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이비박스로 2146명의 목숨을 지켜온 주사랑공동체교회 이종락 담임목사. 사진=투데이코리아 DB
투데이코리아=김시온 기자 | “베이비박스는 아기의 목숨뿐만 아니라 아기의 부모, 그리고 나아가 가정을 지키기 위한 것”
지난 4일 <투데이코리아>가 서울시 관악구 소재 주사랑공동체교회에서 만난 이종락 담임목사는 이같이 덤덤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아이들이 위태롭게 집앞에 놓여져있는 것을 보고 2009년에 처음 베이비박스를 설치했던 이 목사는 지금까지 2146명의 신생아 목숨을 안전하게 지켜내며 사회의 따뜻한 보금 자리 역할을 자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베이비박스를 설치하게 된 계기에 대해 “지금은 하늘나라로 떠난 나의 아들이 새로운 아이들을 나의 품으로 보내줬다”고 운을 뗐다.
이 목사의 친아들은 임종을 앞두고 약 14년 동안 A 병원에 입원해 있었고, 그런 아들을 돌보기 위해 병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고 한다.
이때 일면식도 없는 한 할머니가 이 목사를 찾아와 본인의 손녀 B양을 맡겼고, 해당 사건이 그의 ‘생명 보호 활동’ 시작으로 볼 수 있다. 부모의 보살핌 없이 방치에 가까운 상황에 놓여있던 B양은 이 목사에게 맡겨질 당시 전신마비를 앓고 있었는데, 이후 휠체어를 타고 에 정기 점검 다닐 정도로 쾌차했다고 한다.
이를 본 A 병원 원장은 이종락 목사에게 ‘부모의 실종 등으로 B양과 같이 방치에 가까운 상황에 놓인 아이가 우리 병원에 4명 더 있는데, 장기간 병원비 미납 등으로 이 아이들을 더 돌보기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이 목사에게 4명의 아이를 부탁했다. 이를 받아들이자 집과 교회 주변에 아기를 두고 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회상했다.
▲ 이종락 목사가 직접 만든 한국 최초 베이비박스. 사진=투데이코리아DB
특히 그는 베이비박스를 설치하게 된 직접적인 사건에 대해 “내가 아이들을 책임진다는 소문이 나면서 집 주변에 아기를 두고 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는데, 지난 2007년 생선박스 안에 담긴 채 교회 앞에 유기된 아기가 목숨이 위태롭게 발견되는 일이 생기면서 베이비박스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됐다”고 언급했다.
그렇지만 베이비박스를 설치하는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이종락 목사는 “해당 사건이 발생한 뒤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유기되는 아기를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도록 작은 방을 만들고자 관악구에 전화해 문의했으나 용적률 등의 문제로 허가가 나지 않았다”며 “외신 보도를 찾아보던 중 체코의 베이비박스에 대해 알게 됐고, 수입을 위해 여러 차례 연락을 취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고 했다.
결국 그는 주변인들의 도움을 받아 직접 냉장고를 개조해 1호 베이비박스를 만들어 냈다고 전했다.
1호 베이비박스에는 아기의 체온 유지를 위한 보온장치와 아기를 살펴볼 수 있는 카메라, 그리고 아기가 베이비박스에 들어오면 경고음이 울리도록 하는 센서 등이 부착됐다.
▲ 베이비박스와 베이비룸을 운영하고 있는 주사랑공동체. 사진=투데이코리아 DB
이러한 베이비박스를 처음 만든 이종락 목사는 최근 아기를 두고 가는 주요 연령대가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에는 10대가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두고 가는 경우가 가장 많았는데, 최근에는 30대 엄마가 아기를 베이비박스에 두고 가는 비중이 가장 커졌다”고 했다.
이 같은 주요 연령대 변화는 베이비박스를 찾게 된 이들의 사연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이종락 목사는 설명했다.
이 목사는 “과거에는 베이비박스를 찾는 이들의 절반 이상이 10대 미성년자들로 사회적 시선과 학업 등의 이유로 찾아왔는데, 최근에는 외도 등으로 생긴 아기를 데리고 오는 30대가 급증했다”며 “비율로 본다면 과거에는 5:5에서 10대 미성년자가 조금 더 많았지만 최근에는 10대가 30%가량, 나머지 6~70%는 외도”라고 했다.
그는 이 외에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두고 가는 이유로 선천적 장애나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아기, 외국인노동자 등이 주를 이룬다고 전했다.
이종락 목사는 베이비박스를 찾아오는 이들을 향해 “아기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 끝까지 지킨 부모”라고 말했다.
이 목사는 “아기를 책임지지 않으려는 마음이라면 베이비박스까지 굳이 찾아올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이곳까지 찾아오는 부모는 정말 아기를 사랑하고 생명을 끝까지 지켜내려는 것”이라면서 “미성년자의 경우 성인이 될 때까지만 아기를 맡아달라고 부탁하고 이후 다시 찾아가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또 이종락 목사는 베이비박스를 찾아온 부모와 상담을 통해 아기와 부모가 떨어지지 않도록 지켜낸 사례도 다수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두는 부모 중 근친 등 특수한 상황을 제외한 98%가량은 상담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다시 아기를 데리고 돌아가는 부모도 많다”면서 “우리 주사랑공동체에서는 베이비박스 외에도 아기를 양육하기 어려운 형편에 놓인 가정을 지원하는 일도 하고 있다”고 전했다.
▲ 주사랑공동체 내부. 사진=투데이코리아 DB
베이비박스가 외부에 노출돼 있다는 점에서 문을 열기 어려워하는 이들을 위해 이종락 목사는 지난 2014년부터 ‘베이비룸’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베이비룸은 침대와 소파, 화장실 등을 갖춰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안전하게 아기를 맡길 수 있도록 작은 방을 만들어 아기를 보호하는 시설이다.
이러한 시설들을 만드는 등의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이종락 목사는 아기들의 생명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법과 행정 그리고 복지가 갖춰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입양특례법이 개정되면서 출생신고를 해야만 입양 보내는 것이 가능하다고 정했졌는데, 이것이 오히려 사각지대를 만들어냈다”면서 “10대 출산이나 근친 출산, 이혼 후 300일 이내에 태어난 아기, 외도, 불법체류자 등이 사각지대에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인구가 무너지면 교육이 무너지고, 교육이 무너지면 국방이 무너진다. 그리고 이는 곧 경제와 산업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면서 “지금과 같은 저출산 시대를 극복하기 위해선 사회 인식의 제고가 필요하고, 태어난 아기의 소중한 생명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 목사는 “베이비박스에 아기가 들어오지 않아 사라져도 될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면서 “주사랑공동체가 베이비박스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모든 분에게 정말 감사하다”고 말하며 인터뷰를 맺었다.
김시온 기자 artistxion@todaykorea.co.kr
출처 : 투데이코리아
원본 : https://www.today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83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