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령을 반대하는 한 장군이 ,지금 군대는 까라면 까는 군대가 아닙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군대란 시작 즉 명령에 따라 끝 즉 말단 이병이 동시에 함께 같이 움직이는 특수 조직이다. 다시 하여 명령을 따라 죽고 명령을 따라 사는 조직이 군대다.
더러는 상사의 명령이 부당하다 판단되면 거부할 수도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당나라 군대나 나이롱 군대에서나 있을 수 있는 것이지 자고 나면 주인이 바뀌는, 낮에는 국군이 뺐았다 밤이 되면 괴로군에 빼앗기는 6.25 때의 "백마고지" , 좀더 부연하면 휴전 임박으로 한치의 땅이라도 더 가져야 한다는 것으로 백미고지는 피로 강이 되고 시체로 산의 높이가 높아가는 전투였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니 소대장의 "돌격 앞으로!"가 먹히지 않으니 소대장이 앞장 서 "나를 따르라!"하고 앞장을서면 괴로군이 귀신같이 알고 괴로군이 쓰는 딱궁 총으로 "딱궁" 하고 소리가 나면 "소대장 죽었네" 했다고 한다. 그래서 소대장을 서로 안 하려고 하여 중사 심지어 하사까지 승진시켜 소대장을 만들었다고도 한다.
상사의 명령을 선택한다? 어림 반푼어치도 안되는말로 그때의 군대에선 꿈도 못꾸는 일이다.
그리고 명령을 양심적 판단에 맏겨 선택케 한다는 그것은 군대가 아닌 것이다.
여기 필자가 1960년대 28사단 82연대 2대대 CAP소대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직접 경험한 실화가 있다.
그 때 한 북한 파견 간첩이 연천 대광리와 청향리를 오고 가는전동차에서 불심검문에 잡히고 간첩을 안내한 안내조 2명이 연천 군자산에서 북으로귀환 중에 있다는 정보에 그 방향과 시간을 따져 보니 필자의 관할 지역이어서 대대장은 즉각 "CAP소대 전원을 10미터 간격 일렬 횡대로 산 능선을 따라 이잡듯 뒤져라" 명령이 하달 된 것이다.
군대시절 최초고 그리고 미지막 실제 작전명령을 하달 받은 것이다. 물론 수류탄이 지급되고 소총의 잠금장치를 풀어 "보면 쏴라"의 명령이였다.
그 대대장 명령에 필자의 양심적 휴메너티가 발동 대대장에게
"간첩은 숨어 있고 우리 애들은 움직이는 표적으로 몇명이 먼저 죽을지 모르는 것 아닙니까?"란 질문, 일종의 항명에 해당되는 것이었다.
그때 대대장은 영어로 하면 "I don't care how many you got to be killed"로 "몇명이 죽든 상관할바 아냐. 명령이야!" 했다. 순간 "병사들은 물론 나도 죽을 수도 있구나"가 머리에 스치고 지나 갔다.
여태까지 헤아릴 수없는장교들 회식에서 "어이,김소위 한 잔 받아"의 인자한 대대장 모습은 간 데 없고 온기없는 차디찬 명령에
"소대 돌격 앞으로!" 명령이 계곡을매아리 쳤다.
월남전에 참여했던 군인들은 군대명령이 어떻다는 것을 능히 체험했겠지만 그런 경험없이 의무만 채우고 나온 사람들은 군대명령이 삶이고 또 죽음이다는 것을 실감하지는 못했으리라 본다.
to be continued
그것을군대를 안간 검찰들이 이해
지금까지의 군대 이니 채상병이 살아 있었을 때까지의 군대는 까라면 까는 군대였다.
검찰은 까라는 까는 검찰이었기에 군대는데 "지금 군대는 까라면 까는 군대가 아니다"로 어이 막을 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