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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협동조합 가톨릭 사회교리 연구소 원문보기 글쓴이: 이기우
한글의 가치로 이룬 한류 문화의 잔치, 그리고 겨레의 꿈
이사 25,6-10; 필리 4,12-20; 마태 22,1-14 / 연중 제28주일; 2026.10.11.
⒈ 문화 표현과 의사 소통의 수단인 말과 글
우리 나라는 10월을 문화의 달로 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 금요일이었던 10월 9일은 580주년 한글날이었습니다. 그 오래 전에 세종대왕께서는 백성이 자기 뜻을 쉽게 표현하고 바르게 살아가도록 훈민정음(訓民正音)을 반포하셨습니다. 이 한자 이름 대신에 ‘큰 글’이라는 뜻으로 주시경 선생이 지은 이름이 ‘한글’입니다. 세상에 나온 지 6백 년이 다 되어가는 한글은 날이 갈수록 그 우수한 가치를 빛내고 있습니다. 과학적이고 철학적인 한글의 기본 창제원리는 이러합니다. 자음(子音)은 사람의 발성기관의 모습을 본떠서 과학적 원리에 따라 만들었고 모음(母音)은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에 담긴 철학적 가치관에 따라서 만들었습니다. 과학적 체계와 철학적 원리에 따라 만들어진 한글은 한국어를 표기하고자 만든 문자이고, 사람들의 문화를 표현하고 의사 소통을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은 말과 글 즉 언어와 문자입니다.
⒉ 한자의 한계
세상의 문자에는 뜻으로 글자를 표현하는 표의문자(表意文字)와 소리로 글자를 표현하는 표음문자(表音文字), 이렇게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표의문자인 한자는 동아시아에서 한자문화를 형성케 한 핵심 동력으로서 지대한 영향을 발휘하였던 문자입니다. 그런데 한자는 새로운 뜻이 나올 때마다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왔기 때문에 그 글자 수가 무려 3만 6천 자가 넘습니다. 그리고 한자로 구성하는 한문에는 표준 문법이 없어서, 기원 전에 쓰여진 중국 고전 문헌의 용례를 따라 쓸 뿐이기 때문에 사서삼경(四書三經)을 다 익히기 전까지는 한문을 다 배웠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주로 쓰는 한자만 모아 놓은 것이 상용한자(常用漢字)인데, 그것도 3천 자나 됩니다. 그래서 한문에 숙달하는 데에 매우 오랜 세월이 걸립니다. 게다가 초보 단계에서 배우는 한문 교재에 부자연스러운 가치관과 역사왜곡도 담겨 있어서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초보자들이 한자를 처음 배우는 교재가 천자문(天字文)인데, 그 첫 문장이 '千地玄璜'인데 '하늘천 따지 검을현 누를황'으로 읽습니다. '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다'라는 것인데, 이는 중국의 자연을 표현한 것이지 한국에서 한자를 처음 배우는 초보자 즉 어린이들이 쳐다보는 우리의 하늘이나 땅의 색깔과는 다릅니다. 조선의 하늘은 푸르고 땅은 온갖 초목과 꽃들로 총천연색인데, 천자문에서는 버젓이 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아주 부자연스럽습니다. 또한 천자문을 뗀 어린 학생들에게는 동몽선습(童蒙先習)을 통해 삼강오륜과 역사를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역사 안에는 단군과 고조선의 역사를 가르치면서 슬쩍 기자(箕子)가 단군에 이어 조선을 다스렸다는 허구 사실을 가르쳐서 역사를 왜곡했습니다. 기자조선은 고조선 말기 한나라에게 밀려서 고조선 영토 네 군데에 한 나라 군대가 주둔하던 한사군 시절을 과대기술한 왜곡된 역사입니다. 그런데 이 기자조선을 가르치면서, "중국에서 벼슬을 하다가 조선에 와서 임금 노릇을 한 기자가 조선을 소중화로 만들었으니 얼마나 좋은가!" 하는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민족얼에 어긋나는 유교적 중화의식(中華意識)으로 학습시키기 위하여 역사를 왜곡하면서까지 가르쳤던 것입니다.
그리고 한문과 중국어는 전혀 별개의 체계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한문에 통달했다고 해서 중국어를 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따로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현재 중국에서도 한자를 좀 더 간단하게 표기할 수 있는 간체자(簡體字)를 개발한 다음에 구어체로 활용하는 것이 백화문(白話文)입니다. 이것조차도 지금과 같은 디지털 시대에 한문을 컴퓨터용 키보드로 입력하려면 엄청나게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전혀 체계적이지 않습니다. 중국의 경제력이 그 인구의 힘으로 세계 2위를 차지하면서도 그 문화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지 못하고 중국 공산당이 지배하는 영토 안에 갇혀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⒊ 영어의 한계
한글이 한국어를 표기하기 위한 문자이듯이, 영어를 표기하는 문자는 영자(英字)입니다. 세계의 표음문자 중에는 라틴 문자와 키릴 문자가 있는데, 라틴 문자 계열에서 대표적인 표음문자인 영자는 원래는 독일 작센주에 살고 있는 색슨족이 영국으로 집단이주하여 원주민이었던 앵글족과 연합하면서 만들어진 앵글로색슨족의 언어인 앵글족의 말, 즉 잉그리쉬(English)를 표기하는 문자입니다. 영국이 19세기에 여러 대륙에 걸쳐 정복전쟁을 벌여서 넓은 식민지를 만들었고, 그 중 가장 큰 식민지였던 미국이 지금은 전 세계의 정치와 경제 패권을 차지하고 있는 까닭으로 영어가 가장 많은 지역에서 통용되고 있어서 지구촌 특히 서양에서 대표적인 언어가 되었습니다.
영어를 표기하는 영자의 알파벳은 모두 26개의 글자로 이루어져 있는데 표준 발음기호가 있어도 발음하는 방식이 제각기 다르기 때문에 나라별로 따로 배워야 합니다. 또 한 가지 글자에 한 가지 발음의 음가(音價)만 가지고 있는 한글과 달리 영어에서는 아주 여러 음가가 알파벳마다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알파벳의 첫 글자인 a의 경우에, park에서는 ‘아’, catch에서는 ‘애’, beat에서는 ‘이’, call에서는 ‘오’, arrive에서는 ‘어’, play에서는 ‘에이’ 등 모두 일곱 가지로 발음합니다. 또 영어에서 발음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억양인데, 억양이 다르면 전혀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그래서 한국 학생들이 중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도합 10년이나 배워도 영어를 한 마디로 못하는 이유가 이 발음과 억양 문제가 크고, 또 들어야 말을 할 수 있는데 들을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영어가 표현하는 개념이 논리적이지 못한 구석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낮은 day라 하고 밤은 night라 하는데 낮과 밤을 합한 하루를 표현할 때에는 또 day를 씁니다. 남자는 man이라 하고, 여자는 woman이라 하는데 남자와 여자 모두를 가리키는 사람을 표현할 때는 또 man을 씁니다. 비논리적입니다.
⒋ 한글의 가치
말과 글은 얼을 담는 그릇입니다. 한국인의 얼을 담아야 할 한국말은 옛날부터 있었지만 이 말을 담아야 할 글이 없다 보니, 우리 말을 한문의 뜻에 맞추어 구겨서 넣는 식으로만 표현이 가능했기 때문에 우리 말에 담긴 우리 얼이 자연스럽게 표현되지 못했습니다. 또한 한문을 배우기 위한 교과서로 사서삼경(四書三經)이 쓰여지다 보니 한문을 사용하는 지식인 사회에서 우리 얼 대신 중화사상이 자리잡은 반면에 우리 얼은 서민 대중 사이에서만 간신히 그 명맥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재판 소송을 당해도 자기 의사를 표현할 길이 없었고, 일상생활에서 편지도 쓸 수 없었으며, 농사일에 관해 간단하게 기록을 하려 해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나라에서 백성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한문을 통해서는 전달할 수가 없었습니다.(예:三綱五倫行實圖) 백성을 위한 깊은 고민 끝에 세종대왕께서는 새로이 우리 글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오랜 기간 연구하신 끝에 누구나 쉽게 배우고 편하게 쓸 수 있도록 독창적인 방식으로 한글을 만드신 겁니다. 이렇듯이 한글 창제는 양반과 권력층이 아니라 힘없고 소외된 백성들을 위한 애민정치(愛民政治)의 소산이었고, 백성을 위하고자 하는 민본정치(民本政治)의 발로였습니다. 세종대왕에게는 백성이 하늘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민주적인 창제 목적에 더해서, 배우기도 쉬운 민중의 글이 만들어짐으로써 비로소 민중이 간직해 오던 우리 겨레의 얼도 끊김없이 이어져 올 수 있었습니다. 이 점이 매우 중요합니다. 게다가 한글은 동아시아에서 유일한 표음문자였기 때문에 주변 나라들에서 이 자기 문자를 후세대에게 가르칠 때 발음기호로도 사용했습니다. 한문은 물론 만주어, 일본어, 류큐어에 이르기까지 한글로 발음기호를 단 역사문헌들이 발견되고 있어서 중세 동아시아 언어를 연구하는 주변 여러 나라들의 언어문자학자들도 체계적이고도 논리적인 문자인 한글을 매우 중요한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⒌ 한글의 위기
그런데 백성을 위한 이 한글 창제를 당시 벼슬아치들은 기를 쓰며 반대했습니다. 그 명분이라는 것이, 감히 중국의 문자에 대항하는 우리 글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천자의 나라인 중국에 밉보일 것이라는 고루한 사대주의적 자세였고, 실상 속내로는 한문을 통해 지식을 독점해 온 양반 선비들의 기득권이 흔들릴 수도 있다는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훈민정음의 역사는 창제 당시부터 우리 얼이 빠져있던 양반 선비와 벼슬아치들의 반대와 멸시를 받아야 했습니다.
워낙 조선 선비층의 저항이 완고하고 끈질겼기 때문에 한글은 창제된 후에도 한참동안 속된 말이라는 뜻인 ‘언문’(諺文)으로 폄하되어 공식 문자로 대접받지 못하다가, 일제 치하에서는 아예 노골적으로 한글을 없애버리려는 탄압정책이 진행되었으므로, 한글을 지키는 것이 곧 독립운동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나라를 이루는 요소는 사람과 땅과 정부 그리고 얼인데, 이 얼을 표현하는 수단이 언어요 문자였기 때문입니다. 조선 조정을 폐지시킨 일제는 땅은 수탈하고 백성은 노예로 부리면서 민족의 얼까지 빼앗으려고 우리 말과 우리 글을 못쓰게 하고는 일본말과 일본글을 쓰도록 강요했습니다. 하지만 한글운동가들은 그럴수록 겨레의 얼이 담긴 한글을 목숨처럼 여기고 지키고자 했는데, 한글로 된 사전을 만들고자 했던 조선어학회 사건이 터졌을 당시 투옥당한 한글 운동가 중에는 해방될 때까지 옥사할지언정 변절자가 한 사람도 나오지 않았을 정도였습니다. 실로 위대한 역사라고 할 만 하지 않습니까?
⒍ 새로운 문화 잔치, 한류 현상
일제 치하에서 해방된 직후부터 우리는 열악한 교육 환경 속에서도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한글을 가르쳐서 문맹을 퇴치한 결과로 불과 한 두 세대만에 기적 같은 경제성장과 민주화의 길을 열었고, 문화를 일구어 세계 속으로 나아갔습니다. 배우기 쉽고 표현하기에 합리적인 편리함도 있었지만, 한글에 담긴 우리 얼이 마음껏 피어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국 본 무대에서 우리 말로 노래를 불러 커다란 인기를 모으고 있는 ‘방탄소년단’과 역시 한국 말로 만들고 영어는 자막으로만 표기했으면서도 미국의 권위 있는 영화제에서 큰 상을 네 개씩이나 받은 영화 ‘기생충’의 성취가 상징적으로 말해주고 있듯이 이미 한글은 세계화되고 있습니다. K-팝과 드라마, 영화, 웹툰을 접하며 우리 문화에 매력을 느낀 많은 세계인이 한글을 통해 한국을 더 깊이 알아가고, 이를 통해 한국의 상품과 기술 그리고 첨단 제품들까지 인기를 얻는 가운데 새로운 만남과 소통의 길에서 우리와 세계는 함께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놀라운 속도로 성장하는 한류문화의 밑바탕에는 한글이 있습니다. 한글이 가지고 있는 독창성과 창의성에다가, 표현 못할 것이 없을 만큼 풍부한 의태어와 의성어 어휘가 한국어에서 유래한 덕분에 그 어느 문자보다 매력적이기 때문이고, 한글의 모태인 한국어에는 세계 어느 문자보다도 정교한 존대어법이 자리잡고 있어서 한글을 잘 배우면 예의도 갖추게 됩니다. 한국의 시민 의식이 서구와 중국에 비해서 한 수 위인 까닭도 이 존대어법에 기인합니다. 게다가 컴퓨터가 대중화된 디지털 시대에 가장 경쟁력 있는 언어로 평가받는 것도 한글입니다. 우리 겨레의 얼이 담겨 있는 한국어와 한글을 바탕으로 한 한류의 위용이 이러합니다.
한류 열풍과 함께 전 세계에서 불고 있는 한글 배우기 풍조는 한국이라는 나라의 글을 배운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한자는 동양의 지식인들이나 배울 수 있는 어려운 문자이고, 또 영어는 돈 있고 힘 있는 나라의 언어라서 둘 다 제국주의의 문자요 언어라고 생각하지만, 한글은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고 어느 나라의 말이나 다 표현할 수 있는 민중의 문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한글을 배우면 그대로 문자가 없는 부족들도 자기의 고유한 언어를 표기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1996년에 프랑스 파리에서 열렸던 세계 언어학자 대회에서는 한글을 세계 공용문자로 채택하면 좋겠다는 논의가 공론화되기도 했고, 또 실제로 유네스코에서는 고유한 언어는 있지만 이를 표기할 문자가 없었던 소수 부족들에게 한글을 문자로 채택하도록 권고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는 ‘언어의 다양성과 정보 이용의 공평성’을 높이는 운동으로서 ‘바벨 계획’이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모양새가 마치, “만군의 주님께서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살진 음식과 기름진 음식과 잘 익고 잘 거른 술로 베푸시는”(이사 25,6) 문화의 잔치 같습니다. 일찍이 해방 공간에서 백범 김구 선생은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富强)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 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 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라고 「백범일지」에서 고백한 바도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필리 4,12) 라고 고백하고 있거니와, 우리 민족 역시 한 세기 전 일제 식민통치를 받던 시절에는 노예 신세였고 반 세기 전에도 동족상잔의 전쟁으로 세계 최빈국 대열에서 뼈저린 빈곤의 나락에 떨어져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경제적으로도 세계 10위권에 들어선 부강한 선진국 대열로 올라섰습니다. 새로운 문화 잔치가 열리는 듯 합니다.
⒎ 한류 현상의 복음화 사명
천주교는 이 땅에 들어올 때부터 민중에게 교리를 전하기 위하여 당시 주류 사회에서는 천시받고 있던 한글로 교리를 표현하고 전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이벽 세례자 요한이 성교요지를 저술한 후에 4·4조의 천주가사체로 천주공경가를 만들었고, 이를 배운 정약종 아우구스티노는 천주실의를 한국 실정에 맞게 토착화시킨 주교요지를 한글로 썼으며, 최양업 토마스 신부는 이 주교요지를 천주가사로 만들어 교우촌에 보급하였습니다. 이러한 전통에 따라서 1906년에 창간된 경향잡지와 1960년부터 나온 소년잡지는 처음부터 한글로 쓰여진 까닭에 현재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한글 매체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천주교가 도입 초기부터 기울여온 이러한 한글 중시 노력에 더하여 세계로 퍼져나가는 한류에 복음적 가치를 담아야 할 때입니다. 한글에 우리 얼이 담겨 있고 천지인의 가치관을 담았다고는 하지만 단순히 한국 땅에서 생겨난 한류문화라고 해서 다 하늘의 뜻을 담은 것은 아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보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고 빈곤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서구의 부강한 선진국들의 발자취를 속절없이 뒤따라가 갈 일도 아닙니다. 그들 나라는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인류의 선두에 서 있지만, 세계 평화를 실현하는 데 기여하지 못하고 있으며 따라서 국제 분쟁에 휘말린 민족들의 행복에 기여하기는 커녕 불행을 초래한 데 대해 책임을 져야 할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나라는 그들의 모임인 G7(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카나다, 일본)에 들어가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우리 나라의 힘을 필요로 하는 '대체불가'의 나라가 되고자 하는 중입니다. 그들 나라의 대부분이 그리스도교 문화권에 속해 있다고 하지만, 근세 이후 그들이 보여준 발자취를 보면 전혀 복음적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나라가 반면교사가 된 그들 나라와는 다른 새로운 길을 걸어야 하는 것이고, 이것이 한류를 복음화시키고 복음화된 한류로 인류의 평화와 행복에 이바지해야 할 이유입니다. 게다가 우리 민족의 반쪽인 북녘은 아직도 끔찍한 가난과 지독한 독재로 신음하고 있는 엄연한 현실을 잊을 수도 없습니다. 전쟁이 오래 되어 휴전 상태로 반 세기 이상 지내다 보니 분단과 대치 상태가 상시화되어서 잊혀지는 게 아닌가 합니다만, 이것은 우리 세대 안에 하루라도 빨리 극복해야 할 엄연한 안보 위기 상황입니다.
교우 여러분!
하늘의 뜻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계시된 만큼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섭리가 담긴 문화가 한류에 담겨서 온 세상에 퍼져나갈 때 복음의 향기도 퍼져나가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문화의 복음화 노력이야말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바 혼인 잔치의 예복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한국의 문화 그리고 예술을 십자가와 부활의 신앙으로 승화시켜 표현하려는 가톨릭 문예 부흥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는 기본적으로 천주교의 교리와 역사를 알리거나 교세를 확장하려는 노력에 그치지 않고, 만만치 않았던 우리 민족의 처절했던 고난과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을 복음적 가치로 그려내는 노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가톨릭 문예 부흥을 향한 꿈입니다. 가톨릭 평신도, 특히 문화인, 예술인, 지식인들도 같은 꿈을 꿀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