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15]“다시 作心하고 기자를 하겠다”
살아가면서 ‘運(運命)이란 게 있기는 있구나’를 종종 느낀다. 엊그제 장인수(유튜브채널 ‘저널리스트’ 운영) 기자의 신간 『작심하고 다시, 기자』(1월 25일 출판사 시월 펴냄, 287쪽, 18000원)를 읽으며 든 생각이다. 뒤죽박죽 정치환경이 결국 그를 여의도를 떠나 ‘한데(외부)’로 나가게 한 것이다. MBC 기자 19년차만에 졸지에 辭表를 쓰게 된 드라마틱한 이야기와 검찰개혁과 언론개혁을 위한 ‘취재熱戰’를 거침없이 써내려갔다. 그가 누구이고 그의 활약상이 무엇인지는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그 실상을 제대로 안것은 이번에 그의 글을 통해서였다.
1월 대선 직전에 그가 터트린 ‘김건희 7시간 녹취록’ 보도는 사안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대선 승패를 가를 만큼의 反響을 일으키지 못했다. 그 비하인드 스토리를 읽으면 MBC 내부의 ‘黑歷史’가 보인다. 記者로서 권력의 비리를 감시하고 추적하고 고발하는 게 얼마나 至難한 것인지도 여실히 알게 된다. 이제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된 <서울의 소리>의 ‘귀신같은’ 이명수 기자와 ‘멋진 콜래보’가 좌절되고 실패한 셈이 되자, 디올백사건 보도에 기자의 생명을 걸었다. 다시 또 벽에 부닥치자 미련없이 거대 방송사를 떠나 ‘외로운 행군’을 하고 있다. ‘깨시민’으로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책을 사주거나 소액 후원에 불과하나, 그들을 응원하는 마음속 박수소리만큼은 ‘우레’이다.
소위 ‘기레기’들이 우글거리는 '레거시 언론' 환경에서 소신을 갖고 줏대를 세우며, 맨처음 기자가 되려 했던 初心을 잃지 않기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기자 역시 생활인이므로. 그러나 그는 '독불장군'처럼 해내고 있다. 그의 반듯한 프사(프로필 사진)의 얼굴을 보면, 무릎 꿇고 사느니 서서 죽겠다는 決氣가 느껴진다. 장하다. 검찰과 언론 그리고 권력의 유착은 파면 팔수록 그 뿌리가 깊어도 너무 깊다. 기득권, 카르텔, 이런 말들을 애써 외면한 채 孤軍奮鬪한 취재기를 엿보면 분통이 터지지만 어쩔 수 없는 일, 그 틈새를 뚫고 진실과 역사만을 믿고 ‘무모하게’ 몸을 던지는 언론인도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내란이 성공했다면 그 後果가 엄청나게 심각했을 터. 방송사 봉쇄가 아니고, <뉴스공장>의 공장장(김어준)을 왜 먼저 체포하려 했을까? 봉지욱-이명수-장인수 기자도 신변의 위험을 느끼고 대피작전을 폈다고 한다. 참으로 무서운 계획이 물밑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한다고, 어디 진실이 묻혀지겠는가?
장인수 기자가 이 책에서 고발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건들을 목차로 보자. ▲김건희와 디올백 ▲7시간 녹취록 보도의 진실 ▲한동훈과 검언유착 ▲손준성과 고발 사주 ▲TV조선 방정오 대표와 그 딸의 ‘계급질’ ▲이사원과 서울시 공무원(유우성) 간첩조작사건. 사건이 1000개가 있다면 우리는 그중에 진실을 10개나 알 수 있을까? 물론 30여년의 군홧발독재 시절에는 이보다 훨씬 더 했을 것이다. 많이 나아졌다는 게 이 정도이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억울한 피해자들의 恨은 언제 어떻게 풀릴 수 있을까? ‘풀같은 존재’(民草)이므로 묻혀버려도 아무렇지도 않는 것일까? 그 뒤에 法에 앞서 펜(言論)이 있거늘, 펜은 칼보다 무섭다는 말은 거짓말인가? 왜 기자들은 언제부터 아예 포기한 사람(棄者)들이 된 것일까? 거대 신문사의 社說이 泄瀉(설사)가 된 지는 너무도 오래가 아니던가.
그런 와중에도, 조직의 말단에서 가쁘게 숨을 쉬고 있는 正義로운 기자 몇몇이 있다. 이건 정의가 아니고 公義일 것이다. 저널리스트(언론인), 얼마나 명예로운 勳章같은 직업인가? 언제까지나 결코 빛이 바래면 안되는 자랑스러운 이름인 것을. 언론의 사명은 破邪顯正(파사현정) 不偏不黨(불편부당)이지 않던가. 어쩌다 이렇게 회복 불능의, 길들인 순한 양처럼 되었을까? 옳지 않은 권력에도 附和雷同이라니? 批判意識의 全無, 안될 말이다. 暗澹(암담)한 것이 어디 한두 개이겠냐만, 언론의 墮落(타락)은 참으로 아픈 대목이다. 캄캄 터널, 천길 낭떠러지같이 빛이 안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D일보 출신의 지역구 초선 국회의원 두 명의 말을 들었다. 듣지 않았어야 정신건강에 좋았을텐데, 들리는 것을 어찌 하랴. 한 젊은 친구는 “이재명이 대통령 됐으면 이보다(내란) 더한 짓도 했을 것”이라고 했다던가. 또 한 친구는 부산에서 “이재명만큼은 안됩니다”는 플래카드를 걸었다던가. 그들이 기자가 되려 한 초심은 어디로 실종됐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게 진흙밭 개싸움, 泥田鬪狗인가? 정치의 本領은 어디로 갔는가? 憤怒나마 잃으면 안된다는 건 나의 지론. 분노를 넘어 民心이 왜 폭발지경인지를 ‘정상배’들은 직시해야 할 것이다.
여기 칼보다 더 강력한 펜을 가지고 기록하는 기자들이 있다. 作心三日은 어림도 없다고, 마음이 약해지고 흔들릴 때마다 새로이 作心하는 기자들이 있다. 그가 바로 장인수 기자이고, 이명수 기자이며, 봉지욱 기자이다. 그들의 健筆과 健康을 비는 마음, 한가득이다. God bless you, your pen, always! Thank a l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