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목 외 1편
김외숙
여자는 끈목을 잡고 잠드는 오래된 습관이 있어요
아마 꿈속에서 만들고 싶은 것을 완성해 놓지 않을까요
손가락 위에 올라갈 매듭의 서열은
항상 정해져 있어요
기분이 좋은 날은 한 번에 매화꽃을 피우지만
허공에 걸리는 날도 있겠지요
엄지와 검지 사이 권총자세로 끈목을 걸어요
순식간에 발사된 총알처럼 지나가요
어지러운 회전과 직진 한 방에 끝나야 해요
햇살이 눈부시네요
사건이 있던 날
여자는 집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어요
슬픈 일은 계속 되었어요
배추밭에 배추흰나비가 보여요
여자는 유년의 기억을 따라 끈목을 엮어갔어요
웃음소리가 뛰어다녀요
발아하는 꽃몽우리
꽃잎 같은 기억의 무늬는 잘 엮이지 않아요
슬픔은 무뎌지는 것이 아니라 무디게 하려는 손끝에 있어요
그때가 되면 홍매화가 활짝 피겠죠
압화
김외숙
책을 펼친다
풋내는 기억을 따라간다
구르는 것만 봐도
웃음 터지던 열다섯 살
효선이 미순이
꽃잎 같은 소녀들
책장 속에 납작 짓눌려져 있다
여린 꽃잎은 힘이 없었다
납작해진 웃음소리들
까르르 새어 나온다
숨을 불어넣자
꽃잎이 바스라진다
천천히 책을 덮는다
----애지사화집 {북극 항로}에서
약력:
김외숙 2021년 <애지>로 등단
이메일 kos2080k@naver.com
카페 게시글
애지의시인들
김외숙의 끈목 외 1편
애지사랑
추천 0
조회 20
23.04.16 09:01
댓글 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