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 3 - 춤사위
보개산 산등성에 짙붉은 노을 지면 사계절 변신하여 함께 흐른 낙동강이 제 몸을 발갛게 풀어 새끼 뱀을 낳는다. 뱀은 뱀들끼리 삼오삼오 모다 모여 가로등에 자동차에 고층빌딩 빼곡하네. 길가에 곧추서서 왕방울눈 부릅뜬 놈, 붉은 반점 깜빡이며 일렬로 달리는 놈, 층층이 똬리를 틀어 고공으로 앉은 놈….
어둠이 짙을수록 빛이 더 빛나는 세상. 몸통에서 튕겨 나온 꽃뱀의 비늘들이 스스로 반짝이려면 춤동작이 제일이라. 긴 몸 휘어지며 꼬리 슬슬 흔드는 춤, 양팔을 곧추세워 허공을 찌르는 춤, 바닥에 나뒹굴면서 막무가내 날뛰는 춤, 두 주먹 불끈 쥐고 눈 부라려 다투는 춤, 빌딩과 빌딩 사이를 외줄 타고 건너는 춤, 돈 좇아 권력 찾아 권모술수 변신술에 오로지 일등을 향해 전속력으로 내닫는 춤….
강이 낳고 강이 길러 물결로 엉긴 춤 세상은 춤 무대가 곧 삶터라. 의자에서 길목에서 지하에서 고공에서, 한 생애 춤꾼으로 꽃뱀이 된 사람들. 복잡한 문서철에 볼펜 촉 휘갈기고 컴퓨터 자판기에 열 손가락 잽싼 율동. 초첨단 통신시대 아날로그로 만족하랴. 오가는 무선통신 핸드폰 귀퉁이에 전자파도 불이 난다.
살기 위해 흔드는 춤, 그 춤사위 잦아들면 땀방울로 맺은 열매 수확이 풍성하다. 대량생산 대량소비 흥청망청 주지육림酒池肉林 음주가무 종착역은 붉게 익은 사과 맛이라.
금단의 사과 맛은 원초적 춤사위니 세상의 남녀노소 은밀하게 탐내누나. 출렁출렁 물길 맞춰 이리 보아도 내 사랑 저리 보아도 내 사랑, 사랑사랑 내 사랑이야. 긴 강 굽이굽이 별빛 총총 내린 밤을 실바람에 살랑대고. 산자락 굽어 돌 때 속살 슬쩍 맞닿으면 옆구리 은근히 찔러 한 굽이로 엉기고. 칼로 물을 베다 앵돌아 누운 날도 싸늘한 물줄기를 긴 밤 내내 다독거려 꽁꽁 언 이부자리를 출렁이게 만드나니. 해도 달도 숨어 보는 생명 창조 춤사위를 어느 뉘 시비하리.
춤으로 서로 엉긴 광란의 독사들이 자욱한 연기 속에 제 한 몸 다 녹아나네. 긴 밤 불사르는 청홍으로 일렁이며 소음 짙은 물길 따라 방방 칸칸 빨려든다. 저놈, 뱀대가리 구멍으로 들어간다. 혓바닥 길게 뽑아 바위를 쓱 - 핥으며 잡초들 욱은 사이로 돌담 깊이 빨려든다. 풀잎 곧추선다. 돌부리 긴장한다. 잎사귀 파르르 떨고 붉은 씨방 부풀면 닫혔던 꽃봉오리가 속잎 열어 마중한다.
땅속 나무뿌리 알몸으로 엉겨든다. 용틀임 시작된다. 자갈 소리 들린다. 바람소리 거칠다. 지축地軸이 흔들리면 겹겹 지층地層 갈라진다. 뿌리 깊은 나무들 아랫도리 쭉 뻗치고 빗줄기 쏟아진다. 지하수 솟아나서 앞강으로 흘러든다. 새들 숨죽인다. 가지들 늘어지고 정적 깊어진다. 엉긴 뱀 몸을 풀면 꽃잎 진 씨방 깊숙이 검은 강 꿈틀인다.
저놈 대가리의 원초적 생김하며 은밀히 몸을 꼬는 촉촉한 유혹하며 달콤한 입술에 배인 붉은 맛이 일품이리. 전설을 톺아내는 선남선녀善男善女 후예들이 속옷에 가리어진 낙원樂園 찾는 사연이란 뱀으로 엉겨 흐르는 붉은 강의 향연饗宴이라. 향연은 엄숙하지만 뱀이 지닌 맹독猛毒도 있어 제 한 몸 다 던져서 주야장천 엉기다 보면 육신이 물에 녹아 황톳물로 넘치나니. 시윗물 흐르는 것은 준엄한 강의 심판. 호색好色의 춤사위로 폭풍우 몰아치면 홍수로 굽이치면서 강둑마저 무너지리.
에덴의 이야기도 장강長江에 살아 있어 인간사 깊은 뜻을 곰곰 헤아려보면 뱀이 곧 강이려니. 뱀이 가르쳐준 선악과善惡果 깊은 의미 강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낙원을 얻고 잃음이 강의 향연饗宴에 있나 보다.
첫댓글 뱀의 자손들로 넘치는 세상.
선악과를 먹고 저주 받은 인생의 길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