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동안 진행된 택배 투쟁, 잘 싸웠다
택배투쟁이 노동에 던진 화두는 무엇인가? 무엇을 남겼을까? 몇 가지를 고민되는 점을 정리해 봤다.
첫째,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조합 할 권리와 교섭 보장의 문제이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조할 권리는 사실 반쪽자리 노동권이다. 노동조합은 구성할 수 있지만, 사용자(원청)와의 교섭은 보장하지 않는다. 이만큼 온 것이 어디냐? 하는 성과적 측면에서 바라 볼 수도 있지만, 갈길은 멀기만 하다는 것을 이번 택배투쟁을 통해 다시 확인했다.
원청이 대화에 나서지 않는 명분은 교섭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사회적 합의를 이행하지 않았지만, 책임을지지 않아도 되는 것은 사회적합의가 법률적으로 강제할 수 없는, 교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택배노조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의 투쟁의 맨 앞에 서 있다.
생활물류서비스 발전법을 제정하면서 노동법의 빈곳을 산업법으로 메우는 전략을 취하며 특수고용 노동자의 처우개선에 성과를 냈고, 원청과의 교섭에 대해 일부를 인정한 중노위 판결을 이끌어 냈다.
cj대한통운을 대상으로 한 두 달간의 파업을 하면서 이미 대리점이 아닌 원청이 진짜 교섭의 대상임을 사회적으로 증명해 냈다.
택배노조의 투쟁은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할권리와 교섭의 문제에서 우리사회가 다음 단계로 나가야 할 때라는 것을 보여준다.
둘째, 한국 사회는 사회적 대화를 할 역량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사회적 대화는 노동운동에서도 논란거리다.
중재자가 되어야 할 정치권력이 중립적 입장에서 자본을 강제할 수 있는가? 자본이 약속을 지킬것인가? 교섭과 투쟁으로 쟁취할 노-자간의 문제를 노동조합이 대화라는 형식으로 접근할 수 있는가? 하는 이런저런 주장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권도, 노동조합도 사회적 대화 형식을 빌어 여러 협상들을 하고 있다.
대립만으로는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서 한국사회가 아직도 사회적 대화를 할 역량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법적 강제가 없는 사회적 합의를 보증하는 곳은 민주당과 정부였다. 하지만, 정치권력은 합의문의 이행과 점검에서 손을 놓아버렸다.
부속합의서가 사회적 합의 내용과 모순적이라며 부속합의서가 가져올 후과에 대해서 몇 번의 경고가 있었다.
하지만, 정부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어 cj대한통운의 택배사 등록을 거부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며 부속합의서를 인정해 주었다.
분류작업 인력투입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회적 합의가 양호하게 이행’되고 있다고 발표했다.
택배요금 인상분이 처우개선에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검증하자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노사간의 문제로 개입하지 않겠다고 팔장을 끼고 지켜만 보았다.
손을 놓았다기보다는 자본의 편에서 사회적 합의를 해석했다는 것이 적당하겠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느누가 사회적 합의라는 형식으로 노사정 대화를 할 수 있겠는가?
사회적 합의를 주구장창 주장해온 민주당과 정부의 평가가 필요한 부분이다.
노동조합입장에서 택배투쟁은 사회적 합의 또한 노동조합의 강력한 투쟁이 없으면 지킬수 없다는 것을 확인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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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생각할 때 사회적 합의의 중립적 중재자는 진보정치다.
택배투쟁 과정에서 중립적 중재자가 될 진보정치 부재의 아쉬움이 컸다.
여하튼 현재 정치적 조건에서 노동조합에게 사회적 합의는 확실한 투쟁력이 담보되지 않으면 나설 수 없는 계륵같은 존재라는 것을 확인 했다.
셋째, 택배노동자가 대선국면에서 재벌이슈, 노동이슈를 만들었다.
노동운동에게 이번 대선은 참 재미없는 대선이다.
노동이슈는 사라지고, 비호감 후보들에 최악과 차악의 경쟁구도가 되었다. 지금은 모두 거짓말이 되었지만, 5년전 대선판에선 노동존중이 화두가 되었다.
노동자 민중의 촛불이 만든 화두이기도 했다.
보수정당 대선후보들은 택배노동자들으 투쟁을 애써 모른체 해왔지만, 시간이 갈수록 택배투쟁에 대한 후보들의 입장차이는 선명하게 드러났다.
윤석열, 안철수 후보의 노동의 부정, 말뿐인 이재명 후보, 혼연일체가 되어 싸워준 김재연후보 그리고 공대위에 함께 해준 진보정당들.
누가 노동자의 편인지를 보여주었다.
CJ대한통운과의 투쟁과정에서 이재현의 아들 이선호에 대한 경영권 승계과정이 또하나의 이슈로 드러났다.
사회적 합의를 이행하지 않는 재벌의 탐욕에 분노하고, 노동조합에 대한 재벌기업의 태도도 여전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승리한 투쟁 그리고 남은 과제
오늘 대리점 연합회와 택배노조의 합의 소식이 들린다.
택배노조는 부속합의서 없이 표준계약서만으로 현장에 복귀하게 되었다. 하지만, 완전한 승리는 아닐것이다.
하기야 애초에 세상에 완전한 승리라는게 없는지도 모르겠다.
대리점 연합회가 원청의 보장없이 협상장에 나오진 않았을 테지만, 원청은 끝까지 노동조합의 힘을 빼려 할 것이다.
민주당의 사회적 대화 재개 약속이 있지만, 분배구조 개선 등의 쟁점이 완전히 해소된 것도 아니다.
이래저래 투쟁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이번 투쟁과정에서 택배노조 조합원들의 정치의식, 조직력은 상당한 수준이라는 것이 증명했다.
똘똘 뭉친 2천여 조합원들의 분노를 계속 자극하면서 현장 갈등을 유발할 것인지, 노사간의 협의로 민주적 택배현장을 만들어 갈것인지는 전적으로 CJ대한통운의 판단에 달려있다.
CJ대한통운이 또 한번의 오판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두 달 동안 진행된 택배 투쟁, 잘 싸웠다
택배투쟁이 노동에 던진 화두는 무엇인가? 무엇을 남겼을까? 몇 가지를 고민되는 점을 정리해 봤다.
첫째,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조합 할 권리와 교섭 보장의 문제이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조할 권리는 사실 반쪽자리 노동권이다. 노동조합은 구성할 수 있지만, 사용자(원청)와의 교섭은 보장하지 않는다. 이만큼 온 것이 어디냐? 하는 성과적 측면에서 바라 볼 수도 있지만, 갈길은 멀기만 하다는 것을 이번 택배투쟁을 통해 다시 확인했다.
원청이 대화에 나서지 않는 명분은 교섭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사회적 합의를 이행하지 않았지만, 책임을지지 않아도 되는 것은 사회적합의가 법률적으로 강제할 수 없는, 교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택배노조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의 투쟁의 맨 앞에 서 있다.
생활물류서비스 발전법을 제정하면서 노동법의 빈곳을 산업법으로 메우는 전략을 취하며 특수고용 노동자의 처우개선에 성과를 냈고, 원청과의 교섭에 대해 일부를 인정한 중노위 판결을 이끌어 냈다.
cj대한통운을 대상으로 한 두 달간의 파업을 하면서 이미 대리점이 아닌 원청이 진짜 교섭의 대상임을 사회적으로 증명해 냈다.
택배노조의 투쟁은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할권리와 교섭의 문제에서 우리사회가 다음 단계로 나가야 할 때라는 것을 보여준다.
둘째, 한국 사회는 사회적 대화를 할 역량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사회적 대화는 노동운동에서도 논란거리다.
중재자가 되어야 할 정치권력이 중립적 입장에서 자본을 강제할 수 있는가? 자본이 약속을 지킬것인가? 교섭과 투쟁으로 쟁취할 노-자간의 문제를 노동조합이 대화라는 형식으로 접근할 수 있는가? 하는 이런저런 주장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권도, 노동조합도 사회적 대화 형식을 빌어 여러 협상들을 하고 있다.
대립만으로는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서 한국사회가 아직도 사회적 대화를 할 역량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법적 강제가 없는 사회적 합의를 보증하는 곳은 민주당과 정부였다. 하지만, 정치권력은 합의문의 이행과 점검에서 손을 놓아버렸다.
부속합의서가 사회적 합의 내용과 모순적이라며 부속합의서가 가져올 후과에 대해서 몇 번의 경고가 있었다.
하지만, 정부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어 cj대한통운의 택배사 등록을 거부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며 부속합의서를 인정해 주었다.
분류작업 인력투입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회적 합의가 양호하게 이행’되고 있다고 발표했다.
택배요금 인상분이 처우개선에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검증하자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노사간의 문제로 개입하지 않겠다고 팔장을 끼고 지켜만 보았다.
손을 놓았다기보다는 자본의 편에서 사회적 합의를 해석했다는 것이 적당하겠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느누가 사회적 합의라는 형식으로 노사정 대화를 할 수 있겠는가?
사회적 합의를 주구장창 주장해온 민주당과 정부의 평가가 필요한 부분이다.
노동조합입장에서 택배투쟁은 사회적 합의 또한 노동조합의 강력한 투쟁이 없으면 지킬수 없다는 것을 확인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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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투쟁 과정에서 중립적 중재자가 될 진보정치 부재의 아쉬움이 컸다.
여하튼 현재 정치적 조건에서 노동조합에게 사회적 합의는 확실한 투쟁력이 담보되지 않으면 나설 수 없는 계륵같은 존재라는 것을 확인 했다.
셋째, 택배노동자가 대선국면에서 재벌이슈, 노동이슈를 만들었다.
노동운동에게 이번 대선은 참 재미없는 대선이다.
노동이슈는 사라지고, 비호감 후보들에 최악과 차악의 경쟁구도가 되었다. 지금은 모두 거짓말이 되었지만, 5년전 대선판에선 노동존중이 화두가 되었다.
노동자 민중의 촛불이 만든 화두이기도 했다.
보수정당 대선후보들은 택배노동자들으 투쟁을 애써 모른체 해왔지만, 시간이 갈수록 택배투쟁에 대한 후보들의 입장차이는 선명하게 드러났다.
윤석열, 안철수 후보의 노동의 부정, 말뿐인 이재명 후보, 혼연일체가 되어 싸워준 김재연후보 그리고 공대위에 함께 해준 진보정당들.
누가 노동자의 편인지를 보여주었다.
CJ대한통운과의 투쟁과정에서 이재현의 아들 이선호에 대한 경영권 승계과정이 또하나의 이슈로 드러났다.
사회적 합의를 이행하지 않는 재벌의 탐욕에 분노하고, 노동조합에 대한 재벌기업의 태도도 여전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승리한 투쟁 그리고 남은 과제
오늘 대리점 연합회와 택배노조의 합의 소식이 들린다.
택배노조는 부속합의서 없이 표준계약서만으로 현장에 복귀하게 되었다. 하지만, 완전한 승리는 아닐것이다.
하기야 애초에 세상에 완전한 승리라는게 없는지도 모르겠다.
대리점 연합회가 원청의 보장없이 협상장에 나오진 않았을 테지만, 원청은 끝까지 노동조합의 힘을 빼려 할 것이다.
민주당의 사회적 대화 재개 약속이 있지만, 분배구조 개선 등의 쟁점이 완전히 해소된 것도 아니다.
이래저래 투쟁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이번 투쟁과정에서 택배노조 조합원들의 정치의식, 조직력은 상당한 수준이라는 것이 증명했다.
똘똘 뭉친 2천여 조합원들의 분노를 계속 자극하면서 현장 갈등을 유발할 것인지, 노사간의 협의로 민주적 택배현장을 만들어 갈것인지는 전적으로 CJ대한통운의 판단에 달려있다.
CJ대한통운이 또 한번의 오판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