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태생의 일본 프로레슬러 역도산. 그는 원래 스모선수였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 프로 레슬러 역도산(力道山)이 1963년 1월8일, 30여 년 만에 처음 조국 땅을 밟았다. 300여 명의 환영객들은 트랩을 내려오는 역도산(180cmㆍ140kg)을 발견하고 달려가 서로 꽃다발을 전달하려고 북새통을 이뤘다.
역도산은 일본명 리키도상이고 본명은 김신락(金信洛)이다. 함경도에서 태어나 16세 때인 1940년 일본에 건너가 스모선수로 컸으나, 일본인이 아니면 최고자리인 요코즈나가 될 수 없다는 스모계 규정에 반발, 1950년 9월 스모계를 떠나 프로레슬러의 길을 걷는다. 이후 1년간 미국에서 선진 프로레슬링 기술을 습득하고 돌아와 일본프로레슬링협회를 발족시켰다.
1953년 2월19일 일본 최초의 본격적인 프로레슬링 국제시합이 도쿄에서 열리자 경기장 앞은 몰려든 인파들로 큰 혼란을 빚었다. 일본 대표로 역도산이 출전한데다 당시 한창 인기를 모으고 있던 세계태그챔피언 샤프형제가 출전했기 때문이었다. 역전광장 등 220여 곳에 설치된 옥외TV 앞에는 중계를 보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고 관중들은 역도산의 특기인 ‘가라데 촙(당수)’ 으로 거구의 서양인을 무너뜨리는 장면에 열광했다. 2차대전 패전국으로 절망에 몸부림치던 때였다. 프로레슬링 붐은 막 싹트고 있던 TV보급율과 상승작용을 일으켜 일본 전역을 들끓게 했다. 적자에 허덕이던 일본 NTV가 프로레슬링 독점중계로 흑자로 돌아설 정도였다.
사업가로도 성공, 한때는 일본 100대 자산가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지만 1963년 12월 뜻하지 않게 야쿠자간의 싸움에 휘말려 칼을 맞고 서른아홉의 나이로 숨졌다. 역도산이 이 해 연초 방한했을 때 약속했던 국내 스포츠센터 건립 지원도 그의 죽음에 따라 무위로 그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