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환의 돈황벽화로 읽는 불교경전
32. 막고굴 제296굴 ‘복전경변’
한눈에 보는 ‘복덕 누리는 법’ 길라잡이
좋은 기회·환경·능력 제공되는 과정·조건 직접적으로 대답
주변 사막·초원 환경 반영해 배 대신 낙타·말 탄 상인 등장
삼보공양·공익활동이 복덕의 출발…이기·이타는 결국 하나
막고굴 제296굴 복전경변.
석굴에 표현된 불교미술이 모두 불교의 교리나 이상적인 불국토의 장엄을 표현하는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보다 현실을 투영한 경전에 주목하고 그것을 시각화하면서 다시 현실을 반영하기도 한다. 돈황석굴의 ‘복전경변’은 그 대표적 예 중의 하나이다.
“어떡하면 좋은 복덕을 누릴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종교를 떠나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고민하는 문제일 것이다. 유형의 차원에서든 무형의 차원에서든 복덕이란 것은 좋은 기회와 환경과 능력이 제공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답하는 경전이 곧 ‘복전경’이다. ‘복전경’의 원명은 ‘불설제덕복전경(佛說諸德福田經)’으로, 서진(西晉. 265~317)의 법립과 법거가 공역하였다. ‘복전경’은 대승불교의 복전사상을 알리는 중요한 경전이다. 복전은 곧 복덕을 낳는 밭으로 비유하여, 마치 농부가 밭에 씨를 뿌리고 가을에 그 결실을 수확하듯이, 복밭에 미리 복의 씨앗을 심어서 그 과보를 기약하는 것이다.
경에서 세존은 두 종류의 복전을 설하신다. 그 첫째는 스님에게 공양하는 것으로, 스님은 ‘다섯 가지 깨끗한 덕[五淨德]’을 갖추었기 때문에 복전이라 한다. 즉 스님은 ① 발심하여 속세를 떠나 마음에 도를 놓치지 않기 때문이며, ② 그 몸의 아름다움을 무너뜨리고 법복을 입은 까닭이며, ③ 친하고 사랑하는 이를 영원히 여의고도 불평이 없기 때문이며, ④ 몸과 목숨을 버리면서 착한 일들을 따르기 때문이며, ⑤ 대승의 뜻을 구하여 사람들을 제도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스님들에게 공양하면 복을 얻고 나아가 성불할 수 있다고 한다.
둘째는 ‘일곱 가지 널리 베푸는 것[七法廣施]’을 복전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그 내용이 매우 구체적이다. ① 부도나 승방이나 불당과 전각을 짓는 일이며, ② 과일 밭이나 목욕하는 연못이나 나무숲으로 청량함을 조성하는 일이며, ③ 의약을 베풀어 병자들을 고쳐주는 일이며, ④ 배를 만들어 사람들을 건너게 하는 일이요, ⑤ 다리를 만들어 노약자가 잘 건너게 하는 것이며, ⑥ 우물을 파서 목마른 자의 갈증을 해소하는 것이며, ⑦ 뒷간을 지어 대소변 볼 곳을 보시하는 일이다. 이와 같은 보시를 하면 범천에 태어나는 복을 얻는다고 한다.
돈황석굴에서는 이와 같은 복전경의 내용을 어떻게 표현하였을까? 북주(北周. 557~581) 시대에 건설된 막고굴 제296굴의 복전경변을 살펴보자. 이 벽화는 초기 경변에서 자주 보이는 횡권식 연환화 형식으로 여러 장면을 연속적으로 배열하였다. 각각의 장면들을 들여다보면 사찰·부도·탑을 짓고 있는 장면, 한 무리의 사람이 과일나무 숲에서 더위를 식히는 장면, 누워있는 병자를 돌보는 장면, 사람들이 말과 낙타를 타고 어딘가를 지나가는 장면, 우물을 파서 사람과 짐승에게 물을 먹이는 장면, 길가에 세워진 정사(精舍)에서 사람들이 안락하게 쉬고 있는 장면 등이다. 이러한 장면의 구성은 이 경변이 대체로 널리 베푸는 보시인 칠법광시(七法廣施) 위주로 제작되었음을 보여준다.
막고굴 제296굴 복전경변(부분). 화면의 윗부분은 우물을 만들어 보시하는 장면이고, 아랫부분은 낙타와 말을 타고 다리를 건너는 장면이다. 칠법광시의 내용 중 돈황에서 생소한 배와 뒷간의 장면은 생략하고 낙타나 상인 등 현지의 모습을 반영한 점이 흥미롭다.
흥미로운 점은 이 복전경변을 표현할 때, 화사(畫師)는 전체적으로 경전의 내용을 따르면서도 한편으로 당시 돈황의 사회상을 적극 반영하여 표현에 있어 유연함을 발휘하였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296굴의 복전경변에서 칠법광시의 장면 중 유독 배를 만들어 주는 보시의 항목이 표현되지 않았다. 이것은 주로 사막 및 초원으로 이루어진 돈황의 자연환경에서 배를 탈 일이 거의 없음을 고려해 배제한 것으로 보이며, 대신에 낙타와 말을 타고 가는 상인의 모습을 표현하였다. 또한 일곱째 항목인 뒷간을 지어주는 보시 역시 표현되지 않았는데, 이 역시 당시 돈황의 환경에서 뒷간이 일상적으로 사용되지 않은 데에 기인한 것으로 본다. 칠법광시의 보시 공덕 내용들은 사실 복전경의 성립 지역인 인도의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정해진 것이므로 애초에 돈황의 환경에 완전히 부합할 수 없었다. 화사는 칠법광시의 내용들은 이타적인 보시의 사례로서 제시된 것일 뿐이며, 그 자리에 얼마든지 여타의 보시를 대입할 수 있음을 잘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역설적으로 경의 후반부에 세존은 자신 역시 과거세에 남을 위해 뒷간을 제작하고 관리한 공덕이 성불로 이어졌음을 밝히고 있다.
“더러움을 참고 복되는 일 닦으니/ 남이 때 묻지 않게 함이라네/ 뒷간 지어 편리함을 베푸니/ 번거로움이 더할수록 경안(輕安)을 얻는다네/ 이 공덕은 교만을 제거하고/ 이로써 생사의 연을 해탈하네/ 나아가 성불의 길에 오르니/ 비고 맑아서 존귀하기가 그지 없도다.”
‘복전경’에서 설하는 복을 누리는 방법은 곧 스님을 포함한 삼보를 공양하고, 공공의 이익이 되는 활동을 하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곧 자리이타(自利利他), 즉 이기(利己)와 이타(利他)가 둘이 아님을 일깨우는 것이다.
돈황석굴에 ‘복전경’의 변상이 그려진 것은 북위시대 이래로, 선행을 쌓아 복을 구하는 숭복신앙(崇福信仰)이 성행하여, 위로는 삼보에 공양하고 아래로는 널리 보시하며, 불상을 조성하고 사찰을 건립하는 등의 불사를 통해 현세의 복덕을 구하는 풍조가 만연한 데 기인하였다. 그러나 복전경변이 막고굴 제296굴과 수대에 그려진 제302굴 2건에 그칠 뿐, 이후 더 이상 그려지지 않았다. 수대 이후 정토신앙이 성행함에 따라, 현세와 내세를 잇는 보다 교의적으로 완성된 신앙으로 민간에 자리 잡았고, 돈황석굴에서도 서방극락세계를 표현한 정토변상이 대거 출현하였기 때문이다.
[1680호 / 보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