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 두레박 신부의 영적일기(연중 제9주간 목요일)
사랑의 은총으로 충만하시기를….
언젠가 어느 본당에서 복사 아이들을 데리고 산행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함께 올라가던 복사 아이가 ‘신부님, 아직 멀었어요?’하고 물을 때, 저는 ‘거의 왔다.’라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또 한참 후에 다른 아이가 매우 지쳤는지 ‘신부님, 아직도 멀었어요?’라고 묻자, ‘이제 거의 왔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 아이가 옆에 수녀님에게 ‘수녀님, 아직 많이 남았대요.’하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 순간 제가 생각하는 ‘거의’와 아이들이 생각하는 ‘거의’가 다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거의’라는 이 단어에서 느끼는 시간의 차이가 사람마다 ‘서로 다를 수 있겠다’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베드로2서 3장 8절 “주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습니다.”라는 말씀으로 ‘정말 그럴 수 있겠다.’라는 묵상했습니다. 아멘.
오늘 복음을 보면 율법 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어봅니다.
많은 사람은 첫 계명을 “제물과 희생에 관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구약성경 레위기는 하느님을 올바르게 예배하는 법을 소개하는 말씀으로 “하느님께 대한 올바른 예배는 적절하고 온전한 제물에 달려 있다.”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니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라는 것이 첫째가는 계명임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둘째 계명은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율법 학자가 예수님께 말하자, 예수님께서는 슬기롭게 대답하셨다고 하시면서, 그에게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하고 이르셨습니다.
그렇다면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칭찬이었을까요?
율법 학자가 구원을 얻었다는 뜻일까요? 이후에 율법 학자가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없고, 구원받았다는 말씀도 없습니다.
다만 이 말씀 속에는 ‘너는 율법은 잘 알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다시 말해 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의 부족함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뒤에는 어느 누구도 감히 그분께 묻지 못하였습니다.”라는 말씀으로 맺습니다.
그런데 루카 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율법 학자에게 이르셨습니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복음 10장 37절).”
이 사랑의 계명은 앞으로 할 것이라는 계획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라, “바로 지금, 바로 여기에서 실천되어야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코린토 1서 13장 2절 말씀입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깨닫고 산을 옮길 수 있는 큰 믿음이 있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결국 ‘사랑’은 하느님을 믿는 이들이 걸어가야 할 목표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으로 드러나야 합니까? 바로 이웃사랑입니다. 아멘.
사랑하는 고운님들!
히브리어 말로 마음은 ‘레브’곧 ‘심장’이고, 정신은 ‘네페쉬’곧 ‘목’이고, 힘은 ‘메오드’ 입니다.
심장은 몸에 피를 흐르게 하는 중요한 기관이고, 목은 호흡하게 하는 기관이고, 힘은 움직이게 만드는 원천입니다.
이들의 첫 번째 공통점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는 기관들입니다. 두 번째 공통점은 전부 목숨(생명)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마음, 목숨, 정신, 힘에는 ‘하느님의 사랑이 충분하게 담아져 있다.’라는 말씀입니다.
즉, 고운님들이 하느님을 사랑하기 이전에 먼저 고운님들을 사랑하신 하느님의 은총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네가 사랑받고 싶다면 그렇게 사랑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 사랑을 받은 사람도 아름답고, 또 그 사랑을 하는 사람은 더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리하여 지금 당장, 지금 여기에서 “너는 하느님 나라에서 멀지 않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사랑의 은총으로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저 두레박 사제도 “사랑의 은총으로 충만해야 한다.”라는 말씀을 담고 몸과 마음이 아픈 고운님들과 아픈 이들을 돌보는 고운님들, 그리고 고운님들의 자녀에게 주님의 치유와 회복의 은총이 충만하게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영적일기를 마무리하면서….
하느님 사랑의 은총으로 충만하게 살아가는 고운님들이 각자 삶의 자리에서 지금 당장, 여기에서 이웃사랑을 실천하여 치유와 회복의 은총을 누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강복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 성자와 성령께서는 고운님들에게 강복하시어 길이 머물게 하소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첫댓글 ‘사랑’은 하느님을 믿는 이들이 걸어가야 할 목표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으로 드러나야 합니까?
바로 이웃사랑입니다. 아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