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고준석 신부님 ㅣ 서울대교구
사람이 아프고 고통스러울 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해 주고 함께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찌 보면 사랑한다고 수백 번 고백하는 것보다
고통스러울 때 함께 있어 주는 것이 그 사람을 사랑하는
가장 커다란 사랑의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고통 가운데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도 그 사람의 고통을 진정으로 알아주고 들어주지 못한다면,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의 고통은 계속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만일 어떤 사람이 그의 고통의 소리를 들어주고
이해해 주기만 한다면 바로 그 순간에 자신을 억누르고 있는
고통의 무게가 말끔히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시몬의 장모를 치유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시몬의 장모가 무슨 병인지 복음서는 명확히 밝히지 않습니다.
단순히 열병이라고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복음서는 병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부인의 사정을 이야기하였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몬의 장모는 어떤 사정이 있었을까요?
욥기의 내용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인생은 땅 위에서 고역이요 그 나날은 날품팔이의 나날과 같지 않은가?
… 그렇게 나도 허망한 달들을 물려받고, 고통의 밤들을 나누어 받았네.
누우면 언제나 일어나려나? 생각하지만,
저녁은 깊어지고 새벽까지 뒤척거리기만 한다네.
나의 나날은… 희망도 없이 사라져 가는구려.”
삶의 고통과 좌절, 시련과 고뇌, 허무로 인해
불면의 밤을 지새우는 내용입니다.
어쩌면 시몬의 장모도 욥과 같은 상황일 수 있습니다.
결혼해 시댁 식구를 모시거나 관계하면서 겪는 수모,
자신을 전혀 알아주지 않고 이방인으로 취급하는 남편,
손안에 자식이건만 때때로 자신을 무시하고 대드는 자식들,
더욱이 사위 집에 얹혀살아 눈칫밥 먹는 신세 등,
그야말로 삶의 고해를 감당하기 힘들기에 온몸에 열이 나고
무기력해지는 열병(화병)이 생겨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몬의 장모에게 다가가시어
아무 말씀없이 그저 손을 잡아 일으키십니다.
오로지 따스한 사랑의 손길과 이해의 눈길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 순간 그 부인 안에 쌓여 있던 온갖 슬픔과 고통이
눈 녹듯이 사라지며 여인을 괴롭히던 열도 흔적없이 사라지고 맙니다.
이제 여인은 일어나 정성스레 예수님과
그의 집에 찾아 온 손님을 맞이합니다.
그렇습니다.
고통을 받는 사람에게 최고의 약은 사랑이 아닌가 싶습니다.
고통을 당하는 사람이 간절히 듣고 싶은 말은
“당신이 고통당하고 있음을 저는 알아요.
그리고 당신이 고통당하는 것처럼
저에게 가슴 아픈 일은 없어요.”라는 속삭임입니다.
그러한 분이 바로 예수님이 십니다.
나의 모든 고통, 아픔, 슬픔을 모두 아시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나의 손을 잡아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