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15일 수요일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이 영근 신부
제1독서; 로마2,1-11 <하느님께서는 먼저 유다인에게 그리고 그리스인에게까지 모든 이에게 그 행실대로 갚으실 것입니다.> 복음; 루카11,42-46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 율법 교사들도 불행하여라!>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42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는 십일조를 내 면서, 의로움과 하느님 사랑은 아랑곳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십일조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지만, 바로 이러한 것들을 실천해야 한다.43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회당에서는 윗자리를 좋아하고 장터에서는 인사 받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44 너희는 불행하여라! 너희가 드러나지 않는 무덤과 같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 위를 밟고 다니면서도 무덤인 줄을 알지 못한다.”45 율법 교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 그렇게 말씀하시 면 저희까지 모욕하시는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46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 율법 교사들도 불행하여 라! 너희가 힘겨운 짐을 사람들에게 지워 놓고, 너희 자신들은 그 짐에 손가락 하나 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언행의 불일치> 예수님께서는 어제 복음에서 정결법의 정신이 사랑에 있음을 밝혀주셨습니다. 이어서 여섯 가지의 예를 들어가면서 바리사이들과 율사들에게 불행 선언을 통하여 신랄하게 질타하십니다. 그러나 이 질책은 저주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회개에로 부르는 더 강력한 요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그 중에서 바리사이들에 대한 불행 선언 세 가지와 율법 교사들에 대한 불행 선언 한 가지입니다. 첫째는 십일조에 대한 바리사이들의 형식주의와 맹목적인 태도를 질타하십니다.
구약의 레위기(27,30-33)와 신명기(14,22-29)에는 곡식, 포도주, 기름과 같은 주요 농산물과 가축에 대한 십일조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리사이들은 그것을 아주 사소한 것에까지 세분화하였고, 심지어는 땔나무까지도 십일조를 바치도록 했습니다.
그들은 규정 이상으로 열성적이고 철저하고 엄격했던 반면, 율법의 정신인 의로움과 하느님 사랑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루가 11,42). 이에 예수님께서는 단지 질책하시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을 실천할 것을 강력히 요청하십니다.
“십일조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지만, 바로 이러한 것들을 실천해야 한다.”(루카 11,42)
이는 예수님께서 철저한 율법 준수를 부정하신 것이 아니라, 율법을 지키는 만큼 율법의 정신에 대해서도 철저히 하라는 요청입니다. 산상설교에서도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마태 5,20)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율법 준수를 질책하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정신이 결여된 율법 준수를 질책하시며, 동시에 율법의 정신을 실천하라고 요청하십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파괴자가 아니라 율법을 완성시키시는 분이셨습니다(마태 5,17 참조).
둘째는 “너희가 회당에서는 윗자리를 좋아하고 장터에서는 인사받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루카 11,43) 고 질타하십니다. 바리사이들의 두 가지 면모, 곧 '회당에서 높은 자리를 찾는' 교권적 교만, 특권적 우월의식, 과시욕과 '장터에서는 인사받기를 좋아하는' 세속적 명예욕입니다.
셋째는 바리사이들을 “드러나지 않는 무덤과 같다”(루카 11,44)고 질타하십니다. 구약의 <민수기>(19,16)에서는 무덤에 닿으면 칠일간 부정하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유대인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도록 무덤에 회칠을 하여 부정을 범하지 않도록 배려했습니다. 그런데 바리사이들은 ‘드러나지 않는 무덤, 곧 표시하지 않는 무덤’처럼, 자신들의 부패를 눈으로 볼 수 없도록 은폐시키고 사람들을 그릇된 길로 인도했던 것입니다.
넷째는 율법 교사들에 대한 첫 번째 불행 선언입니다.
“너희 율법교사들도 불행하여라! 너희가 힘겨운 짐을 사람들에게 지워놓고, 너희 자신들은 그 짐에 손가락 하나 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루가 11,46)
언행의 불일치에 대한 질타입니다. 그들은 율법보다도 율법에 대한 자신들의 해석을 존중했고, 더구나 그것을 지나치게 세분화하여 모세의 율법 외에도 613개의 규범을 지키게 하였습니다. 결국 그들은 율법을 가르치면서도 자신들은 율법을 실행하지 않고, 다른 이들에게 짐을 지웠던 것입니다.
사실 바리사이와 율법 교사들은 그 당시의 종교적 길잡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죄악은 자신뿐만 아니라 그 가르침을 받은 많은 사람들까지도 파멸로 인도하였던 것입니다. 이는 오늘 우리에게 참된 신앙인이요, 신앙의 참된 길잡이로 살아가라는 강력한 경각심을 일깨워줍니다. 아멘.
<오늘의 말 · 샘 기도>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 의로움과 하느님의 사랑은 아랑곳하지 않기 때문이다.”(루카 11,42) 주님! 제가 행복하지 못한 것은 당신을 믿으면서도 의로움과 사랑을 행하지 않는 까닭입니다. 불의와 부패, 무관심과 냉대 속에 행복이 있을 수 없는 까닭입니다. 하오니, 주님! 오늘 당신의 의로움과 당신의 사랑을 행함으로 진정한 행복을 얻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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