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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흥망성쇠를 판가름하는 결정적 문화요소는?
문화는 과연 사회적 산물일까, 진화의 산물일까?
문화의 진화 방향성과 패턴을 알아내기 위한 석학들의 흥미진진한 논의
『총, 균, 쇠』의 저자인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왜 어떤 사회는 재앙적 결정을 내리는가〉에서 사회 붕괴와 존속을 판가름하는 중요한 문화요소로서 ‘집단의사결정’에 주목한다. 그는 집단의사결정의 실패로 사회가 몰락한 사례, 예컨대 이스터 섬 주민의 삼림파괴와 폐망, 가뭄에 대처하지 못한 마야 문명의 몰락, 외래종인 여우 번식을 방치하여 토종환경을 파괴당한 오스트레일리아 태즈메이니아 사례 등을 분석해보고, 재앙을 불러일으키는 집단의사결정의 4단계 로드맵을 그린다. 1) 사회가 문제 예측에 실패하는 경우 2) 문제가 발생한 후에도 문제를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 3) 문제를 인지했더라도 문제 해결의 시도에서 실패한 경우 4) 문제 해결을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실패하는 경우.
그중에서도 오늘날 사회가 범하는 가장 큰 실패 원인은 바로, 문제를 인지했더라도 문제 해결에 실패하는 경우다. 그런 예로, 경제학적 관점에서는 개개인에게 합리적이지만 결국 집단과 타인에게 손해가 되는 결정과 행위가 만연하는 현상을 들 수 있다. 오늘날 열대우림지역 상당수는 다국적 목재회사들이 단기간 임대한 곳이다. “이 목재회사들은 임차료를 내고 빌린 땅에 있는 나무들을 완벽하게 채벌해야 최상의 이익을 얻는다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다. 이런 식으로 목재회사들은 말레이반도, 보르네오, 솔로몬제도, 수마트라의 숲을 차례로 파괴했고 지금은 필리핀의 숲을 파괴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나쁜 결과가 다음 세대에게 떠넘겨지지만, 다음 세대는 이런 결과에 대해 의사를 표현할 수도 없고 불평할 수도 없다.” 파괴와 몰락의 징후를 알면서도 개인과 당장의 이익을 위해 그 부담을 미래 세대에 전가하는 것이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몰락을 자초하는 과거 사례들을 거울삼아, 현재의 문제를 조망하고, 미래를 아우르며 균형 있는 의사결정을 하도록 독려한다.
예술철학자이자, 미디어활동가인 데니스 더턴은 〈예술과 인간 현실〉에서 예술이 철저한 문화적 산물이라는 후기구조주의의 관점을 반박하고, 문화예술이 진화론적 적응의 산물인 동시에 문화적 산물의 혼합물임을 강조한다. 더턴은 문화예술이 문화권마다 다르며, 다른 문화권의 예술을 결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후기구조주의의 미학적 담론이 만들어낸 미신이 무려 40년간이나 우리 머리를 잠식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문화 차이를 얘기할 때 곧잘 회자되는 내용인 ‘에스키모에게는 눈(雪)을 가리키는 단어만 500개가 있다’는 얘기를 비롯해, 인도의 전통악기 시타르 연주자인 라비 샹카르가 샌프란시스코 연주회에서 시타르를 10분간 조율하고 나서 청중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청중들이 프로그램의 첫 곡 연주를 끝낸 줄 알고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는 이야기가 모두 그런 맥락에서 생겨난 도시 괴담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문화의 보편성과 진화를 염두에 두고, 앞으로 500년 뒤에도 사람들에게 여전히 사랑받을 문화예술 작품이 무엇인지를 앤디 워홀과 잭슨 폴록의 미술작품과 아르놀트 쇤베르크의 무조(無調)음악을 비교해보며 추측한다. 그리고 전자는 여전히 사랑받겠지만, 인간의 본성인 음열과 멜로디를 파괴하는 무조음악의 생존 가능성은 낮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인지과학자이자, 철학자인 대니얼 데닛은 진화생물학적인 관점에서 문화의 진화를 설명할 때 가장 걸림돌이 되는 ‘음악의 진화’를 ‘밈(meme)’이라는 문화모방단위로 설명해낸다. 음악은 유전적 적응도라는 이익을 고려해볼 때 쓸모없는 행위다. 소중한 에너지가 낭비되고, 사냥감이 놀라 달아나게 만들 수도 있는 행위이다. 그런데 음악은 왜 사람들 사이에서 모방과 전달이 거듭되어 인류의 가장 큰 문화유산 중 하나로 자리잡았을까? 영농법, 조리법, 언어습관 등등 다양한 문화요소이자, 사람과 사람 간의 모방단위인 밈은, 마치 기생충이나 바이러스처럼 인간의 뇌를 숙주로 스스로를 복제하며 퍼져나간다. 이 과정에서 인간의 뇌를 차지하기 위해 밈은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이때 밈이 선택되는 조건은 숙주인 인간의 유전적 적응도(ex:노래를 통한 이성의 주목)가 아닐 수 있고, 그저 기생자에게 유리하며 숙주에게는 무의식적인 욕망해소(ex: 흥얼거림을 통한 기분 좋음이나 욕망해소)에 가까운 선택이 될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공동체가 다양한 음악적 밈들에 물들기 시작한다.
대닛은 사람들이 밈의 존재를 끊임없이 의심하는 이유도 고찰한다. ‘밈이 기생하는 뇌’라는 관점에서 인간의 정신을 설명할 경우 인간의 창조력이란 소중한 전통이 훼손될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밈’을 부정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인간의 창조력을 밈으로 설명해야만 인간 정신의 산물과 일체감을 가질 수 있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숙주인 인간은 뇌가 발전하면서 밈의 터전으로서뿐만 아니라, 명민하게 밈을 선택하고 조율하는 행위자가 되기도 한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위대한 작곡가 바흐는 밈의 관점으로 볼 때 뛰어난 밈육종가이자, 밈공학자로 해석된다. 그는 칸타타라는 유럽의 성가양식, 즉 이미 우리 머릿속에 자리 잡은 밈들을 대상으로, 강점은 강화하고 약점은 무마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밈변종을 만드는 역할을 한 것이다.
영국의 대중음악가이자, 문화이론가인 브라이언 이노는 〈포괄적인 문화 이론〉에서 그동안의 거의 모든 예술사가 ‘어떤 대상물이 다른 대상물보다 본질적으로 더 아름답고 더 의미 있으며, 어떤 대상물은 본질적으로 가치와 중요성과 의미를 지닌다’라는 가정 하에서 출발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노는 새로운 문화 이론에서 대상물의 가치와 의미는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또한 과학에 대해서는 담론과 이론이 활발하게 생산되지만, 문화 분야에서는 그렇지 못한 점을 지적하고, 문화적 논의와 담론, 이를 모두 포용해낼 수 있는 포괄적인 문화이론 및 학계와 대중들의 적극적인 문화 참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밖에도 하버드대 의대 교수이자 사회학자인 니컬러스 A. 크리스태키스는 〈사회연결망은 눈(目)과 같다〉에서 가족관계 사회적 관계, 소셜 미디어 및 인터넷 등 일련의 사회 연결망들을 통해 비만이나, 행복, 금연 같은 추상적인 인간 조건과 정서가 전염될 수 있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밝혀냈다. 1948년부터 진행된 프리이밍햄 심장연구 역학조사에 참여한 수천 명의 피실험자의 건강기록과 가족관계가 담긴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분석하여 밝혀낸 이 연구결과는, 사회적 연결망으로 얽힌 사람들 사이의 영향력이 어떤 일련의 과정과 규칙을 통해 전파되는지 설명하며, 문화의 확산과 변화의 새로운 경로를 소개한다.
권력, 제도,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을 송두리째 바꾸는
IT와 테크놀로지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이 책은 우리 시대 변화의 핵인 IT와 그 파급효과에 대해 흥미로우면서도 깊이 있는 논의를 제시하고 있다. 정치 및 IT 평론가로 유명한 에브게니 모로조프와 클레이 셔키는 『디지털 파워와 그 반론자들』에서 IT시대 권력의 실체와 힘은 어디에 있는지,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는 독재권력의 검열수단인지, 자유민주주의의 도구인지를 주제로 대담을 벌인다. 모로조프는 미국 정부가 ‘구글과 트위터’를 외교 정책의 일환으로 생각하여 국무부 직원의 해외 순방길에 구글과 트위터의 간부를 대동하는 사례, 구글이 미국 국가안전보장국(NSA)과 협력하고 있는 점과 지메일의 검열 가능성을 이야기하며 인터넷이 국가권력을 뒷받침하는 역할 혹은 독재국가의 프로파간다 전파 역할을 맞게 될 때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반대로 클레이 셔키는 독재국가의 검열기구이자 프로파간다 전파의 창구로서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의 역할보다는, 민중과 민중 간의 소통의 창구로서의 역할에 주목한다. 그리고 독재정부가 실질적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민중들 간의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이란 정부는 커뮤니케이션 시설의 노후화를 방치하고,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억압한다는 것이다. 모로조프와 셔키는 2010년 테헤란 저항운동처럼 민중의 온라인 저항운동이 오프라인까지 제대로 조직화되지 못하고, 분노의 폭발로만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 현실에 공감한다. 모로조프는 온라인 운동의 구심점을 마련하기 위해 카리스마를 지닌 헌신적인 민중시위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셔키는 언론의 자유를 통한 민주화된 공론장의 활성화와 시민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저항운동 조직화의 척도라고 이야기한다.
IT시대의 명과 암에 대한 학자들의 논쟁도 흥미롭다.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이란 개념과 명칭을 제안하며 IT시대의 청사진을 그린 것으로 유명한 재런 래니어는 오늘날 인터넷이 집단의 시각과 목소리를 ‘대중의 지혜’로 미화시키고 개개인의 독창적인 시각과 고유한 목소리를 지우는 것, 그리고 위키피디아와 같은 인터넷 상의 글들이 맥락과 의미와 가치의 구분 없이 마구잡이로 온라인과 우리 머릿속을 점령하는 것에 대해 경종을 울린다. 예컨대 인터넷 메타 사이트들에 의해 수집된 정보는 ‘아이스크림 먹기 대회 1위 우승자’와 ‘인도네시아 지진’을 다룬 뉴스가 의미와 맥락과 가치가 구분되지 않은 채, 동급 기사로 떠오른다. 래니어는 이렇게 갖가지 정보들이 알고리즘과 대중의 입맛에만 맞게 변이되는 문화 속에서, 개인의 독창성과 사유가 어떻게 위축될 수 있는지를 〈아메리칸 아이돌〉과 비틀스의 사례를 들어 얘기한다. 예컨대 〈아메리칸 아이돌〉처럼 집단의 인기투표와 대중의 눈높이로 모든 것이 재단되는 시대에, 만약 비틀스의 존 레논이 〈아메리칸 아이돌〉을 통해 등장했다면 그가 과연 우승하거나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그의 음악적 창의력을 여전히 보유했을 수 있겠느냐 하는 흥미로운 질문이다.
반면, 과학전문 잡지 《와이어드》의 주간인 케빈 켈리, 과학사학자 조지 다이슨, 위키피디아의 창립자인 래리 생어, 미디어 이론가인 더글러스 러시코프 등이 다양한 시각으로 재런 래니어의 견해를 반박한다. 특히 래리 생어는 위키피디아 및 기타 인터넷 사이트를 의미론적인 측면에서가 아니라, 하나의 지적인 목적을 위해서 무수한 노동력을 조직화하는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위키피디아식 대중의 협업을 새로운 유형의 ‘산업혁명’에 빗댄다. 그리고 ‘여기서 재조직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정신적 노력이다. 강력한 협업 시스템의 빛나는 효율성이 위대한 것이지, 이른바 진실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의 능력 자체가 위대한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한다.
독일 유력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의 발행인이자, 독일을 대표하는 지식인인 프랑크 쉬르마허는 〈정보 포식자의 시대〉에서 인터넷 시대의 삶의 변화 양상에 주목한다. 그는 독일 사상가 게르트 기거렌처의 말을 빌려, “현재는 사고 자체가 두뇌를 떠나 인체 밖에 존재하는 플랫폼을 사용하는 시대이며, 그 플랫폼은 인터넷과 클라우드”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 시대는 중요한 것이 우리 뇌가 아닌 다른 곳에서 결정되는 시대, 도구가 인간의 생각을 만들어나가는 시대라고 평가한다. 쉬르마허는 요즘 사회에 팽배한 ‘멀티태스크’ 개념을 고찰한다. 멀티태스크는 우리 뇌가 자연스럽게 작동하는 방식이 아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멀티태스크의 책임을 사회나 시스템 탓으로 돌리지 않고, 멀티태스크에 적응하지 못한 자신을 탓하곤 한다는 것이다. 쉬르마허는 독일 지식인과 사상가들을 대상으로 테크놀로지를 교만하게 바라보는 태도를 버리고, 컴퓨터와 IT를 중심으로 한 분석과 지적 토론을 활성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덧붙인다.
심리적 거부는 개인심리학에 잘 들어맞는 현상이지만 집단사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을 비롯해 홀로코스트의 위험에 처한 집단들은 그런 대량학살이 진행되고 있으며, 그들이 학살의 위험에 처해 있다고 거듭해서 말해주는 증거들을 부인했다. 그런 생각 자체가 견디기 힘들 정도로 두려웠기 때문이다. 붕괴하는 사회들이 붕괴의 뚜렷한 원인들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도 심리적 거부로 설명할 수 있다.--- p.38 「왜 어떤 사회는 재앙적 결정을 내리는가」
진화론자인 나는 예술작품을 지금으로부터 500년 후에도 다시 보고 듣고 읽게 만드는 특징들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나는 그 특징들을 찾아내고 싶다. 말이 난 김에 덧붙이면, 내 생각에 앤디 워홀과 잭슨 폴록의 작품들은 500년 후에도 사랑받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아르놀트 쇤베르크, 특히 그의 무조(無調)음악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겠다.--- p.57 「예술과 인간 현실」
우리는 ‘술(術, art)’과 ‘테크놀로지(technology)’가 모두 기교, 재주, 솜씨 등을 뜻하는 그리스어 ‘테크네(techne)’에서 파생되었다는 사실을 잊은 채 ‘술’에는 박수를 보내고, ‘테크놀로지’에는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유전자를 조작해서 생산한 토마토를 보면 겁에 질려 움찔하고 ‘인공’ 섬유로 만든 옷을 보고는 콧방귀를 뀌는 반면, 곡물과 목화와 양이 차례로 인간 테크놀로지, 즉 정교한 잡종 교배, 사육 기술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잊은 채 통곡물 가루나 면과 모 같은 유기농 식품과 자연제품에는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pp.88-89 「문화의 진화」
내가 주변을 둘러보며 사람들의 체형이 점점 뚱뚱해지는 것을 보았다고 해보자. 이런 변화를 보면서 무난한 체형에 대한 나의 인식이 의식적으로나 잠재의식적으로 서서히 바뀐다. 체중이 늘어난 주변 사람들 때문에 뚱뚱한 체형과 마른 체형의 의미가 재설정되고, 그 의미가 사람들 사이에 확산되어 새로운 규범이 된다.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전달되는 일종의 밈(meme)이다.--- p.150 「사회 연결망은 눈(目)과 같다」
집단은 항상 옳다는 그릇된 생각이 심상찮게 증가하는 현상은 오늘날 어디에서나 흔히 목격된다. 우리 사회에서 중추를 이루는 많은 조직까지 이런 생각에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위키피디아의 성공, 구글의 막대한 부, 기업가들의 성화에 영향을 받아 모두들 최대 메타가 되려고 한다. 정부기관, 대기업 기획부서, 주요 대학들까지 머릿속의 회로에 오류가 일어난 듯하다.
--- p.269 「디지털 마오이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