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절암(혹은 칠절사)는 백제시대에 처음으로 창건된 사찰로 알려져 있으나 정확한 사찰의 역사는 알지 못한다. 다만 강희(康熙, 1662-1722) 년간에 사용되었던 연호가 새겨진 조선시대 기와편이 발견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구절암(혹은 칠절사)는 늦어도 1662-1722년 사이의 어느 시기에 조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함께 구절암의 사력을 알려주는 사찰의 중건기(불기 2512년 작성)가 있다.
이 중건기에 의하면 보개(寶蓋)는 여래(如來)라는 부처의 명칭에서 유래하는데, 이곳에 조영된 구절암은 백제시대에 처음으로 창건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세월이 흘로 폐허가 되다시피 절의 흔적만 남아 있었는데, 주지 조만호가 개창할 때 신도회장 김상갑(金上甲)과 협력하여 서울 답십리에 사는 김영상(金永商)의 회사에 의하여 절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구절암 오르는 길
구절암 입구
구절암 약수
구절암 마애불
구절암 마애불
문화재자료 제361호
마애여래좌상은 보개산 남쪽으로 솟아 오른 바위면의 동남쪽에 불상을 조각할 부분만을 다듬은 뒤에 선각으로 앙연좌의 대좌를 새기고 그 위에 좌상의 마애불을 새긴 것이다. 높이는 대략 320cm이고 얼굴높이는 130cm이며 신체부위는 190cm이며, 폭은 190cm로서 마애여래좌상으로는 큰 편에 속한다.
구절암의 마애여래좌상은 전체적으로 얼굴 부분을 제외하고는 선각으로 처리하였다. 마애불의 얼굴은 신체에 비하여 매우 크게 표현하였는데 선각으로 소담스럽게 처리한 육계와 소발은 간결하면서도 인자하게 표현하고자 한 부처의 상호와 잘 어울린다. 아울러 얕지만 돋을새김의 방법을 사용한 상호는 마애불에서 가장 역점을 둔 부분이기도 하다. 이마에는 뚜렷하고도 깊게 백호를 표현하였으며, 그 밑으로 인중 부분은 깊게 조각하고 끝으로 갈수록 얕게 표현한 반원횽의 눈썹이 아름답다. 눈은 코와 붙여 조각하였는데 좁고 길게 치켜뜬 모습이지만 초리를 살짝 내리고 있어 근엄함보다는 인자함을 보이고자 노력하였다. 코는 좁은 인중 아래로 밑부분을 매우 넓게 표현하여 뭉툭한 모습이지만 본 마애불의 표현 가운데 가장 돋을새김이 강한 곳이다. 살짝 다문 듯한 입은 적당한 두께의 입술과 얼굴의 비례에 잘 어울리면서 전체적인 상호의 모습과 함께 인자함을 더하고 있다. 귀는 백호의 위치애서 목부분까지 표현하였다. 전체적으로 근엄함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인자함을 갖춘 부처님의 상호이다.
구절암 돌탑
구절암 대웅전
구절암 대웅전
구절암 요사채
구절암 산신각
구절암 산신각내 산신탱화
구절암 부도
구절암에서 바라다본 전경
구절암 찾아가는 길
홍성 시내에서 21번 국도의 넓은 길을 따라 광천 쪽으로 신나게 달린다. 홍성남부우회도로를 따라 구황농공단지와 학계야영장을 지나고 구황농협창고에서 우회전하면 편도 1차선의 농로와 만나게 된다. 이곳에서 조금 가면 대정초등학교가 나오고, 이곳에서 우회전하여 지석마을을 따라가다가 1lm 정도 가면 지석마을회관이 나온다. 여기서부터 1.3km 정도 꼬불꼬불한 농로를 지나간다.
첫댓글 자료 담아갑니다.
다음주 일요일 사찰 순례 갈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