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 / 김 정 순
개울가 너럭바위에 앉아 빨래를 한다. 첫아이를 낳았을 땐 시어머님이 도랑에 나가 손주 기저귀와 내 옷가지를 빨아 주셨는데 지금은 내가 당신 옷을 빨고 있다. 아기였던 아들이 아이 아빠가 되었다. 이십 대였던 나도 예순을 바라본다. 언제까지나 곁에 머물 것처럼 정정하던 당신이셨다. 바쁘게 내닫는 물줄기가 우리네 모습을 떠올린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빨래를 넌 뒤 방에 들어가 시어머님을 깨운다.
“어머니, 점심 드세요.”
부스스 일어나 앉더니 곰국 한 대접을 순식간에 다 드신다."국맛 어떠세요?"
“꿀맛이다. 근데, 넌 왜 여기 있냐?"
묻고는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눕는다. 시어머님을 모시고 있던 둘째 시누이가 며칠간 집을 비워 이곳에 와 있다. 늘 멀리 떨어져 지내던 내가 당신 옆에 있는 게 이상한가 보다.
시어머님은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은 뒤로도 건강한 사람처럼 작은 시누네 농사일을 거들며 지내셨다. 통증으로 괴로워할 당신이 걱정돼 안부전화를 하면 “나는 잘 있다. 너희도 잘 있재?" 일부로 목청을 더 높이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목소리 톤이 밝고 힘찼다. 두어 달 전 함께 동네 길을 걸을 때만 해도 발걸음이 나보다도 더 빠르고 씩씩해 오진이 아닌가 싶었다. 늦가을까지 몸을 아끼지 않고 놀리시더니 겨울이 오자 자리에 누우셨다.
암은 통증이 심하다는데 시어머님은 식사도 잘하고 잠도 잘 잔다. 어디 아픈 데는 없느냐고 물으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듯 쳐다본다. 걱정할까 봐 안 아픈 척하는 건 아닌가 싶어 눈여겨보지만, 일부러는 저런 표정을 못 짓지 싶게 편안한 얼굴이다. 이렇다 보니 '병원'이란 말을 꺼내는 사람이 없다. 누구나 건강하게 살다가 고통 없이 가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게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 어쩌다 당신은 이런 복을 누리실까. 편안히 주무시는 시어머님을 지켜보고 있을 때 퍼뜩 답이 떠올랐다. '맞아, 화를 안 내서 그래' 시어머님은 착한 천성 때문인지, 화가 무익하다는 걸 터득하신 건지 얼굴 붉히는 모습을 한 번도 보이지 않았다.
당신이 마지막까지 지켜 온 남은 재산을 큰아들이 하나 둘 팔아 엉뚱한 일을 할 때도 잠자코 지켜만 봤다. 반평생 몸담았던 집에서 쫓겨나듯 나설 때도 입을 닫았다. 이번에는 불호령이 떨어지겠지, 하는 내 짐작은 늘 빗나갔다. 화를 안 내는 건지, 못 내는 건지, 어떤 날은 그런 시어머님이 답답하기도 하였다. 세상에 화낼 줄 모르는 사람이 있겠는가. 당신은 '범사에 감사하라'라는 말씀이 몸에 밴 듯 감사하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셨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을 보면 그를 안다고 하지 않던가. '감사'라는 무기로 화를 물리쳤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주기만 하던 시어머님이 아기같이 되어 도움을 받고 있다. 시어머님을 통해 우리가 어떤 존재인가를 깨달으라고 신이 주신 시간이 아닐까? 순전히 기쁜 마음으로 밥을 지어 올리고 잠자리를 살피고 옷을 갈아입혀 드렸다. 어쩌면 당신에게 해드릴 처음이자 마지막 효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철없는 며느리를 철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이레를 함께 지냈다고 집으로 올 때는 마음이 가벼웠다.
보름 뒤 시어머님이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여전히 깊은 잠을 주무셨다. 지켜보던 식구들이 하나 둘 자리를 뜨자 방엔 나와 당신 둘만 남았다. 나는 눈을 감고 그 곁에 누웠다. 시어머님의 고른 숨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당신의 숨소리를 따라 숨을 쉬기 시작했다. 내쉬고 들이쉬고 내쉬고 들이쉬고…. 하나로 포개진 두 사람의 들숨과 날숨이 고요한 방안을 감돌았다. 어느 순간 시어머님의 박자가 조금씩 늦어졌다. 잘못 들었나 싶어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호흡을 맞췄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당신의 숨결이 내 숨소리보다 느려지고 있었다. 밖에서 서성이던 식구들을 불러들였다.
우리는 시어머님의 머리맡에 둘러앉았다. 저마다 숨을 죽이고 서서히 사라져가는 숨결을 지켜봤다. 짧고도 긴 침묵이 흘렀다. 마지막 바람 한 줄기가 코를 살며시 빠져나가자 입을 살짝 다무셨다. 엄마 젖을 실컷 먹은 아기가 입에 물고 있던 젖꼭지를 놓고 잠이 든 듯했다. 영과 육의 분리가 이처럼 아름다울 수도 있는가? 내가 지금껏 알던 영과 육의 분리는 고통스러운 것으로 두려움 자체였다. 감동으로 가슴이 물결쳤다. 이미 숨이 빠져나간 시어머님의 얼굴에서는 저녁노을 같은 평화로움이 묻어났다. 뭔가 모를 따스한 기운이 우리를 감쌌다. 나는 시어머님께 받은 특별한 사랑으로 통곡이 터져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그 순간 당신처럼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서쪽 하늘이 마지막 빛을 거둬 가면 여기저기서 친구 부르는 소리가 허공을 떠다녔다. 그때까지 조금이라도 땅을 더 차지하려고 눈에 불을 켜던 아이들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손을 털고 집으로 갔다. 시어머님도 하늘에서 당신 이름 부르는 소리를 듣고 가신 게 아닐까. 놀빛처럼 고운 얼굴을 보며 당신의 영혼이 돌아갔을 어느 곳을 그려본다.
잠든 사람이 기척이 없을 때 우리는 왜 손이나 얼굴을 코에 갖다 댈까. 여든일곱 해를 시어머님의 육신에 깃들다가 살며시 빠져나가던 숨결, 그 숨결이 진짜 당신이 아닐까. 시어머님의 몸을 빠져나갔던 숨결은 어디로 갔을까.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었다는 성경 구절이 그 답인 양 가슴에 와닿는다. 어느 한날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면 내 숨결도 어딘가로 날아오르리라. 나는 숨결인가, 생기인가, 아니면 흙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