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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우표 없는 편지 원문보기 글쓴이: 청풍명월
☪ 어디서 살 것인가.
중학교 때 미국에는 100층이 넘는 엠파이어스테이트라는 빌딩이 있다는 것을 배우고는 그 경이로움에 놀란 기억이 난다. 우리는 겨우 5층짜리 아파트가 세워지기 시작할 무렵이었으니 놀란 것이 당연했는지 모르겠다. 특히, 내가 다니던 남지중학교는 모래밭 위에 세워진 단층 짜리 건물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어디서 살 것인가》라는 이 책에서는 더 놀라운 것을 소개하고 있다. 1994년 터키 남동부에서 ‘괴베클리 테페’라는 신석기 유적지가 발견되었는데, 탄소 연대 측정 결과 기원전 1만 년∼8천 년경 건축물로 밝혀졌다는 것이다. 이는 피라미드나 스톤헨지보다 6천 년 이상 앞선 것이라고 한다. 신석기시대보다 앞선 시기를 구석시시대라고 하고 기원전 3만 5천 년∼기원전 1만 1천 년 사이를 말한다. 이때 인류는 알타미르 동굴벽화를 그렸다. 인간이 이제까지 동굴에서 살다가 동굴 밖으로 나와 짓기 시작한 최초 건축물이 바로 ‘괴베클리 테페’라는 것이다.
빙하기가 막 끝난 시기에 T자형 돌기둥을 가운데 세우고 주변에 돌을 쌓아서 벽을 둘러싸고 있는 이것은 집이 아니라, 장례식을 치르던 신전으로 추정되는데 돌 하나의 무게가 15톤 정도로 당시 불을 사용했으나 아직 바퀴도 없었고, 짐을 운반할 가축도 없었던 시기로 온전히 인간의 노동력만으로 지은 것이다.
괴베클리 페테
이런 건축물을 둘러보듯이 “이 책의 구석구석을 유영하고 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우리 자신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올 것이다. ‘과연 내가 살고 싶은 곳은 어떤 곳일까?’책을 통해 기준이 바뀔 수도 있고 혹은 더 단단해질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게 만들게 될 것이다.”라고 〈을유문화사〉는 출판사 리뷰를 통해 말했다.
그렇지만 8천 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괴베클리 테페 건축은 여러 가지 의문을 낳는다. 이때부터 인류는 정착 생활을 했을까? 그것이 장례 의식을 위한 것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모여 집단생활을 했을까? 정착해 생활하려면 지속적인 식량 공급이 필요한데, 이미 농업이 시작되었던 것일까? 그러나 이것은 농업이 시작되면서 지어진 것이 아니다. 건축물을 짓고 난 뒤에 농업이 시작된 것으로, 인간이 사후세계를 믿기 시작하면서 의식을 치르기 위해 괴베클리 테페 같은 신전을 지었고, 그러다 보니 농업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는 “종교적 신화를 공통으로 믿었기 때문에, 호모 사피엔스는 능력을 갖기 시작했다.”고 한 ‘유발 하라리’의 설명과도 일치한다.
괴베클리 테페 건축을 만든 사람들은 이제 인간이 동물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구석기시대 동굴벽화에서는 인간이 동물보다 작게 그려져 있으나, 테페 기둥에 새겨진 조각에는 인간이 동물보다 크게 조각되었다는 것이 그것을 말해준다. 동물을 길들여서 가축으로 기르고, 식물을 재배할 줄도 알게 된 것이다. 결국 건축이란 인류문명의 효시인 농업보다도 먼저 시작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 본능적 행위였던 것이다.
지금까지 서론이었다면,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첫장(제1장)은 「양계장에서 독수리가 나오지 않는다」로서, 우리나라 학교 현실을 진단하고 개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평등사회를 만들겠다는 목적은 숭고하나 방법이 잘못되었다고 진단하면서 한가지 예를 들고 있다. ‘만약 내가 5천 원짜리 햄버그를 먹는데 다른 사람이 1만 원짜리 수제 버그를 먹는다면 나는 기분이 나쁠 것이다. 똑같은 크기와 종류를 먹지만 가격만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1만 원짜리 수제 버그를 먹을 때, 나는 5천 원짜리 쫄면을 먹는다면 별로 기분이 나쁘지 않을 것이다. 서로 다른 음식은 각기 나름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다양성은 행복의 가치를 높인다.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밥을 먹고, 똑같은 학교 건물에서 생활한다고 해서 평등한 세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북한과 같은 전체주의 세상일 뿐이다’라고 저자는 힘주어 주장한다.
지난 30년을 돌이켜 보면 미국에는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마크 저크버그, 세르게이 브린, 알론 머스크와 조지 호처 등 걸출한 천재들이 배출되었다. 줄잡아 5년에 한 명씩이 등장한 셈이다. 이런 천재는 왜 미국에서만 나타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미국의 장점으로 꼽히는 ‘다양성’때문이다. 다양한 문화와 여러 종족들에 의한 충돌이 사고 패턴의 변종을 만들어 내기에 적합한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피부색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언어인 영어로 소통한다. 획일화된 공간은 어떤 천재들에게 창의성을 죽이는 공간이 될 뿐이다. 우리나라도 천재가 나오려면 다양한 교육과 더불어 다양한 종류의 주거 공간과 삶의 형태가 필요하다.
지난 40년간 학생 1인당 사용하는 실내 면적은 7배가 늘었다. 체육관, 식당, 강당, 도서관 같은 시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외 면적인 학교 부지는 늘지 않았다. 이는 학교가 고층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운동장 하나만 남겨놓고, 심지어 운동장을 줄여 4∼5층짜리 교사가 들어선 모습이다. 학교가 점점 고층화되면서 문제가 생겼다. 40∼50분 수업 후 10분을 쉬는데, 쉬는 시간 10분 동안에 화장실 가고, 운동장까지 내려가서 놀다 올라오기는 쉽지 않다.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도 교실에서 지낸다. 12년 동안이나 그랬다. 학교 건물은 저층화되어야 한다. 그래야 10분 쉬는 동안에 잠깐만이라도 바깥 공기를 쐬면서 하늘을 볼 수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 학교에는 그럴 여유가 없다.
그뿐이 아니다. 이미 2020년 우리나라는 혼자 사는 가구 비율이 30%를 넘어 600만 명이 넘었다. 10년 전만 해도 4인 가구가 가장 많은 주거 형태였지만, 지금은 1인 가구가 더 많다. 그렇게 된 데는 나이 들어 이혼과 사별로 혼자 된 가구가 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결혼하지 않는 청년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혼자 사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 아니라 이들 중 절반가량은 경제력이 약한 취약 계층이라는 게 문제다. 1인 가구로 사는 집은 작다. 집이 작다 보니 삶의 질이 떨어진다. 2020년 기준 우리나라 인구의 60% 이상이 골목도, 마당도 없는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10년 전은 아파트에 살면서도 4인 가구가 주류였다. 지금은 원룸은 물론 아파트도 1인 가구가 더 많다. 원룸에 갇혀 살고, SNS를 통해 사람을 만난다.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을 쳐다보며 산다. 부모와 같이 살면 친구를 초대할 수 없고, 원룸에 살면 공간이 작아 초대할 수가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편하게 앉아 이야기 나눌 수 없고, 한끼 식사비와 맞먹는 커피값을 지불하고서도 카페로 간다. 우리는 열심히 일해서 한평이라도 넓은 집으로 이사 가고 싶어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의 흐름은 거꾸로 1인 가구, 작은 집으로 향하고 있다.
전세계에서 땅값, 집값이 가장 비싼 곳은 뉴욕이다. 거기 사람들도 1인 가구가 많고 비싼 집세를 내고 살고 있지만, 그렇게 비참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고 한다. 왜일까? 뉴요커들은 아주 넓은 공유면적을 소유하며 살기 때문이다. 집은 작아도 일단 집을 나서면 센트럴 파크, 브라이언트 파크 같은 공원들이 촘촘히 박힌 곳이 뉴욕이다. 맨하튼은 10㎞ 이내에 10개의 공원이 있고, 공원 간 거리는 1.04㎞, 이동 시간은 13.7분이 걸린다. 반면에 서울은 15㎞ 내에 공원이 9개, 공원 간의 평균 이동 거리는 4.02㎞, 이동 시간은 1시간 1분이나 걸린다. 다시 말해 뉴욕은 13.7분 정도 걸으면 어느 공원이나 갈 수 있지만, 서울은 30분 걸어야 공원에 갈 수 있다. 30분 거리는 대중교통이나 자가용을 이용해야 한다. 거기에는 어떤 문제가 있을까?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문제가 있다.
도시의 찬란한 성과 뒤에는 어두운 그림자도 함께 하고 있다. 자본이 대형화됨으로써 건물의 크기도 점점 커졌다. 소외감을 느끼는 것이 굳이 상대적인 것만은 아니다. 교통수단은 더 빨라지는데, 걷기와 달리기는 그대로다. 우리는 주변의 빠른 속도에 주눅이 든다. 자동차를 탈 때는 빨리 이동할 수 있기 때문에 내 능력이 향상된 것처럼 느끼지만, 자동차 옆을 걷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차이만 더 커질 뿐이다. 하나의 기계처럼 돌아가는 도시 조직 내에서 인간은 소외될 수밖에 없다.
아파트 대단지화는 우리나라가 유별나다. 재개발된 아파트 단지를 보면 자동차는 모두 통합된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가 지상은 보행자와 녹지만 있다. 얼핏 보면 아주 살기 좋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파트 단지를 둘러싸고 있는 담장이 문제다. 유일한 입구가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한 곳뿐이다. 그냥 철옹성이다. 입구가 없으니 사람들은 바로 지하주차장으로 가서 차를 타고 나온다. 우리가 흔히 걷고 싶다고 하는 거리는 보통 1백m 사이에 30개 가량의 선택 가능한 가게가 있는 곳을 말한다. 나에게 선택권이 주어진다는 것은 어떤 권력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가게가 많은 곳에서 다채로운 경험을 얻게 되고 또 걷고 싶게 되는 것이다.
▢ 저자는 우리가 사는 도시는 억수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여행 갈 때 비행기 타고 가는 것과 기차 타고 가는 것만큼이나 차이가 있고, 다르다고 한다. 지역별로 나뉘어 지역감정을 유발하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 자동차 번호판에서 지역번호를 지웠고, 주소체계는 도로명 주소로 바꿨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 될 수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도시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예측 불가능한 골목길은 환경이 서식하는 갯벌과 같은 존재다. 반면에 재개발을 통해 지어진 대규모 아파트 단지는 간척지와 같다. 우리는 과거 새로운 땅을 만들기 위해 갯벌을 메우는 간척사업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자연의 보고인 갯벌을 메워 간척지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우매한 짓인지 다 알고 있다. 지금 도시는 갯벌과 같은 골목길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자연 발생적으로 만들어진 갯벌의 생태계처럼 오랫동안 사람이 살면서 만들어 진 골목길은 유지하고 보존해야 한다. 예전 모습을 유지하면서 고층 건물을 짓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골목길만은 유지하면서 동시에 고밀도 건물을 신축하는 지혜를 발휘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골목길을 유지하기 위해 자동차를 다 없앤다고 해서 예전의 놀이터가 되살아나거나 풍경이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골목길이 있는 곳에서 산다고 해도 옛날 농경시대 같은 공동체가 만들어지지도 않는다. 내 신분이 드러나는 골목길보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쇼핑몰과 공원 등 공공의 공간이 편안하게 느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새롭고 창의적인 사회적 공간의 플렛폼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로마는 천년 넘게 제국을 지켰는데, 왜 몽골제국은 150년을 넘기지 못했을까?’이런 생각을 해볼 때가 있다. 몽골은 역사상 가장 넓은 제국을 가졌던 대제국이었음에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몽골의 근간인 말(馬) 때문이라는 말에 공감이 간다. 말 때문에 초원을 떠날 수 없었고, 말로 인해 정복지에 지배력을 강화하지 못했기 때문에 제국을 유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몽골제국이 빨리 망한 것은 건축문화가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저자의 말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몽골제국은 피라미드나 콜로세움, 만리장성처럼 자신들의 세력을 과시하는 건축물을 짓지 않았는지 못했는지 남아 있지 않다. 먼 거리를 빨리 가는 데는 능했지만, 무언가를 남기는 데는 미숙했다. 무거운 건축물을 남기는 것이 제국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하지만, 그것은 고인돌을 보면 알 수 있다.
고인돌은 어떤 방법을 써서 만들더라도 수십 혹은 수백 명이 수십 일 또는 수개월 동안 힘을 합쳐야 만들 수 있는 건축물이다. 고인돌은 무덤이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상징물이다.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한 상징물, 피라미드, 지구라트, 만리장성, 스톤헨지…* 이것들도 주변의 다른 민족을 위협하고, 안으로 반란을 꿈꾸는 세력을 잠재우기 위해 만든 상징물이다. 고인돌은 일종의 무력시위의 상징이다. 이집트, 로마제국 등이 거대하고 무거운 건축물에 집착한 이유가 거기 있다.
영국 북부의 스톤헨지와 닮았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전혀 다른 모아의 석상*은 남태평양 칠레령 이스트 섬에 있다. 이것은 과시하기 위해 만들었다. 그러나 그 경쟁이 과해져 결국 망했다. 이 석상의 재료는 돌이다. 제주도가 화산 폭발로 만들어진 현무암인 것처럼 현무암으로, 채석장에서 옮기기는 쉬웠으나 옮기는 과정에 통나무가 필요했고, 삼림의 황폐화가 결국 멸망을 초래한 것이다. 나무가 부족해지자 카누를 만들 수 없었고, 바다에서의 사냥이 불가능하자 동족을 잡아먹기도 했다. 과시하려는 건축행위가 심해지면 문명은 망한다. 수양제의 과도한 수로 건설, 두바이의 부르즈 힐리파 등이 그런 예일지 모른다.
메소포타미아 유물의 상징 지구라트(바벨탑)와 고대 이집트의 상징인 피라미드는 벽돌과 돌이라는 다른 재료로 만들어졌지만, 외관상 거대한 산 모양의 건축물이다. 이렇게 큰 건축물을 지을 수 없는 부족은 자연을 종교적 근원지로 삼았는데, 대표적인 것이 이스라엘 민족의 시나이산이다. 유대교에서는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십계명을 받아 오는 것이 중요한 사건으로, 당시 유대인들은 이집트에서 탈출한 신세였으므로 어디 정착해 건축물을 지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거대한 건축물을 짓는 대신에 시나이반도 남단에 위치해 나무 한 그루 없는 돌산, 시나이산을 자신들의 성지로 삼았다. 신전이 없으니 조각상 대신 돌판에 10계명을 조각해 가마처럼 만든 성궤에 넣고 들고 다녔다. 유대교는 형상 조각을 우상으로 여기며 숭배하기를 금한다. 대신에 텍스트로 된 계명을 중요하게 여긴다. 유대인들은 계속 이동해야 하는 유목민이었기 때문에 한 곳에 무엇을 건축할 수 없는 상황이 반영된 것이다.
지구라트와 피라미드는 권력의 상징이며, 피라미드와 달리 지구라트 맨 꼭대기에는 성전이 있어 주변에서 수만 명이 신전을 바라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좌우 대칭인 자금성이나 마르세유 궁전도 같은 사례로 볼 수 있다. 높은 건축물일수록 멀리서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권력자들은 고층의 건물을 선호한다. 기원전 5세기에 세워진 최초극장 아테네의 대오니소스 극장의 무대는 관객의 시선을 집중적으로 받을 수 있는 공간이었고, 국민 누구나 배우가 되면 설 수 있는 자리였다. 누구나 권력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민주적이라는 말이다. 지구라트와 달리 아래를 내려다보는 이것은 왕이나 제사상이 아니라, 일반 국민도 언제든지 시선 집중을 받을 수 있게 해주고, 평등한 권력의 공간구조를 제공하는 민주주의의 발상지 역할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건축 역사 최초의 계단식 건축물은 지구라트로 성경 창세기에 바벨탑이라고 묘사된 이곳에서 야곱이 하느님과의 씨름에서 비겨 하느님으로부터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는다. 또한 야곱이 꿈을 꾸는데 사다리를 타고 하늘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사다리는 단이라는 것으로, 야곱이 꿈에서 본 것은 공중에 놓인 사다리가 아니라 신전인 지구라트 계단이라는 것이다. 지구라트 계단을 오르내린 것은 제사장들이다. 수메르 문명의 권력자들은 엄청난 정치력을 동원해 벽돌로 거대한 산 같은 지구라트를 만들고 거기 올라가는 계단을 만든 것이다. 꼭대기에 위치한 신전 공간은 신이 머문다고 믿으며 그곳에 올라갈 수 있는 사람은 제사장뿐이었다.
그렇다면 권력의 주체는 신인가? 제사장인가? 신은 우리가 볼 수 없으므로 자연스럽게 대변인인 제사장이 권력을 갖게 된다. 제사장은 신전을 건축해 준 왕에게 하늘에서 내려준 적통성을 부여한다. 신전을 통해 정치적 왕과 종교적 제사장이 상호인정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높은 곳은 권력을 창출하고, 그곳에 가게 해주는 장치인 계단이있다는 것이다. 계단을 장악한 사람이 권력자라고 할 수 있다. 지구라트를 지은 사람들은 계단을 통해 권력을 장악하고 그 권력을 통해 나라를 통치하는 힘을 만들어 낸 것이다. 권력을 상징하는 건축물에는 계단이 있다. 파르테논 신전이나, 자금성, 우리나라 법원과 검찰도 계단 위에 있는 건축물들이다.
앞에서 미국은 스티브 잡스, 빌 케이츠 등 걸출한 천재들이 5년 주기로 등장한다고 했다. 고대가 없는 미국의 근대는 어땠을까? 컬럼버스가 발견한 뒤로 고작 500년 남짓인 미국의 역사에서 어떻게 세계를 제패한 원동력이 생긴 것일까? 미국인으로 위인전에 나오는 이름난 부자들이 많다. 철도왕 벤드빌더, 석유왕 록펠러, 강철왕 카네기, 발명왕 에디슨, 자동차 왕 포드! … 이들은 부자여서 위대한 것일까. 아니면 위대해서 부자가 된 것일까? 이들이 돈을 버는 과정은 무자비함과 독과점이라는 폐단도 있었지만, 이들이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욕망과 투쟁으로 우리의 삶이 만들어졌고, 우리는 그들을 따라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선 가장 연장자인 벤더빌트는 이미 16세 때 1백 달러의 빚을 내 소형 페리선을 샀다. 이 작은 배로 큰돈을 벌었고, 결국 대형선단을 소유했다. 남북전쟁이 끝날 무렵 그의 재산은 지금 돈으로 82조 원 이르렀다. 그는 그 많은 돈으로 미국 전역에 철도를 깔아 철도왕이 되었는데, 마차에서 철도로 교통수단을 바꿈으로써 국가나 할 수 있는 일을 해냈다. 이 무렵 록펠러는 램프를 밝히는 등유를 팔고 있었는데, 벤더빌트가 록펠러에게 철도망을 이용해 전국에 등유를 판매하자는 사업을 제안했다. 흔쾌히 받아들인 록펠러는 물류를 등에 업고 재산이 눈덩이처럼 늘어났다. 록펠러의 사업 성장에 위협을 느낀 벤더빌트는 다른 등유업자를 키우면서 록펠러를 견제했다. 그러자 록펠러는 송유관을 설치했고, 승자는 록펠러였다. 벤더빌트가 죽고 아들이 사업을 물려받았으나, 3분의 1정도로 감소하는 사이 록펠러의 재산은 현 싯가로 250조가 넘었다.
이 시기에 떠오른 또 다른 사업가가 있었으니 카네기다. 이미 전국에 기찻길이 깔려있고 교량도 놓여 있었으나, 사용된 구조체가 주철이라는 연철이어서 무거운 기차가 감당하지 못하고 무너지기 일쑤였다. 강철을 만들기 시작한 이유다. 물론 포크나 나이프에 강철이 이용되기는 했으나, 강철레일은 아직 없었다. 과감한 투자로 2주 걸리던 레일 제작을 15분에 할 수 있게 했다. 강철은 레일뿐만 아니었다. 고층건물을 짓는 데도 이용되었다. 이에 편승해 오티스는 엘리베이터를 발명했다. 강철과 엘리베이터의 발명으로 1904년 근대 건축가 설리번은 H형강을 이용해 대형 백화점을 설계했고, 시카고, 뉴욕 등에 20층 이상의 건물이 줄지어 세워졌다.
이제 미국인들은 기차를 타고 멀리, 등유 램프로 불을 밝히고, 강철로 지은 고층 건물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 JP모건이란 금융회사는 이 무렵세워졌다. 요즘은 부실한 기업들을 인수 합병해, 직원을 정리해고하는 등 구조 조정으로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 일도 하지만, 처음에는 부자 되겠다는 꿈을 가진 사람들을 도우는 일을 했다. 모건이 주목한 사람이 에디슨이었다. 에디슨의 전구가 등유 램프를 대신할 것으로 예상한 모건은 자신의 집에 최초로 전등을 설치했다. 그러나 둘에게는 위기도 있었다. 에디슨 회사의 사원이던 니콜라 테슬라가 에디슨의 직류 전기에 반발해 교류 전기 시스템을 들고나왔기 때문이었다. 테슬라는 따로 웨스팅하우스의 투자을 받아 사업을 성공시켰다. 에디슨의 사업이 위기에 처해 막을 내리려 할 무렵에 천재적인 발상을 한 인물이 모건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수력발전으로, 나이아가라폭포의 엄청난 수량을 이용해 전기를 만들면 미국 전역을 밝힐 수 있다는 발상이었다. 이제 등유는 가고, 에디슨과 모건이 합친 직류 발전 시스템과 테슬라와 웨스팅하우스가 합친 교류 발전 시스템의 대결로 압축되었다. 결과는 교류 발전 시스템이 승리하였다. 사업권 획득에 실패한 모건은 에디슨의 주식을 전부 사들이고는 제너럴 엘렉트릭이라는 교류 전기회사를 설립했다. 수력발전과 교류전기 시대가 열린 것이다.
고래잡이를 해서 나온 기름으로 불을 밝히던 것을, 땅에서 파낸 석유로 등유를 만들어 큰돈을 번 록펠러는 교류전기와 전구라는 신기술의 등장으로 위기에 봉착했다. 사람들은 이제 불을 밝히기 위해 기름을 사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록펠러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 등유를 더 정제한 휘발유를 개발했다. 휘발유를 이용한 내연기관 사업이 생겼기 때문이다. 기름은 더 이상 불을 밝히는 것이 아닌, 기계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이때 등장한 사업가가 헨리 포드다. 포디즘이라는 조립식 생산라인으로 하루에 자동차를 열다섯 대씩 만들어 냈다. 포드의 소꼽친구 윌리엄 할리와 아서 데이비슨은 자전거에 내연기관을 단 오토바이를 만들었고, 포디즘을 이용하여 허시는 초콜릿 공장을 만들었다. 이들이 만든 라이프 스타일은 백 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자본주의 역사가 길어질수록 빈부격차가 큰 사회적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어느 시대든 부자는 있었고, 가난한 사람도 있었다. 문제는 가난한 사람도 부자가 될 수 있는 사다리가 없다는 데 있다. 건강한 사회는 ‘계급 이동 사다리’가 있어야 한다. 우리도 그 사다리를 광고 하고는 있다. 코리안드림이 그것이며, 대표적인 사다리 광고는 아메리칸 드림이다. “네가 노력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고 하는 아메리칸 드림은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마크 주커버그, 일론 머스크 등 수많은 인재를 낳았다. 중국에도 알라바바의 마윈이 있고, 우리도 정주영, 이병철 같은 성공 케이스가 있었다. 이건희 회장도 훌륭했지만, 이병철 같은 아버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기에 보통 사람의 희망이 되기는 어렵다.
세상은 하루 같이 변화하고, 크게 변할 때마다 어떤 기폭제가 있었다. 유발 하라리는 농업혁명에서 과학혁명으로 바꾼 시점을, 이 책의 저자는 보일러의 발명 이전과 이후로, 어떤 학자는 컴퓨터 활용 이전과 이후로, 생명공학에서는 DNA라는 개념이 정립된 이전과 이후로 나눈다. 1953년 왓슨과 크릭이 밝힌 DNA는 생명의 설계도가 이중나선형 구조인 아데닌과 티민, 구아진, 시토신 등으로 되어 있다고 한 것으로 학자들은 이 발견이 생물학의 프레임을 에너지와 물질에서 정보로 전환 시켰다고 한다. 이전의 생물학이 화학적 물질의 합성과 변형으로 이해되었다면, DNA 구조로 밝혀진 생명은 정보의 결과물로 인식되었다는 것이다. 미술에서는 이미 1960년대 백남준을 비롯한 작가들의 비디오 아트가 물질 세상에서 정보세상으로 옮겨진 바 있다.
2006년, 1,202개의 CPU를 병렬로 연결한 컴퓨터 알파고가 이세돌과의 바둑에서 이겼다. 인간의 뇌신경도 직렬이 아닌 병렬로 연결되어 있어서 매우 효율적으로 작동한다. 하지만 인간의 뇌는 다른 사람과 연결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인간은 언어를 개발했고, 문자를 발명했다. 아마 앞으로 5년 혹은 10년 안에 증강현실 기술을 통해 인간과 컴퓨터가 연결될지 모른다. 더 놀라운 것은 인간과 인간이 강하게 연결되는 세상이 온다는 것이다. 그때는 어떻게 되는 걸까? PC 수준의 컴퓨터를 병렬로 연결해도 수퍼컴퓨터가 되듯이 개인의 머리는 별 볼 일 없더라도 서로 연결되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처음에는 두려움을 느끼고 피할지 모르지만, 서로 연결된 사람들이 모든 것을 분석해 증권투자에서 큰 수익을 올리고, 정확한 의료진단과 행정업무까지 수행하게 된다면, 너도나도 네트워크를 만들려고 할 것이다. 지금도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해 동창회, 로타리클럽, 라이온스클럽, 동호회에 나가고 있듯이 그때쯤은 거기에 더 많은 사람이 모일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미래학자들은 향후는 국가 대 국가의 대결에서 국가 대 다국적기업의 대결로 옮겨 갈 것이라고 한다. 점점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기업과 그것을 통제하려는 국가의 대립이 될 것이라는 말이다.
도대체 앞으로의 미래는 어떻게 되어갈까? 몇 년 전 구글의 부사장이 중국에 가서 영어로 이야기하는데 중국어로 동시 통역되는 통역기를 사용한 적이 있다. 이런 시스템은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기술을 통해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모든 사람이 자신의 언어로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세상이다. 더이상 외국어를 배우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된다. 기계끼리 언어 통합, 음성인식, 동시통역이라는 세 가지 기술이 완성되면, 기계와 기계, 기계와 인간, 인간이 하나로 연결되는 소통의 고리가 완성될 것이다. 중추신경계의 완성이다. 전문가들은 이것이 완성되는 시기를 2025년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때 세상은 유토피아가 될지, 모든 인간이 기계에 일자리를 빼앗기는 암울한 시대가 될지는 예측할 수 없다. 그렇지만 우리의 라이프 스타일은 바뀔 것이 분명하다.
벽(壁)은 안과 밖을 나누는 구조물인 동시에 공간을 구분 짓기도 한다. 베를린 장벽, 휴전선 장벽,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장벽, 트럼프 대통령의 멕시코 국경 장벽 등은 방안 혹은 대문의 담장 벽과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 특히 휴전선 장벽은 다른 어떤 장벽보다 특이하다. 양쪽에 4㎞의 비무장지대라는 공간을 만들어 철책까지 치고 있는데, 이는 보는 것뿐 아니라 소리도 들리지 않게 격리한다. 콘크리트나 벽돌로 세운 벽보다 빈 공간이 있는 벽은 둘 사이를 더욱더 단절시킨다. 자연에는 담장이 없고 동물은 벽을 쌓지 않는다. 인간만이 정치적이나 종교적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선을 긋고 벽을 세우고 공간을 나눈다. 이런 인위적 벽은 언젠가 없어져야 할 선이다.
생명체는 처음에 순환계로부터 시작해 신경계로 진화 발전한 뒤, 중추신경계까지 발전했다. 지금의 영장류는 이런 단계를 거처 오늘날의 모습으로 진화했다. 이렇듯 건축에서 로마의 상수도는 동맥 네트위크, 파리의 하수도는 정맥 네트위크, 뉴욕의 통신망은 생명체의 신경계에 비유되기도 한다. 우리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발전을 경험했다. 신경계가 진화한 모습과 같다. 도시를 생명체의 진화단계로 본다면 중추신경계가 완성되기 직전이라고 볼 수 있다. 도시의 중추신경계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으로 불리는 IoT와 5G기술이다. 현재도 자동차 공장의 조립라인 등에는 자동화 기계로 움직인다. 하지만 기계들은 모두 다른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언어를 사용한다. 우리가 외국인과 말이 안 통하는 것처럼 기계끼리도 말이 안 통한다. 그래서 자동통역기처럼 기계끼리도 말이 통하도록 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모든 기계가 서로 소통하는 것이 IoT 기술의 목표다. IoT는 기계에 컴퓨터를 부착하는 것으로 이 기술이 완성되면 기계끼리도 소통하게 된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기계와 인간이 소통하는 시대가 열릴 것이다.
건축과 인간관계에 대해 여러 가지를 살펴보았다. 인간의 기술이 발전하고 자본과 권력의 구조가 커지면서 모든 것이 커졌다. 그중에는 다리도 커지고 배도 커졌다. 멀리 떠 있는 배는 점이고, 징검다리는 점선이라면 지금의 다리는 실선이다. 강이나 바다의 이편과 저편은 실선이 연결한다. 청계천 수표교와 살곶이 다리를 만들던 시절을 거쳐서 한강에는 콘크리트 교각으로 만든 한남대교, 영동대교, 마포대교 등이 31개나 있다. 과거의 징금다리, 수표교는 물 바로 위를 건넜다면, 지금의 대교들은 수십 미터 위를 지나는 경험을 준다. 너무 높고 길어서 비인간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현대식 다리는 다리 밑에 너른 공간을 준다는 점이다.
이런 공간은 주인이 없어므로 거지들이 살곤 했는데, 지금은 더위를 식혀주고 운동을 하기에 아주 좋다. 과거에 건축된 석굴암, 무량수전, 고딕 성당, 수표교 등은 중력을 이겨내려는 인간의 노력이 엿보인다는 점에서 감동을 준다. 건축에는 감동이 있다. 한남대교를 받치고 있는 수십 개의 콘크리트 교각은 이집트 신전의 돌기둥처럼 나름대로 감동이 있다. 성당이나 절처럼 기도와 명상을 부르는 공간이기도 하다. 다리 위도 특별함을 주는데, 강과 하늘의 중간에 떠 있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한강 대교 위에서 차도를 등지고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개인적인 체험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저자는 결론적으로 ‘맺는 글’에서 “건축은 단순히 나약한 몸을 지키기 위한 둥지의 기능을 넘어서 새로운 개념인 대규모 사회를 만들어 내는 장치로서 진화한 것이다. 덕분에 인간사회의 규모는 점점 더 커졌다.”고 하고 “우리는 원시시대부터 역사시대까지 난방과 취사가 같이 이루어진 시대를 살다가 1960년대에 석유난로가 도입되면서 취사와 난방이 분리되었다. 그리고 1970년대에 와서 2층 양옥집을 지을 수 있게 되었다. 온돌을 사용하지 않은 유럽은 우리보다 수백 년 앞서 고층 주거로 도시화가 정착된 것”이라고도 했다.
《어디서 살 것인가》는 질문을 던지는 책 제목이다. 그 질문이 이사 갈 집을 고르는 정도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질문은 객관식이 아니라 서술형 답을 요구한다. 그리고 정해진 답은 없다. 그냥 써나가는 것이 답이다. 채점도 하지 않는다. 스스로 공간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가? 하고 자문할 뿐이다. 우리는 우리가 살 곳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