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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다해 11월9일 수요일 [(백)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수도회] 친교와 사랑으로 짓는 내 삶의 성전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 제1독서 에제 47,1-2.8-9.12
† 복음 요한 2,13-22
◈ 오늘의 묵상
원래 황실 가족의 소유였던 라테라노 궁전은 4세기에 교황님의 공식
거처가 됩니다. 그리고 거기에 딸려 있던 대성당은 처음으로 로마의
주교좌성당이 되고, 거기에서는 특히 부활 성야에 세례식이
집전되었습니다. 후에 세례자 요한과 사도 요한에게 봉헌되어
라테라노 성 요한 성당이라고 불리게 된 이 대성전은 로마 교회의
어머니 교회로 여겨지게 됩니다.
세상의 모든 교회가 로마의 교회에 결합되면서,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가 언급한 ‘사랑의 수위권’을 로마 교회에 인정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모든 교구에 있는 주교좌성당에도 교구의 모든
본당과 공동체가 결합되어 있습니다. 하느님께 봉헌된 모든 성당에서
‘구원의 신비’가 거행됩니다. 교회 건물은,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오신 그리스도 현존의 표지입니다. 거기에서 말씀하시는 분도
그리스도이시고, 그분께서는 스스로를 음식으로 내어 주시며, 기도
안에 모인 공동체를 이끌어 주시고, 우리 가운데 영원히 머물러
계십니다.
신앙인들은 늘 성전을 지으며, 그 안에 하느님의 모습과 자신들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언제나 그리스도께서 머릿돌이
되어 계십니다. 교회의 형상인 성전은 공동체와 친교를 드러냅니다.
설계사와 건축사의 힘이 모여서 하나의 건축물이 단단하게 지어지듯이,
교회의 모든 구성원도,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해
진지하고 확고한 연대와 친교를 이루어 가야 할 것입니다.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
- 매일 미사 -
◈ [인천] 늘 기도하고 묵상하면서
2016년 다해 11월9일 수요일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제1독서
"성전 오른쪽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보았네. 그 물이 닿는 곳마다 모두
구원을 받았네(따름 노래 “성전 오른쪽에서”)."
○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47,1-2.8-9.12<또는 1코린 3,9ㄷ-11.16-17>
복음
<예수님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3-22
어떤 할아버지께서 텔레비전에서 건강에 대한 지식을 전달해주는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이 프로그램을
보시던 할아버지께서 점점 심각한 표정을 짓는 것입니다. 이 모습을
보고는 며느리가 물었지요.
“아버님, 왜 그러세요?”
그러자 할아버지께서는 근심어린 표정으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저기서 얘기하는 병의 증세가 요즘 내가 느끼는 증세와 너무 똑같구나.
아무래도 내가 저 병에 걸린 것이 틀림없는 것 같아.”
그래서 며느리도 할아버지와 함께 텔레비전을 보게 되었는데, 방송을
마치면서 아나운서가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은 자궁암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어떻습니까? 할아버지의 걱정대로 자궁암에 걸린 것일까요? 남자인
할아버지가 자궁암에 걸릴 리가 없기 때문에 할아버지의 걱정은
잘못된 걱정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이렇게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걱정과 불안 속에 살 때가 참으로 많은 것 같습니다.
언젠가 뉴스에서 어떤 분이 복어 독을 먹고서 죽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이 복어 독을 먹은 것입니다. 복어 독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우리들은 절대로 이 복어 독을 먹지
않겠지요. 하지만 이 분은 복어 내장의 독을 먹으면 몸에 좋다면서
복어 내장을 볶아 먹었던 것입니다. 이 역시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서
생긴 안타까운 결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잘못된 판단은 스스로를 잘못된 길로 이끄는 것은 물론 남들 역시
잘못된 길로 가게 만듭니다. 그래서 올바른 지식과 함께 함께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고정관념과 선입견으로 인해서 지혜롭지 못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예수님 시대에 성전은 시장처럼 늘 사람들이 북적거렸습니다. 물론
하느님께 기도를 하는 거룩한 장소로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는
장소가 되면 좋을 텐데, 그것이 아니라 성전에 봉헌할 동물을 사고팔고
또한 화폐를 교환하는 환전상들로 가득했습니다. 문제는 이들의
비리였습니다. 거룩한 제물을 봉헌해야 하는데, 좋은 동물이 아니라
형편없이 나쁜 동물을 깨끗하게 정화된 것이라면서 이를 비싼 값에
팔아서 봉헌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성전에서 사용되는 화폐가 따로
있어서 환전상에게 웃돈을 주고서 교환을 해야만 했지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그 모든 것들은 사실 기도하는 집이 되어야 할
곳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채찍을 휘두르고 돈을 쏟는 등의 과격한 모습을 보이십니다.
많은 이들의 잘못된 판단과 행동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습과는
정반대로 나아가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잘못된 지식과 잘못된 판단은 이렇게 하느님의 뜻과 반대의 모습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늘 기도하고 묵상하면서 올바른
판단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성전 그
자체이신 주님을 만나 함께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이끌려고 하면 먼저 자기 자신을 다스려야 한다. 자신이
유능해서 관리자가 되었다고 믿는 순간 부하들은 당신 없이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할 것이다(테리 켈리).
베드로대성전이 세워지기 전 교회 행정 중심지였던 라테라노 대성전
그러려니 하고 살자(혜민스님의 글 중에서)
인생길에 내 마음 꼭 맞는 사람이 어디 있으리. 난들 누구 마음에 그리
꼭 맞으리? 그러려니 하고 살자.
내 귀에 들리는 말들 어찌 다 좋게만 들리랴? 내 말도 더러는 남의 귀에
거슬리리니. 그러려니 하고 살자.
세상이 어찌 내 마음을 꼭 맞추어 주랴? 마땅찮은 일 있어도 세상은
다 그런 거려니 하고 살자.
사노라면 다정했던 사람 멀어져 갈 수도 있지 않으랴? 온 것처럼 가는
것이니 그저 그러려니 하고 살자.
무엇인가 안 되는 일 있어도 실망하지 말자. 잘 되는 일도 있지 않던가?
그러려니 하고 살자.
더불어 사는 것이 좋지만, 떠나고 싶은 사람도 있는 것이다. 예수님도
사람을 피하신 적도 있으셨다. 그러려니 하고 살자.
사람이 주는 상처에 너무 마음 쓰고 아파하지 말자. 세상은 아픔만
주는 것이 아니니, 그러려니 하고 살자.
누가 비난했다고 분노하거나 서운해 하지 말자. 부족한데도 격려하고
세워주는 사람도 있지 않던가? 그러려니 하고 살자.
사랑하는 사람을 보냈다고 너무 안타까워하거나 슬퍼하지 말자.
인생은 결국 가는 것. 무엇이 영원한 것이 있으리. 그러려니 하고 살자.
컴컴한 겨울 날씨에도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자. 더러는 좋은 햇살 보여
줄 때가 있지 않던가? 그러려니 하고 살자. 그래, 우리 그러려니 하고
살자.
마음을 내려놓는 겸손한 마음으로만 ‘그러려니’ 하면서 살 수 있지
않을까요?
라테라노 대성전 안에 세워져 있는 마태오 사도 동상.
- 인천교구 갑곶 성지 조명연 마태오 신부 -
◈ [수도회] 친교와 사랑으로 짓는 내 삶의 성전
- 기 프란치스코 신부
2016년 다해 11월9일 수요일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예수님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요한 2,21)
친교와 사랑으로 짓는 내 삶의 성전
오늘은 324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라테라노 대성전을 지어 봉헌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전 세계 모든 성당의 어머니요 으뜸’으로
불리는 이 대성전은 베드로 대성전이 세워지기 전까지 교황들이
거주하였고, 다섯 차례의 공의회가 열렸으며, 성 프란치스코의
수도규칙 인준이 이루어지기도 했던 교회 행정의 중심지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베드로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모든 교회가 성령 안에서
일치되어 있음을 기억하고, 우리의 성화 성소에 대해서도
새겨보아야겠습니다.
성전은 축복과 생명을 가져오는 물이 흐르는 곳이요, 하느님이
현존하시는 곳입니다(에제 47,8-9. 12). 성전은 거룩함이 반향되고
하늘나라가 실현되는 상징적 공간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전이 장소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영성의 샘이요 세상의
성화의 출발점이라는 사실이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성전이라 하시며 사흘만에
부활하실 것이라 하십니다(루카 2,21). 성전은 인간을 재생시키는
생명의 물이 나오는 곳이며, 이 물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오는 피이며, 모든 사람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성전은 하느님 사랑의 일치를 드러내는 교회의 상징적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교회는 그 소명과 사명에서
보편적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국가, 사회, 문화 등의 다양한 환경
속에 뿌리를 내린다면 세상 모든 지역에서 다양한 외적 모습과 표현을
띠게 될 것입니다. 각자가 애덕 실천을 통하여 살아있는 성전이 될 때
세계의 모든 성당이 하나로 일치되고, 지역교회와 보편교회가 일치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한편 성전은 그리스도 자신과 그리스도의 삶을 회상하고 보존하며
살아내는 곳입니다. 우리는 성전에 누구든 차별없이 존중받고
사랑하며, 저 낮은 곳으로 내려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먼저
사랑으로 선택하여 함께 하며, 슬퍼하는 이들과 함께 울어주고,
기뻐하는 이들과 함께 웃어주는 ‘공감과 연민’을 담아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 계신 하느님의 성전입니다.”(2코린 6,16) 따라서 하느님의
성전인 형제 자매들을 소중하게 대해야 합니다. 서로를 사랑으로
존중하며 소중히 대하는 마음과 삶의 태도야말로 성전을 참 성전이게
하는 우리다운 모습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실행함으로써 성전다운
거룩함의 향기를 풍길 때 구원의 샘이 되고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전세계 모든 교회가 로마 교회와 일치하여 예수그리스도의
사명을 실현하도록 요청받고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성전이 되어
이 세상을 사랑 가득하고 정의로운 하느님의 성전이 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 세상 한복판에서 구원의 신비, 사랑의
신비를 선포하고 거행할 때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실현 되겠지요. 그 순간 세상이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세상과 교회의 머릿돌로서 늘 현존하시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사랑의 친교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도록, 내 모든 것을
바치며 투신했으면 합니다.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
◈ [수도회] 알타반의 말씀사랑
2016년 다해 11월9일 수요일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그분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요한 2,21)
우리나라만큼 교회 십자가 불빛이 많은 나라가 없다지요?
시골 구석구석까지 교회가 없는 곳이 없고
도시에는 한동네에도 몇 개씩 크고 작은 교회들이 즐비합니다.
성당도 많고 절도 많습니다.
이렇게 성전이 많은데도 왜 세상은 더욱 추해지기만 할까요?
아마도 수많은 성전들은 진짜 성전이 아니라
추한 인간 마음들을 감추기 위한 가짜 모형일지도 모릅니다.
아니 어쩌면 그 불편한 진실을 감추기 위한
가장 고상하고 그럴듯한 피난처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교회와 성당, 사찰이 많아지고
크고 화려해지는 것은 자랑스러워하고 영광스러워할 일이 아니라
참 성전인 우리 인간의 마음이 사악하고 추함을 부끄러워할 일입니다.
그 크고 화려했던 예루살렘 성전을 허물고
사흘만에 다시 성전을 짓고싶다 외치신
예수님의 고뇌를 생각해 보는 오늘입니다.
온갖 추한 모습으로 갈갈이 찢어진 민주주의의 허물만 나부끼는
대한민국을 허물고 새 대한민국을 다시 일으켜 세울
참 성전인 아름다운 마음들을 모아야 할 때입니다.
참 성전이신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여러분의 아름다운 마음을 새 성전 건설에 일조하는
귀한 모퉁이 돌이 되게 하시길 축원합니다.
- 프란치스코회 성심원 원장 오상선 바오로 신부 -
◈ [서울]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2016년 다해 11월9일 수요일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예수님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 요한 2,13-22
지난 토요일에는 가정방문을 하였습니다. 지난여름에 혼배 주례를
하였고, 신혼부부가 초대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신랑과 신부 그리고
신부의 가족들과 함께 했습니다. 대화를 하면서 본당 신부님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신자들에게 엄격했던 신부님, 신자들에게
자상했던 신부님, 약주를 좋아하시던 신부님, 아예 술을 못 드시던
신부님, 매사에 열정적인 신부님, 늘 조용하셨던 신부님, 강론이 길었던
신부님, 강론이 재미있었던 신부님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교우들에게 성당은 건물일수도 있지만, 성당은 사제가 있는 곳인 것
같았습니다.
사제에게 성당은 어떤 곳일까요? 상가를 얻어서 사목을 하던 신부님,
가건물을 지어서 사목을 하던 신부님, 새로 신축한 성당에서 사목을
하던 신부님, 모든 조직과 반듯한 성당이 갖추어진 곳에서 사목을 하던
신부님이 있을 것입니다. 사제에게도 성당은 미사를 집전하고,
교우들이 모이는 건물과 장소일 수도 있지만 성당은 교우들이 모인
신앙 공동체입니다. 허허 벌판이었어도, 시장 속의 작은 공간이었어도,
모든 것이 갖추어진 성당이었어도 결국 중요한 것은 하느님을 믿는
신자들이 모인 공동체가 성당입니다.
신랑의 장모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본당 신부님께서 구역
미사를 하실 때였습니다. 사람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장소를 제공하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자매님께서는 구역장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하였다고 합니다. 저희 집에서 하겠습니다. 신부님께서 오셔서 미사를
하시면 저의 집이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기쁘고,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자매님에게는 집에서 하는 구역미사가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구역미사를 통해서 집이 성전이 되는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성지순례를 다니면서 많은 성당을 보았습니다. ‘예술적, 문화적,
역사적, 종교적’인 가치를 지닌 성당을 보았습니다. 웅장한 모습의
성당도 보았습니다. 그래도 성당은 미사가 집전 될 때, 하느님의 백성이
함께 모여서 찬미를 드릴 때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그분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그분께서
이르신 말씀을 믿게 되었다.”
오늘은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입니다. 라테라노 대성전은
교황님들께서 지내시던 성전입니다. 라테라노 대성전은 오랜 박해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왔음을 알려 주는 성전입니다. 라테라노
대성전은 교회가 세상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았음을 알려 주는
성전입니다. 성전은 기도하는 곳입니다. 성전은 친교를 나누는
곳입니다. 성전은 지치고 힘든 사람들이 와서 위로를 얻는 곳입니다.
성전은 생명의 빵을 나누는 성사가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성전은
성전만으로 남으면 단순히 건물일 뿐입니다. 성전은 그곳에서
신앙생활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의 몸이 바로 생명의 물이 흘러나오는 성전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몸에서 ‘가난, 순결, 순명’의 물이
흘러나오면 세상에는 평화가 올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몸에서
‘믿음, 희망, 사랑’의 물이 흘러나오면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도 이미
하느님 나라를 살고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베들레헴 성당 문에 있었던 글이 생각납니다. “여러분이 관광객으로
오셨다면 순례자가 되셔서 나가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이 순례자로
오셨다면 거룩한 사람이 되셔서 나가면 좋겠습니다.”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주님께서 머무시는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성소 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참 성전이 되는 법
2016년 다해 11월9일 수요일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성전 오른쪽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보았네.
그 물이 닿는 곳마다 모두 구원을 받았네."
독서: 에제키엘 47,1-2.8-9.12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란 것이 있습니다. 어떤 건물 유리창이 하나도
깨지지 않았다면 그 건물에 돌을 던지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죄책감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차피 한두 장
깨어져있다면 죄책감이 줄어들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 쉽게 창문을
깬다는 것입니다.
이는 이루 영성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고해성사를 보아서 깨끗한
마음을 지니고 있을 때는 그 깨끗함을 유지하기 위해 죄를 조심하지만,
한 번 죄를 짓고 고해성사를 하지 않으면 두 번, 세 번 짓는 것은
처음보다 훨씬 쉽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법칙은 좋은 의미로도 쓰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일단
자신이 불가능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 일을 해 내면 자신도 그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이웃을 위해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것은 큰 두려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먼저 자신의
옆구리를 깨뜨려 그 안에서 축복의 선물을 우리에게 부어주셨습니다.
이에 우리들도 두려움이 줄어들어 그분처럼 우리 옆구리를 깨뜨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오늘은 로마의 성 라테라노 성전 봉헌축일입니다. 예수님은 당신
자신이 바로 ‘성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다인들은 사흘 안에
성전을 다시 세우겠다고 말씀하신 예수님께 이렇게 대듭니다.
“이 성전을 마흔여섯 해나 걸려 지었는데, 당신이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는 말이오?”
그러나 요한 복음사가는 이렇게 결론지어줍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그리고 오늘 독서에서는 에제키엘서 47장의 성전 오른편에서
흘러내리는 물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성전 우편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물이 있는데 그 물이 가는 곳마다 생명이 넘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그 물은 성령을 의미하고 그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그분의 옆구리에서 흘러내린 피와 물이 우리에게 생명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들도 성전입니다. 우리에게서도 피와 물이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이웃에게 생명을 전해줄 수 있는 것입니다. 저도
신학교 때 어떻게 하면 주님께 도움이 될 수 있을까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해답은 하나뿐이었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이웃에게 어떤 열매를 주기 위해 포도나무 가지는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저 그분께 붙어있기만 하면 나를 통해 그 은총의
열매가 이웃에게 가는 것입니다. 성전이 되기 위해 필요한 유일한 것은
그분께 붙어있는 시간을 많이 갖는 것, 즉 ‘기도’하는 것뿐입니다. 오늘
독서에서는 이를 “이 주님의 집 정면은 동쪽으로 나 있었는데”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동쪽은 해가 뜨는 방향이기 때문에 주님을 향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웃에게 생명을 전해주는 성전은 항상 주님을
향하고 있어야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모세를 통해 성막을 제작하라고 하십니다. 그 성막은 세
부분으로 되어있는데 바깥뜰, 성소, 그리고 지성소입니다.
바깥뜰에서는 짐승들이 살라 바쳐지는데 이는 주님을 향하기 위해 내
자신의 동물적인 본성, 즉 육체적 욕망을 살라 바쳐야 함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성소 안으로 들어가면 왼쪽엔 가지가 일곱 개인 등잔대가 있고
오른쪽엔 빵이 있으며 그 정면엔 향이 피워지고 있습니다. 일곱 등잔은
일곱 은사를 주시는 성령을 의미합니다. 그 성령의 비추임이 영혼 안에
있어야합니다. 그리고 빵은 바로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빵 만으로만 살지 않고 말씀도 양식으로 매일 먹어야하는
것입니다. 그 정면의 타고 있는 향은 자신의 생각까지 봉헌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도가 주님과의 대화라면 자신과의 대화가 생각입니다.
주님 앞에서 생각을 봉헌하지 않으면 기도가 아닌 분심이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깊은 곳, 즉 사람의 마음이라고도 할 수 있고
영이라고도 하는 이 곳에는 계약의 궤가 있습니다. 그 궤위에 주님께서
내려오시니 우리 자신의 제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제대
안에는 주님의 계명이 들어있습니다. 그 마음이 다른 것이 아닌
유일하게 주님의 뜻이 실현되기만을 바라고 있어야 참 성전인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을 만드는 것을 동편의 주님을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술자리에서 한 선배 신부님이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다른 선배 신부님들이 술 좀 마시라고 하는데 그
신부님은 끝까지 마시지 않았습니다. 처음엔 술을 좋아하셨지만 지금은
술을 끊은 지가 이십 년이 된다고 합니다. 저도 술을 끊고 싶기는 한데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선배님을 보고는 용기를 내보기로
했습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옆구리를 뚫는 것을 보면 다른 사람도
그것을 보고 힘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이웃을 살리는 참 성전이
먼저 되기를 결심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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