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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임금 판결의 역습] 부산고법 "재직자만 지급하는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 아니다"노동부 조사 결과 전국 사업장 3곳 중 2곳 통상임금서 정기상여금 제외
2014.01.24 구은회 | press79@labortoday.co.kr
정기상여금 지급일 기준으로 재직 중인 근로자에게만 지급되는 정기상여금은 고정성이 결여돼 통상임금에서 제외된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재직자에게만 지급되는 복리후생적 금품은 통상임금이 아니다”는 지난해 12월1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는 데까지 이른 셈이다.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이라는 점을 재확인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역풍이 거세다. 노동자에게 불리한 내용의 유사 판결이 이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임금협정에 '재직요건' 두면 통상임금서 정기상여금 제외=부산고법 제1민사부(재판장 문형배)는 전국자동차노조연맹 경남·울산지역노조 대우여객지부 조합원 46명이 “하기휴가비·무사고수당·장기근속수당·교통비·만근수당·정기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통상시급을 산정하고, 이를 기준으로 제 수당을 지급하라”며 회사측을 상대로 낸 임금소송에서 “하기휴가비·무사고수당·장기근속수당·교통비는 통상임금에 속하지만, 만근수당·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서 제외된다”고 판시했다고 23일 밝혔다.
통상임금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법리를 수용한 첫 하급심 판결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갑을오토텍 사건에서 복리후생적 급여에 적용했던 고정성의 잣대, 즉 재직요건을 정기상여금까지 확장시켰다는 점에서 파장이 예상된다. 법조계와 학계조차 소정근로의 대가인 정기상여금에 재직요건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합당한가를 놓고 아직까지 설전을 벌이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각각의 임금항목에 대해 △1년 이상 근무한 운전기사에 지급하는 하기휴가비는 통상임금 △사고 발생 여부와 상관없이 월 14일 만근자에게 지급되는 무사고수당은 통상임금 △일정한 근속기간 이상을 재직한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장기근속수당은 통상임금 △출근일수에 따라 지급되는 교통비는 통상임금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월 14일 만근 여부에 따라 지급되는 만근수당은 고정성이 결여돼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봤다.
대부분의 통상임금 소송이 그렇듯 이번 사건의 핵심은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여부다. 대우여객은 1년 이상 근속자에 한해 월 만근임금(기본급+연장·야간·주휴수당)에 대해 1년에 380%의 정기상여금을 분기별로 분할지급해 왔다. 회사 임금협정은 "상여금은 지급일 기준 현재 재직자에 한한다"는 내용과 "근로자의 귀책사유로 인해 근무하지 않고 임금이 지급되지 않은 월에 대해서는 해당 월분의 상여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명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정기상여금은 1년 이상 근속하고 지급기준일에 재직하고 있는 자에 한해 월 만근임금의 380%를 기준으로 4분해 지급하는 것으로, 근로자가 임의의 날에 근로를 제공하더라도 그 특정시점이 도래하기 전에 퇴직하면 당해 임금을 전혀 지급받지 못해 근로자가 임의의 날에 연장·야간·휴일근로를 제공하는 시점에서 그 지급조건이 성취될지 여부가 불확실하다”며 “고정성이 없어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주어가 복리후생적 금품에서 정기상여금으로 바뀌었을 뿐 대법원 전원합의체 논리를 빼다 박은 판결이다.
◇통상임금 확대, 물거품 되나=이번 판결이 주류 판례로 자리 잡을 경우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근거로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믿어 온 노동자들의 기대는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6월 전국 100인 이상 사업장 1천곳을 상대로 상여금 지급기준을 조사한 결과 고정상여금을 지급하는 사업장 가운데 38.2%만이 “퇴직근로자에 대해서는 정기상여금을 일할 지급한다”고 답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고정성을 요건으로 본 ‘일할지급’ 요건을 갖춘 사업장이 38.2%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나머지 61.8%의 사업장은 대우여객처럼 재직자에게만 정기상여금을 지급한다고 볼 수 있다. 노동부 통계만 봐도 사업장 3곳 중 2곳꼴로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른다.
노동부는 이러한 판결에 입각해 개별기업 노사의 임금·단체협상을 지도할 방침이다. 노동부는 이날 발표한 ‘통상임금 노사지도 지침’에서 “정기성 요건을 충족한 정기상여금 중에서도 지급요건이 ‘특정 시점에 재직 중인 근로자에게 한정’할 경우 고정성이 없어 통상임금에서 제외된다고 보고 지도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노동계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김형동 변호사(한국노총 중앙법률원)는 “통상임금에 대한 법원 판결에 모르쇠로 일관하던 노동부가 전문가들이 논쟁 중인 민감한 사안에 대해 일개 하급심 판결을 근거 삼아 감독에 나서겠다는 것은 자가당착”이라며 “이런 잣대라면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는 사업장이 턱없이 적다는 얘긴데, 통상임금 확대에 따른 기업들의 비용부담이 수십 조원에 달해 임금체계 개편이 시급하다는 노동부의 주장은 거짓이었나”라고 되물었다.