올리느라고 온통 제 몸의 기운을 한곳으로 모으느라 힘겨웠으리라. 밤공기 따라 꽃향기가 훈향을 더 실어왔다. 장미 훈향을 더 맡기 위해 고개를 숙이려는 순간 멀리서 총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소리 나는 방향을 따라 눈길 머무는 곳에는 그리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곳에 교도소가 있는 장소였다. 그러고 보니 어느 날 부턴가 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교도소가 폭파될 것이라는 정보를 들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더 이상 자세한 이야기는 돌려주지 않았다. 다만 집 밖으로 나가지 말고 방안에만 있으라는 당부만 했다. 며칠 그렇게 밤낮을 가리지 않고 총소리가 들려왔고 밤이면 귀 고막이 터질 듯 총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무서움에 떨고 있는 우리들을 아버지가 솜이불을 덮어 졌다. 총알이 벽을 뚫고 고막을 관통하는 것 같았다. 전쟁을 겪어보지 못했지만 전쟁이 일어나면 그렇게 불안한 밤을 보내고 아침이 왔다. 수돗가에 핼쑥한 차림의 청년은 세수를 하려는지 물을 받고 있었다. 엄마가 들려준 이야기로는 광주 모 대학에 재학 중인 대학생인데 도청에서의 민주화 운동에 가담했다가 겨우 도망쳐 우리 집까지 왔다고 했다. 자줏빛 붓꽃을 매만지려다 말고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학생은 몇 학년이야?"
"이제 여고 3학년이에요."
"한창 좋은 때인데 시국이 이러니......• 그래도 민주화는 우리 손으로 이뤄야지."
오랜만에 세안을 마친 청년은 아름다운 집이라며 멀리 울타리가 있는 곳까지 가보고 싶다고 했다. 나도 휴교 중이라 매일 지루하고 심심하던 차였는데 말동무가 생긴 것 같아 흔쾌히 동행해졌다. 워낙 쑥쓰러움을 타는 탓에 청년이 묻는 말에 대답도 못 하면서 무작정 대학생이라는 선망의 대상 앞에 유해지는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름이 뭐야? 내 이름은 장민철인데......•"
"저는 김연주에요. 근데 몇 학년이세요?"
"아, 나 2학년......• 군대 다녀와서 복학한 거야."
"학생은 지금 민주화 운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지?"
갑작스런 질문에 아무 말도 못하고 우두커니 서 있는 나에게 보여 줄 것이 있다면서 방으로 들어가더니 노트 한 권을 가져와 보여줬다. 거기에는 온통 민주화를 열망하는 시들로 가득차 있었다. 간간히 신문 스크랩도 보여줬는데 계간지나 지방 문예지에 당선된 시들을 모아 놓은 것이었다.
장민철 그의 시와 서적들을 접하게 되었고 그의 고향이 경상도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시는 다분히 민주화에 대한 열의가 담겨져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그는 요주의 인물이 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며칠이 조용하게 지나갔고 장민철 그도 외곽에 있는 우리 집이 안전하고 편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어 이전의자취방은 그대로 둔 채 우리 집에서 묵게 되었다. 외딴집이 있던 우리 집은 조용하기도 했지만 처음 집주인이 집을 지을 때 다락방까지 짓게 된 것이 인기를 한몫하기도 했다. 다락방으로 오르는 쪽 계단을 마치 장롱문처럼 문을 만들어 거기에 다락방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주인만이 알 수 있었다. 우리에게 그 방은 일명 '만화방,으로 통했다. 오빠들은 만화나 무협지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온종일 만화에 파묻혀 지내곤 했다. 하지만 오빠들이 졸업과 동시에 서울로 가게 되었고 그 후로 그 방은 오래된 유물처럼 잊혀 가고 있었던 것이다. 장민철은 그 방에서 애벌레처럼 숨었다가 밤에만 나오곤 했다. 뉴스는 물론 그 어떠한 소식도 듣지 못한 채 하루하루가 흘러가고 있었다. 고립이었다. 모든 것에서 완전한 고립! 멀리서 총성은 간간히 들렸고 그럴 때마다 소름이 돋았다. 봄은 찬란했다. 눈부시고 아름다웠다. 그해 봄은 그랬다. 온 산하가 핏빛으로 온통 광주의 봄을 서럽도록 물들이고 있었다. 꽃잎은 면도날에 베인 듯 아프게 지고 있었다. 그 꽃이 장미든 수선화든 아카시아든, 모든 꽃들은 아프게 피거나 또는 지고 있었다. 간간히 뜬소문처럼 들려오는 소식에는 광주의 민주화가 열꽃처럼 피어서 번져가고 있다고 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 갑자기 조용하기만 한 가로수 길이 시끄러웠다. 멀리 탱자나무 담장으로 내다보이는 비포장도로로 가방이나 작은 보따리를 들고, 끌어안은 사람들이 더 외곽으로 간다며 행렬을 잇고 있었다. 엄마와 나, 동생들은 덜컥 겁이 났다. 두려운 눈동자를 잔뜩 치켜뜬 사람들은 전쟁이라도 난 듯 아우성이었고 도무지 어찌 되어 가는지, 꼭 전쟁 피난만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저녁 무렵 아버지에게 우리도 떠나야 되지 않겠냐며 물었더니 아버지는 집에 있을 거라며 가려면 우리만 가려고 했다. 장민철과 아버지는 집에 남겠다고 했다. 우리는 피난민처럼 우리보다 더 외곽에 살고 있는 외삼촌 댁으로 갔다. 두세 밤을 그렇게 보내고 다시 집으로 왔을 때 아버지는 크게 상심한 얼굴이 되어 있었다. 갑자기 삼수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알아본 바로는 우리가 잠시 집을 비우던 날 밤 삼수는 버스 정류장에 위치한 기사 식당에서 거나하게 취한 채 혼자서 저녁 불빛 속으로 사라진 뒤 보이지 않았다는 기사식당 주인의 말을 들었다고 했다. 삼수 색시는 우리 아버지에게 남편을 찾아달라고 애원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아버지는 푸세식 변소까지 찾아봤다. 혹시나 그 마련하고 모자란 인사가 취중에 무슨 변이라도 당한 것은 아닌지 찾아보았으나 삼수는 보이지 않았다. 그 당시 소문에 의하면 주거지가 불특정하고 거리를 배회하거나 불량스럽게 보이는 사람들은 죄다 잡아다 삼청교육대로 꿀고 가버린다는 소문이 장황하게 떠돌던 때였다. 혹시 삼수도 그린 것일까. 나는 꿈뻑꿈뻑 거리는 삼수의 눈동자가 자꾸만 떠올라 무서웠다. 며칠이 지나도록 삼수의 소식은 더 이상 들을 수가 없었다. 삼수 색시는 머리카락까지 흘러내려 거의 반 미친 여자처럼 보였다. 아버지의 일손은 바빴지만 오빠들도 외지로 나가버리고 삼수마저 행방불명 상태라 아버지의 일은 더 많아졌고 매일 정원 일에 여념이 없었다. 빠른 회복을 한 장민철이 아버지를 간간히 도와주곤 했지만 낯선 이가 찾아오거나 총소리가 들려오면 골방으로 숨어들기에 바빴다.
어느덧 보름이 지날 무렵. 등교하라는 소식이 왔다. 보스를 타고 광주의 심장부를 지나는데 연기에 그을린 건물들과 잔해들이 지난 며칠 동안의 치열한 민주화 투쟁의 흔적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하얀색의 도청 건물도 여기저기 총구멍과 화염에 불탄 자국들이 선명했다. 학교에 도착하니 말없는 소문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왔고, 그 소문들은 무시무시했다. 총장로와 금남로 등 광주 심장부에서 일어났다는 이야기는 실로 강압과 폭력과 살인에 대한 무지막지한 이야기들뿐이었다. 제3교시 국어시간, 그러나 기다리던 국어 선생님은 안 들어오고 대신 도덕 선생님이 들어왔다. 무거운 침묵과 함께 국어 선생님은 당분간 볼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우리는 '왜,라는 말을 한숨처럼 낮게 읊조릴 뿐이었다. 사실 국어 선생님은 휴교령이 내려지기 며칠 전부터 거의 흥분상태였다. 싸울 거라고 했다. 민주주의를 향해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다고 했다. 제자들에게 민주주의를 향해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다고 했다. 민주주의를 향해 실천하는 선생의 참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그럴 때 국어선생님 눈가는 이미 촉촉이 젖어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국어선생님의 부재에 대해 왜라고 묻지 않았다. 아니 물어볼 수가 없었다. 다만 고개를 숙이고 흐느끼기만 했을 뿐이었다. 아카시아는 시들어가면서도 그 향기를 잃지 않고 교정을 배희하다 나붓나붓 내려앉고 있었다. 국어선생님의 체취 같았다. 국어선생님은 불온한 민주주의 성명서를 작성한 죄 아닌 죄로 투옥되었다고 했다. 암울한 학교생활은 그렇게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장미향기가 온 집안으로 가득했고 멀리 산 능선도 점점 짙은 녹음으로 채색되어 가고 있었다.
계엄령은 해제되었지만 시국은 여전히 암울했다. 집으로 가는 길 양쪽으로 플라타너스 가로수도 점점 푸르게 물들어가고 외곽으로 넘어가는 시외버스가 지날 때마다 하얀 먼지를 일으켰다. 저녁 어스름이 벌써 내려앉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종점에서 내리는 손님은 늘 나 혼자였는데 하늘빛 원피스에 흰 가디건을 걸친 긴 머리의 남자가 나를 따라 내린 것이다. 힐끗 쳐다보고 막 돌아서서 막 가로수 길로 접어드는데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저기! 이 근방에 '금잔디 농원,이 어디에요."
"거긴 우리 집인데요?"
''어머 그래요? 그럼 같이 좀 가도 되죠?"
''네 그렇긴 한데......•"
남자는 높은 하이힐을 신고 있었기 때문에 하체가 유난히 흔들렸다. 금발로 염색을 한 긴 머리가 오월 바람에 버드나무처럼 휘날리는 모습이 시원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선정적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체구가 좀 크다는 것 외는 그렇게 빠지는 외모도 그렇다고 눈에 띄는 외모도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서글서글하고 시원스럽게 보이기까지 했다. 그때 버스 한 대가 지나갔으므로 우리는 은연중 입을 가린 채 마주서서 버스가 지나갈 때까지 서 있었다. 버스가 다 지나가고 흩어진 긴 머리를 쓸어 올릴 때 남자의 눈가에 이슬이 맺혀 있는 것을 보았다. 누굴 찾아오는 건지도 그때 직감하게 되었다. 장민철, 그의 남자라는 것을,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주목나무 사이로 골똘한 생각에잠긴 채 거닐다가 우리를 발견한 장민철이 그대로 얼어붙은 채 서 있었다. 그때 남자는 흡사 쓰러지듯 장민철에게 달려가 안겼다. 그리고 터트리는 울음소리, 난 멋찍어서 내 방으로 향했고 남자는 더 크게 흐느끼기 시작했다. 아마도 소식이 끊기어 그동안 연락도 못하다가 어찌어찌 물어서 찾아온 것 같았다. 다음날 수돗가에서 마주친 장민철은 멋찍은 미소를 보이며 양치질과 세수를 했다. 그 뒤로 화사한 그녀도 뒤 따라오며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이렇게 예쁜 집에서 사는 학생이 정말 부끄럽네요"
''네......•"
''우리 오빠 잘 보살펴 줘서 고마워요. 아주머니 아저씨께도 감사하구요."
''네......•"
그때 우리들 이야기 사이로 장민철이 파고들었다.
''연주 학생은 그림도 참 잘 그리지. 여기 있는 며칠 동안 가만 보니 학교도 못 가고 그림만 그리는 것을 내가 살짝 봤는데 오~~우 수준급이던데......• 하하."
모처럼 장민철 얼굴에 웃음기가 피어나고 있었다. 둘은 잘 어울리는 연인들이었다. 아니 그보다도 그녀는 장민철을 더 많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우리는 그렇게 며칠을 보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잔디밭에 앉아 그 둘은 시를 짓거나 아버지의 일을 돕거나 했다. 여전히 삼수 소식은 들리지 않았고 삼수 섹시는 넋이 나간 듯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아빠가 가끔 들여다보았지만 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다. 떠돌이처럼 지낸 탓인지 연고도 없었고 일사친척 연락망도 없어서 아버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농원 일을 해주는 대가로 문간방 별채를 월세도 받지 않고 내준 것인데 삼수가 행방불명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아직 어린 자식과 삼수 색시를 내쫓기란 인지상정 못 할 것이라고 했다. 다행히 엄마의 도움으로 차츰 기운을 차린 삼수 색시는 농원의 허드렛일을 도와가며 지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대문 밖이 흐느끼는 울음소리로 왁자했다. 분명 문간방 별채에서 나는 울음소리였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장민철은 신발을 신는 둥 마는 둥 뛰쳐 나갔다. 비포장도로는 아직도 캄캄했다. 멀리 교도소 불빛이 반짝이고 있었음에도 그때는 왜 그렇게 칠흑처럼 느껴졌는지 알 수 없었다. 나도 손전등을 들고 부모님 뒤를 따라가 봤다.
대문도 없는 별채 귀퉁이 주목나무 아래 흡사 주검처럼 꼬부라져 움쩍도 않은 채 누워있는 검은 물체가 보였다. 그러나 감히 손전등을 비추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을 즈음 지나가는 자동차 불빛으로 그가 삼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위로 한 몸이라도 된 듯 삼수 색시가 엎어진 채 흐느끼고 있었다. 삼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피투성이었다. 신발도 신지 않고 있었으므로 삼수 발바닥은 곰발바닥처럼 딱딱하게 굳어있었고 옷가지들은 흙투성이에 갈기갈기 찢겨 있었다. 장민철과 아버지는 삼수를 일으켜 앉혀 보려 했다. 그러나 삼수는 힘없이 쓰러지고 또 쓰러졌다. 아버지는 속엣말처럼 산송장이 따로 없다고 했다. 장민철은 모두 그놈들의 것이라고 했다. 그놈들이 죽을 만큼 짓이겨 놓고 내다버린 거라고 울분을 토해냈다. 장민철의 두 주먹이 부르르 떨리면서 밤하늘을 향해 고함을 질러댔다. 엄마가 마음과 죽을 번 갈아 써서 갔다 먹이고 보살폈지만 날이 갈수록 그마저도 먹지 못한 채 삼수는 더 멍해졌고 눈동자는 풀려가고 있다고 했다. 무슨 말인지를 중얼거렸지만 아무도 알아듣는 이가 없었다. 장마가 오기 시작할 무렵 삼수는 끝내 눈을 감았다. 사인은 명확하지 않았지만 아마도 내출혈 같다고 했다. 몸은 온통 멍투성이었고 상처가 난 곳은 욕창이 시작되고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삼수는 원인도 모른 채 잡초 위의 이슬처럼 사라져 갔다. 장민철은 자신도 쫓기는 몸이라 어쩌하지 못함을 한탄했다. 그의 팬이 종이 위에서 휘감겼으리라. 민주의 꽃이 환하게 피어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그 후로 삼수 색시는 아무도 모르게 별채를 떠나버렸다.
주목나무만이 그 자리에서 긴 세월을 견디고 있을 뿐이었다.
아카시아 향기는 신군부 독재보다 더 짙게 교정을 휘감으며 사위어가고 있었다. 장민철과 장민철의 남자는 이제 그들의 자취방도 잊어버린 듯 머무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장민철의 자취방은 민주화의 격전지 도청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으므로 아직은 위험한 장소이기도 했다.
장민철은 매일 시를 썼다. 민주화에 대한 열의를 담은 시,이른바 불온한 시들을 써서 지방신문에나 계간지에 보내려고 다듬거나 민주화를 노래한 선시집을 만들 계획도 하고 있다고 했다. 쓴 시를 그의 남자와 나에게 보여주며 낭송을 하거나 민주화에 대한 열의를 고취시키려 했다. 그럴 때면 안경태 안으로 장민철의 눈동자가 이글이글 타고 있었다. 그렇게 보내던 중 장민철의 남자는 잠깐 부산의 집에 다녀오겠다며 떠나고 장민철은 아직은 조심스럽다며 여전히 골방에서 지내는 중이었다. 물론 나와도 많이 친해졌다. 갑자기 소나기라도 내리는 하굣길에는 어김없이 장민철이 우산을 받쳐 들고 교문 앞에 서 있곤 했다. 그러다가 가끔 연애시도 보여주곤 했는데 그럴 때는 장민철이 생경스럽게 보이면서도 그다지 싫지는 않았다. 어쩌면 장민철의 남자도 그런 장민철을 좋아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우수 어린 장민철의 눈동자가 자꾸 다가오는 느낌이 들어 부끄럽고 장민철의 남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날은 학교에서 단체 영화를 보는 날이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보고 싶지 않았다. 일명 영화광이라는 별명이 붙은 나였지만 그날은 왠지 집에 일찍 오고 싶어 바로 귀가했던 것이다. 대문을 들어서려고 막 대문을 손을 내밀 즈음 부서 질듯 안에서 밖으로 대문이 나자빠지듯 열리면서 사복경찰 인듯한 남자 둘이서 장민철의 어깻죽지를 죄듯이 움켜잡고 대문을 나서는 중이었다. 일순간 장민철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장민철의 모습은 당당하고 정의로우며 그러면서도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연주야, 그러니까......•"
장민철은 무슨 말인가 하려 했지만 두 남자들의 완강한 힘에 이끌려 거의 끌려가다시피 지나가고 말았다. 나는 무서움에 떨면서도 그를 그렇게 보내면 안 된다는 생각에
''말해봐요. 왜 그러는데요?"
''이봐 학생 입 닥치고 가던 길이나 가! 같이 끌려가고 싶어?"
한남자가 훽 돌아보며 잡아줄일 듯 말을 던졌다.
''......•"
''연주야 부산에서 찾아오거든 공부하러 입산했다고 일려줘"
''어디로 가는데요......•"
나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확 쏟아졌다.
남은 아카시아 꽃잎이 다 지고 있었다.
다락방은 발칵 뒤집혀 있었고 장민철의 서적들은 나뒹굴거나 찢겨졌거나 널브러져 있었다.
무언가를 찾느라 온통 구석구석 뒤진 형국이었다. 시편들을 써 내려간 쪽지들도 여기저기 신발해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조심스럽게 주워서 정리했다. 그러다가 유독 눈에 띄는 쪽지가 있었다. 시어들을 잊어버리기 전에 적어야 한다며 달필이었던 장민철답지 않게 정성 들여 꾹꾹 눌러쓴 습작이 눈에 띄었다.
- 나는 다락방 쪽창 너머 그 소녀를 보고 있지
소녀는 낮게 쪼그리고 앉아 패랭이꽃에 묻혀서 아직 모르지 내가 소녀를 언덕 너머 외딴집의 서정만큼 그리워한다는 것을 소녀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지
노을이 소녀 등 뒤로 얼마나 곱게 물들고 있는지를
그 노을을 잡으려고 손을 길게 뻗고 있는지를 소녀는 모르지 패랭이꽃이 나지막이 나에게 속삭여 주지
소녀도 지금 같은 마음이야
소녀도 지금 물들고 있어
다락방 쪽창 너머 소녀를 보고 있는 당신처럼
----------- 이 시를 이하영에게 ------------
부산에서 돌아온 남자는 장민철의 흔적 몇 가지만을 챙겨 떠났다.
그 남자는 공부하러 입산한다며 떠났다는 내 말은 아예 믿지도 않는다는 듯
단호하고도 슬픈 얼굴로 떠났다.
지금쯤 온실의 연탄을 갈아주려고 누군가가 올 텐데 아무도 오지 않았다.
텅 빈 농원의 겨울 풍경은 많은 이야기를 희석시키듯 겨울안개가 내려앉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